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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아트 Jul 09. 2021

[신간 도서] 건축은 어떻게 전쟁을 기억하는가

저자 이상미, 출판사 인물과사상사, 2021.7.9 출간

지은이 : 이상미

출판사 : 인물과사상사

쪽수 : 316쪽

판형 : 152×225(신국판, 무선)

 : 17,000원

분야 : 인문학 > 역사 > 전쟁사

ISBN : 978-89-5906-610-0

출간일 : 2021년 7월 9일

키워드 : 전쟁사, 세계사, 건축사, 성, 궁전, 요새, 기념탑, 개선문, 박물관, 약탈 문화재, 제국주의, 에펠탑, 에투알개선문, 루브르박물관, 앵발리드, 베르사유궁전, 랑부예성, 마지노선, 베를린전승기념탑,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 노이에 바헤 추모기념관, 브란덴부르크문, 하이델베르크성, 드레스덴 성모교회, 런던탑, 웨스트민스터사원, 대영박물관, 윈저성, 칼라일성, 도버성, 에든버러성, 콜로세움, 콘스탄티누스개선문, 티투스개선문, 산마르코대성당, 몬테카시노수도원, 크렘린궁전, 예르미타시박물관,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 나폴레옹, 히틀러, 오토 폰 비스마르크, 빌헬름 1세, 케테 콜비츠, 엘리자베스 2세, 베스파시아누스, 티투스, 콘스탄티누스 1세, 무솔리니, 표트르 1세, 예카테리나 2세, 레닌, 스탈린, 쿼드리가, 스콘의 돌



건축은 전쟁의 생존자이며증언자다.”





▣ 책 소개     

전쟁이 지나간 자리엔 건축이 있었다

― 수난 속에서 살아남은 28개 건축물로 

   벽과 기둥에 새겨진 전쟁사를 읽다     


『건축은 어떻게 전쟁을 기억하는가』는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 러시아에 있는 28개 건축물을 중심으로 세계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된 전쟁의 역사를 살펴본다. 로마시대부터 냉전시대에 이르기까지 고대와 현대의 전쟁사를 아우르면서, 관광 명소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전쟁 대비용 성이나 요새까지 두루 소개하며 건축물에 얽힌 전쟁 이야기를 들려준다.

 

건축물만큼 인간과 오랜 시간을 함께하며 삶과 밀접하게 관련된 대상도 드물다. 그럼에도 우리는 건축물의 아름다움은 쉽게 찬양하지만 여기에 숨겨진 뒷이야기, 특히 인류의 역사에서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는 전쟁의 역사에 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쟁에 직접적으로 쓰였든 그렇지 않았든, 지은 지 오래된 건축물엔 어느 한 구석에라도 전쟁의 흔적이 새겨지지 않은 경우가 드물다. 세계사를 비롯해 전쟁사와 건축사를 각각 다룬 책은 적지 않지만, 전쟁과 건축을 중심으로 세계사를 살펴보는 책은 많지 않다는 점에서 이 책은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침묵하지만 ‘전쟁의 생존자’나 다름없는 건축은 마치 한 생명체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전쟁은 잊히는 반면, 건축물은 부서지고 깨어져도 지금까지 살아남아 우리에게 지난한 전쟁의 역사를 증언하기 때문이다.

           

▣ 출판사 서평     

누군가에게는 기쁨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아픔인

전쟁의 여러 얼굴     


전쟁은 국가나 힘 있는 세력 사이에 벌어지는 가장 거대하고 극단적인 충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시대마다 끊임없이 벌어진 전쟁은 인류의 역사를 바꿔놓곤 했으며, 승자와 패자의 운명이 극명히 갈리거나 때로 뒤집히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인간성의 민낯과 인간이 겪는 희로애락이 건축물에 자연스레 투영되었다.

 

승전을 기념하는 전승 기념탑과 개선문, 전쟁의 참상과 아픔을 기억하자는 뜻에서 지은 추모관 등이 대표적인 예다. ‘프랑스 파리’하면 떠오르는 에투알개선문은 나폴레옹이 프랑스가 전쟁에서 승리한 모든 영광을 기리기 위해 또 다른 개선문인 로마의 티투스개선문을 본떠 지었다. 하지만 이 개선문조차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나치가 파리를 점령했을 때 독일군이 그 아래로 행진하는 수모를 당한 바 있다. 에투알개선문의 모델이 된 티투스개선문엔 2,000년에 달하는 유대인 디아스포라의 역사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이 개선문은 로마인에게는 승전의 기쁨이지만, 유대인에게는 세계를 떠도는 기나긴 역사가 시작된 아프기 이를 데 없는 건축물이다.

 

그런가 하면 이 책에서는 전쟁사의 어두운 대목이라고 할 수 있는 유럽 제국주의의 그림자도 엿본다. 사실 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은 나폴레옹의 야욕과 집착의 산물이었으며, 영국의 대영박물관은 이집트나 그리스 등의 약탈 문화재로 채워져 자국보다 다른 나라의 유물을 더 많이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마음을 씁쓸하게 한다.


우리는 역사책을 통해 전쟁을 단편적으로만 접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전쟁의 소용돌이를 겪은 건축물에 숨겨진 역사를 들여다보면, 승전과 패전이라는 결과로 판가름 나는 듯한 전쟁사도 그리 단순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지워지지 않는 상흔을 남긴

2차 세계대전이라는 결정적 사건     


건축물엔 생명이 없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 증축과 개축, 전쟁을 만나 무너지기도 하는 과정을 살펴보다 보면 건축물이 마치 한 사람의 인생을 축소해놓은 것 같기도 하고, 길어야 100년 사는 우리의 삶이 얼마나 짧은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기도 한다. 특히 전쟁이라는 결정적인 사건을 지나온 건축물은 마치 산전수전 다 겪은 누군가의 얼굴 같아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건축물 중에서 유독 긴 여운을 남기는 건축물은 가장 최근에 일어난 전쟁이자 엄청난 사상자를 낳은 제2차 세계대전과 관련된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이 전쟁으로 인해 지어진 지 오래되고 아름다운 건축물이 여럿 부서지거나 피해를 입었다.

 

베를린의 한복판에 있는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와 노이에 바헤가 대표적인데,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국가인 독일 정부가 전쟁의 참상을 기억하고, 과거사를 반성하는 의미에서 부서진 종탑을 보수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노이헤 바헤엔 전쟁터에서 아들과 손자를 모두 잃은 독일의 예술가 케테 콜비츠가 만든 조각 〈피에타〉가 있다. 오늘날 베를린 시민들이 ‘빠진 이’ 또는 ‘깨진 이’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기념교회의 깨진 지붕, 천장에 뚫린 구멍으로 내리쬐는 한 줄기 빛에 의지해 전쟁으로 아들을 잃은 슬픔을 삼키는 어머니의 동상은 전쟁이 남긴 뼈아픈 상흔 그 자체다.

 

한편 독일 건축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드레스덴 성모교회는 모두가 복원할 수 없다고 여길 정도로 처참하게 파괴되었음에도, 시민들이 하나둘 어렵사리 수집한 건물의 잔해를 모아 옛 모습을 기적적으로 되찾은 경우다. 이러한 건축물은 보이는 그대로 사람들에게 전쟁의 참혹함을 일깨우기 위해 존재하는 거대한 증언자나 다름없다.


에펠탑도콜로세움도

모두 한 번쯤은 참화를 겪었다

    

전쟁과 관련된 건축을 다룬 만큼 이 책엔 좀처럼 조명되지 않은 각국의 요새나 성채 등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세워진 건축물이 많이 수록되었다. 이 중에는 ‘최후의 보루’를 뜻하는 대명사로 우리에게 친숙한 프랑스의 마지노선과, 연합군 34만 명을 구한 세기의 구출 작전인 됭케르크철수작전이 펼쳐진 도버성 같은 영국 각지의 성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특히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건축물에 얽힌 전쟁의 역사다. 파리의 랜드마크이자 프랑스의 상징인 에펠탑을 비롯해 작가 빅토르 위고와 마크 트웨인이 찬미할 정도로 아름답기로 이름난 독일의 하이델베르크성 등이 이에 해당하는데, 이러한 건축물이라고 해서 전쟁의 참화를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이 경우엔 유명하거나 가치가 높을수록 건축물이 심각하게 훼손된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한 이들 덕분에 가까스로 전쟁을 피했거나, 파괴되었어도 오랜 기간에 걸쳐 여러 사람의 땀과 노력으로 복원되었다.

 

에펠탑이 파괴되지 않은 것은 파리를 불바다로 만들라는 히틀러의 명령을 어긴 디트리히 폰 콜티츠 장군의 용기였으며, 예르미타시박물관을 지킨 것은 전쟁 통에 굶어 죽어가면서도 박물관을 사수한 직원들의 노력이었다.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관광객으로 북적이지만 이 책을 통해 이 건축물들이 겪은 수난의 시간을 알게 되면, 주로 관광 명소로만 알려진 이곳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은 달라질 것이다.

 

또 검투사들의 피 튀기는 싸움터로만 알려진 콜로세움에서 모의해전을 치렀다든지, 런던의 명물 런던탑이 왜 매년 빨간 양귀비로 장식되는지 등 일반적인 역사책에서는 만나기 힘든, 전쟁과 관련된 건축물의 뒷이야기를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모든 역사가 그렇듯이, 전쟁사 역시 우연과 필연이 엮여 만들어진 거대한 드라마와 같다.


전쟁의 상징들이

반전의 기념비로 우뚝 서다

     

이 책엔 전쟁이라는 극심한 풍파를 이겨낸 건축물이 여럿 등장한다. 성 베네딕토가 설립한 이탈리아의 유서 깊은 몬테카시노수도원은 무려 5번 파괴되고 5번 재건된 역사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지금도 탄흔과 그을린 흔적이 역력한 건축물을 살펴보다 보면 마음이 절로 숙연해진다. 벽과 기둥이 우리에게 말을 거는 듯하기 때문이다.

 

건축물은 말이 없지만 이들이 품은 시간의 무게와 울림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한 사람의 인간은 겪을 수 없는 시간이 건축물에 녹아 있어서일 것이다. 저자는 인류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을 견뎌낸 건축물을 통해 모색해볼 수도 있다며, 전쟁에서 생존한 건축물을 말하는 이 책이 오늘날 우리가 부딪혀야 할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는 나침반이 되어주길 희망한다.

 

실제로 과거에 치열한 전쟁터였던 건축물 중엔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거나 다 같이 행복하게 즐기는 축제의 장으로 바뀐 곳이 많다. 살육의 현장이었던 콜로세움은 현재 사형제도의 폐지를 외치는 국제적인 캠페인의 상징물로 자리 잡았으며,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성에서는 전쟁의 상흔을 치유하는 목적으로 매년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이 열린다. 피비린내와 포화가 가시지 않던 전쟁의 장이 평화를 알리는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다행스러우면서도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과거 전쟁의 상징이었던 건축물이 반전(反戰)의 기념비로 우리 곁에 우뚝 서게 된 것은 역사의 과오를 바로잡으려는, 조용하지만 큰 변화인지도 모른다.          

 

▣ 차례     


책머리에 - 건축은 전쟁의 생존자 

    

1프랑스 낭만의 나라에 숨겨진 전쟁 이야기     

에펠탑 - 히틀러도 정복하지 못한 파리의 상징

에투알개선문 - 전승 기념비 열풍의 원조

루브르박물관 - 나폴레옹의 야욕과 집착의 산물

앵발리드 - 황금 돔으로 빛나는 프랑스군의 기념물

베르사유궁전 - 화려함에 가려진 프랑스의 역사적 순간들

랑부예성 - 나폴레옹의 치욕과 드골의 영광이 공존하다

마지노선 - 슬픈 역사가 된 유럽의 만리장성

     

2독일 전쟁이 우리에게 남긴 것들     

베를린전승기념탑 - 베를린을 굽어보는 영원한 랜드마크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 - 수도 한복판에 우뚝 솟은 지붕 없는 교회

노이에 바헤 추모기념관 - 단순한 공간, 단순치 않은 슬픔

브란덴부르크문 - 격동의 현대사를 말없이 증언하다

하이델베르크성 - 전쟁으로 얼룩진 독일 건축의 걸작

드레스덴 성모교회 - 부서진 벽돌로 되찾은 귀중한 유산

     

3영국 끊임없이 전쟁터가 되어온 섬나라     

런던탑 - 매년 빨간 양귀비꽃으로 장식되다

웨스트민스터사원 -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영국의 성역

대영박물관 - 다른 나라의 유물이 더 많은 박물관

윈저성 - 왕실의 깃발이 나부끼는 둥근 탑의 성

칼라일성 -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치열한 격전지

도버성 - 34만 명을 구한 세기의 구출 작전이 시행되다

에든버러성 -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격받은 요새


4이탈리아 유구한 역사만큼 긴 전쟁의 역사     

콜로세움 - 생명이 여가의 수단이 된 투기의 장

콘스탄티누스개선문 - 로마제국의 영광을 간직하다

티투스개선문 - 로마인에게는 기쁨, 유대인에게는 아픔

산마르코대성당 - 뺏고 뺏기는 전리품의 화려한 전시장

몬테카시노수도원 - 한 수도원이 거친 오뚝이의 역사


5러시아 동토에 새겨진 전쟁의 흔적     

크렘린궁전 - 800여 년을 함께한 러시아의 붉은 심장

예르미타시박물관 - 수많은 문화유산의 아늑한 은둔처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 - 감옥으로 악명 높았던 무용지물의 공간

         

▣ 본문 중에서 

    

하지만 에펠탑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또다시 위기를 맞는다. 1939년 9월,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며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프랑스가 마지노선을 쌓고 만전을 기했지만 1940년 5월, 독일은 개전開戰 6주 만에 파리를 함락한다. 1940년 6월 22일 히틀러는 프랑스와 휴전협정을 맺은 후 파리를 방문해 파리의 오페라하우스, 에투알개선문, 앵발리드, 에펠탑을 둘러보았다. 히틀러는 에펠탑 꼭대기에 올라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프랑스군이 승강기의 케이블을 끊어놔 계단으로 올라가야 해서 포기하고 만다. 이를 두고 “히틀러가 프랑스는 정복했으나 에펠탑은 정복하지 못했다”는 우스갯소리가 전해진다. 독일군은 탑 꼭대기까지 계단으로 올라가서 나치즘Nazism을 상징하는 하켄크로이츠Hakenkreuz(‘갈고리 십자가’라는 뜻)를 내걸었고, 깃발은 4년 가까이 에펠탑에 걸렸다. (「에펠탑 - 히틀러도 정복하지 못한 파리의 상징」, 20~21쪽) 

    

마지노선은 전투 공간뿐만 아니라 대규모 병력이 상주해 생활할 수 있도록 통신, 에어컨 등의 전기 장비를 갖추었다. 또 지하 통로와 레일을 통해 이동할 수 있도록 연결했으며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탄약 운반 리프트까지 완비되어 있었다. 강철과 콘크리트로 지은 보루의 가장 얇은 벽두께도 3.5미터나 될 정도로, 이 요새는 독일 대포의 420밀리미터 포탄을 한 번, 300밀리미터 포탄을 여러 번 정통으로 맞아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당시 최대의 거포巨砲라 불리는 구스타프나 칼 자주 박격포가 등장하게 된 배경은 마지노선을 뚫으려는 독일의 노력이기도 했다. 당시 히틀러가 프랑스 침공을 주저하던 이유도 마지노선 때문이었다. 천문학적인 비용과 10년에 가까운 건설 기간을 고려한다면 마지노선은 분명 프랑스에 든든한 존재로 비쳤을 것이다. 그렇게 마지노선은 프랑스 국민에게 ‘난공불락’이라는 믿음을 심어주었다. (「마지노선 - 슬픈 역사가 된 유럽의 만리장성」, 84~86쪽) 

    

종전 후 1956년엔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를 다시 짓기로 하고 공모전을 진행했다. 그 결과 독일의 유명 건축가 에곤 아이어만Egon Eiermann, 1904~1970의 설계가 채택된다. 그는 붕괴 위험을 안은 종탑을 허물고 새로 짓는 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전쟁의 참상을 후대에 알리기 위해 종탑을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점차 커졌다. 이를 수용해 베를린에서는 평화와 화합의 상징으로서 제2차 세계대전의 참혹함을 기억하고, 다시는 전쟁을 하지 말자는 의미로 교회를 보수하지 않고 원래대로 두기로 결정했다. (중략)

현재 베를린 사람들은 교회를 간단하게 ‘KWGKaiser-Wilhelm-Gedächtniskirche’라고 하거나 생긴 모양을 빗댄 애칭인 ‘깨진 이’ 또는 ‘썩은 이’로 부르기도 한다. ‘기념교회’를 의미하는 독일어 단어 ‘Gedächtniskirche(게데히트니스키르헤)’에서 ‘Gedächtnis(게데히트니스)’의 의미는 ‘기억’이다. 오늘날 기념교회가 기억하는 대상은 빌헬름 1세가 아니다. 전쟁이 끝난 후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기억하는 것이다.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는 제2차 세계대전의 폭격으로 입은 전쟁의 상처를 고스란히 드러내며 ‘평화의 경고비’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 - 수도 한복판에 우뚝 솟은 지붕 없는 교회」, 109~111쪽)

     

이 시기에 미국 대통령들은 브란덴부르크문 앞에서 펼친 연설에서 자유주의를 강조하며 평화의 문을 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사실상 동독의 배후라고 할 수 있었던 소련을 겨냥하려는 의도였다. 1963년 6월 미국의 존 F. 케네디John Fitzgerald Kennedy, 1917~1963 대통령은 브란덴부르크문 근처를 방문했다. 케네디는 이곳에서 〈나는 베를린 시민이다Ich bin ein Berliner〉라는 명연설로 독일인들에게 용기와 희망, 자긍심을 심어준다. 이때 소련은 감추고 싶은 비밀이라도 있었는지 케네디가 브란덴부르크문과 동독 쪽을 제대로 볼 수 없게 하려고 대형 현수막으로 가려 방해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후 1987년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1911~2004 대통령이 브란덴부르크문을 방문해 당시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yev 서기장에게 베를린장벽의 철거를 제안하며 〈이 장벽을 허무시오Tear down this wall〉라는 유명한 연설을 남긴다. “고르바초프 총서기장님, 당신이 평화를 간구한다면, 당신이 소련과 동유럽에 번영을 간구한다면, 당신이 자유화를 간구한다면, 여기 이 성문으로 오시오. 고르바초프 씨, 이 성문을 열어젖히시오. 고르바초프 씨, 이 장벽을 무너뜨리시오.” (「브란덴부르크문 - 격동의 현대사를 말없이 증언하다」, 130~131쪽)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국이 된 독일은 소련군이 진주한 동독과 서방 연합군이 진주한 서독으로 분할 통치되면서 1949년 분단된다. 드레스덴은 동독의 영토가 되고, 동독 정부는 폐허가 된 교회를 방치해 연합군의 만행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이용했다. 동독 정부는 교회 터를 밀어버리고 주차장으로 쓰려고 했지만, 드레스덴 시민들이 완강하게 항의해 이를 철회했다. 드레스덴 시민들은 폐허가 된 교회에서 잔해를 골라내 재건의 희망과 의지를 새기듯 번호를 매겨 보관하면서 언젠가 성모교회가 재건되는 날을 준비했다. (중략)

교회의 재건은 건축가 에버하르트 부르거Eberhard Burger가 맡았다. 그는 초기의 설계도를 토대로 옛 모습을 기억하는 시민들이 제공한 자료를 모아 교회의 원형을 되살리고, 잔해에서 수습한 검게 그을린 돌 3,800여 개를 새 돌과 함께 쌓아 올렸다. 완성된 건물에서 보이는 검은 돌들이 바로 시민들이 폐허에서 건져내 보관해온 돌들이다. 시민들은 “저 폐허의 성모교회는 파시즘의 야만성과 전쟁의 비극을 되새기게 하는 상징이다. 우리에게 제2차 세계대전은 끝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드레스덴 성모교회 - 부서진 벽돌로 되찾은 귀중한 유산」, 153~154쪽)

     

우리에게 일명 ‘빼빼로데이’로 잘 알려진 11월 11일은 제1차 세계대전의 종전일이다. 우리에게 ‘현충일’이 있듯이 영국과 캐나다, 프랑스, 미국 등에서는 전쟁이 끝난 이듬해인 1919년부터 전쟁 중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며 제1차 세계대전 종전일을 기념한다. 2014년에는 제1차 세계대전 발발 100주년을 기념해 영국연방 참전 사망자 수인 양귀비꽃 88만여 송이를 런던탑 남문에 장식하기도 했다. 런던탑뿐만 아니라 영국인들의 옷에서도 양귀비꽃을 찾아볼 수 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전투에서 전우를 잃은 군인들이 양귀비꽃을 꺾어 시신 위에 올려놓으며 넋을 기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영국인들은 그날을 기억하며 희생자들을 추모한다. (「런던탑 - 매년 빨간 양귀비꽃으로 장식되다」, 168쪽)


티투스의 뒤를 이은 동생 도미티아누스Domitianus, 51~96 황제는 콜로세움의 맨 위층인 4층을 추가로 올리고, 야간경기를 도입함으로써 극적 효과를 더했다. 현존하는 콜로세움의 모습은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 비로소 완성됐는데, 이 시기에 콜로세움 경기장 내부에 물을 채우고 배를 띄워 모의 해전인 ‘나우마키아Naumachia’를 실시했다는 고대 기록이 남아 있다. 이를 두고 학계에서는 여러 가지 의문이 제기됐고, 최근 연구에 따르면 모의 해전은 경기장의 무대와 기둥들을 치웠다가 다시 설치하는 방식으로 운영했다고 밝혀진다. 하지만 경기장에 물이 새지 않도록 하고 배가 어떻게 원형경기장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는지 등은 아직도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다. (「콜로세움 - 생명이 여가의 수단이 된 투기의 장」, 237쪽)

     

오늘날 콜로세움은 원래 건물의 3분의 1도 남지 않은 채 뼈만 앙상한 모습이다. 전쟁포로로 끌려온 유대인들이 만들고 죄수들에겐 잔인한 사형장이었던 콜로세움은 1999년부터 사형제도의 폐지를 외치는 국제적인 캠페인의 상징물로 자리 잡는다. 로마시는 각국에서 사형제도가 유예되거나 폐지될 때마다 콜로세움을 비추는 야간 조명을 바꿔서 사형제도 폐지를 옹호하고 있다. 이렇게 수천 년 동안 죽음의 공간이었던 콜로세움은 오늘날 인간 생명을 존중하는 건축물로 거듭났다. (「콜로세움 - 생명이 여가의 수단이 된 투기의 장」, 240쪽) 


티투스개선문은 2,000년 가까이 이어진 로마제국의 영광과 유대인의 가슴 아픈 역사를 간직한 건축물이다. 예루살렘성전 파괴로 유대인들은 고향을 떠나 세계로 떠도는 ‘디아스포라Diaspora’를 2,000년 가까이 한다. 티투스개선문으로 전쟁사에 뚜렷이 남은 티투스 황제의 예루살렘성전 파괴가 벌어지지 않았다면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20세기 히틀러가 자행한 유대인 학살도 일어날 리 없지 않았을까? 역사에서 가정은 무의미하기에 오늘날 ‘세계의 화약고’로 불리며 전쟁이 끊이지 않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있는 중동의 평화를 바랄 뿐이다. (「티투스개선문 - 로마인에게는 기쁨, 유대인에게는 아픔」, 259쪽) 

     

크렘린궁전 안에 있는 대통령 관저 건너편에는 1586년에 청동 주물 장인 안드레이 초코프Andrei Chokhov, 1545?~1629가 만들었다는 황제의 청동 대포가 있다. 대포는 길이 5.34미터, 구경 890밀리미터, 외경 1,200밀리미터, 무게는 40톤이다. 게다가 포탄의 지름은 105센티미터고 무게만 1톤에 달해 실로 거대하다. 하지만 이 대포는 러시아의 기술력과 부를 보여주기 위해 일종의 과시용으로 제작했기 때문에 실제로 전투에서 발사한 적은 없다. 또 나폴레옹이 침공할 당시 모스크바 방어전이 유일한 실전 기회였지만 이때도 발사되지 않았다. 그야말로 ‘무용지물’이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을 수 없다. (「크렘린궁전 - 800여 년을 함께한 러시아의 붉은 심장」, 292~293쪽)   


▣ 지은이 소개 _ 이상미     


2009년 파리 고등예술연구원IESA 예술경영학과를, 2012년 파리 고등연구실습원EPHE 서양예술사와 고고학 석사과정을 모두 최우수생으로 졸업하고, 2014년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 예술과 언어 박사과정을 수료하는 등 프랑스에서 예술 전반의 기본기를 닦았다. 2010년 프랑스 정부 산하 문화통신부에서 프랑스 문화재 감정과 문화재 서비스 전문가 자격증을 취득했다.


학업을 마친 뒤 파리의 현대미술 갤러리와 감정사 연구소, 유럽 상위의 미술 경매 회사 등에서 다년간 쌓은 현장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급변하는 미술시장에 대처하는 실질적인 노하우를 익혔다.

 

2016년 이상미술연구소를 설립해 문화재와 예술 작품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개인과 집단의 문화 활동이나 문화유산이 경제적 가치와 특정한 정치적 입장 등에 따라 획일화되는 것을 막는 전문 관리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현재는 전시기획사인 이상아트(주)의 대표이사이자 전시 공간인 이상아트 스페이스를 운영하면서 국내 작가들에게 다양한 전시 기회를 제공하며 예술감독, 전시기획자, 칼럼니스트, 작가, 강연자 등으로 활발한 대외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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