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문턱을 넘다

가장 어려운 첫 발

by 이섭

토요일 강남 오피스 건물 뒤편의 골목은 조용했다. 그 길을 따라 학원에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 나는 아직도 망설이고 있었다. 정말 이래도 될까? 오랫동안 품었던 배우의 꿈에 아주 조금 다가섰을 때 나는 이 소망에 대한 자책, 이를테면 이 나이에 이게 무슨 주책인가 하는 비난을 스스로 하고 있었다. 하는 일마다 잘 되지 않아 사회적,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에 이 무슨 팔자 좋은 생각인지 비난했다. 그렇게 학원 입구에서 두리번거리며 배회했다. 겨우 힘들게 손잡이까지 잡았지만 누가 나오려는 듯하면 후다닥 도망쳤다. 그렇게 한 시간여를 주변을 배회했다. 누가 보는 사람도 없는데, 내가 여기 온 것을 주변 아무도 모르는데 나는 나에게 부끄러웠다.


살면서 그렇게 망설인 건 아마 없었을 듯하다. 결국 십여 초간 현관 손잡이를 붙들고 파르르 떨다 '에라 모르겠다' 문을 밀고 들어섰다. 인포데스크의 노랑머리 직원과 눈을 마주치는 순간 '이젠 못 나간다. 저질렀다' 후련했다. 직원은 약간의 미소와 함께 대기실로 안내했다. 인포데스크를 지나자 긴 복도가 드러났고 그것은 꼭 호텔 복도와 같아서 좌우로 강의실이라고 적힌 방문들이 이어졌다. 각각의 방안에서는 비명소리, 흐느끼는 소리 등이 들렸다. 긴장감이 흐르는 복도를 지나 '대기실'이라고 임시로 종이를 붙여놓은 방에 이르렀다.

'여기 계시면 곧 호명될 거예요'

직원은 문을 열고 밀듯이 나를 방안으로 안내했다. 꼭 낚시로 잡은 물고기 도망가기 전에 일단 어망에 넣는 느낌이랄까.


대기실에 들어서자 20여 명의 중년들이 빼곡히 앉아있었다. 40대부터라고는 했지만 대부분 50대 이상으로 보였다. 대합실 의자처럼 팔걸이가 없이 이어져 있는 의자라서 나는 이미 앉아 있는 사람들 사이에 삐집고 끼어 앉아야 했다. 방은 좁고 고요했다. 숨이 고르자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고 실망했다. 방을 가득 메우고 있는 사람들의 면면은 다 달랐지만 당황했던 것은 그 각각의 화려함들이었다. 물론 배우라는 것에 밖으로 보이는 특정 패턴이 있을 수 없고 외연이 어떠한들 그 안에 배우에 대한 꿈의 무게를 가늠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이 허영스럽게 느껴졌다. PXG 로고로 가슴을 가득 채운 골프웨어를 입고 다리 떨던 배 나온 아저씨, 반짝이는 징이 너무 많아 눈부신 가죽점퍼 할아버지, 80년대 미스코리아머리와 파란색 마스카라가 강렬했던 여사님, 그 옛날 시골 어느 다방 마담으로 이름 날렸을 것 같은 눈이 부리부리했던 사모님까지 다양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특히 마스카라 사모님은 쉴새없이 거울을 보고 화장을 고쳤는데 자신의 외모에 상당히 만족해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마담, 자기 이 시골에서 그 얼굴 썩히지 말고 배우 해보지 그래?'라고 그녀를 칭송하던 다방 단골 손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대기실은 각각의 사연 많은 향수와 분내로 가득했다.


다시 말이지만 그분들의 '배우'에 대한 의지를 외향으로 판단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진실함의 차이를 가늠할 수는 있었다. 그분들 사이에서 내가 그분들을 그리 보듯 여기에 앉아 있는 나 또한 한심하게 보였다.


몇 번이나 엉덩이를 들썩이며 도망가야 하나 고민할 때 직원이 들어왔다.


'자 이제부터 한분 씩 오디션을 진행하겠습니다. 호명하는 분들은 옆 방의 오디션 장으로 들어오세요'


오디션이라고? 나는 깜짝 놀랐다. 어쩌지? 지금이라도 도망가야 하나? 매체를 통해 배우들의 다큐 등을 볼 때 보통 사람 입장에서 가장 신기하게 생각했던 것이 오디션이었다. 심사위원들 앞에서 단상도 없이 온몸으로 서서 연기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어떻게 저렇게 부끄러움 없이 뻔뻔스럽게(?) 울고 슬퍼하고 포효하며 연기할까. 나는 늘 그 모습을 경외롭게 봤었다. 고수들이란 다르구나 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오디션이라니. '무경력도 무방'이라고 하지 않았나. 더 빨리 도망치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하지만 들어올 때 망설였 듯 도망도 쉽게 치지 못했다.


이윽고 내 차례가 되었다.


(2편에서 계속)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