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신나게 술을 마시고 누군가 “2차 노래방?”이라고 제안하는 순간 즐거움이 사그라든다. 흥의 민족 한국인의 필수 코스라는 노래방은 안타깝게도 내 안중에 없다. 시끄러운 곳을 싫어한다는 이유를 덧붙이지만 석연치 않다. 뭔가 가슴 깊숙이 노래방을 거부하는 까닭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뭔지 나조차도 모르겠다는 거다. 가창력을 뽐낼 만큼 노래 실력이 좋지 않아서? 가수가 꿈인 적도 없는데 마음 쓰일 리가. 삑사리 나면 창피해서? 잠시 얼굴 붉힐 수는 있겠지만 뭘 그렇게까지. 현란한 사이키 조명이 싫은가? 굳이 말하자면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그게 이유는 아니다. 대체 나는 왜 노래방을 싫어하게 됐는가. 미궁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작년 10월, 친구 효와 제주 시청 서문떡볶이에서 떡튀순을 먹고 늦게 합류한 친구 영과 자리를 옮겼다. 우리가 간 곳은 다름 아닌 노래방. 싫다는 날 멱살 잡고 끌고 갈 만큼 불미스러운 친구들이 아님을 강조하겠다. 어떻게 된 일인가 하면…. 중학생 때부터 알고 지낸 우리는 하나의 공통점으로 집결해 단체카톡방을 만들게 된다. 이름하여 마이데이 톡방. 가수 데이식스의 팬클럽 이름이 마이데이고 우리는 데이식스를 좋아하는 3인이다. 그때가 데이식스의 아홉 번째 미니 앨범이 발매되고 한 달이 지난 시점이었는데 곡들이 노래방에 등록됐다는 소식을 효가 알려온 참이었다. 효와 영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노래방 가자는 말이 나왔다. 내가 노래방을 가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아는 효는 같이 갈 마음 있냐고 조심스레 물어왔다.
노래방은 안 가고 싶었고 데이식스 노래 부르는 친구들은 보고 싶었다. 어느 쪽 마음이 더 큰가. 각자 삶이 바쁜 와중에 짬 내서 볼 수 있는 반나절은 귀하다. 아무래도 나는 귀한 만남을 택하고 싶었다. 노래방만 가는 게 아니라 저녁도 먹고 카페도 간다길래 노래방 끝날 때 합류하는 걸로 말을 바꾸려고 했다. 인생은 타이밍. 나보다 빠른 친구들이 나와 함께하는 노래방이 오랜만이라 설렌다면서 아주 발랄한 이모티콘을 연달아 보내왔다. 여기서 안 가겠다고 하면 들뜬 분위기에 초 치는 것 같아 조용히 있기로 했다. 하루 일정 중 3분의 2만 재밌으면 됐지 뭐 하는 생각으로 체념하자 친구들은 노래 안 불러도 되니 옆에만 있어도 괜찮다 그랬다.
그렇게 들어간 노래방. 친구들은 손에서 마이크를 떼면 죽는 사람처럼 한시도 쉬지 않고 예약된 노래들을 불러제꼈다. 자유롭고 야생적인 가창력으로 다양한 곡들을 소화했는데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하나도 안 부러웠다. 내 역할은 리모컨으로 간주 점프를 해주는 것, 곡의 마지막 가사가 끝나면 취소 버튼과 시작 버튼을 연달아 눌러 노래를 바로바로 부를 수 있게끔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리모컨 컨트롤러가 된 내가 옆에서 멍을 때리든 같이 따라 부르든 신경도 안 쓰고 트램펄린을 탄 듯 방방 뛰며 노래를 즐겼다. 뇌 빼고 노는 그 둘이 처음에는 낯설었는데 데이식스 노래를 좋아하다 보니 나도 분위기에 스며들어 점점 엉덩이가 들썩이는 거다. 정신 차렸을 무렵, 같이 헤드뱅잉을 하는 내가 있었다.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난리블루스를 추는 여자 셋이 너무 웃겨 미친 사람처럼 웃음이 났다. 올해 들어, 아니 몇 해에 걸쳐 이렇게 남 눈치 안 보고 오롯이 즐겼던 적이 있었나. 그제야 기억이 났다. 왜 내가 노래방을 싫어하게 됐는지.
스무 살인가 스물한 살인가. 대학교라는 게 이런데 구나, 대학 생활은 어떻게 하면 되는 거구나 어느 정도 알아갈 즈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 시절 대학교라는 일종의 사회 조직 안에서는 한 학번 위일지라도, 그러니까 고작 한 살 차이일지라도 감히 넘보지 못할 하늘 같은 선배로 여겨졌고 그래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선배 앞에서는 바짝 마음을 조여야 하고 한 치의 실수도 용납 못 한다는 식이었는데 내가 생각할 땐 정도가 지나쳐서 선후배 관계를 왜 이렇게 어렵게 만들려고 하는지 의문이었다. 그럴지라도 싹싹하고 애교 있고 곰살갑게 다가가는 성격이라면 웬만한 선배들은 살갑게 대해줬다. 어떤 이는 그랬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법을 몰랐고 모든 관계에서 긴장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라 적당히 선을 지키고 거리를 두는 게 자연스러웠다. 근데 꼭 선을 넘고 위계를 드러내 하늘 대접을 받고 싶어 하는 선배가 한두 명쯤은 있다. 그놈의 노래방에서 똥군기를 잡는 선배가 있었다.
친구와 학교 후문에서 밤늦게까지 놀고 있었다. 우연한 계기로 거리에서 선배들을 만나게 됐는데 어쩌다 보니 나와 내 친구, 선배 둘, 총 네 명끼리 노래방을 가게 됐다.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완전하지 않지만 확실한 건 내키지 않은 자리였다는 것. 선배들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했으리라. 친구와 나 둘 다 친하지 않은 상대에게 같이 노래 부르러 가자는 소리를 못 하는 그릇일뿐더러, 몇 학번 위인 선배들이 가자고 부추기는 걸 완곡하게라도 거절할 만큼 다부진 성격과 거리가 멀었다. 그렇게 평소에 인사만 했던 선배들과 좁은 방에 앉아 있는데 내가 왜 여기 있지 생각했다. 당장이라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었다. 친하지 않은 상대와 꽤 가까이에 앉아 여자 둘, 남자 둘 조합으로 있는 것 자체가 영 부대꼈다. 사적 대화마저 한마디 이상 넘어가 본 적 없는데 아닌 밤중에 서로의 노래를 들어야 한다고? 참으로 어색하고 곤란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쭈뼛대면서도 누군가 노래를 부르면 경청(하는 척)하면서 손뼉을 치고 고개를 끄덕이며 나름대로 호응하곤 했다. 그때 열창하고 마이크를 내린 한 선배는 내게 곡을 맡겨놓은 것처럼 굴며 “야. 너도 노래 좀 해봐.” 강요하기 시작했다.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른데, 어색하겠지만 이왕 이렇게 됐으니 같이 즐기고 놀자는 뜻으로 말했다면 나도 에라 모르겠다 하고 미친 척 댄스곡으로 분위기 띄울 수도 있었다. 말투로 보나 말 그 자체로 보나 내가 느낀 건 위압이었다. 선배가 했으니 너도 해야지, 라는 압력과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껄렁한 눈빛. 아무렇지 않게 노래 부를 자신 없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기분은 곤두박질치는데 이런 상황을 처음 겪는 만큼 어떻게 잘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 내게 느닷없이 쏘아진 무례에도 나 때문에 분위기가 이상해질까 봐 애써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싫다고 말하고 싶으면서 말을 삼키고 에둘러 손짓으로 상황을 무마하려는 게 어린 나의 최선이었다. 두려웠던 것 같다. 선배라는 사람에게 밉보였다가 어떤 식으로든 학교생활이 불편해질까 봐, 단지 내 친구라는 이유로 그 자리에 같이 있던 애가 피해 볼까 봐.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이죽대며 “넌 여기 노래 처 들으러 왔냐. 싸가지 없네.”라고 싸가지가 없는 말을 했다.
어떤 강요와 갑작스러운 폭언. 좁고 폐쇄된 그곳에서 벌어진 잡스러운 일. 노래방에 얽힌 해로운 기억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몸은 기억하는 그날. 오로지 나의 몸만 알고 있던 특정 공간에 대한 거부감. 그랬었지 참. 나 그래서 노래방 싫어하네.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오래된 상흔을 발견하면 떫은 감을 씹은 듯한 기분이 된다. 기억할 가치가 하나도 없는 기억에 묶여 10년을 소모했구나.
효와 영이 모든 노래를 끝마쳤고 우리는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나는 노래방에 얽힌 과거가 기억났다며 담담하게 얘기했고 그들은 어려서 아무 말도 못 했던 그때의 나를 대신해 그 선배를 신랄하게 깠다. 허공에 뱉어지는 시원한 욕설을 듣자니 통쾌해서 웃음이 났다. 대비가 강하면 한쪽의 주목성이 높아지는 법. 자신을 높이고 타인을 낮추는 사람이 있었기에 먼저 의사를 묻고, 강요하지 않고, 의견을 존중해주는 효와 영이 더 빛난다. 존중하는 법을 아는 친구들이 곁에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사실 그 이름이 한 자도 기억나지 않을 만큼 그 선배가 그다지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 그걸 아는 것만으로도 악몽 같던 그날의 노래방이 비로소 지난날이 되어간다.
해가 바뀐 현재. 나의 먼지 낀 노래방은 효와 영이 일손을 거들어준 덕에 말끔히 청소되어 진정 즐길 수 있는 것들만이 남았다. 과거는 정말로 과거가 돼 기억의 무덤에 묻혔고 데이식스 얘기를 하는 우리의 단톡방은 여전히 활발하다. 달력에는 몇 번의 노래방 약속이 추가로 잡혀있다. 리모컨 컨트롤 능력이 아닌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