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 US. 2015
일에 치이고 전화에 시달리다가 사무실 문 밖에 나왔을 때 직원들 다 퇴근하고 없는 광경을 볼 때면 내가 받고 있는 스트레스가 현재 하는 것인지, 내가 뭐에 홀린 건 아닌지, 여긴 어디고 나는 왜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 네모난 방 안에 매몰되어 태평양 건너 본사의 말 같지도 않은 주문 사항을 챙기다가 어느 순간 미칠 것 같아 호기롭게 서류를 집어던지고 탈출하듯 회사를 나섰다.
주차장을 빠져나와 신호대기에 선 순간 나는 패크맨을 만났다.
할로윈도 아니었고 금요일도 아니었으며 한산한 거리에 패크맨이 반듯하게 서 있었다.
수십 년 전 미로 속을 알알이 콩 같은 먹이를 먹어가며 괴물을 피해 달아나는 게임을 하던 그 신나는 기분이 떠올라야 했을텐데, 미로 같이 알 수 없는 직장생활의 혼돈 속에서 눈 앞에 촘촘히 깔린 일들을 쉴 틈 없이 처묵 처묵 소화해가며 도처에 깔린 괴물 같은 사고 위험을 피하며 멈추는 법 없이 달려야 하는 내가 패크맨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겨우 프로젝트 하나 끝나면 다시 더 어려운 미로가 주어지고 더 무시무시하고 많은 괴물을피해 더 멀리 달려야하는 패크맨.
내가 먼저 신호를 받아서 그 자리를 떠났지만 그러는 동안 패크맨은 마치 허상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나의 멘탈이 투영되어 패크맨이 나타난 것이라면 다음엔 알라딘이 나왔으면 좋겠다. 자스민 공주님을 만날 꿈이라도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