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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르온 May 02. 2024

2024.05.02. 목요일의 기록

약간의 우울


  나의 마음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벌써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느끼는 것은 아직도 멀게만 느껴진다. 겉으로 보았을 때에는 조용하면서 누구와도 원만하게 지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반만 맞는 얘기다. 그 누구에게도 내가 정한 선 이내로 들어오지 못하게 해서 다퉈서 멀어질 정도로 가까운 사이까지 발전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상대가 남자든 여자든 모두 비즈니스적 관계 딱 그만큼이 편하다. 이러한 관계는 말로는 쉬워 보이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상대가 무안하지 않을 정도의 거절을 매번 잘 해내야 멀어지지도 가까워지지도 않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어서다. 왜 그렇게 피곤하게 사냐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나의 첫사랑 때문이라고, 그 정도의 답을 해줄 것 같다.

  

  이런 내가 요즘 계속 흔들리고 있다. 다행히 대학교 입학 후에는 극소수를 제외하면 모두 좋은 사람(동기, 교수님, 선배들)들과 인연을 맺고 바랐던 원만한 삶을 살고 있었지만 내 선을 넘으려고 하는 사람이 생겼기 때문이다. 처음 만났던 날부터 먼저 내게 전화번호를 물어보고 같이 트랙을 돌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벚꽃 아래의 벤치에 앉았던 그날, 우습게도 X가 떠올랐다. 5년 전 벚꽃이 만개한 설렜던 날들. X도 나에게 전화번호를 물어봤었고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누나와는 매일 카톡을 주고받다가 우연히 어떤 영화가 주제가 됐다. 시험 끝나고 봐야겠다는 내 말에 이미 한 번 봤지만 또 보고 싶다며 같이 보러 가자고 내게 말했을 때 설렘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혼자 봐도 되는 영화를 왜 굳이 알게 된 지 일주일도 안된 나에게 같이 보자고 하는 건지, 그 목적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내가 가장 경계하는 그것만은 아니길 바랐다. 중요한 프로그램을 같이 하고 있고 선배이기 때문에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단 둘이 영화를 보긴 했지만 보고 난 후에는 그래도 나의 마음을 확실히 할 수 있었다. 그때의 설렘은 전혀 없는 친한 선후배 사이, 이 정도로 정의 내리고 굳히려 했다. 그러나 서포터즈 활동을 같이 하자고 하면서 각자 써도 되는 지원서를 만나서 쓰자고 나에게 말했을 때에는 같이 영화를 괜히 봤나 하는 후회가 들었다. 룸메이트 형이 말했듯 이성이 먼저 무언가를 같이 하자고 하는데 싫어하는 건 ‘아주 배가 불렀다’고 말하겠지만 내 생각은 확고하다.

  웃기게도 누나가 못생겼다거나 성격이 나쁘다거나 그런 이유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항상 나는 누군가를 챙겨주는 입장이었기에 무엇이든 먼저 챙겨주려고 하는 누나의 말들은 인정하기 싫지만 너무 좋다. 그러나 상대가 내 선을 넘어온다면, 특히 그 사람이 이성이라면 밀어내고 싶은 욕구부터 드는 게 사실이다. 고등학생 때 공부했던 사랑에서 회피형 유형이 내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지금보다 더 누나와 가까워지고 싶지만 그만큼 멀어지고 싶은, 이런 모순을 어떻게 해야 고칠 수 있을지 아니 고칠 수나 있을지 생각해 본다.

  

  나는 상처받기 쉬운 사람이지만 상처를 잘 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말로써 여럿에게 상처를 주었었고 울게 만들었었다. 내 의지로 그렇게 했음에도 그런 행동 뒤에는 항상 내가 준 슬픔만큼의 고통이 찾아왔다. 그렇기에, 상처 주지 않을 만큼의 누구도 울지 않을 관계를 원한다.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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