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음악, 소설 등 예술 분야에 뛰어든 인공지능
예술과 기술은 불가분의 관계다. 기술 발전은 예술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수천 년간 회화는 자연이나 사물을 묘사하고 재현하는 것에 많은 공을 들였다. 하지만 1826년 프랑스의 조세프 니세포르 니에프스가 8시간의 노출 끝에 완성한 최초의 사진 '르 그라의 집 창에서 본 조망' 이후, 회화는 더 이상 현실 재현을 하지 않아도 됐다. 또한 미술사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계기 중 하나는 1841년 미국의 존 랜드가 발명한 튜브 물감이다. 물감을 튜브에 넣어서 야외로 쉽게 들고나가게 되면서 인상파 화가들은 풍경화를 자유롭게 그릴 수 있었다. 이로 인해 미술적 표현의 한계가 확장됐다.
21세기 초인 현재 인공지능으로 대두되는 4차 산업혁명이 도래했다. 인공지능, 로봇기술, 생명과학이 주도하는 차세대 산업혁명이다. 로봇이나 인공지능을 통해 실재와 가상이 통합되고 사물을 자동적, 지능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기대되는 산업상의 변화이다. 기계가 지능을 가지기 시작하고 인간의 모든 면을 넘어서고 있다. 예술도 예외는 아니다. 4차 산업과 예술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 그림을 그리는 인공지능 - 딥드림, 넥스트 렘브란트, 아론
4차 산업 시대를 맞아 가장 도전과 위기에 직면한 예술 분야는 회화다. 연구가 가장 활발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은 딥러닝 학습을 통해 유명 화가처럼 그림을 그린다. 2016년 구글이 개발한 인공지능 화가 딥드림(Deep Dream)은 빈센트 반 고흐의 화풍으로 모사한다. 고흐는 1853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났다. 그는 27살에 독학으로 그림을 시작했다. 37살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10년간 879점의 그림을 남겼다. 고흐는 1890년 세상을 떠났다. 그 후 약 126년이 지나 딥드림은 마치 되살아난 고흐처럼 그림을 그린다.
네덜란드 ING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인공지능 화가 넥스트 렘브란트(The Next Rembrandt)는 렘브란트 반 레인의 화풍을 모사한다. 렘브란트는 바로크 시대 최고의 화가로 미술사에서 초상화가로 손꼽힌다. 그는 26세에 그린 ‘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로 명성을 쌓았다. 넥스트 렘브란트는 3D프린터로 유화의 질감과 물감의 두께까지 렘브란트처럼 그린다.
딥드림과 넥스트 렘브란트보다 40년 전 먼저 개발된 인공지능 화가가 있다. 아론(Aaron)이다. 화가이자 예일대 교수인 헤럴드 코헨이 1973년 공개했다. 아론은 스스로 그림을 그린다. 진화를 거듭하며 1980년대에는 3D 공간에 물체나 사람을 배치했다. 1990년대에는 직접 그림을 그렸다. 딥드림, 넥스트 렘브란트, 아론의 개발 목적은 사람을 넘어서는 인공지능 화가 양성에 있지 않다. 핵심은 인공지능으로 모사 기술 제공에 있다. 주로 미술 복원 분야에 쓰일 예정이다. 또한 아론 같이 사람이 하지 못한 그림으로 예술가들에게 영감이나 발상의 전환을 주어 새로운 예술이 탄생하게 할 수도 있다.
# 음악을 만드는 인공지능 - 쿨리타, 플로우머신
"컴퓨터가 작곡을 할 수 있을까?" 1955년 미국 일리노이대학에서 레자렌 힐러와 레너드 아이잭슨은 이 질문으로부터 일리악이라는 컴퓨터를 만들었다. 1956년까지 두 사람은 16세기 작곡가들의 곡을 분석해 '현악 4중주를 위한 일리악 조곡'을 완성했다. 음악을 만드는 인공지능 개발의 첫 시도다. 1960년대에는 허버트 사이먼과 마빈 민스키가 기존 음악의 작곡 패턴을 그대로 사용해 음악을 만들었다. 1970년대에는 J. A. 무어라와 G. M. 레이더가 조성을 바탕으로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한 작곡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1990년대에는 바루차가 음악 스타일에 따라 선율, 박자, 리듬을 선택해 작곡할 수 있는 인공지능 뮤작트를 공개했다.
쿨리타(Kulitta)는 2015년 미국 예일대 컴퓨터공학과의 강사 도냐 퀵이 개발했다. 쿨리타는 저장된 자료에서 규칙들을 분석하고 음계를 조합해 작곡한다. 일종의 자기학습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클래식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만든다. 쿨리타는 모차르트와 헤비메탈 밴드 메탈리카의 음악을 섞어 만들기도 한다.
소니컴퓨터사이언스연구소는 2016년 인공지능 작곡가 플로우머신(Flow Machine)이 만든 팝송 'Daddy's Car', 'Mr. Shadow' 두 곡을 유튜브에 공개했다. 작곡은 플로우머신이 하고, 편곡과 작사는 프랑스 작곡가 브누아 카레가 맡았다. 플로우머신은 전 세계 다양한 장르의 곡에 대한 악보 1만 3천 장을 분석해 방대한 음악 데이터베이스에서 음악 스타일을 배웠다. 이를 통해 다양한 작곡이 가능하다.
# 소설을 쓰는 인공지능 - AI에 의한 소설 창작 프로젝트
그날은 공교롭게도 이슬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아침부터 일상 업무에 몰두하는 형태로 앞으로 5년간의 경기 예상과 세수입 예상. 그다음은 총리로부터 의뢰받은 시정방침 연설의 원고 작성. 어쨌든 멋지게 역사에 남을 수 있도록, 엉뚱한 요구가 남발돼 조금 장난도 쳤다.
일본에서 인공지능이 쓴 소설 '컴퓨터가 소설을 쓰는 날'의 일부다. A4 용지 3페이지 분량의 단편소설로 2016년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주최한 일본의 호시 신이치 문학상 1차 심사를 통과했다. 일본 공립 하코다테 미래대 마쓰바라 진 교수팀이 2012년 시작한 'AI 소설 프로젝트'이다. 인공지능은 일본 SF 소설가 호시 신이치의 소설 1천여 편을 학습했다. 연구팀은 ‘언제’, ‘어떤 날씨에’, ‘무엇을 하고 있다’ 같은 6하 원칙의 요소를 포함하게 했다. 인공지능은 이에 맞은 단어로 문장을 만든다.
중국에서는 인공지능이 쓴 시집이 출판됐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14년 중국에서 '샤오이스'(Xiaoice)를 개발했다. 샤오이스는 1920년대 이후 중국 시인 519명의 시를 공부했다. 1만 편이 넘는 시를 지었다. 이중 139편을 골라 2017년 시집 '햇살은 유리창을 잃고'(Sunshine Misses Windows)를 펴냈다. 제목은 샤오이스가 직접 지었다. 시집은 10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다. 고독, 기대, 기쁨 등 사람의 감정이 담겼다.
# 4차 산업이 불러올 예술계의 변화는?
4차 산업은 예술 발전에 기여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신기술은 기존 제약이 있던 표현의 한계를 극복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3D프린터는 일일이 깎고 자르고 붙였던 지난한 작업 방식을 벗어나도록 한다. 블록체인은 불법 콘텐츠 복제 및 유통, 저작권 권리문제를 해결해 미술품 유통에 기여할 수 있다. 빅데이터와 가상현실 기술의 융합은 새로운 예술이 탄생할 수 있도록 한다.
물론 장밋빛 미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인공지능을 활용해 창작물을 만들 경우 지적재산권은 그 사람에게 귀속되겠지만, 인공지능이 스스로 창작물을 만들 경우 지적재산권은 누구의 소유가 될까? 저작권법 제2조 제1호는 저작물을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이라고 규정한다. 현행법에서는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에 의한 창작물은 저작권법의 보호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인공지능 창작물에 대한 새로운 법이 필요하다. 인공지능이나 신기술을 통해 가짜 예술가 행세를 하거나 모방 작품이 성행할 것이라는 세간의 우려도 있다. 하지만 치열하고 냉엄한 미술시장에서 어설픈 모작이 통할 리 만무하다.
인공지능 예술가들이 만든 작품은 예술인가? 예술이 아닌가? 아직 기존 예술가들을 따라 하는 걸로 비친다. 모방이다. 예술은 창조다. 그래서 인공지능의 작품은 아직 예술이 아니다. 하지만 발전과 진화를 거듭해 예술을 하는 인공지능 작가들을 만나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 4차 산업으로 예술은 얼마나 더 발전할까? 새로운 작품이 기다려진다.
이상미((주)이상아트 대표 & 이상미술연구소 소장)
(이 글은 2019년 6월 대구북구문화재단 구수산도서관의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