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친해질 기회는 차고 넘쳤다. 세상엔 애주가가 많고 고로 술자리를 만드는 사람도 많다. 처음에는 기껏 해봐야 10대를 같이 보낸 오랜 친구들과 함께하거나 같은 과 사람끼리 친목을 다지자고 만든 어색한 술자리가 다였다. 그러다 마음 맞는 동기들과 소규모 술자리가 하나둘 생기고 학교 내 행사에서 친해진 다른 과 사람들과 함께하는 새로운 술판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나는 본가가 학교와 꽤 떨어진 곳에 있어 통학이 어려웠기에 학교 후문에 있는 기숙사에 입주해 살았다. 나는 기숙사 동기들과 그렇게 술을 마시러 다녔다. 같은 건물에 살아서 불러내기도 쉽고 같이 나갔다가 같이 들어올 수 있어 좋고. 게다가 후문은 학생 밀집 구역인 원룸촌이라 식당과 술집이 꽤 많았다. 기숙사나 원룸에 사는 동기들은 모두 생활 반경이 고만고만해서 술 약속 잡을 때 장소와 시간대를 두고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새로운 만남이 가장 활발한 스무 살에 대게 그런 식으로 고정 참여하는 술자리가 생겨났다. 맥주 캔을 땄을 때 치고 올라오는 기포처럼 빠르고 많이.
불어나는 술자리를 즐길 때쯤 술이 사람을 부르고 인연을 부르던 신기한 날들이 끊이질 않았다. 다양한 술판에 참여하다 보면 같이 있던 사람이 자신의 친구를 불러내면서 인간관계가 넓어지는 일이 반복된다. 소수 인원으로 구성한 자리는 누군가의 친구나 선배, 심지어 이성 친구와 그의 친구까지 몇 다리를 걸쳐야 알만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술병을 앞에 두고 나와 만난 이들은 모두 짠 것처럼 첫 인사가 같았다.
“네가 그렇게 술을 잘 마신다며?”
여기서 ‘잘 마신다’함은 주량이 세다는 의미가 아니라 술을 ‘자주’ 마시고 ‘호의적’으로 대한다는 뜻이다. 어디서 어떤 소문이 돌았는지 다들 나를 술 좋아하는 사람으로 알고 찾아왔다. 술집이 즐비한 대학가에 죽순이처럼 있어서 그런가. 그 물음이 자신처럼 애주가 동족이 맞냐 확인하는 과정임을 알게 된 건 같이 술을 마시면서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나와 비슷한 동족을 알아보는 걸까. 우연히 만난 그들과 나는 모두 혈관에 일정 수준의 알코올을 주입해 살아가는 술꾼들이었다. 하루를 술로 마무리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우리는 봄에는 꽃이 피었다고 술을 찾고 겨울에는 눈이 온다고 술을 찾았다. 찌르면 피 대신 술이 나올 게 분명한 지독한 인간들이다. 그들과 어울리다 아차, 하고 정신 차린 순간 거대한 집단이 형성됐다. 우린 우리를 ‘술팸(술 패밀리의 준말)’이라 명명한 뒤 술과 의리로 똘똘 뭉친 가족 같은 사이가 됐다. 그렇게 술병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게 된 그들을 나는 열렬히 사랑했다.
술에 둘러싸인 환경에서는 희한하게 술 때문에 고생할수록 상대와 애정이 쌓였다. 서로의 흑역사를 목격하는 만큼 추억거리가 쌓이고 다음 술자리에서 무엇보다 맛있는 안주가 됐다. 그런 의미에서 스무 명의 술팸이 만들어지기 전 일부 멤버들과 첫 대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학교 후문의 자그마한 마트 옆에는 실내 포차처럼 꾸며진 건물이 딸려있는데 후문에 사는 학생들이 자주 드나들었다. 그날은 어린 시절 오랜 친구이자 나처럼 기숙사에 사는 A, 학교 정문 원룸에 사는 B가 마트 옆 포차에서 한 잔 하던 날이었다. 입학한 지 오래되지 않은 시점이라 주량과 주사를 파악할 정도로 경험치가 쌓이지 않은 애송이들의 자리였다. 뭣 모르고 마시는 통에 만취한 우리에게 훗날 술팸이 될 동기들이 오게 됐다. A의 남자 친구가 그 무리에 있었으므로 A의 친구인 나와 B에게 인사를 건넬 겸 들렀다고 했다(왜 만취했을 때 오고야 말았는지 개탄스럽다). 여기서부터는 내 기억이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멀쩡한 이들의 증언이다. 소주 안주로 시켰던 어묵탕이 거의 바닥을 보일 때쯤 나는 두루마기 휴지를 뜯어다가 탕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화들짝 놀라 말리는 동기들이 왜 그러냐고 묻자 참으로 발랄하게 답했다.
“어묵탕 깨끗하게 하려고!”
술에 미친 자들은 동족을 알아봤는지 술에 정신을 지배당한 나를 보며 빵 터져 좋아했고 훗날 이 일화는 그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돌았다. 그렇게 나는 대인원의 술팸에서 굉장히 환대받는 멤버가 됐다. 어찌 됐든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 이야기지만 나는 여태껏 그때 기억이 없다….
스무 살 늦여름쯤은 다음 해 총학생회 선출을 위해 선거운동본부가 활동하는 시기다. 누군가의 러브콜을 받아 들어가게 된 한 선거단에서 결성한 두 번째 술팸은 전부 제주도민으로 이뤄져 타지역에서 온 이들이 대다수인 첫 번째 술팸과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같은 문화와 환경에서 지냈으니 처음부터 편한 느낌을 받았달까. 15명 내외로 모인 이들과 정말 셀 수 없이 많은 술병을 치웠다. 우리의 우정은 서로 볼꼴 못 볼 꼴을 공유하며 견고해졌다. 순한 캐릭터로 유명한 동기 C는 취했다 하면 온갖 욕설을 뱉어내 호러물을 찍는 흑역사를 계속해서 남겼다. 조용하고 무뚝뚝한 첫인상의 동기 D는 취하면 장난기가 많아져 우리 사이에서 취한 모습을 포착해 파파라치처럼 사진 찍는 유행을 만들어냈다. 그때 얻은 어마어마하게 많은 엽기 사진이 우리들의 다음 술안주가 되어줬다. 그뿐이랴, 술에 욕심이 과한 이들은 도로 역류하는 일도 잦았는데 언젠가부터는 구토의 여부가 아니라 처리의 방법을 생각해 내는 게 골 아파졌다. 기상천외한 곳에다 실례를 범하는 친구들을 보고 있자면 정말 한숨이 땅이 꺼져라 나왔다.
“우웩!”
“야…. 제발 정상적인 곳에다 게워 내면 안 되겠어?”
“우웩!”
이마에 머리를 짚는 일을 면치 못하다 보면 인간의 또 다른 면모를 보기도 한다. 비 오는 날 취한 채 택시를 탄 나와 동기 두 명. 제일 만취한 친구가 참지 못하고 택시에 토를 했고 우리는 연신 죄송하다며 사태를 수습하는 중이었다. 나는 피해당한 기사님에게 손해 배상할 방도를 생각하고 있었고 행동이 빠른 동기는 망설임 없이 제 맨손으로 토사물을 밖으로 빼내고 있었다. 경악을 금치 못했다. 취해서 그런지 몰라도 행동에 거부감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그 친구가 평소에 장난을 많이 쳐서 진중하기보다는 가벼운 이미지였다는 점. 나는 그 애가 그렇게 대범하고 너그러운 사람인 줄 몰랐다. 편협한 생각을 품었던 것 같아 그 와중에 되게 미안했다. 학생이라 봐주신 듯한 감사한 택시 기사님과 합의한 후 거침없이 토사물을 치운 그에게 술친구로서 끈끈한 마음을 조금 더 주게 됐다. 혈중알코올농도가 높을수록 친밀해지는 스무 살의 천진난만함이 어제 일처럼 또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