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시선이 닿는
Coit tower
I Love SF
입장권 대신 도장을 손이나 팔에 찍어준다.
나는 씻어내야 하는 곳 말고
종이에 찍어 간직하고 싶었다.
그래서 가방에서 주섬주섬 종이를 꺼내어
손목 대신 이곳에 찍어 달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흔쾌 히 꾸욱 찍어주셨다.
덜 찍힌 도장에 나는
“저는 완벽한 걸 좋아해요.
다시 한번만 찍어주세요. 플리즈.”
해서 찍은 두 번째 도장.
친절한 도장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코잇 타워 coit tower 꼭대기에서
게스트하우스 룸메이트를 만났다.
나보다 한 두 살 정도 많았던 것 같고
선생님을 하고 싶어 하던 부산에서 온
그녀가 찍어 준 사진.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
그때 주고받았던 이메일로
사진을 공유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그녀는 선생님이 되었을까.
지금의 나는 국문으로는 '백수'
영문으로는 '프리랜서'인데.
Pierre-Auguste Renoir
Bal du moulin de la Galette
르누아르 물랭 드 라 갈래트의
무도회가 떠올라서
OPEN
길을 가다 눈길이 닿아 들어오게 된 곳.
오래되어 보이는 서적들이 쌓여 있고
둘둘 말려 있는 오래된 지도들과
누군가의 습작들이 있는
신비로운 공간이었다.
왠지 특별해 보이는 구석의 상자.
상자 위에는 내리다만 눈처럼 얕게 쌓인 먼지.
후우 붙어내고 슥슥 털어서 열어보니
은은하게 빛나는 보물들이 한가득
들어있 을 것 같은 그런, 보물 상자가
어딘가에 숨어 있을 것 같은
그런 곳이었다.
한쪽 벽면을 가득 덮고 있는 책장.
손을 대 면 책장이 옆으로 드르륵 밀려나면서
촉촉한 공기에 울창한 숲 속 세상이.
숲에 발을 들이자마자 책장은 닫히고
새가 곱게 지저귀고
울창한 나무를 걷어내며 들어간 곳에는
작은 호수가 있고 한쪽에는
조그마한 나무로 된 오두막집이 있는
그 오두막집에는 넝쿨이 조금 덮여있고
굴뚝에서는 연기가 나고 있는….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 같은
그런 곳이었다.
내가 이 우주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끝나면 이 모든 게 끝나는.
내가 눈을 감으면 모든 게 멈추는.
눈을 뜨면 모든 게 다시 가동되는.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누군가가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겠지?’라는.
이곳에서도 당연하게 일상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내 안의 우주의 크기가 작아지기도,
또 다른 내 안의 우주의 크기가
커지기도 한다.
가끔 문득 불현듯
당연했던 그것들이, 그립다.
위치 Location
코잇 타워 Coit tower
남들 런치 타임에 나는 브런치
마마스 Mama's 에서 식사하고 코잇 타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