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입학과 동시에 본가를 떠났다. 학교 기숙사는 거주지가 멀면 대부분 입주 가능했다. 타지에서 제주로 온 입주생이 제일 많았고 나처럼 제주도민이지만 통학했을 때 1시간 30분이나 걸리는 사람들도 기숙사에 살았다. 이사 한 번 가보지 않고 늘 같은 풍경 안에 있었기에, 기숙사 생활은 미지의 영역이었다. 누구와 살지 모르고 어떤 생활을 할지 모른다. 예상치 못함은 불안을 동반하고 내성적이고 비사교적인 내게는 유달리 그 정서가 크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두 주먹을 불끈 쥐어야 했달까. 익숙하고 안전한 길을 걷다가 도무지 알 수 없는 길로 빠져버리는 일종의 탈선이라 느껴졌다.
기숙사는 4인이 한 방을 공유한다. 룸메이트는 학교 측에서 무작위로 배정하지만 대체로 같은 과 사람끼리 묶어준다고 들었다. 다행이었다. 아주 낯선 사람들과 긴장감 속에서 지내기보다는, 같은 학과라는 연결감 속에서 조금이라도 편하게 방을 쓰고 싶었다. 다른 이유도 있었다. 4년 내내 마주해야 할 과 동기들과 미리 안면을 튼다면 학과 생활이 훨씬 편할 것 같았다. 나처럼 완벽한 내향인에게는 학기 초반 설렘보다 긴장이 커서 친구를 만들고 친밀한 관계를 쌓는 게 비교적 어려운 일이다. 일찍이 같은 과 동기들과 어울려 어느 정도 대비를 해놓는다면 스트레스가 덜하지 않을까 싶었다.
원하는 대로 방 배정이 될 거라 믿었건만. 기숙사를 신청한 우리 과 여학생이 나 포함 다섯 명이었고, 하필 내가 동떨어졌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토록 원하던 과 동기들은 오순도순 옆방살이를 시작했다. 멀찍이 그 모습을 바라보는 처지가 어찌나 쓸쓸하던지…. 배정된 방에서 날 제외한 셋은 같은 학과였는데 이 조합이 이제 막 대학 생활을 시작하는 신입생에게 불리한 조건이라고 봤다. 학기 초에는 과 사람끼리 모이는 자리가 많아서 그들과 내가 찢어져 지내는 일이 잦다. 그러다 보면 더더욱 자기 학과에 애착이 강해질 테다. 다른 과 학생인 나는 한방에 지내면서도 소외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때는 유독 소속감이라는 게 중요했다. 지금은 코로나 시대를 겪어오며 혼자 밥 먹고, 카페 가고, 영화 보고, 독자적으로 돌아다니는 게 익숙하지만 10년 전만 해도 공동체 생활을 강조하던 때다. 내가 속한 무리와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으면 마음의 거리도 멀어질 거라고 노심초사했다. 사회적 시선도 그러했다. 공동체 바깥의 인물은 색안경 안에 있었다. ‘쟤 왜 혼자 다녀? 친구가 없나? 사회성이 없나 봐. 아웃사이더인 이유가 있을 거야.’라며 편견 가득한 온갖 수식어가 덕지덕지 붙었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기도 했고, 이런저런 사회생활을 겪고서 극단적인 내향인을 벗어난 지금은 혼자 있는 게 별일 아니다. 하지만 스무 살의 어린아이는 불안해서 다리를 달달 떨었더랬다. 이리 보나 저리 보나 낙동강 오리알 신세를 면치 못했다고 생각해서….
이유가 어찌 됐든 나의 개인적인 성향으로 룸메이트를 바꿀 수 없는 노릇. 기숙사란 본디 배려와 합심이 부족하면 사달이 나는 곳이며, 대신 마음만 맞는다면 재밌는 에피소드가 무한히 생기는 곳이다. 성격과 스타일은 물론, 고향과 말투가 다르고 일어나고 자는 시간까지 모두 제각각인 4인이 한 방을 공유하고 살아야 했다. 기왕이면 같은 과 동기들과 지지고 볶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 가면서 생각만큼 걱정할 일은 없었다. 나름의 노력으로 사람들과 가까워지려 했고 그런 노력을 알아주는 이들과 친분을 쌓아갔다. 하지만 기숙사 방에서는 한동안 홀로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잘 알지 못하는 그 학과의 분위기가 있었고 그 안에서 그들은 그들만의 이야기가 따로 있었다. 말했다시피 나는 외향적인 성격과 거리가 멀었다. 적극적이지 못했고 쭈뼛거렸다. 보이지 않는 선이 있다고나 할까. 아, 오해는 금물!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소심한 내가 스스로 그은 선 일뿐. 옆방에 사는 우리 과 애들과 안면을 텄을 때 술 한잔을 삼키고 넋두리 삼아 사정을 털어놓았다.
“얘들아, 나 사실 엄청나게 소심하고 낯가리고 쑥스러움 많은 극 내향인이라 친구 사귀는 게 쉽지가 않거든. 기숙사 입주할 때 너희랑 한방에서 지내면 든든한 과 친구가 생길 것 같아서 기대했다? 근데 초장부터 세상이 배신한 거 있지. 나만 동떨어진 것도 모자라서 룸메이트 3명은 다 같은 과라 괜히 혼자 어색하고 외로워. 그렇지만 나도 이제 어른이니까 외로워도 슬퍼도 안 울려고 들장미 소녀 캔디 같은 마음가짐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단다.”
착한 동기들은 나를 이해한다며 살가운 제안을 해왔다. 뭐? 너희 방을 같이 쓰자고? 예상치 못한 전개에 당황하면서도 눈이 반짝 뜨이고 구미가 당겼다. 입꼬리를 씩 올리며 상당한 기회주의자답게 냅다 오케이를 외쳤다.
“그럼 잘 지내보자. 고마워!”
들뜸을 감춘 채로 본래의 룸메이트에게 양해를 구했다. 학기 초라 과 애들과 친해질 시간이 필요해서 잠깐 옆방에서 지내고 오겠다고. 그들은 얼마든지 그러라고 했다. 아직 서로를 잘 모르는 사이라서 괜한 오해가 생길까 봐 조심스러웠다. 그런데도 우리 과 애들에게 가고 싶었다. 그렇게 바리바리 짐을 싸 들고 옆방으로 이사를 감행했다. 기숙사 방은 1층이 책상이고 2층이 침대인 가구 4개가 방 모서리마다 붙어있는 구조다. 플러스 1인이 된 나는 방 가운데 복도처럼 길게 트인 바닥에 이불을 깔아 자리를 마련했다. 침대가 아니었어도 마음은 훨씬 편안했다.
우리 다섯 명이 방에 모여드는 순간 대학 생활의 온갖 희로애락 썰이 시끄럽게 돌고 돌았다. 누가 누구와 사귀네, 헤어졌네, 저번 술자리에서 누가 이런 행동을 했다더라, 대학가 어디 식당이 맛집이더라, 이 강의가 꿀이고 족보는 어디서 받으면 된다더라 등등. 소소한 사담부터 대학가에 퍼지는 소문들까지 흥미를 끄는 주제를 공유하기에 바빴다. 일상을 터놓고 감정을 교류하면서 그냥 같은 학번 동기가 아닌 친한 친구가 되어갔다. 사이가 가까워지고 나서는 친구들이 바닥에 내려와 나란히 잠을 자기도 했다. 비밀 이야기를 털어놓는 친구로, 먹고 자는 시간을 공유하는 식구로 지내다 보면 그토록 원하는 소속감이라는 게 몸에 이불 덮이듯 나를 감쌌다. 대학에 와서 처음 소속된 같은 과라는 집단에서도 같은 방을 쓰는 사이. 그 관계 덕분에 파국 없이 무던한 기숙사 생활을 했다.
재밌는 하루하루였다. 서로의 생일에는 케이크를 사다가 방에서 초를 불고 폴라로이드로 사진을 찍었다. 어느 날은 선약이 있는 친구들을 제외하고 강의가 끝나자마자 닭똥집에 소주를 마시러 갔다. 그때 벽에 남긴 친밀함의 흔적을 지금까지 간직한다. 이 소속감을 중요시하던 게 나뿐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귀여운 단어로 우리를 하나로 묶고 지워지지 않는 곳에 아로새긴 걸 보면 다들 이 관계를 소중히 하고 있었구나. 10년이 넘은 기억이기에 그때 어떤 얼굴로 어떤 대화를 나누고 어떤 감정이 오갔는지 다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남겨진 사진을 보고 있자면 ‘아, 그때 이 친구들과 이런 일이 있었지. 좋았었다.’ 하며 따스한 연결감이 떠오른다.
나의 불안정한 탈선을 아기자기하게 포장해 준 친구들아 잘 있니? 너희들의 상냥함 덕분에 고운 시절을 지나왔어.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