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에서 산 맥주가 성인이 되고 마셨던 첫 술이다. 스무 살 1월, 어릴 때 같이 자란 동네 친구 두 명과 각자의 집에서 중간 지점의 편의점에서 만났다. 셋은 딸랑이는 문을 열고 호기롭게 냉장고 앞에 섰다. 갓 미성년자 딱지를 뗀 애들이 주종을 얼마나 알고 있으랴. 우리에게 가장 만만했던 술은 단연 카스나 하이트였다. 부모님이 자주 마시는 만큼 대중적이기도 하고 티브이 광고에서 흔하게 나와서 익숙한 브랜드였다. 우리는 카스 작은 캔 하나와 짭짤한 과자를 들고 계산대 앞으로 걸어갔다. 모든 스무 살에게는 로망이 있다. 합법적인 주류 구매가 가능한 나이가 됐음을 증명하고자 당당하게 주민등록증 내밀기. 2001년 개봉한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민증 검사’ 신이 불러온 성인 인증 절차는 우리에게도 적용됐다. 개인정보 노출이 이렇게 신날 수가! 앳된 얼굴의 세 여자를 마주 보던 중년의 직원은 그 기분을 이해한다는 듯 웃으며 생년월일을 꼼꼼히도 확인해 주셨다. 당당하게 얻은 맥주를 들고나와 돌아가며 한 모금씩 마셨다. 술을 목구멍으로 넘긴 순간 들떠 있던 얼굴들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너무 별로이던 술의 맛. 당연했다. 우리는 아직 술을 찾을 만큼 사회에 찌들지 않았고 인생의 쓴맛을 제대로 겪어보지 못했으며 술 한 잔 말고도 재미와 위로를 얻을 경로가 많았다. 어른이 된다는 쓰디쓴 과정을 거치면 이 맛대가리 없는 술이 언젠가 자연스레 달아질까 싶었다.
예상외로 술이 달아진 건 고통을 수반할 때가 아니었다. 180도로 변한 환경에 내던져진 스무 살 대학생은 새로운 만남의 기회가 차고 넘쳐나는데 그때마다 술이 내향인의 무기로서 톡톡히 역할을 해냈다. 당시 나는 지금보다 몇 배 더 낯가림이 심했다. 사람을 대하기 어려워하고 무슨 대화를 나눠야 할지 모르는 숙맥이랄까. 버스 하차 벨을 누르는 것조차 긴장돼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으니 소심한 성격은 말할 것도 없지. 그런 내가 술만 있으면 무적이 됐다. 취기가 올라 정신이 말랑해질 때면 오래된 친구와 있는 것처럼 편하게 웃고 떠드는 또 다른 내가 등장한다. 흐름은 대개 이렇다. 어색한 술자리에 맛있는 안주가 펼쳐지고 그 위로 술잔을 부딪친다. 짠 소리가 거듭될수록 자세는 유연해지고, 정신이 적당히 빠지면 평소보다 대담하게 서로의 이야기를 묻고 말한다. 눈꺼풀이 점점 풀리고 실없는 농담으로 서로를 웃기는 단계가 오면 술로 다져진 의리가 발동해 얼큰하게 취한 채 어깨동무하고 외친다. 알코올을 공유한 나의 형제들아! 학연, 지연, 혈연 다 필요 없고 술연이 최고다! 조심스러운 성격이 술에 씻겨나가면 개똥철학을 읊조리며 인맥을 넓히는 내가 있고, 친구들의 코미디언을 자처해 엉망으로 웃기는 내가 있다. 그렇게 즐기다 보니 이름 석 자 뒤에 ‘술’이라는 단어가 꼬리표처럼 붙었고 같이 마시자는 연락이 끊이질 않았다. 나름대로 소소한 행복이었다. 좋은 사람들과 술잔을 부딪치며 재밌는 시간을 보내는 것만큼 그 시절 나를 신나게 하는 건 없었다.
술이 좋아 사람이 좋아지던 그때는 취기에 애정이 듬뿍 담겼더랬다. 같은 고등학교에서 같은 대학교로 넘어온 친구 A에게도, 같은 과에서 친해진 동기 B에게도 주정으로 “나 너 좋아”라고 고백하곤 했다(둘 다 여자이고 우리는 이성애자이므로 그저 애정 표현이다). 나랑 술 마셔 주는 너희가 맘에 들고, 취한 내 모습을 싫어하지 않는 너희가 고맙고, 반쯤 정신 놓고 기꺼이 취하는 너희가 재밌어! 이 마음을 파고들어 보니 그때는 술이 아니라 술자리를 좋아한 것 같다. 술과 안주, 사람과 분위기, 대화 주제와 피어오르는 감정들이 잘 어우러졌을 때 나는 달큰하게 풀어진 사람이 됐다. 정말 술만 있다면 세상의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인류애를 충전하는 게 술이라니. 사람을 어려워하고 무서워하던 내가 고작 술 하나로 둥근 세상을 더 둥글게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과거의 내가 감히 예상할 수 없었던 스무 살의 기백이다.
미래의 내가 보기엔 참 무모하고 어리석고 대책 없이 명랑하다. 술을 마셔야지만 스스로 솔직해질 수 있었던 그 아이는,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술을 물처럼 마셔댔던 그 어린아이는 반성이 필요하다는 게 서른이 된 나의 소견이다. 그렇다고 스무 살의 나를 꾸짖고 싶지 않다. 현재의 나를 만든 건, 세상의 법칙을 깨치고 좀 더 노련한 30대를 시작하게 만든 건 8할이 술이다. 오로지 술에서만 배울 수 있는 복잡하고 미묘한 세상살이가 있다. 사람을 애정으로 대하는 법과 받은 사랑을 돌려주는 법, 사람에게 상처를 받고 또 주는 법과 상처를 치유하고 용서받는 법 모두 술이 있는 자리에서 배웠다. 소심하고 낯 가리던 나는 술이 아니었으면 그토록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마주칠 일 없었을 테다. 나의 소심함을 벗겨냈듯이 술은 많은 것을 벗겨낸다. 발가벗은 사람들과 시공간을 공유하다 보면 굳이 이런 것까지 겪어야 할까 싶은 참담함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때 앞선 것들을 배우게 된다. 술의 진정한 단맛은 그때 맛보는 거다. 사람을 얻는 재미에 취해 술을 마신 어린아이는 후에 본인이 사람을 거르기 위해 술을 마시기도 한다는 걸 알는지. 모르고 그저 해맑게 마셔주길. 네가 원하는 대범한 아이가 될 수 있다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