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이 생긴 김에 더 큰 뿌리를 내리자
내게는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동생들이 꽤 많다. 그중 가장 아끼는 동생 중 한 명의 이야기다.
이 아이는 나와 친구가 되고 나서부터 두 번의 연애에 실패한 경험이 있다. 구체적으로 풀면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그건 동생의 사생활이므로 중략하겠다. 어쨌든 객관적으로 보아도 동생의 전 애인 쪽이 더 나쁜 놈임은 맞았다. 둘 다. (진짜임)
동생은 내게 물었다. ‘언니 내가 다시 연애를 할 수 있을까?’ 골이 너무 깊어져 다시 밖으로 나오기 힘들 것 같다고 말이다. 약간의 우울감도 찾아왔다고 했다. 마음의 웅덩이가 깊어 다시 지상으로 나올 힘이 없다고. 몇 걸음이면 되는데, 해가 반짝이는 곳으로 걸어갈 근육이 녹아버린 것과 비슷한 감정이려나.
이때 내가 해주었던 위로를,
같은 힘듦을 겪고 있는 이와,
어딘가에 있을 제2의 동생에게 나누고 싶어 남긴다.
“마음속 구멍이 깊은 만큼 더 굵은 뿌리를 심을 수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이만한 뿌리를 가진 나무가 나중에 얼마나 더 크게 자랄지 기대되는데. 구멍을 흙으로 덮으려 굳이 애쓰지 말자. 원래 없던 구멍처럼 메우려 하지 말자. 구멍이 생긴 김에, 더 큰 뿌리를 내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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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위로를 하는 내가 남보다 역경을 많이 겪어본 사람인가? 아니. 난 상처를 보이지 않게 잘 덮는 편에 더 자신이 있는 사람이다. 울퉁불퉁해진 마음을 담요로 덮어 두는 편이다. 언젠가 덮어둔 고집을 들추어 못나진 길을 마주하고 나서 느꼈던 감정일 뿐이다.
걷거나 드라마를 정주행하는 사사로운 일들이 거름이 되었다. 묘한 흙들이 쌓여서인지 결국엔 그 길에 든든한 나무가 자라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람은 깊은 뿌리를 심는 만큼 강해지는구나,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