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MA. NYC, US 2005
Cedric은 창고 정리를 하다 낡은 환등기를 발견했다.
Kodak carousel projector라고 쓰인 이 물건을 보자마자 아주 어렸을 때 졸린 Cedric을 팔 안에 끼워 놓고 넓은 쇼파에 앉아서 아버지 당신이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던 기억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무심히 먼지를 털어 내고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어지럽게 엉킨 슬라이드들을 꺼내 먼지를 털어 내어 유심히 보았으나 하얀 플라스틱 틀 안에 거무스름한 필름들은 어떤 것이 서로 어떻게 연관 있는지 구별하기 어려운 그저 검은 네모 들이었다.
느릿한 움직임이 이어지고 팔에 내린 먼지를 불어내는 무렵 전화가 울렸다. 회사였다.
'Cedric'
회사 인사팀에서 일하는 Kelly는 상량하지만 많이 절제한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아버지 일은 유감이야. 좀 괜찮아? 뉴욕에 간 김에 휴가 날짜 걱정 말고 좀 더 정리하고 와. 그래도 된다고 전화 했어'
Cedric은 묵묵히 들었다. Kelly의 자상한 목소리가 좀 위로가 되는 듯했다. Cedric의 침묵에 Kelly는 위로의 말을 이어갔고 그는 내용에 상관없이 그녀의 말에 기대었다.
전화를 마치고 거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버지의 무기력했던 말년의 흔적들이 스산했다. 창가에 먼지는 가득했고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을 리클라이너는 엉덩이 부분이 닳아 허연 속 소재가 드러나 있었다.
그는 내려놓았던 환등기에 전원을 찾아 연결하였다. 윙하는 팬 소리가 나면서 렌즈에 차츰 노란빛이 돌았다. 희미하게 투사되는 네모난 빛을 받아줄 곳은 넉넉했다. 아버지의 거실 벽은 메마르게 비어 있었다.
꼬블꼬블 얽힌 리모트 줄을 당겨 들고 버튼을 눌렀다. 반박자 늦은 감으로 슬라이드는 철컥 소리를 내며 기계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그 철컥 소리를 듣는 순간 아버지의 팔 안 품의 감촉이 선명히 느껴졌다. 또 한 번 철컥 소리를 내며 환등기가 슬라이드를 교체하자 아버지의 체취가 느껴졌다. 하나하나 슬라이드가 바뀌며 소리는 점차로 부드러워졌고 나의 아버지와의 기억이 또렸해져왔다.
렌즈를 돌려 초점을 맞추자 희미했던 상이 낡은 벽 페인트 위로 점차로 제 이미지를 찾았다.
어머니.
10살 때 돌아가신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기억의 어머니는 흐릿하다. 그 희미한 기억을 잊을까 걱정했는데 처음 보는 차림과 모습의 어머니가 마치 실제 사이즈와 같은 크기로 아버지의 거실에 드리워졌다. 나는 그렇게 오래전의 어머니와 마주했다. 환등기의 팬은 점차 힘겨운 소리를 냈다.
잊고 싶지 않았으나 잊혀졌고 잊은 줄 알았으나 희미하게 남아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그는 누렇게 낡은 렌즈를 통해 희미한 환등기 이미지로 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평생 어머니를 그리워했다. 그 또한 그랬다. 어머니는 부재가 삶에 문제가 되지는 않았으나 채울 수 없는 빈자리로 늘 존재했고 그 빈자리가 그리움을 낳았다.
어머니는 이 집 아버지의 거실과 잘 어울렸다.
투사되는 빛 속에 손을 넣어 보았다. 어머니의 코트 깃이 그의 손위에 내려앉았다.
지금 저 코트의 어머니는 어디에 존재할까. 하얀 플라스틱 틀 안의 거뭇한 필름이 어머니 일까. 투사되어 벽에 비추어져 드러날 때 어머니일까.
슬라이드로 존재하기 된 것일까 적당한 곳에 내려 앉아 보여야 어머니 일까.
그는 환등기를 들어 거실, 주방, 현관, 커튼 위 곳곳을 향해 투사하여 보았다. 어디에든 어머니는 잘 내려앉았다.
마음속에 흐릿하게 남은 어머니는 마음에 존재할까 꺼내 놓아 기억하고 떠올려 그려내야 존재할까.
Cedric은 LA로 돌아가는 저녁 비행기를 예약한 후 조심스럽게 환등기를 박스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