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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원쌤 Jun 06. 2021

고요함과 반짝임이 있는 수업 1

교사교육과정

아이들 세계로의 초대


“자기 몸을 따로 가지지 않은 것이 틈 없는 곳에 들어갈 수 있다.”_파멜라 메츠 풀어씀, 이현주 옮김, 《배움의 도》, 민들레, 2010년
책의 한 구절이다. 노자의 도덕경 81장을 ‘배움’이라는 것을 중심으로 다시 풀어낸 글 속에 있는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하지만 사람들이 쉽게 놓치는 부분을 짚어주고 있다. 몸이 없어야 틈 없는 곳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넘어갈 문제만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세상!
《어린 왕자》를 보면 “어른들도 한때는 어린이였다!”라는 말이 있다. 분명한 사실은 지금은 어린이가 아니라는 것이고, 어른들 중 이 사실을 항상 기억하는 이는 극히 소수일 뿐이다. 그래서 어른인 교사가 아이들과 생활하는 것은 쉽지 않다. 어른의 몸과 마음으론 아무리 노력해도 아이들의 세상에 들어갈 수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교사가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면서, 아이들 속에 섞여 생활하다 보면 어느새 아이들 세상에 들어가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다. 아니, 기회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이다. 아이들의 세상에 들어간 교사는 그 속에서 방황하는 경우가 더 많다. 어느새 자신의 몸과 마음이 어른으로 세팅되어 있었는데 그것이 해체되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채 아이들 세상 즉 틈이 없어 보이는 세상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그 속은 지금의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미묘하고 어지러운 세상이다. 나도 어릴 땐 이런 세상에 살았을 것 같지만 쉽게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서 어렵고 당황스럽다. 그 상태가 지속되면 어느새 힘들어하는 스스로를 보게 된다. 알 수 없는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아이들을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혹은 아이들과 함께 지내기엔 내가 부족하구나 등의 마음의 소리가 커진다. 이런 경험은 경력이 많고 적음과도 큰 관련이 없는 것 같다. 경력이 20년이 다 되는 나조차도 가끔은 이런 경험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  이경원 지음, <교사의탄생>, 행복한미래, 2018년


2018년도에 출간했던 “교사의탄생” 속 저의 이야기입니다. 20년이 넘는 교사생활을 돌이켜보면 가장 잘한 일 한 가지는 아이들과 함께 했음에 부끄럽지 않았다는 점이랍니다. 아이들 속에서 행복하게 지낸 지금까지의 교사생활 그리고 앞으로도 행복하게 지내고 싶은 교사생활을 꿈꾸는 것이죠. 그런데 이런 행복은 어떻게 만들고 가꿀 수 있을까요?


아이들과 함께하는 교사


아이들과 함께하는 순간들을 사진으로 남기는 일은 교사에게 주어진 특별함 중 하나일 것입니다. 가끔은 전문 사진작가라도 된 듯이 다양한 장면들을 찾아다니기도 하고, 실제로 사진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기도 합니다. 카메라라는 기계에 따뜻함과 생명 가득한 장면을 언제든 깃들게 할 수 있는 존재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겠죠. 그렇게 쌓아둔 사진들을 살펴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그 당시 제가 느꼈던 느낌들과 생각 그리고 행동들이 기억납니다. 아련한 그리움으로 말이죠.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항상 기분 좋은 그리움만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무언가 그 당시 불편함도 느껴지고, 그 당시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도 느껴지는 것이죠. 그러다 번뜩하고 만나는 장면이 있었죠. 바로 “치열했지만 빛나던 그리움”을 말입니다.


치열하지만 빛나는 그리움


2004년 4학년 아이들과 함께 일 년 가까이를 함께 연극을 만들고 무대에 올리던 순간은 참 오래된 일이지만 그때의 느낌과 행동들이 기억에 난답니다. 연극 대본을 함께 짜던 일, 연극 연습 중 서로 싸워서 달래고 화해시키던 일, 때론 아이들과 제가 서로 틀어져서 싸우기도 했고, 아이스크림 한 방으로 해결하기도 했었던 기억들 말이죠. 그리고 의상과 조명까지 직접 만들고 부모님을 초대해 교실에서 조촐하지만 우리만의 빛나던 공연을 했던 기억들이 지금도 아련합니다.


2008년 한창 생태 영상(생태 UCC)을 아이들과 만들 던 때에 우리 반 친구 2명이 SBS에서 실시한 “물환경대상”의 제1 회 영상 부분 대상을 차지했던 영광스러운 순간도 기억에 선합니다. 방송사에서 진행된 생방송에 참여하며 아이들의 수상을 함께 기뻐하던 그 순간들 말이죠. 상을 받은 것은 그 한순간이었어도 아이들과 생태 영상을 만들기 위해 일 년 내내 산과 들 그리고 강 주변을 함께 탐사하며 지냈던 순간들이 쌓여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그 당시 아이들과 활동하던 자료들은 지금도 학교를 옮겨 다니면서도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있답니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4년을 연속해서 독도를 6학년 아이들과 함께 갔었던 기억은 교사로 경험할 수 있는 최고 난이도의 활동이지 싶어요. 독도로 출발하기 위해 새벽 4시에 학교에서 아이들과 버스로 출발해야 하고, 3시간을 꼬박 달려 도착한 강릉항에서 다시 배로 갈아타고 3시간을 꼬박 가야 울릉도가 나오죠. 그리고 거기서 다시 1시간 30분은 더 배를 타야 독도에 닿을 수 있답니다. 마지막으론 독도에 배를 정박하고 독도를 밟을 수 있느냐에 온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까지. 오고 가는 길이 먼 만큼 독도를 아이들과 다녀온 기억은 그 자체로 오랫동안 남을 치열하지만 빛나던 그리움이랍니다.


이렇게 대단해 보이는 일들로만 저의 그리움이 채워져 있는 것은 아니랍니다. 아이들과 함께 학교 화단에 스크린을 설치해두고 저녁 별빛 아래에서 같이 영화 보던 일, 환경을 공부하며 작사 작곡을 한 후 공연을 준비해 학교의 곳곳으로 게릴라 콘서트를 다니던 일도 소중하고 빛나던 그리움이지요. 수학이라면 생각만 해도 싫다던 친구들이 방과 후에 자발적으로 남아서 선생님과 수학 공부를 매일 20분씩 하고 가겠다 하고 열심히 머리 아파하는 모습도 정말 소중하고 빛나는 그리움입니다. 겨울방학기간 선생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약속한 공부를 매일 하고 그 결과를 매일 선생님에게 카톡으로 사진 찍어 보내주던 모습도 마찬가지고요.  전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바로 이런 그리움들이 “교육”과 다르지 않음을요.

학교 화단에 간이 스크린을 걸쳐놓고 보던 생태영화
“어린 시절부터 간직한 아름답고 신성한 추억만 한 교육은 없을 것… 마음속에 아름다운 추억이 하나라도 남아있는 사람은 악에 빠지지 않을 수… 삶이 끝나는 날까지 안전할 것이다.” - 도스토에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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