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베가스
일터에 당도했다. 하늘만큼 높은 하이트에 공장 구조물이 복잡한 통로를 만들어 내는 박람회 장 안은 창고처럼 썰렁하다.
창문은 어디에도 없다.
업자들이 웅성웅성 발소리를 내며 플로어맵을 보고 자리를 찾아 걸어간다.
사람들은 깃발하나 꽂혀 있지 않은 콘크리트 바닥에서도 자기의 방을 용케 집어낸다.
그 때 트럭 한 대가 유유히 들어온다. 양 쪽으로 날개가 올라가는 특대형 트럭이 팩토리 한 가운데 멈추자 연문은 그제서야 공간감을 찾는다.
'이쯤에 펴볼까?'
그런 생각을 할 무렵 폭풍같은 벼락이 떨어진다.
"너 뭐하니? 놀러 왔어? 농땡이 부릴 생각일랑 말고 얼른 짐 받아 와!"
땅딸보 박전무가 땀복인지 스키복인지 모를 시커먼 미쉐린 타이어 복장으로 한 손엔 핸드폰을 든 채 연문을 따갑게 노려본다.
"자리를 먼저 잡아야죠. 화장실도 마려운데..."
빼질거리는 말을 하자 대각선 위치에 박스 테이프로 위치를 표시하려던 고상무가 고개를 들어 테이프를 든 채로 연문에게 다가온다.
"칼 좀 줄래?"
고 상무가 연문 앞에 테이프를 길게 죽 늘어뜨리며 얼굴 앞에 들이 밀자 연문은 고스란히 주머니에서 커터 칼을 꺼내 고상무에게 건넨다.
연문이 분한 마음에 부르르 몸이 떨리고, 열이 나고, 얼굴은 발갛게 달아지는데 간신히 억누르며 짐을 받기 위해 트럭 앞에 선다.
순간 현기증이 난다.
트럭 바퀴 아래 깔려 죽은 작은 새의 핏덩어리가 어른거린다.
고개를 가로 저어 다시 눈을 떴을 때 핏자욱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있다.
연문을 눈을 깜박인다.
그럴리 없는데 놀랍고 신기하고 방금 본 게 금새 사라진 것에 대해 믿지 못할 희한한 기분이다.
주위를 둘러 본다.
모두가 바쁘게 움직인다.
저 멀리에서 박전무가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건다.
"거기서 멀뚱히 서서 뭐해? 거기 아저씨랑 눈 맞았어? 연애하냐고!"
"네!네!"
그제서야 연문은 커다란 파란색 박스를 받아들고 살기 위해선 건수를 올려야만 한다는 다소 비장한 각오를 품으며 홍보 스폿을 향해 힘껏 밀어 넣는다.
아니다.
거기서 왜 갑자기 또 승원이의 얼굴이 떠오른 건지 알 바가 없었다.
짐을 다 옮기고 나면 승원에게 전화를 걸어야 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