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시은 Jun 19. 2022

열심히 갈고닦은 인생은 얼마나 영롱한지

사포질 하며 사는 인생


힘들다고 느껴질 때마다 버릇처럼 인강 선생님들의 유튜브 클립을 찾아서 본다.

영어, 국어, 수학 할 것 없이 여러 분야의 쌤들 영상을 보고 있으면 묘하게 위로받을 때가 있어서.


사실 그날은 그렇게 힘든 날도 아니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10시에 출근해 7시에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저녁밥을 먹고 잠깐 쉬던 중이었다. 침대에 누워 각종 sns를 다 모니터링하고 더 이상 볼 게 없어졌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난 왜 쉬면서도 기사 거리를 찾고 있지’


1시간 30분짜리 영화의 러닝 타임이 끝나고 왓챠에 감상을 남기듯, 쉬면서 본 게시물 중 기사로 쓸만한 것을 솎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아까 봤던 것 중에 이건 트렌드로 소개할 만하겠다’라며 게시물 링크를 복사해 카카오톡 나에게 보내는 채팅으로 보낸 것만 열댓 개. 물론 트렌드를 다루는 에디터로서 좋은 습관인 것은 맞으나, 그날따라 이 습관이 왜 이렇게 야속하게 느껴지던지.


난 왜 쉬면서도 일을 할까, 온전히 쉬지 못하는 건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갑자기 스스로가 멍청하게 느껴졌다. 왜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려고 해? 퇴근 후 일상을 누가 알아준다고. 괜히 남들보다 뒤처지기 싫으니까 애쓰는 거겠지, 이것도 일종의 자격지심이야.


‘열심히’ 감옥에 빠진 나를 위로하기 위해 잠금화면으로 돌렸던 휴대폰을 다시 톡톡 두드려 깨웠다. 유튜브를 켜 ‘인강 명언’, ‘인강 쓴소리’, ‘인강 팩폭’을 검색했다. 이미 본 영상들이 너무 많아 볼 게 많이 없었지만 와중에 눈에 들어온 섬네일이 있었다. <지영쌤 독하게 인생 살아온 썰>

나보다 몇천 배는 더 독하게 살아왔을 사람이니까 설득력이 있겠다 싶어 고민하지 않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예상했던 대로 영상은 그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잠을 깨려고 허벅지를 연필로 찔렀다거나 하는. ‘좋은 얘기지만 지금 나에게 도움 되는 내용은 아니네’ 무기력할 때 봤으면 자극이 되었을 텐데, 지금은 이런 말을 듣고 싶었던 게 아니었나 보다. 누가 누가 더 열심히 살았나 궁금한 게 아니었다. 독하게 사는 게 이상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거지.


다른 영상을 찾아보려고 채널을 나가려던 차에 우연히 영상에 달린 댓글을 보게 되었다.

- 쌤 감사해요, 도움이 되었어요

- 쌤 멋져요. 저도 열심히 살아야겠어요

- 오늘부터 갓생 산다!


열심히 스크롤을 내리며 사람들의 반응을 확인했다.

그러다

엄지 손가락을 멈추게 만든 댓글 하나.

- 열심히 갈고닦은 인생은 얼마나 영롱한가요


어… 여기 있었네,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

그렇죠. 맞아요. 티가 나지 않더라도 난 내 인생을 갈고닦는 중이었어요.

애쓰는 건 멍청한 게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빛나게 만들기 위한 사포질일 수도 있겠네요.



문득 예전에 보았던 짤이 하나 떠올랐다. 울퉁불퉁한 은박지를 뭉쳐 오랜 시간 문질렀더니 어느새 매끈하고 빛나는 은구슬(!)이 되는 짤.


어쩌면 모두의 인생은 애초에 은박지처럼 까슬까슬한 재질은 아니었을까. 각자의 속도와 방식으로 다듬어가는 중일지도 모르는데 우리는 쉽게 열심히 한 나를 칭찬해주지 못한다.


애써 다듬인생은 얼마나 빛이 나게 될지 우리는 당연히 모르지만, 이거 하나만은 기억하고 싶다. 노력은 쌓이고 쌓여 우리의 삶을 결국 영롱하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사실. 퇴근 후 기사 거리를 찾는 나를 한심하게 여기지 말아야지. 몇 년 뒤 일상의 면면이 반짝이게 될지 모르니까.


나는 무모할지도 모르는 사포질을 사랑한다.


(영상 찾아보길 잘했네!)



2022. 3월 어느 날


매거진의 이전글 좋은 에너지를 찾는 삶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