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의 낭만과 현실

by 리세

이탈한 자리에는 오해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옆방에서 과 동기들과 지내는 사이 나의 원래 룸메이트 3명은 머리를 맞대고 생각했다. 과 동기들과 친해질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다른 과인 우리가 불편하고 싫은 게 아닐까? 오해가 쌍방이었다. 나는 홀로 다른 과 학생인 내가 그들보다 뒷전일 거로 생각했고, 그들은 오히려 다른 과 학생인 자신들이 나의 뒷전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나를 잘못 해석했다는 건 나중에 우리가 격의 없는 사이가 되고 나서 알게 됐다. 그러니까, 그걸 알기 전까지는 서로를 곡해한 채 동거를 이어갔다는 거다.


오해를 품었다고 해서 서로를 불신하고 미워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 반대다. 마이너스로 시작했으니 여기서 더 피해를 주고 미움을 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배려했다. 다들 모난 데 없이 성미가 부드러워서 그럴 수 있었고 그게 우리가 친해지고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됐다. 한 방을 공유하는 사이로서 배려했던 것들은 다음과 같다. 건조대에서 빨래를 걷을 때 상대의 옷가지도 같이 걷어 침대 위에 놔주기. 자기 물건에 예민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고 필요할 때 향수나 화장품, 급할 땐 노트북까지 빌려 주기. 늦게까지 친구들과 술 마시다 자정에 닫힌 기숙사 문 앞에서 전화 걸면 꽉 잠긴 목소리로 금방 갈게 하고 내려와 비몽사몽인 얼굴로 문 열어주기. 고마움과 미안함이 들어 다음번엔 내가 꼭 열어줄 테니 걱정 없이 맘껏 놀고 언제든 전화하라고 하기. 잘 때 앓는 소리를 내면 악몽 꾸는 걸까 봐 안 자고 있던 사람이 걱정 어린 마음으로 깨워주기. 가족도 아니면서 가족처럼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다 보면 견고할 것만 같았던 마음의 벽이 원래 있지도 않았던 것처럼 허물어져 갔다.


흔하지 않고 예쁜 이름의 소유자들은 나 빼고 다 육지 사람이었는데 각각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에서 왔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조합답게 각자 다른 사투리를 구사했다. 하지만 여기는 제주도. 같이 사는 나부터가 제주 토박이인지라 그들은 점점 내 말투를 닮아갔다. 그러다 보면 서툴고 이상한 제주도 사투리를 쓰기도 한다. ‘밥 먹언?’이라는 말을 ‘밥 먹었맨?’이라고 한다든지. 어미 끝에 ‘맨’ 자만 붙이면 다 되는 줄 알아서 그거 그렇게 쓰는 거 아니라고 속성 과외를 해주기도 했다. 모두 술을 좋아하고 사람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고 자기만의 유머를 하나씩 챙겨 들고 웃기는 사람들이라 같이 있으면 웃을 일이 많았다.


성별만 같고 모든 게 다 달랐던 4인이 한 방을 공유하고 살았던 그때가 나의 많은 부분을 바꿔놓았다. 긍정적이기도 하고 부정적이기도 하다. 가족 아닌 타인과 살을 부대끼며 먹고 자고 살면 좋을 땐 낭만 가득하다. 늦은 밤에 불을 끄고 스탠드 조명은 켜둔 채로 노란 불빛 아래 각자 과제를 하던 포근했던 날. 기숙사는 술 반입이 안 되기 때문에 가방이나 두툼한 옷 속에 술을 숨겨 들어와 방바닥에 과자 봉지 펼쳐놓고 소소한 파티를 벌인 날. 데이트를 하거나 한껏 꾸며야 할 약속이 생기면 서로의 옷장을 공유해 멋진 스타일링을 도운 날들. 당시 인기 있던 드라마 <연애의 발견>을 보고 한여름이 결국 누구한테 갈까, 추측하고 내기하던 일. 이 정도만 회상한다고 하더라도 달가움이 은은하게 묻어있다. 약속으로 한 명씩 자리를 비울 때가 많았는데 어쩌다 4명이 고스란히 한 방에 같이 있는 날이면 안정감이 들었다. 온 식구가 다 있구나 싶어 작은 방에 온기가 돌았다.


모든 날이 좋을 수는 없으니까. 어떨 때는 기숙사 생활이 고난도의 사회 생활력을 요구했다. 큰 부딪힘이랄 건 없었지만 자잘하게 거슬리는 일들이 있었다. 살림살이를 4분의 1로 공평하게 해야 했지만 각자의 성향에 따라 필요성을 느끼는 타이밍이 달라서 청소를 누가 계속하고 누구는 하지 않는 날들이 빈번했다. 소음 문제도 있었다. 기본적으로 누가 먼저 자면 조용히 있기는 하나 생활 패턴이 다르면 어쩔 도리가 없다. 누가 자고 있어도 불을 켜야 하는 상황이 있고, 이것저것 움직일 때 잡소리가 생기고, 조용히 말한다고 하지만 속삭이는 소리가 계속 이어지면 그것도 잠을 깨우는 원인이 됐다. 나는 10년이 넘도록 불면증을 겪고 있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된 걸까 거슬러 올라가 보니 기숙사 생활을 하던 이때로 추측한다. 소음과 빛과 이외 숙면을 방해하는 여러 이유로 자주 잠에서 깼고 수면에 예민해져서 더욱 잠에 못 드는 상황이 반복됐다.


나와 다른 타인과 사는 건 불편한 일이다. 배려와 웃음과 낭만이 있어도 매일 지속되기 쉽지 않다. 낯가리고 소심하고 내성적이어서 두려웠던 기숙사 생활이 끝끝내 그리움으로 남은 건 그때의 좋음과 불편함 모두가 지금 내가 살아가는 데에 양분이 되기 때문. 누군가에게 상처받고 아파서 울던 날, 나는 나의 룸메이트 중 하나였던 그를 생각한다.


어느 날 새벽이었다. 길고 끈끈한 연애를 하던 그는 모두가 자는 그 깊은 새벽에 전화기를 붙들고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연애가 잘되지 않았고 둘 사이에는 복잡한 사연이 남았다. 그는 수화기 너머로 애인이 울부짖으며 뱉어내는 욕설을 들어야 했고 그걸 다 듣고 있던 그는 최대한 소리죽이고 울었지만, 귀가 밝아 잠에서 깬 나는 두 명의 소리를 모두 들었다. 못 들은 척해야 할까 아니면 일어나서 그를 위로해 줘야 할까. 나머지 룸메이트 두 명은 잠을 깊이 자는 것 같았다. 이 상황을 보고 들은 게 나뿐인데 이미 잠에서 깼고 그가 안쓰럽게 계속 울었으므로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딱히 없었다. 사정을 들어주고 괜찮을 거라고 토닥이는 것밖에는. 그의 선택이 그를 울게 했으나 나는 진심으로 그 선택이 나중에는 그를 웃게 만들어 줄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몇 년 후, 나는 애인에게 모멸과 배신을 당해놓고서도 관계를 끊지 못해 방안에서 숨죽여 울었다.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그가 떠올랐고 그에게 건넸던 위로의 말이 부메랑처럼 내게 돌아왔다. 그게 꼭 오래전 연락이 끊겨 소식을 알 수 없는 그가 나를 토닥이기 위해 온 것처럼 느껴져 다른 쪽으로 눈물이 자꾸 났다. 그날 이후 바로 관계를 끊어낸 선택이 당시 나를 너무 힘들게 했지만 지금의 나를 웃게 한다. 그도 지금은 편히 웃고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1년간의 한방살이를 정리하고 방을 나올 때 기억이 없다. 한 명 한 명 얼굴 보고 인사는 했는지, 무슨 인사말을 나눴는지, 어떤 뒷모습을 보거나 남겨두고 떠났는지. 야속한 세월이 기억을 앗아갔고 나는 처음으로 세월을 원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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