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망은 북적였다

낙장불입의 힘

by 이섭

일요일 오전 11시 첫 수업 날, 어색했지만 학원으로 향하는 길엔 희망 같은 것이 있었다. 어린아이 새 학기 등교 하듯 어떤 것을 배울지, 어떤 사람들을 만날지 기대가 되기도 했고 무언가 배우러 간다는 것에 설레었다. 회사의 업무상 교육 이외에 무언가를 순수한 의지로 내가 원해서 배운 적이 있던가. 원장이 몇 자리 안 남았다고 했던 TO를 꿰차고 등록하게 된 사실에 스스로 대견해하며 학원으로 향했다. 등록 수강생으로서 학원 인포데스크를 당당하게 지나며 직원에게 눈인사하는 여유를 보인 후 긴 복도 끝 강의실에 다다랐다. 웅성이는 소음이 안에서 들려 조심스러웠으나 자신 있게 문을 열었고 그 순간 나는 '와' 하는 탄성을 내뱉었다.


물고기 주제에 낚시꾼에 제 코를 바늘에 꿰어 내어 주며 '속아 주마' 우쭐했던 내가 얼마나 오만했던가. 낚시꾼은 말 그래도 전문 꾼이었고 원장과 미팅하며 바닥을 디딘 줄 알았던 실망감은 콘크리트 바닥을 뚫고 지하 흙맛을 보고 있었다.


도대체 얼마 남지 않은 TO는 몇 명이었단 말인가. 한 면이 거울로 된 강의실에 나머지 3면을 돌려가며 바짝 깔린 의자에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대략 25명은 넘어 보였다. 머뭇머뭇 강의실에 들어서며 오디션 날의 인상 깊었던 향수와 분내를 다시 느낄 때쯤 그날의 다채로웠던 아저씨와 여사님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몇몇은 내게 구면의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원장은 떡밥 보고 모여든 물고기 전부를 낚은 것이었다.

만선이었다.


선택받은 줄 알았던 아니 선택되어 주마 오만했던 나의 지느러미가 오그라 들었다. 원장은 진정한 프로 낚시꾼이었고 나는 비좁은 어망 다채로운 물고기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고 있었다.


가장 구석 빈 의자를 하나 찾아 엉덩이를 끼워 넣었다. 첫날 대기실의 상황과 등장인물을 포함하여 다를 바 없었다.

도망갈까?

그날과 다른 점은 이미 결재했다는 사실뿐 또다시 도망갈까 생각이 드는 현실이 처량했다.


'속았네.. 그럼 그렇지. 배우는 무슨..'

이 빌어먹을 체념귀신의 멘트가 옆자리 여사님의 알 수 없는 향수와 함께 지독하게 온몸을 후벼 팠다.


이윽고 젊은 강사와 운영팀 실장이 들어와 커리큘럼을 설명하고 학원 생활의 유의 사항 등을 알려주었다. 실장이 높은 텐션으로 깔깔거리며 말했던 것과 달리 강사의 얼굴엔 내용이 없었다. 잠깐의 휴식이 있은 후 강사의 제안으로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하게 됐다.


나는 자기소개가 세상에서 제일 싫다. 막 대학 신입생이던 시절 천리안, 하이텔 동아리가 최신 유행이었던 그때, 많은 친구들이 동호회에 가입하고 사람들을 만났었다. 대학로, 신촌 등에서 글자로만 보던 사람들을 만나 친구가 되는 놀라운 시절이었다. 그 분위기 속에 몇 번 끌려 나간 적이 있지만 자기소개하라는 그 대목을 견디지 못했다. 차례가 다가올 때 긴장감도 불편했다. 그래서 사람 많은 곳에 가기를 싫어한다. 자기소개하라고 할까 봐. 그래도 용케 잘 피하고 살았는데 사달은 미국 주재원을 나갔을 때 생겼다. 6년 부임 기간 동안 알게 된 사실이지만 미국 사람들은 정말 자기소개에 진심이다. 우리 문화에서는 미팅을 하게 되면 양측 주로 말하는 사람이 나는 어디에 무슨 직급 누구이다라고 짧게 말하고 같이 참석한 일행을 직급과 이름으로 소개하거나 아니면 키플레이어 몇 명만 짚고 넘어가게 마련이다. 그런데 미국 사람들은 참석자가 10명이든 20명이든 돌아가면서 다 소개한다. 더 대단한 건 자기 이름과 직급으로 안 끝나고 나는 어디 출신이고 대학에서 뭘 전공했고 엄마가 그거 하지 말라고 했는데 말들을 걸, 지금 그 전공 때문에 아직도 이걸 하고 있으며 어떤 커리어를 지나 오늘 너네를 만나고 있다. 저녁에 아들과 애너하임 에인절스 경기에 가기로 했다까지 좌중을 웃겨가며 한참을 얘기한다. 정말 자기소개가 싫다.


가뜩이나 원장한테 속은 것도 혼미하고 이 다양한 사람들과 한 어망에 갇힌 것도 안팎으로 부딪기는데 자기소개라니. 진짜 잠깐만이라도 도망가고 싶었으나 이 많은 시선을 받으며 거대 거울 앞을 지나기도 싫어 체념하고 인쇄물만 만지작거렸다.


한 명씩 자리에서 일어나 소개가 이어졌다. 반짝거리는 가죽잠바에 포마드로 머리 빗어 넘긴 아저씨를 보면서도 사극 가채 같은 머리에 형형색색 10가지 다른 네일을 하신 여사님을 보면서도 나는 끝까지 그분들이 나보다 나은 연기력이 있어 뽑았으려니 어설픈 겸손의 가면을 쓰고 다시 한번 꺼져가는 희망을 짜내었다. 그러나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했던가. TO가 별로 없어 우수한 성적의 몇 분에게만 기회를 준다던 원장의 거짓말이 얼마나 빨간지 그 매운맛을 톡톡히 봐야 했다.


가죽잠바 아저씨는 족히 65세는 되어 보이는데 말은 비문으로 가득했고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였으며 입가에 거품이 자꾸 부풀어 올라 말에서 거품이 끓었다. 가채 여사님은 자기 손녀 자랑만 5분 넘게 하다가 제지당했고, 골프웨어를 입은 사장님의 말은 뜨거운 숨소리와 발음이 얽혀서 도저히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시니어 모델 학원도 같이 다니고 있다는 여사님은 인도 전통의상 같은 긴 치마폭을 휘두르며 워킹과 턴 시범을 보여주시기도 했다. 박수가 나왔다. 당뇨와 고혈압으로 오래 서있기 힘들다고 하신 대략 70대 어르신의 들릴 듯 말 듯 한 인사말은 놀라웠는데 대학에서 연기 전공을 한 사람들도 몇십 년씩 무명배우하는데 학원에서 이거 좀 배운다고 무슨 소용 있겠냐며 헛된 기대하지 말고 일요일마다 만나서 수다나 떨자고 하셨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말을 이어가는 동안 서있지 못해 앉으시며 잔소리를 이어갔는데 역시 강사의 제지로 중단됐다. 내 차례가 되어 이름과 나이를 얘기하고 조용히 앉았다. 일어서서 둘러보니 내가 제일 어려 보였다.


환불은 정말 안 되는 걸까? 오랜만에 손톱을 물어뜯었다.


일요일 오후 강남대로 던킨도너츠 창가에 앉아 제일 달아 보이는 도넛을 골라 씹었다. 우울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설탕을 주입했다. 이래서 허튼짓, 남 안 하는 짓 하지 말고 하던 일이나 성실하게 잘해야 하는 것을. 한주가 지나며 자괴감에 몸서리쳤다. 멋진 동료들과 연기에 대해 얘기하며 서로의 연기에 자극받으며 공부하는 상상은 다 헛꿈이었구나. 좀 자세히 알아보지 못하고 저지른 것에 대한 자책도 같이 했다.


두 번째 일요일, 하는 수 없이 학원으로 향했다. 방법이 없지 않나. 다른 수강생이야 어떤들 나만 잘 배우면 그만이지 않을까. 떨어지지 않는 발을 악으로 집어 올리며 걸었다.


낙장불입

불타는 의지가 아니었다. 환불불가가 실낱같은 배수진이 되어주었다.


강의실에 들어서고 수업시작 시간이 되었을 때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거참. 다이내믹하다. 그날 인원의 반도 오지 않았다. 강사는 나타나지 않은 분들을 대충 열거하면 이분들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나중에 들은 얘기였지만 그분들도 나 만큼이나 실망하고 수강을 취소했다고 했다. 환불을 받이내고 취소한 것인지 그냥 버린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첫 수업. 강사는 연기에 대한 별 설명 없이 긴 지문이 적힌 종이를 십여 명의 수강생에 나눠 주고 시간을 주었고 10분 여가 지나자 한 명씩 이 지문을 연기하라고 했다. 지문은 대사 없이 매우 길었는데 지금 예를 들어 다시 써보면 아래와 같다.


지문) 자취방에 홀로 있는데 속옷 바람이다. 갑작스럽게 배가 아파오고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데 화장실은 문밖을 나가 마당을 가로질러가야 한다. 그런데 문을 잡으려는 순간 여자친구(남자친구)가 문밖에서 문열으라며 두드린다. 몇 초도 더 참을 수 없는 상황이다. 여자친구(남자친구)는 안에서 인기척이 들리는데 문을 열어주지 않고 신음소리가 나자 화가 나 더 크게 문을 두드린다. 여자친구는 금방이라도 문을 열어젖힐 것이다.


첫 과제에 나는 신이 났다. 원장 미팅과 지난주 첫날의 기억을 지울 정도로 흥분되었다. 어떻게 하는지 모른다. 해본 적도 없다. 그러나 뜻밖의 도전적 과제에 짜릿했다. 자취방 구조와 창의 위치를 설정했다. 몸을 어떻게 움직이면 이 지문을 잘 표현할지 표정은 어떨지, 복통과 괄약근의 텐션 유지를 어떻게 몸으로 보여줄지 고심했다. 10분이 순간처럼 즐거웠다.


앉은 순서대로 연기가 시작됐다. 문화센터 노래교실 강사라고 하신 여사님의 표정엔 불쾌함이 스쳤다. 어느 교회 장로라 셨던 신사분은 헛웃음 몇 번과 함께 연기를 포기했다. 나의 차례가 되었고 나는 평생 해본 적 없는 상황의 황당함을 신음으로 몸으로 표정으로 해보려 노력했다. 실제 상황은 아니니 무서울 게 없었다. 두 시간의 수업동안 강사는 한, 두 개의 더 황당한 과제를 주었다. 갈수록 황당했던 기억이 난다.


수업 후 일주일 동안 마임이란 무엇인지 유튜브를 파해쳤다.


3주 차 수업 일. 이제 마음이 좀 정돈된 듯했다. 얄미운 원장의 얼굴은 자꾸 떠오르지만 3개월 열심히 수업 들어야겠다는 의지도 생겼다. 학원 가는 길이 가벼웠고 오늘의 과제는 어떤 것이 있을지 설레기까지 했다.


강의실에 먼저 와있던 강사와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수업 시간이 되었을 때 왜 강사가 첫날 그렇게 어려운 과제를 냈었는지 가늠하게 되었다. 그 큰 강의실에 25명이 넘게 시작했는데 3주 차만에 3명만 남게 되었다. 이렇게 쾌적할 수가.


첫 수업이 지문연기였고 그런 내용이었다는 것을 원장이 아는지 궁금했다. 그 많은 분들은 일부라도 환불을 받았을까? 이 모든 것이 원장의 큰 그림이었나? 매주 놀라는 나였다.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