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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솔길 Aug 18. 2018

입술을 깨물다

서늘한 바람

상혁에게도 은근 타격이 있었다. 사실 예상을 했었던 결과지만 막상 '노'라는 대답을 듣고 나니 그래도 한 방 맞은 기분에 몸이 근질거려옴을 느꼈다.


도쿄하면 아직도 다다미 방을 연상하는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들을 떠올리겠지만 오히려 컨셉을 180도 전환해서 요즘 핫하게 자리잡은 오모테산도의 클럽바 세트를 제안했는데 클라이언트는 턴아웃을 시켰다.

'쳇. 네 사이즈가 그럼 그렇지, 혹시나가 역시나군. 괜히 시간 낭비만 했구나. 이 정도면 내가 받을 벌이라고 퉁치면 되겠네.'


예전 여친 원영에 대해 상혁은 반은 앓던 이가 빠진듯 홀가분한 기분으로 또 반은 이뤄지지 못한 사랑에 아쉬워하며 예전에 반응이 좋았던 세트들을 둘러보며 원인 분석을 했다.


그때 때르릉 전화가 걸려왔다.

"오늘 외근 나갈까? 밀린 잔액도 받을 데 있는데 영업 나가지?"


채연도 은근 신경이 쓰였나 싶어 상혁은 마음 씀씀이가 있는 그녀를 아무리 발칙하다해도 미워할 수가 없나보다.


"어딘데?"

"나 지금 여기 근린공원이야."

"데리러 갈까?"

"어 여기 땡볕이라 한 발도 움직일 수가 없어."


널찍한 그늘 아래 서서 바라보니 커다란 느티나무가 버티고 서있다.

그 때 어디선가 쏴아아아 찌르레기 소리, 바람소리가 시원하게 들려온다.


  옆에는 참황갈나무가 꽃처럼 예쁜데 채연이  시원하게 눈을 감고 나무 앉아있다.

자세히 보니 힘들게 스쿼트를 하고있다.


 상혁이 가까이 다가가자 채연이 일어났다.


"너 뭐하냐??"

"상혁아, 너도 여기 와서 잠깐 앉아 봐, 바람 소리가 너무 시원해"

"하하하! 그게 뭔 소리야~~!!"

채연이 돌아보니 의자는 간데 없다.

"어, 여기 분명 의자가 하나 있었는데?누가 가져갔나??"

채연이 침묵을 깨자 상혁이 면박을 줬다.

"이런데 의자가 왜 있어?!"


상혁과 채연은 순간 둘 다 동시에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니 서로를 바라봤다.


'유령인가?'


저 멀리서 하고 공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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