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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솔길 May 28. 2016

먹는 여자

우편물과 후무스

놀이방 매트 위에는 우희의 장난감이 잔뜩 어질어져 있었고 싱크대는 설거지 거리로 넘치기 일보직전이었다. 아람은 주판알을 튕기듯이 컴퓨터 방에 들어앉아 인터넷 뱅킹으로 펑크 난 카드 대금을 치르기 위해 통장 대 여섯 개를 꺼내 은행 잔고를 확인하고 있었다. 가스비, 통신비, 관리비, 요구르트 대금, 보험금, 카드 값 등등 주욱 출금 된 돈을 살펴보니 합계가 백만 원이나 된다. 무슨 돈이 쭉쭉 나갔는지 지출 상세 내역을 클릭하니 기저귀, 분유, 기저귀, 물티슈, 분유, 어린이 구강용품, 기저귀, 기저귀, 분유, 이유식, 가습기...

그때 카톡이 왔다.

'어린이집 종합반 신청하셨어요?'

'그런 말 따로 없던데 따로 신청해야 해요?'

'저는 맞춤형 보육 우편물 왔네요 ㅎㅎ 근데 첫째만 오구 둘 째꺼는 안 왔어요. 기다리면 오겠죠'.

'전 안 온 거 같은데요 흠.. 그럼 그냥 지금처럼 보내야 되나 봐요?'

'ㅎ 그쵸. 기다리면 우편물 올 듯해요. 혹시라도 안 오면 알아봐야겠지만요'

아람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음식 쓰레기를 버리고 올라오는 길에 우편함을 열어 커다란 서류 봉투가 두 개 꽂혀있는 걸 꺼냈다.

'귀하의 자녀는 영유아보육법 제34조의 5에 근거하여 '종일형 자격'에 해당함을 알려드립니다. 판정을 받은 아동은 7:30~ 19:30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아람은 마치 군대 영장을 받은 기분이 들었다. 얼마 되지 않는 돈을 벌기 위해 아이를 떼 놓고 직장으로 돌아 가야 한다니 우희와 우정이 만약 아파서 병원이라도 가게 되며 어쩌나 걱정이 앞섰다. 그때 문자가 왔다.

'손아람 님 6/25일 현재 카드대금 미납 중 확인 바랍니다.'

안에서 슬픔이 울컥하고 올라와 아람의 코 끝을 톡 쏘았다. 갑자기 배가 고파졌다.

 일을 하러 나가기 전에 뭔가 좋은 걸 먹자고 아람은 생각했다. 먹거리 찬장에 처박아 둔 병아리 콩이 생각났다. 냉장고 야채 칸에 안 먹고 방치해둔 파프리카며 당근도 생각났다. 후무스를 만들어 먹으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가지에 물을 받아 콩을 불려 놓고 우희와 우정을 데리러 아람은 집을 나섰다.

"다이어트하세요?"

임신 막달에 접어든 우희네 반 엄마가 아람에게 물었다.

"아니요?"

아람은 뜻 밖에 질문에 의아했다.

"요새 점점 살이 빠지는 것 같아서요".

"정말요? 둘째가 곧 돌이라서 잔치를 하거든요, 그래서 일부러 좀 빼고 있어요."

아람은 변명으로 그럴싸하다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기 식대로 다시 해석을 했다.

"빠질 때가 돼서 빠지시나 보네요".

"힘드시겠어요, 여름에 한창 더울 때 낳으실려면요."

아람은 대뜸 반격을 하고서 대화가 더 불거져 기분이 나빠지기 전에 가기 싫다는 우희와 우정을 양 팔에 안고 자리를 떴다.  

부엌 한쪽에서 애호박과 당근과 버섯과 감자를 믹서로 갈았다. 프라이팬에 포도씨유 한 수저, 올리브 유 한 수저, 참기름을 한 수저를 기름칠을 하고 야채들을 볶았다. 밥 두덩이를 덜어 비비니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우정은 먹겠다고 달려들었고 우희는 말 한마디 없이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아람은 그동안 볶음밥 하나 안 해주고 애들을 굶긴 것 같아 미안해졌다. 낮에 불려 놓은 병아리 콩을 냄비에 옮겨 한 솥 끊이는 동안 참깨를 갈고, 레몬을 스퀴져로 힘껏 쥐어짰다. 콩 한 되, 참깨 한 주걱, 레몬 한 스푼, 올리브 오일 한 스푼, 소금 한 쪼급을 넣고 이번에도 믹서기로 드르륵드르륵 갈았다. 베이식 색의 후무스가 고소했다. 아람은 볶음밥에 후무스를 올려 든든하게 한끼를 먹고나서 다시 회사로 복귀를 하더라도 인생에는 여러가지 맛이 있다는 걸 기억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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