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의 예술가 2

The Softest Winter 가장 부드러웠던 겨울

by 이비

-그의 미소에선 생크림 향이 났고, 내 심장에선 따뜻한 버터 향이 났다

우리는 꽤 가까운 곳에 살았다.

그래서 자주 만날 수 있었고, 자주 만나다 보니 함께한 날들엔 늘 작은 특별함이 스며 있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8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였다.


어떤 날은 집에서 밥을 먹고, 어떤 날은 별 계획 없이 드라이브를 하다가도 자연스럽게 그의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다

처음엔 조심스러웠지만, 이상하게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그의 가족 속에서 나도 따뜻한 온기를 나누는 사람이 되어갔다.


기념일이든 일상이든 늘 친구보다 가족이랑!이라는 8은, 신기하게 쳐다보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가족이랑 충분히 즐거운데, 굳이 그 시간을 친구에게 먼저 줄 필요는 없잖아?"


그 말이 참 오래 기억에 남았다 나도 나름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다고 생각했지만, 그 한마디에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마음이 털썩 내려앉았다.


나는 그에게 배웠다.

사랑은 꼭 거창한 말이 아니어도 된다는 것.

가끔은 조용히 곁에 있어주는 마음만으로도 충분하 다는 것을.


그리고 어느새, 나도 모르게 그와 닮아 있었다.

누군가를 챙기는 방식도, 사람을 대하는 따뜻한 온도도.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은, 아마 이런 마음을 두고 생겨났을 것이다.

우리는 닿지 않았지만, 그보다 더 깊은 곳에서 서로를 스며들게 했다.

사랑은 꼭 연인이 되어야만 완성되는 게 아니니까 그는 내게 그런 걸 알려준 사람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몇 번 바뀌고, 타지에서의 9번째 여름을 보내는 지금.


떨어진 거리만큼 자주 볼 수 없는 우리는

"한 번 보자"는 말을 서로 건네지만, 그 말은 늘 말로만 머문다.


어쩌면,

그때의 향기가 너무 좋았기에 다시 꺼내는 것이 두려운 걸지도 모르겠다.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미화되는 게 아니라, 가끔은 더 진해지기도 하니까.


어느 추운 겨울,

그가 내게 차 앞을 막고 있던 표지판을 잠깐만 치워 줄 수 있냐고 부탁했을 때

잠깐 다녀온 그 자리에서, 내 부츠는 진흙에 살짝 묻었고,

그는 아무 말 없이 내 신발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는 차에서 내려, 맨손으로 차가운 물에 부츠를 꼼꼼히 씻어주었다.

숨이 하얗게 피어오르던 겨울.

그의 손은 얼어붙을 만큼 시렸지만, 표정은 따뜻했다.

"다 됐다. 깨끗하지?" 그가 웃으며 말했을 때, 그의 미소에선 생크림 향이 났다.

그리고 내 심장은,

그 순간만큼은 분명 따뜻한 버터 향이 났을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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