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별화 #맞춤형 #통합
'1996년 제3차 대통령 보고서 '신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교육개혁 방안'에서 수준별 교육과정 도입을 건의, 7차 교육과정부터 전면 적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제7차 교육과정(교육부고시 제1997-15호)은 학교 교육과정 편성을 의무화하고 학습자의 개성과 능력, 흥미와 요구를 중시하여 학습자의 직접 체험 및 학습의 개별화를 중시함으로써 종래의 획일적인 틀에서 크게 벗어나 수준별 교육과정을 도임함으로써 개별화 수업이 더욱 폭넓게 확산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주고 있다.'
(초등학교 교원의 개별화 수업 수행 능력에 대한 인식 연구, 반만준, 1999년 창원대학교)
제7 차 교육과정이 적용된 시기 즈음에 학교에 발령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획일적이고 군사문화가 학교에 남아있던 중 고등학교를 지낸 후 교대에서 조차 충분히 준비되지 못한 저의 경우 학교 현장에서 벌어지던 열린 교육이니 개별화 교육은 별천지 같은 이야기였었죠. 발령받았던 당시, 한 반에 43명의 아이들이 있는 상황에선 무엇을 할 수도, 무엇을 상상하기조차 힘들었다고 생각해요. 그 당시 학교 문화도 서로 나누고 배우는 문화보다는 각자 자신의 일에 책임지는 것이 중요했고, 다른 반이나 교사의 일에 간섭하는 것은 쉽지 않았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절실했던 것은 선배교사들의 생생한 현장 경험이었고 목말라했지만 동시에 젊은 날의 시기를 즐기는 것에 집중하는 이율배반적 행동이 저를 지배하던 시기이기도 하였죠. 그렇게 거의 10여 년을 보낸 후 저에게 찾아온 것은 허망한 마음이었어요.
2010년, 우연히 아니 더 정확하게는 떠밀려 혁신학교에 가게 되었죠. 남들처럼 혁신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도 못했고, 교육을 바꾸겠다는 특별한 의지도 없었어요. 그저 저의 교사로서의 존재성을 찾기 위해, 그리고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교사가 되기 위해 갔었죠. 그리고 우연히 맡게 된 학년부장의 역할과 우연히 시작된 주제를 중심으로 구성한 교육과정 운영까지. 무엇하나 제대로 준비되어 시작되지 못했던 것이 제 삶의 실체이기도 하답니다.
특별한 이론을 공부한 경험도 없었고, 누군가에게 지도를 받거나 안내를 받은 것이 아니었기에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렇기에 쉽게 다른 사람에게 제가 계획하고 운영하던 수업에 대해 설명할 수도 없었죠. 그저 사례를 보여주고 각자 생각해 보시라는 말을 했을 뿐입니다. 이런 시기를 보내며 자연스럽게 고민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지금 내가 하는 이런 모습이 정말 어떤 모습인지 알고 싶었던 것 같아요.
첫 발령 때 개별화에 대한 열품이 제가 발령받았던 학교에도 있었어요. 그 당시 교장선생님께서는 아이들마다 수준이 다른 학습지를 개발하고 사용해야 한다 하셨고, 주변 동료들의 도움을 적절히 받아가며 눈에 보이는 학습지를 확보할 순 있었지요. 그런데 학습지가 갖춰졌다고, 아이들마다 다른 학습지를 준다고 해서 좋은 교육활동이, 아이들마다 온전히 자신을 성장시키는 교육이 이뤄지는 것 같지 않았어요. 아이들의 성장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 금방 지치더군요.
바로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 생각해요. 주제를 중심으로 하는 교육과정을 10년이 넘게 운영하고 있고, 계속해서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바로 아이들의 성장이 보였기 때문이었죠.
경기도교육청에서 몇 년 전부터 '학습자 중심 수업'이라는 말로 예전 7차 교육과정의 이야기를 다시 띄우기 시작했어요. 개별화 교육은 결국 학습자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교육을 말하기에 비슷하거나 같은 이야기라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교육의 궁극적인 모습이라 생각할 때 개인별 맞춤형이라는 수사가 붙기를 원하는 우리의 모습이 반영된 것이니까요. 하지만 학습자 중심이나 개별화 교육에서 관심을 가지는 것이 학습에 대한 부분이라는 부분이 계속 마음에 걸립니다. 제 머릿속에선 계속 이런 의문이 들거든요.
무엇인가를 성취하도록 하는 것이 우리 교육의 목표라면 개별화 교육은 어쩌면 최적화된 모습의 교육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교육의 목표가 개인의 가치에 집중하고 있다면 성취도를 통한 교육의 모습은 충분치 않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성취도를 앞세우며 개인의 가치는 성취도에 의해 결정되는 것처럼 여기도록 만들 수 있다 생각해요. 과장된 생각이라 볼 수도 있지만 선행 연구들을 보면서도 이런 의문들이 충분히 해소되진 않아요.
개별화 관련 연구들을 찾아보면 주로 학습부진에 대한 해결로 개별화 교육이나 수업이 좋은 효과성을 보인다고 이야기해요. 특히 기초가 부족하거나 선수학습이 부족한 친구들에게 효과적이라는 연구는 많이 보이는 것 같아요. 그리고 또 다른 측면으론 주도적 학습자를 기르기 위해 필요하다는 논의들도 보이네요.
학습에서 성공률을 올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물론 개인별로 목표가 달라서 개인의 능력에 따라 완성되는 결과물을 가지고 성공률을 측정하면 될 것입니다. 학습부진의 가장 좋은 해결책처럼 보이는 것이죠. 하지만 현실적으로 20명이 넘는 교실에서 거기다가 국가 교육과정 속 성취기준을 달성해야 하는 의무를 가진 공교육 체제 하에서 아이마다 다른 목표 설정은 자칫 학습의욕은 주되 도달해야 할 수준을 달성하지 못하고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우를 범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교사별 평가가 한창 논의가 될 때 아이마다 다른 평가목표를 주고 성취기준에 도달하지 못해도 좋다고 이야기하는 분과 그 부분에 대해 이견을 나눴던 기억이 나기도 하네요. 그렇다면 도대체 개별화 교육은 어떻게 하고, 무엇을 하자는 것일까요? 그리고 개별화 교육은 주도적인 학습자를 길러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하는데 주도적 학습자는 개별화 교육이 아니면 안 되는 것일까요?
학습부진의 여러 가지 이유들에 대한 글들을 보면 몇 가지가 보입니다.
학습의 속도가 느리고, 언어능력 중 추상적인 표현에 어려움이 있으며 단기 기억 능력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20년 넘게 아이들을 보며 느끼고 생각한 부분과 상당히 비슷함을 느꼈습니다. 특히 사고의 과정이 논리적이지 못하기에 모든 학습에서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아왔기에 어떻게 하면 사고의 과정을 성장시킬지가 개인적인 과제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부진의 원인은 인지적인 부분만의 어려움이 아니라 정서적인 부분의 어려움도 동시에 동반한다고 합니다. 제 경험과 비교해 보았을 때 가장 큰 어려움은 성취동기가 낮고 관계 형성에 소극적인 아이들인 경우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많은 연구들은 이 두 가지 요인을 균형 있게 다루며 두 가지를 동시에 성장시켜야 한다 말하고 있지만 실제 제가 경험한 것과는 조금은 달랐어요. 인지적인 부분의 어려움 이전에 정서적인 어려움이 더 크게 다가왔으니까요. 그래서 저에게 개별화 수업은 아이들이 가진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도록 주변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과 같았어요.
아이들은 모두 다 다릅니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그것을 깊이 인식하고 그 인식의 바탕 위에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 같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있어 개별화 교육의 첫 번째는 모두가 다른 존재이고 다르기에 서로를 존중해야 함을 이야기하는 것이 첫 번째 가치가 되었답니다. 그리고 이렇게 서로가 다르기에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평등의 가치보다 모두의 처지에 어울리는 공정의 가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개별화 수업에 녹아있는 핵심가치이지 싶답니다. 하지만 개별화를 이야기하며 위의 두 가지 가치는 잘 부각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보통 개별화에 대한 이야기의 핵심은 능력에 따라 다른 과정을 제공하거나, 다른 목표를 제시한다와 연결되어있고, 그 방법으로 최근엔 AI로 대표되는 수업방식을 이야기하니까요. 그런데 전 이런 개별화의 논의에 대해 이런 쟁점들이 있다 생각해요.
제가 생각하는 개별화 수업에 대한 방안들에 대한 쟁점들이랍니다.
능력별 분반을 통한 수업이 과연 개별화 교육의 이상적 형태일까?
학생마다 다른 자료를 제시해주는 것이 과연 학생에게 진정 의미 있는 교육경험이 되는 것일까?
컴퓨터나 AI를 통한 개별화 교수 프로그램은 학생에게 도움이 되는 것일까?
개별화 수업을 통한 완전학습은 가능한 것일까? 완전학습의 의미 측면에서.
당연한 이야기겠지요. 아이들이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성장하기를 원하는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게 아이들마다의 성장 속도는 다 다릅니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순 없습니다. 왜냐하면 학습이라는 것은 개인적 능력만의 정도로 결정되는 것은 아닐 테니까요. 만약 학습이 개인만의 문제라면 가장 좋은 개별화 수업이나 교육은 학교가 아닌 각자의 집에서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학습자로서 그것도 주도적인 학습자로서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지금 당장 달성해야 할 성취기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 아이가 가진 잠재력이 부족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개별화 수업을 통해 아이들이 도달해야 할 성취기준을 도달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은 멋진 생각이지만 그렇다고 그 아이의 능력을 성취기준 도달로만 볼 수 없다는 생각인 것이죠. 어쩌면 지금 당장은 성취기준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그 성취기준에 도달하기 위한 조건들을 충분히 갖춰나가도록 한다면 아이에겐 기회가 계속 생기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어떤 조건들이 필요할까요?
학습의 단계를 나누고 목표를 달리하며 아이들에게 주고자 하는 것은 결국 아이에게 자신에 대한 믿음을 주는 것으로 귀결될 것입니다. 어려운 문제를 풀지 못해 좌절했던 아이가 조금은 쉽지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을 때 아이는 새로운 학습에 도전하려 하니까요. 그런데 이런 아이의 심리적인 부분은 꼭 다른 과제를 제시할 때에만 가능한 것은 아니란 생각입니다. 이런 심리적인 부분들은 제가 실천하고 있는 교육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이니까요.
앞에서 주제를 중심으로 한 통합교육을 통해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어서 좋다 했죠. 네, 맞습니다. 제 경험상 주제를 중심에 둔 수업을 할 때 아이들의 모습을 더 잘 볼 수 있었고, 아이들의 심리적인 성장도 훨씬 더 크게 나타났습니다. 아마 그것은 주제중심 교육과정의 핵심적 부분들 때문이란 생각입니다.
누군가 저에게 물어본다면 전 주저 없이 '함께함에 있습니다.'라고 말할 것 같습니다. 실제로 주제를 중심에 둔 수업은 아이들이 아이들과 함께하는 모습이 중심이었고, 아이들과 교사가 함께하는 모습이 중심이었으며 수업과 수업이 함께하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실을 넘어 학교 전체가 수업의 장소이며 세상 또한 수업의 자료이자 장소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모두가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지만 서로가 다 다르며 동시에 함께 손을 잡을 수 있는 관계에 있다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의 수업 속에서 아이들의 모습을 개별로 관찰하고 아이 개개인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교사의 모습도 당연히 들어있지요. 수업과 쉬는 시간, 각 교과별 수업이 나눠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맥락 속에 있으며 교사와 학생이 서로의 역할을 넘어 한 사람의 삶의 주인공으로 만나는 곳이 제가 추구하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주제중심 통합수업입니다.
그렇다면 주제중심에서의 개별화는 심리적인 부분만을 다루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아요. 수업 중 어떤 것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아이마다 각기 다른 과정을 거치게도 하니까요. 그리고 어떨 땐 도달해야 할 성취도의 정도를 알려주고 선택한 후 도달할 수 있도록 하기도 하지요. 중요한 것은 아이들 누구도 자신이 이 수업에서 소외된다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죠. 그리고 그것이 초등의 가장 중요한 목표인 모든 교과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한다 생각해요. 그리고 아이의 성취도를 한 번에 끌어올리려고 하기보단 천천히 자신의 수준을 기반으로 올려갈 수 있도록 한답니다.
제7차 교육과정에서 처음 제기된 개별화에 대한 논의가 최근 들어 다시 이야기되는 이유 중 하나는 온라인 수업으로 인한 학생 개인 학습에 대한 부분이 부각된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기술의 발전으로 AI를 활용한 개인학습에 대한 가능성이 높아졌기에 그런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하지만 아무리 개별 학습이 좋다 하더라도 교육은 혼자서 하는 것은 아니란 생각입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다름 속에서 자신의 것을 만들어가는 것이 교육이고 그런 경험들이 개인의 평생 학습에도 도움이 된다 생각합니다. 개별화 학습이 7차부터 이야기되었지만 현장에 안착되고 보편화되지 못한 이유도 인지적인 부분이 더 강조되어 이야기해서 그런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개별화 수업에서 인지적인 부분의 중요성과 더불어 심리적, 정서적인 부분을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