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것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로 해
- SNS에서 이런 글을 봤다. <책 읽는 습관으로 보는 유형> 모서리를 접어 읽는 A유형, 꺾어서 읽는 B유형, 연필로 밑줄을 그어가며 읽는 C유형, 새것처럼 조심조심 읽는 D유형…. 난 따지고 보면 A와 C 유형에 가깝다. 책갈피를 사용하기보다는 읽은 페이지 모서리를 꾹 접어두는 편이고, 좋은 문장이 있으면 연필로 밑줄을 그어 둔다. 필요에 따라 책에 메모도 남긴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여름에 있었던 일에 대한 문단을 읽고서 “작가에게 여름은 이별이라는 상징적인 의미일까?”라고 적는 것. 그때그때 드는 궁금증과 감상을 메모한다. 그럼 묘하게 작가와 대화하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 게시물 댓글을 보니 흥미로운 내용이 많았다. “책 모서리를 접어 읽다니!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난 새것처럼 보관하는 게 좋아서 두 권을 사서 하나는 보관하고 하나는 읽어”, “난 색연필로 좋은 문장을 칠해” 등. 재미있는 책 읽기 습관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책을 보관하다니, 멋진걸. 그런 사람들이 나처럼 책을 험하게 읽는 사람을 보면 엄청 놀라겠지?
- 사실 내가 원래부터 이런 것은 아니다. 예전에는 모든 물건을 새것처럼 유지하려 애쓰는 쪽이었다. 모든 전자기기에는 그에 꼭 맞는 케이스와 필름지를 사용하는 것이 올바른 처사라고 생각했다. 아끼는 인형은 포장 그대로 보관하기도 했고, 예쁜 엽서는 비닐에 넣어 꺼내 보지도 않았다. 닳아서 없어지는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 내가 물건을 함부로 쓰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새것, 새 상태, 완벽한 모습에 대한 미련이 남아서. 생활감이 생기면 더는 새것이 아니게 될까 봐. 흠집이라도 나면 구형이 되었다는 생각에 좌절감을 느꼈다. 아무리 노력해도 낡는구나, 영원히 새것일 수는 없구나,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물건에 집착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나보다 물건이 우선인 삶이 되어버렸다. 나 좋자고 산 것인데 왜 이렇게까지 애지중지하고 있었을까.
- 언젠가 아끼던 휴대폰을 바닥에 떨어뜨려 액정 필름에 금이 간 적이 있다. 원래 같았으면 더 강력한 필름을 다시 사서 붙였을 텐데. 이렇게 살아서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필름을 벗기고 써 볼까? 한 번도 그래 본 적이 없는데, 재미있을 것 같아. 이참에 케이스도 버려 버렸다.
- 미련을 버리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오히려 방어막을 없앤 참에 더 막 쓰게 됐다. 어차피 중고인데, 그냥 더 함부로 쓰지 뭐. 나 이렇게 새것 같은 물건 막 쓴다! 묘한 희열을 느꼈다. 그다지 물건에 미련 없는 쿨한 사람이 된 것 같아 스스로가 멋져 보이기까지 했다. 그 뒤로 산 애플 워치도 필름을 붙이지 않고 쓴다. “야 미쳤어? 케이스 왜 안 껴?” 친구들이 격앙된 말투로 물으면 이렇게 답했다. “생활 기스야 어차피 생길 텐데, 귀찮아”
- 무작정 아끼고만 산 나는 이 이후로 조금 바뀌었다. 처음으로 책 모서리를 접어 읽었던 날이 떠오른다. 빳빳한 종이를 손톱으로 주욱 그어 접었을 때의 느낌이 아직도 기억난다. ‘절대’의 금기를 깨는 순간 죄책감이 느껴졌지만 곧 받아들였다. 종이를 접으니 나름 내 물건에 흔적을 남기는 것 같아서 좋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낙서도 해 볼까? 책에 미니 타투 남기는 것 같네. 각자의 이유로 물건을 보관하는 타입과 취향이 존재하겠지만, 나는 이때부터 물건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로 했다.
- 모든 미련은 원래 상태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으로부터 생긴다. 새것에 대한 미련을 좀 버리기로 해. 책 모서리를 접는 삶도 나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