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8 친애하는 당신에게
-그는 연기처럼, 물처럼 내 안에 스며들었다.
내가 본 사람 중에 가장 취미가 많은 사람을 대보라고 하면, 아마 오빠일 것이다.
변호사를 준비했어도 변호사가 되었을 것 같은 내 첫사랑은 팔색조였다.
그의 팔색조 같은 매력을 나는 숫자 8로 기억한다.
끝없이 돌아가는 곡선 속에, 어딘가 닿을 듯 말 듯한 거리에서 나는 늘 그의 결을 느끼고 있었다.
"나 너 보청기 한 번 껴보면 안 돼?"
그의 물음에 나는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나 이런 사람 진짜 처음 보네.
이거 맞춤이라서 안 맞을 텐데."
그는 잠깐도 머뭇이지 않았다.
"네가 듣는 세상이 궁금해“
순간, 좀 신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청 시끄럽게 들릴 수도 있는데, 괜찮겠어?"
"응. 상관없어."
그는 정말 아무렇지 않게, 아주 진심으로 그 말을 했다.
그리고 보청기를 착용한 그는 아이처럼 신이 났다.
세상이 새롭게 들리는 것처럼, 두 눈이 환하게 반짝였다.
그러다 문득, 진지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내가 네가 왜 궁금했는지 알아?
나는 무심히, 늘 하던 장난처럼 말했다.
"왜지. 예뻐서 아닐까?"
나는 그런 말을 참 아무렇지 않게 잘하는 사람이다.
그는 장난스럽게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다시 진지한 얼굴로 돌아왔고, 그때 그가 했던 말은 지금까지도 정확히 기억난다.
"네가 귀가 안 들린다고 처음부터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게 너의 매력이었어.
그리고... 참 뻔뻔해. “
그건 내가 예상했던 대답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따뜻했다.
그의 말 한마디에,
내 장애가 유리구슬처럼 느껴졌다.
투명하고 반짝이며, 이내 청아한 소리가 들릴 것 같은 기분.
그가 내 마음 깊숙한 곳까지 다녀간 듯한 기분이었다.
그 말에는 짙은 스모키 우디 향이 났다.
묵직하지만 따뜻한 나무 냄새, 차분하게 오래도록 남는 그 사람의 말투처럼.
그는 털털하고 솔직한 사람이었다.
요즘 말로 하자면 에겐남보단, 테토남.
나를 가볍게 보지 않되, 가볍게 웃게 해주는 사람.
나의 결핍을 호기심이 아니라 존중으로 바라보던 사람.
나는 8을 많이 좋아했다.
연상과 제대로 연애를 해본 적도 없는 나였다.
한 번도 오빠라는 말을 설레면서 불러본 적 없던 내가,
그 사람 앞에선 모든 걸 내려놓고 단 한 사람만을 원 했다.
내 첫사랑은 그 시기에 내게 산소 같았다.
없으면 숨이 막히고, 곁에 있으면 너무 빠르게 타버리는 산소.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은 늘 제시간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시계는 몇 배 속으로 빨라졌고, 하루는 금방이었다.
8은 내가 자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에게 매일 뻔뻔하게 말했다.
좋아한다고, 평생 해보고 싶은 거 다 하다가 나한테 장가만 오라고.
하지만 우리는 함께 연애를 하지 않았다.
그에게 마음이 생긴 직후,
나는 속으로 큰소리부터 쳤다.
연애 절대 안 한다고.
혹여나 시작하면 끝이 있을까 봐,
가질 수 없을 만큼 귀해서
차라리 마음으로만 곁에 있고 싶었다.
그는 바라만 봐도 아깝고,
그래서 더 아꼈던 사람이었다.
8은 마치 동전과 쇠냄새가 풍길 것 같은 매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냉철하지만 묘하게 따뜻했고,
무심한 듯 다정했고, 무거운 듯 가벼웠다.
그렇게 나의 예술가는 한동안 내 심장에 길게,
아주 조용히 안착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