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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처럼

by 이시랑


나의 오두막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감자 동상이 있다. 나는 그 동상을 특히 좋아하진 않지만, 오래전에 식물들을 사랑한 누군가가 있었다.

- 워터 멜론 슈가에서 [리처드 브라우티건]

옥상의 정원엔 참새들이 지저귀고 있었다. 별것 아닌 자신들만의 얘기를 몰래 속삭이는 아이들처럼. 나는 몰래 그들의 대화를 몰래 엿듣기 시작했다. 철쭉 사이사이로 자리한 참새들이 보였다. 보라색, 붉은색, 흰색을 품은 철쭉들 마디마디에 그들의 수다가 울려 퍼졌다. 너는 이러한 소리를 즐겼을까. 아니면 자신도 이 대화에 끼고 싶어서 기웃거린 걸까. 문득 너의 평소 행동에 의문을 품었다. 너는 참새를 좋아했다. 정확히 말하면 어떤 새라도 커다란 관심을 보였다. 언제 한 번은 천에 떠다니는 오리를 잡고 싶어서 냅다 뛰어든 적도 있었다.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대책 없이 물에 뛰어들었다. 마음보다 몸이 앞섰다. 입에는 미쳤나 봐를 매달고선 한편으로는 이러한 너의 무모한 새에 대한 애정이 웃기기도 하였다. 그날 다 젖은 신발과 양말을 이끌고선 초겨울 추위에 벌벌 떠는 너를 안고 집으로 뛰어 돌아왔다. 엉덩이를 흠씬 두들겨 때려주고 싶었지만, 그럼에도 너는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너는 나이가 든 뒤로는 참새만 좋아했다. 여전히 내게는 아기였지만 말이다. 입가가 새하얘진 너는 오리도, 까치도 아닌 참새만 따라다녔다. 마치 당장이라도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몸놀림을 취했다. 본능이 말해주듯 사냥견의 피가 자기 몸에도 흐르고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아주 조심스럽게 살얼음판 위를 걷듯이 참새 곁으로 다가가다 어느새 휙 하고 뛰어들었다. 참새들은 수다를 떨다가 순식간에 모두 흩어졌다.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너는 다시 제 갈 길을 떠났다. 나는 참새를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이런 자그마한 존재를 오랫동안 사랑했던 네가 있었다. 고작 참새라니. 너는 별 볼 일 없는 참새를 왜 이리 좋아한 걸까? 나는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았다. 이러면 네 기분을 잠시나마 느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말도 안 되는 일인 것을 알면서도 그랬다. 비슷한 느낌을 흉내 내서라도 받고 싶었다. 이것이 내가 너를 오래오래 사랑할 수 있는 행위라고 믿으니까.

나는 떠난 후에야 소중한 것을 깨닫는다. 곁을 내어주고 있는 것엔 별다른 감흥을 못 느꼈던 것일까. 봄날의 꽃은 지금 활짝 피기에 아름다운 것인데, 정작 다른 것에 시선이 팔려 중요한 것을 사지 못한다. 후회로 가득 찬 삶의 페이지엔 어떤 것도 적혀있지 않았다. 너를 찍은 사진은 있지만, 너와 함께 담긴 사진이 많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기억의 퍼즐을 조각조각 맞추어 보려고 해도 잘 모이질 않았다. 방향을 조금만 일찍 잡았더라면 어땠을까. 이렇게 나는 또 후회로 가득한 빈 페이지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삶에 의도를 집어넣을 때 풍요로워진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사랑은 말이 아니라 행위라면 네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서투른 글을 계속 써주는 것. 너를 여전히 떠올리는 내가 있다는 것. 비록 지금 네가 없지만, 너를 기억하는 내가 있다고 말하는 것. 남겨진 자의 몫은 그런 것이라 믿으니까. 자그마한 참새 같은 글을 써야지. 작고 보잘것없는 그런 일화를 종이 위에 글자로 그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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