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솔길 Jun 01. 2016

먹는 여자

첫 출근과 분식

아람은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화창한 6월의 첫날, 오전 열 시에 첫 출근을 했다. 길에는 처음 보는 무궁화 꽃이 길쭉길쭉 자라 있었다. 첫 출근이라고는 하지만 벌써부터 낯설지가 않았다. 아니 이미 지겨웠고 가슴이 꽉 막혔다. 마치 우희에게 새 신발을 사줬지만 여전히 걸을 때마다 다리가 꼬여서 걸려 넘어지듯이, 우정에게는 기저귀를 떼라고 천연 섬유의 샤방 거리는 팬티를 열 장 넘게 사줬지만 무색하게도 똥 칠까지 받아야만 했던 것처럼, 부하 직원은 까만 눈을 말똥거리며 자기 생각만 하며 무책임한 태도로 도망갈 궁리만 했고 상사는 아직 물 한 모금도 못 마시고 간신히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자마자 짬도 없이 불시에 이일 저일 마구 시켜댔다. 아람은 신경이 날카로울 데로 예민해져 있을 때 누군가 라디오를 틀었다. 마침 이문세의 노래 <유치 찬란> 중에 구리구리 양동근의 랩 파트가 흘렀다.


나 너한테 할 말 있어 넌 내가 이렇게 애쓰는 걸 알고 있니

살아있는 게 고통스러울 뿐이야 온갖 핍박과 무시와 WHATEVER


아이들을 맡기고 어딘가로 가버리면 좋을 것만 같았는데 일하러 나가서 쉰다는 직장맘 친구의 말은 순 거짓말이라는 생각을 아람은 했다. 오전 내 여기저기서 일이 터지는 바람에 전화통을 붙들고 소리를 지르고 손가락에 땀나도록 문자를 보내고 나니 목이 말랐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헬로 키티 비타민 사탕이 하나 손에 잡혔다. 얼른 하나를 까먹으니 배가 고파왔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자리에 없었다. 벌써 오후 1시 반이 지나 있었다. 점심시간을 보내고 하나 둘 동료들이 들어와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정신을 팔고 있다가 아람은 누구 하나 같이 밥 먹으러 가잔 말이 없는 것에 배신감을 느꼈지만 내 밥은 스스로 챙겨 먹어야 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조용히 일어나 밖으로 나섰다.

맛있어 보이는 식당이 너무도 많아서 어디로 들어가야 할지 모르는 아람이 분식점 앞에서 메뉴를 들어 보고 있자 가겟집 아주머니가 말을 시켰다.

"앉아서 골라요, 메뉴가 탁자에 있으니까"

주먹밥과 라면집 메뉴판을 뚫어지게 보면서도 아람은 여전히 뭘 먹을지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라면이랑 주먹밥이요."

"라면은 매콤한 맛이랑 얼큰한 맛 어떤 걸로 드릴까요? 주먹밥도 골라 보세요."

"얼큰한 걸로 참치 주먹밥 주세요."

주문을 하고 앉아 있는데 사장님은 남자 손님과 한참 수다 중이었는지 쉴 새 없이 떠들었다.

"내가 좀 비위가 약해. 남자들이 땀 뻘뻘 흘리면서 코 닦으면서 먹으면 그게 너무 더러운 거야."

남자는 외근을 나왔는지 커다란 덩치에 땀을 비 오듯 흘리며 라면을 흡입하면서 헤벌쭉 웃었다.

"근데 알바 생 아가씨는 이제 그만뒀어요?"

"걔 많이 힘든가 봐. 얼마나 힘들겠어? 나이도 어린 게 하루 종일 서서 서빙할래면. 그래서 담배도 피우고 그러더라고."

"하하. 담배도 피운데요?"

"애는 착한데, 그거 한 번 피우면 못 끊어. 에이그. 난 나만 불쌍한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닌가 봐."

"잘 돼야 될 텐데 거참."

"착한 애들이 보면 잘 되더라고."


아람은 밥 집 사장과 남자 단골손님의 오가는 대화가 마치 누나와 남동생의 그것처럼 들렸다. 이상하게도 누나가 남동생에게 아는 아가씨를 빌미로 데리고 노는 듯이 들렸다. 어쩐지 세 평 좁은 분식집에 갇혀 하루 종일 밥을 하는 여 사장은 이런 식으로 고단함을 달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아람은 들었다.

배가 터질 것 같이 불렀지만 아람은 편의점으로 들어가 디저트를 골랐다. 

"하드 바 얼마예요?"

"찍어 봐야 알아요"

카운터에 앉아 있는 까만 상고머리의 남학생이 아람이 가격을 묻자 기분이 나쁜 듯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아람은 혹시나 자기도 십 대 남자아이를 성희롱한 것은 아닌가 괜히 겸연쩍어졌다.




작가의 이전글 먹는 여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