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made me bloom 그녀는 나를 피어나게 했다
-평생을 내 귀가 되어준 작은 장미
아주 오래 전의 기억이다.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고, 말을 배우던 때부터 엄마의 품에 안기면 언제나 포근하고 향기로운 장미향이 났다. 그 때문일까. 나는 어릴 때부터 장미꽃을 좋아했고, 엄마 손을 꼭 잡거나 팔을 주물럭거리거나 안기기를 유난히 좋아했다.
오랫동안 향수를 뿌리고 잠들던 엄마의 몸과 그 주변에 스며 있던 향기는 내게 ‘엄마는 장미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심어주었다.
이제 엄마와 함께한 시간이 37년이 되어간다. 더 이상 엄마 몸에서는 장미향이 나지 않지만, 엄마를 보는 순간 여전히 장미향이 떠오른다. 그것은 오래된 기억 때문일까, 아니면 정말 엄마가 장미 같은 사람이기 때문일까.
엄마는 여섯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나 자립심 강한 여성으로 자랐다. 장미 줄기처럼 튼튼하고, 장미 가시처럼 자신을 지켜내며 아빠와 결혼한 뒤에는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고 우리 가족을 지탱해 주셨다. 지금도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나를 위해 병원에 동행해 주시고, 긴 전화 통화가 필요할 때는 곁에서 도와주신다. 평생을 아빠와 나의 ‘귀’가 되어주신 분이다.
나의 엄마는 키 152cm의 작은 여인이지만, 세상 누구보다 강한 내면을 지니고 있다. 20대 시절, 회식 후 숙취에 취해 출근길에 “엄마, 나 토할 것 같아”라고 말하면 “넌 토해도 예뻐”라며 웃어주던 사람. 사회공포증과 우울감에 힘들어할 때 “너는 귀가 남들보다 잘 안 들려서 특별한 거야. 우리 딸은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귀를 가졌어”라고 말해주던 사람. 내 안의 부정적인 내면을 긍정으로 바꿔주신 분이다.
엄마는 키가 큰 딸을 인형처럼 예뻐해 주셨다. 인형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생일마다 인형 선물을 해주고, 집에 들어오면 귀여운 물건들로 깜짝 놀라게 하며 기쁨을 주셨다. 덕분에 나는 사춘기도 크게 겪지 않았다. 엄마는 큰소리 한 번 내지 않고, 내 앞에서 울지 않으며, 늘 향기 나는 장미처럼 내 곁에 있어주셨다.
고주파만 들리는 내 청력을 위해, 벽 너머에 있을 때면 “예쁜 우리 딸~” 하고 성악가처럼 불러주시던 엄마. 세상 어디에 이런 마음씨 고운 사람이 또 있을까. 나는 엄마가 너무 사랑스럽고 소중하다.
제주에서 혼자 살던 시절, 부모님이 종종 놀러 오셨다가 말없이 집에 가시곤 했다. 아침 알람도 듣지 못하는 내가 혹여 깨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다. 어느 날은 엄마를 공항에 모셔다 드리며 “사랑해”라고 안아주고 춤을 춘 적이 있었다. 그 순간을 엄마는 몰래 찍어두셨고, 나는 엄마 눈빛 속에서 ‘떨어지기 싫지만 웃어야만 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처음으로 차 안에서 펑펑 울었다.
그때 제주에서 내가 맡았던 향기는 청량한 바다향이 아니었다. 짠 바닷바람, 코끝 시린 바람, 마른 잎사귀의 쓸쓸한 냄새였다. 그 속에서 나는 다시 장미향을 그리워했다.
언젠가 또 부모님과 떨어지더라도, 지금 선택할 수 있을 때 나는 장미 향기 나는 여인과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7년 만에 다시 엄마 품으로 돌아왔다. 그날, 물방울이 맺힌 장미를 나는 잊지 못한다.
나의 장미. 나의 마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