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빼는 연습 중입니다.
무언가에 오래 시간을 쏟고, 공을 들여야 그만큼 결과물도 잘 나온다고 생각하는 주의다.
효율보다는 정성을 더 믿는 편이다.
잡지사에서 일했을 땐 더 그랬다. 시간은 촉박하고 해야 할 건 많았을 때. 그때야말로 버릴 건 버리고 힘줄 땐 줘야 했는데, 그런 효율을 발휘하지 못하는 바보였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소중하니까 모든 문장과 모든 페이지에 힘을 줬다. 언제는 이런 일도 있었다. 12p짜리 특집 기사가 있던 호였는데, 그 특집기사보다 한 페이지 분량의 에세이에 꽂혀 거기에 더 힘을 쏟다가 시간 배분에 실패해 며칠 밤을 새웠다. 그땐 그렇게 생각했다. 몇 페이지든 다 소중해! 이 세상에 버릴 건 하나도 없다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비유는 나를 설명하기에도 딱인 것 같다. 나는 때론 도덕적이어야 했으며, 착해 보여야 했고, 남들을 배려하면서도 내 몫은 챙겨야 했다. 엄마는 나를 뭐든 대충 하는 덜렁이로 생각하지만, 난 의외로 완벽주의자에 조금 더 가까운 것 같다. 내가 정해둔 앞선 태도는 꼭 지켜야 하는 줄 알았으니까. 그중 뭐 하나라도 빠지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실수하기도 싫고, 못나 보이기도 싫었다. 물론 모든 사람들 앞에서 그런 건 아니지만...
이런 성향은 여전히, 그대로다. 지금도 미디어에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단 한 문장을 포기 못 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근데 문제는, 플랫폼에 따라 이런 스타일이 좋지 않게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난 뭐라도 더 알려주고 싶은데, 독자들은 시간이 없으니 빨리 핵심만 보고 넘어가고 싶을 수도 있다. 그래서 요즘엔 ‘내 글을 읽다가 지겨워서 뒤로 가기를 누르면 어떡하지?’, ‘읽기도 전에 스크롤 압박을 느끼고 아예 접근조차 하지 않으면?’ 따위의 생각들을 자주 한다. 선배들의 글은 아주 적절한 길이에 핵심만 담겨있는 것 같은데 내 글은 왜 이렇게 구구절절일까. 왜 자꾸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 같지.
요즘엔 그래서 여러모로 힘을 빼는 연습 중이다. 글도, 성격도, 인생도 좀 버리는 게 필요하다. 효율만 중시하고 선택과 집중만 믿는 사람들은 나랑 안 맞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들을 벤치마킹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가지 실천해보니 좋은 점도 있었다. 먼저, 기사의 몇 문단을 덜어내고 발행했는데 그렇게 큰일이 나지 않았다. 마감 시간은 줄고 다음 기사를 준비할 시간이 늘었다. 몇몇 사람들에게 잘 보이는 것을 포기했다. 그랬더니 스트레스가 줄었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더 좋아할 수 있게 됐다.
글을 과감하게 줄이는 것과, 인생의 힘을 빼는 것은 제법 비슷하다. 없어서는 안 될 문장인 것 같았는데 지워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인생도 마찬가지. 내게 필요 없는 것(사람이든, 가치관이든)들은 버려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밤새지 않고도 마감이 가능한 인생, 애쓰지 않아도 그럭저럭 잘 사는 인생을 살아보자. 어차피 그래도 남들은 아무것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