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극복해야 할 것들
시험공부를 하다 보면 슬럼프가 찾아오는 경우가 있다. 슬럼프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스태미나라든가 활동 등의 부진 상태란 의미로 연습 과정에서 어느 기간 동안 그 효과가 올라가지 않고, 의욕을 상실하여 성적이 저하된 시기를 말한다고 되어 있다. 수험생활에서 슬럼프란 공부가 지속적으로 안 되는 시기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내 경험상 수험기간 중 슬럼프가 찾아오는 요인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체력적인 요인이다. 지쳐서 공부가 잘되지 않는다. 정신이 개운하지 않으니, 문제를 풀면 자주 실수가 나온다. 의욕만큼 공부가 되지 않아 좌절감과 우울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두 번째는 심리적·정신적 요인이다. 수험생활이 너무 불안해서 오는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쌓으면 정신적으로 지쳐버린다. 게다가 부모님과의 말다툼 등 시험 외적인 요인이 가중되면 슬럼프에 더욱 빠지기 쉽다. 정신적으로 지치면 공부할 맛이 나지 않아 책상에 앉아도 공부는 하지 않고 잡념에 빠지거나 딴짓을 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슬럼프는 시험기간 중후반에 많이 온다. 예를 들어 10개월을 시험공부한다고 했을 때 초반 2~3개월은 의욕이 넘치고 체력도 괜찮아 슬럼프에 잘 빠지지 않는다. 시험 직전 1개월은 직전이라 긴장이 되어 공부를 하게 된다. 어느 정도 시험공부를 한 중반이 되면 체력적으로도 지치고, 장기간 계속된 공부에 ‘이렇게 공부하면 되려나?’하는 의문도 든다. 시험공부를 한 지 7~9개월 정도(총 10개월 중 중후반)에 슬럼프가 많이 찾아온다.
슬럼프가 오는 시기가 ‘실력 정체기’인 경우도 많다. 초반에는 아무것도 몰라 일단 공부하면 점수가 오른다. 하지만 중반기가 되면 어느 정도 공부를 많이 했다고 생각하지만, 완전히 개념이 잡히지 않아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점수가 계속 오르지 않고 정체가 된다. 보통 시험 점수는 ‘1시간 공부하면 1점이 오르는 방식’이 아니라 계단식이다. 꾸준히 공부가 쌓이면 한 번에 확 올랐다가, 다시 정체가 되었다가 실력이 올라가면 한 번에 점수가 오르는 구조다. 수험생활 중반기에는 보통 정체기가 많은데, 공부한 만큼 점수가 나오지 않으면 이내 낙담을 하게 되고, 슬럼프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슬럼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체력을 키워야 한다. 만약, 체력적인 이유로 슬럼프가 왔다면 달리 방법이 없다. 쉬어야 한다. 쉬어서 체력이 회복된 이후에 다시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 그러면 계획보다 지연되는 공부는 어쩌는가? 당연한 답일 수 있겠으나, 계획을 세울 시점부터 어느 정도 지연될 것을 대비해 두는 것이 좋다. 많이 보는 것보다 효율적으로 핵심만 보는 것이 시험공부에 도움이 더 되기도 하니 체력적인 이유로 공부시간이 부족해졌다고 걱정하지 말자.
시간이 부족하면 오히려 더 중요한 것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나도 행정고시 2차 시험을 공부할 때 막판에 건강이 좋지 않아서 공부할 시간이 부족해졌다. 그래서 일단 쉬었다. 시험 직전 한 달 중 2주를 공부하지 못하고 쉬었다. 오히려 푹 쉬고 나니 정신도 맑아졌고, 남은 2주에 진짜 중요한 내용만 골라 보게 되었다. 부차적인 내용까지 이것저것 보는 것보다 핵심적인 내용을 정확하게 보는 기회가 되었다. 행정법 시험 범위 중 행정법 각론에서는 행정조직, 공용 부담법, 경찰행정 등 여러 주제를 다룬다. 대부분 시험에 나오지 않는 지엽적인 내용들이다. 나는 그중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주제 딱 두 개만 공부했다. 실제 시험장에서는 그 두 개가 출제되었고, 답을 명확하게 적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중요한 그 두 개 외엔 공부를 하지 않아 그 두 개를 헷갈리지 않고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안감을 관리해야 한다. 수험생은 미래가 불안하기 때문에 심리적인 불안감을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공부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정도로 커지지 않도록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할 수 있다.’, ‘잘하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되뇌었다. 사실 공부하는 도중에 ‘잘하고 있는지 잘하고 있지 않은지’는 명확하게 알기가 어렵다. 내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잘하게 되는 것이다.
심리적인 충격을 피하기 위한 예방조치를 하자. 특정 사건에 의해 큰 충격을 받으면 급격하게 공부의 의욕이 저하될 수 있다. 이성친구와의 갑작스러운 이별, 부모님과의 다툼 등과 같은 충격을 받으면 그 생각이 머리를 자꾸 맴돌아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런 생각이 커지면 ‘이런 공부를 해서 뭐하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공부 자체에 대한 의욕이 사라지기도 한다. 모든 사람이 큰 충격을 받으면 심리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다. 스스로가 보기에 많이 흔들리는 사람이라면 수험생활을 시작하기 전부터 그런 일에 휘말리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다. 부모님과 다툴 것 같다는 직감이 든다 싶으면 그 자리를 일단 피해라. 주변인들과 싸워서 공부하는 데에 좋을 것 없다. 만약, 억울하고 정말 다투어야 할 일이 있다면, 시험 끝난 후 문제를 제기하도록 하자. 나는 일단 마음속으로 생각해두었다가 “시험 전이라 그때는 일단 넘어갔었는데”라고 말하며 시험 끝난 후 할 말을 하는 편이다.
내 주변을 보면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일수록 슬럼프를 겪었다는 경험이 적은 것 같다. 어떤 사람은 공부를 하면서 ‘슬럼프를 생각할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 말한 것을 들은 적도 있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은 독하고 목표만을 생각한다. 의지가 강하고 자신감도 넘치는 사람이 많다. 심리적인 슬럼프에는 거의 빠지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 정신력이 강한 사람들은 몸이 아픈 것조차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보았다. 체력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좀 더 목표를 명확하게 하고, 의지를 다지는 것도 슬럼프 극복에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