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시은 Jun 27. 2022

제주 한달살이 중 만난 90세 할머니와 친해진 얘기

한여름에도 할머니는 춥다고 빨리 들어가라 하신다

- 이직한 회사는 3년을 근속하면 한 달을 쉴 수 있는 유급 안식월을 준다. 지금은 2022년이고 나는 이 회사에 2019 입사했으니 만 3년을 다 채운 셈이다. 회사 인트라넷에 ‘장기근속 안식월 사용 가능’이 뜨자마자 제주행 티켓을 끊었다.


-한 달 숙소는 어디로 구하지. 서쪽이 좋을까, 동쪽이 좋을까, 사람이 없는 곳이었으면 좋겠는데. 마침내 고른 숙소는 판포포구 쪽 금등리라는 작은 동네에 있다. 애월-협재-금능을 지나야 도착하는 곳이다. 관광지라곤 스노클링 명소로 알려진 판포포구뿐이 없는 곳.


- 숙소 옆집엔 노란색 강아지가 산다. 내가 외출할 때, 귀가할 때 가리지 않고 꼬리를 흔들며 반겨준다. 잘 갔다 오라는 인사로 들렸다. 주인이 누구일까?


- 전 회사 선배이자 존경하는 작가 선배와 제주에서 만나기로 한 날이다. 선배는 공항 근처에, 나는 금등리에 있었으므로 그 중간인 애월에서 보기로 했다. ‘딸칵’ 문을 열고 버스를 타러 가는 길, 못 보던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뒷짐을 지고 설렁설렁 걸어가는 모양이 꼭 산책을 나가는 중인 것 같아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할머니는 마치 내가 말을 걸어주기를 바랐던 것처럼 환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이구. 궁금했는데! 여기 살어?” “네, 한 달 동안만요!”


- 수다는 가벼운 인사로 시작해 10분 동안 계속됐다. 할머니는 90세이며, 그를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매일 걸어야 오래 산다며, 차를 타지 않고 걸어서 버스를 타러 가는 것에 대해 칭찬했다. “할머니, 혹시 옆집 사세요? 강아지 할머니가 키우는 아이들이에요?” “맞어 맞어. 세 마리야. 갸 이름은 노랑이”. 매일 날 반겨주던 강아지 이름은 노랑이였고, 형제가 있었던 모양이다.


- 노랑이는 할머니의 큰 아들이 선물한 것이라고 했다. 할머니에겐 세 명의 자식이 있는데 두 명의 아들은 서울에서, 한 명의 딸은 일본에서 산다고 했다.


- 그 뒤로 할머니를 자주 마주쳤다. 그때마다 가벼운 안부를 나누었다. “오늘은 어디가?” “저기 판포포구에 수영하러 가요!” “그래 잘 놀다 오려무나” “네! 다녀올게요!” 혼자 사는 중인데 할머니 덕에 혼자인 것 같지 않았다. 내가 언제 나가고 언제 들어오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어 좋았다.


- 하루는 아침 러닝을 하고 돌아와 마당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멀리서 나를 향해 소리치는 것이 들렸다. 할머니였다. “추워! 들어가” 러닝 브라탑이 할머니 눈엔 추워 보인 것이다. (폭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젊은이의 브라탑을 보고 놀랄 만도 한데, 남사스럽다는 눈빛이 아닌 걱정을 건네는 할머니.


- 애월에서 만난 선배에게 할머니 이야기를 했더니 성함을   물어보는  어떻겠냐고 했다.  정도면 친해진  맞겠지? 다음에 만나면 용기  성함을 여쭤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곤 며칠 지나지 않아 할머니를 마주쳤고, 기분 나쁘지 않게 물었다. “할머니~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저는 이시은이에요할머니는 그런  쑥스럽게  물어보냐는 표정으로 망설이는  말했다. “ 이름 물어보는 사람도 있네! 허허. 근데 이가가?” “, 광주  씨예요” “나도 이가다.  윤옥할머니는 성이라는 이유로 나를  친근하게 대했다. 세상에  씨가 얼마나 많은데. 할머니는 자꾸 자신에게 말을 거는 옆집 젊은이가 마침  씨라서 반가웠던 걸까,   젊은이가 마침 옆집에 와서 반가웠던 걸까.


- 할머니 이야기를 글로 쓰겠다고 했더니 마음대로 하라 하셨다. 만약 이 글이 널리 널리 퍼지면 할머니한테 자랑해야지.


2022. 6월


매거진의 이전글 마음의 구멍이 깊을수록 큰 나무를 심을 수 있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