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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토끼 Nov 23. 2022

초등 딸에게 남친이 생겼어요.

남사친 아니고 남친이래요.

우리 둘째가 1학년 때 이런 말을 했다.

"엄마, 남자 친구랑 가도 돼?"

그러자, 언니가 끼어든다. "너 남자 친구 있어?"

"어, 민준이 걔 남자 친군데"

언니는 눈이 휘둥그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남자 사람 친구 아니고, 남자 친구야?!"

"그게 달라??" ㅋㅋㅋ


그러던 둘째에게 진짜 남자 친구가 생겼다.

놀이터에서 고백받았다나... 그리고 바로 사귀게 되었다고. 문자에 '잘 자'라고 인사도 하고, 같이 붙어서 단짝처럼 놀이터에 다녔다. 그 남자애 자전거를 빌려 타면서 자전거도 배웠더라.

그러다가 남자 친구가 구몬을 한번 띵겼나보다. 엄마에게 바로 잡혀 외출금지령을 받았고,

둘은 헤어졌다. 헤어지면서, 나눈 대화가 더 웃기다.

"(이러저러해가지고) 헤어져야 할 것 같아"

"아, 알았어. 근데 내일 놀이터 나올 거야?"

3학년에게 있어 이성친구 유지 여부는 엄마의 화에 따라 좌지우지될 수 있더라ㅋㅋ


5학년에게도 남친이 생겼다.

쫌 황당하지만 카톡으로 고백받았단다.(대면 고백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긴 하지.. 인정)

빼빼로 데이가 발발 지점이다. 남자아이가 빼빼로를 줬고, 들어보니 안 그래도 썸을 타고 있었던 터였다. 빼빼로를 받으니 분위기가 고조되었고, '누가 너를 좋아한데' 카더라 통신이 난무하더니, 결국 카톡으로 고백을 받았나 보다. 폰을 들고 그대로 쫓아왔다. "뭐라고 하지?!"

난 내 경험(?)을 회상하며, 성심을 다하여 조언해주었다.


"거절하기 미안해서, 거절하면 껄끄러우니까, 사귀는 건 정말 아니야. 네 마음 가는 대로 생각해서 답해줘"


애초에 성심을 다한 답변은 필요 없었나 보다. 1분도 안 지나서, 나도 좋다고 보냈다는 -_-;

2학기 들어서 대화도 잘 통하고, 같이 만날 일이 많았나 보다. 바로 썸을 제대로 탄 셈.

남자애가 곧바로 '그럼 우리 사귀는 거야?'라고 물어온다.

모든 것이 처음인 아이들에게 얼마나 한 줄 한 줄이 어려울까 싶었는데, 너무 대화가 쉽고 싱겁다; 원래 그런가.

우리 아이가 애들이 알면 어쩌나, 헤어지면 어떡하지 싶어 비밀로 사귀자고 했단다. 애나 어른이라 그런 고민은 같구나…; 비밀연애라니,, 엄마는 옆에서 계속 설레는 중이다.

그 설렘에 찬물이 끼얹어졌다. "그럼 내일 보자. 잘 자~"랜다. 그렇게 그 아이는 오프라인이 되었다.

(고백하는 날에 원래 밤새 카톡 하며 히히덕거리는 날인데...)


동네 중학생들 보면 손도 잡고 다니고, 그러던데...(바라는 건 절대 아님) 시작은 원래 이렇게 초등초등한 것일까?

신체가 준성인으로 자라면 그때부터 좀 달라지는 것인가?


아이는 낯선 관계가 불편해 죽으려고 하고, 엄마는 궁금해 죽으려고 하고... 결국 기다리지 못하고, 사귀면 둘이 뭐 하는 거야?라고 물었다.

"친구들 하는 거 보니까, 같이 마라탕 먹고 코노 갔다가 인생 네 컷 찍더라고."

하아... 애들 연애도 다 돈이구나 싶더라.

"근데 나는... 그냥 내 편 들어주고, 단짝처럼 다니는 거지"

그렇다. 우리 딸 기준에서의 이성친구란, 내 편이랜다. (난 남 편 있는데...)


그리고 주말이 왔다. 큰 아이는 데이트하러 도서관으로 나가고 둘째도 남녀 삼삼오오 모여 논다고 놀이터로 나가서 집이 텅 빈 것 같았다. 하릴없이 인터넷 서핑을 하면서, 돈도 없는데 둘이 어디 가서 뭐하나 걱정되는 마음에 '초등학생 데이트 장소, 돈 없이 노는 방법'을 내가 검색하고 있더라. 헐... 처음 이성친구를 사귀는 아이들이라 그런지, 내 생각보다 꽁냥꽁냥 하지는 않는데, 그냥 그 새록새록하는 낯섦 속의 설렘이 마냥 부럽다. 나도 부러워하고, 남편도 부러워하고... 부러움에 허덕이다가 눈이 마주친 우리는 밤에 아이들이 부러워할 안주를 사러 마트로 나갔다. 부럽게 할 테다!




 나 중 3 때였다. 7979 삐삐가 오면, 냉큼 유선 전화 앞에서 기다렸다가 전화가 울리는 동시에(엄빠 모르게) 받아서 한 시간 넘게 시시콜콜한 내용으로 통화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난 중학교 때였는데,,, 그 풋풋했던 설렘을 몰래 훔쳐들으며, 나의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차피, 고등학교 가면 멀어질 아이들이라 그냥 둔 걸까.


나도 우리 아이에게 그런 예쁜 추억을 선물하고 싶다. 아직 초등학생이라 내 마음이 이렇게 여유로울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 남자아이는 우리 아이 어린이집 다닐 때부터 아는 친구라서 별다른 걱정 없이 아이의 행보를 지켜볼 수 있는 것도 같다. 우리 아이에게 또 그 아이에게도 부디 예쁜 추억이 될 수 있기를... 동성친구가 채우지 못하는 것들을 서로 채워줄 수 있는 이로운 이성친구가 되기를... 아, 마지막으로. 그 남자아이가 부디 멋있어지고 키가 쑥쑥 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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