후쿠오카 여행일지

by 이 륙

어느날 문득 후쿠오카에 가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정도 고민한 뒤, 다음날 항공권과 숙박을 예약했다. 항공권은 왕복 15만원이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자려했으나 임박했는지 방이 없었다. 그래서 아무 저가 호텔을 예약했다. 금액은 3박에 31만원이었다.


얼마 전 도쿄에 다녀온 친구의 말이 떠올라 트레블월렛을 준비해갔다. 앱을 다운로드하고 카드도 발급받았다. 트레블월렛이 편리했던 이유는 앱을 통해 엔화를 충전할 수 있고, ATM기를 통해 현금을 뽑을 수 있으며, 일부 교통비 지불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수는 아닌 것 같다. VISA 신용카드만 있으면 웬만한 건 다 할 수 있다.


10월 중순, 서울도 이상하리만큼 더웠지만, 후쿠오카는 여름 그 자체였다.

해안 도시 특유의 짜고 후덥지근한 공기가 피부에 닿았다.

하루 종일 반팔만 입어도 되는 그런 날씨였다.


공항을 나가는 사람들을 따라 도심행 버스를 타고 기온역에서 내려 호텔로 걸어갔다.

리셉션 직원이 불친절하게 맞이해주었다. 귀찮은 티를 팍팍 냈다.

작고 낡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으로 올라갔다. 복도와 풍경이 가지런한게 일본스러웠다.

객실 복도
KakaoTalk_20241009_002310543_05.jpg 복도 밖으로 보이는 풍경

객실 안은 담배 냄새가 배어있었다. 벽지는 기분 나쁜 노란색이었고 부분 부분 갈색 때가 묻어있었다. 전체적으로 어두웠고 구석엔 먼지가 쌓여있었다. '당신을 위한 선물입니다'라고 쓰여있는 카드와 함께 생수가 하나 놓여있었다. 생수 하나 준다고 생색내는 게 웃겼다.


구글맵을 켜고 무언가 많이 포집되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처음 다다른 곳은 캐널시티라는 복합쇼핑몰이었다. 사람이 많았고 층마다 야외와 맞닿은 테라스가 있어 근사한 정도는 아니지만 '잘해놨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 김에 물건을 구경하려 했으나 곧바로 흥미를 잃었다. 5분 남짓 구경한 뒤 다시 걷기 시작했다.


강이 펼쳐졌고 강변으로 포장마차가 줄지어있었다. 나카스라는 곳이었다.

KakaoTalk_20241009_002310543_06.jpg 나카스 거리. 왼쪽으로 강이 흐른다.

다소 이른 시간인데다 혼자 가기엔 뻘쭘하여 일단 지나쳤다.

하지만 벌써부터 줄 선 가게가 있었고 직원들은 호객행위를 했다.

KakaoTalk_20241009_002310543_07.jpg 나카스 거리의 한 가게

일본 감성이 충만했다. '일본 감성'이란 무엇일까.

'더 이상 더할 수도 뺄 수도 없는 효율에서 오는 조화'가 아닐까.


넓은 폭의 다리를 건너 텐진이라는 동네로 가던 중 괜찮은 카페를 발견했다.

KakaoTalk_20241009_002310543_09.jpg 창문에 낙서 그림이 그려진 한 건물
KakaoTalk_20241009_002310543_10.jpg REC커피 외부

원두를 선택해야 되는데 언어 장벽으로 난처해하자 한쪽은 "산미"있는 것이라고 직원이 친절히 설명해줬다. 원두를 선택하니 직원이 안쪽을 향해 "~아메리카노"라고 외쳤다. 발음이 한국어와 유사해 한국사람인가 하는 의문이 스쳤지만 어딘지 모를 일본인 느낌이 나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결제를 마치고 야외 2인석에 착석했다. 실내가 깔끔했지만 날씨도 선선하니 사람 구경하기엔 야외가 딱일 것 같았다.


배터리가 없었는데 어댑터도 가져오지 않은 걸 깨달았다. 커피를 가져다주는 직원에게 "차지"가 가능한지 물었다. 일본에선 이렇게 충전을 맡기는 게 경우 없는 짓은 아닐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직원은 아주 친절하게, 그렇다면 우리가 너의 휴대폰을 "킵"해도 되냐고 되물었다. 길지 않은 갈색머리를 뒤로 묶은 여자 직원이었는데 굉장히 귀여웠다. 당연히 된다고, 고맙다고 인사한 뒤 휴대폰을 건넸다.


노트를 꺼내 지금까지 한 일을 기록하고 구병모의 <파과>를 꺼내 읽었다. 읽을수록 재미있는 책이다. 15페이지가량 읽고 가방을 싸 떠날 채비를 했다. 휴대폰을 찾고, 스포츠머리를 탈색한 직원에게 근처 "굿 레스토랑"을 물었다. 직원은 구글맵을 켜 두 곳을 추천해줬다. 한 곳은 꼬치집. 다른 한 곳은 오뎅집이었다. 오뎅집을 추천할 땐 "남바 완"이라고 덧붙였다.

KakaoTalk_20241009_002310543_11.jpg 스포츠머리 직원의 휴대폰 화면

오뎅을 크게 좋아하지 않아 꼬치집으로 향했다. 아주 가까운 곳임에도 헤매다가 이곳인가 싶은 가게로 들어갔다.

KakaoTalk_20241009_002310543_12.jpg 이름 모를 꼬치집

가게로 들어가니 바테이블과 홀테이블이 보였다. 주방 앞 바테이블에 앉은 뒤 메뉴를 봤지만 일본어였다. 서빙하는 여직원 두명 중 한 명이 눈치껏 한국어 메뉴를 가져다줬다. "유익한 세트"와 생맥주를 주문했다.

KakaoTalk_20241009_002310543_14.jpg 자리에서 보이는 주방 풍경

물수건과 애피타이저를 받았다. 오이무침과 순두부였다. 소스가 기가 막혔다. 어떻게 이런 감칠맛을 내는 건지.

KakaoTalk_20241009_002310543_15.jpg 유익한 세트 중 일부

꼬치 한 개를 먼저 받고, 그다음 세 개, 마지막으로 두 개를 받았다. 주방 남직원이 씩씩한 목소리로 쾌활하게 웃으며 직접 건네줬다. 그럴 때마다 어떤 메뉴인지 말해줬지만 곧바로 잊어버렸다. 모든 메뉴가 내가 알고 있는 "꼬치"를 재정의할 만큼 훌륭했다. 특히 적당히 익어 부드러운 염통과 입안에서 부서지며 고소함을 풍기는 간이.


혼자 감탄을 하며 맥주 하나를 더 시켜 마시는데, 어떤 남자가 옆자리에 앉더니 한국어 메뉴를 받았다. 이미 두 잔을 마신 내가 먼저 혼자 왔는지 말을 걸었고, 같은 질문을 받았다. 불과 몇 시간 전에 도착했음을 알려주었다. 반면 이 남자는 삼일 째였다. 옳거니 하여 이제 어딜 가야 좋을지 물으니 "텐진"쪽에 볼 게 많다는 답변을 듣고 나가기 전에는 어느 함바그집을 추천받았다.


계산을 하고 가게를 나오는데 주방 직원이 황급히 따라 나왔다. 이미 거리로 나온 나를 불러 돌아보니 미소를 지은 채 문간에 기대어 있는 주방 직원이 보였다. 한국에서 왔냐고 물어 그렇다고 했고 음식은 어땠냐고 물어 "스고이"라고 해주었다. 그 말을 들은 직원이 활짝 웃으며 "존나 맛있어요!"로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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