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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향적 사랑

by 이시랑

콩이와 산책을 갔다. 코를 벌름거리며 세상의 모든 향을 맡는 콩이. 꽃도 좋고, 다른 강아지의 흔적은 더 좋고, 고양이는 미친 듯이 좋아한다. 자기가 가야 하는 곳이 있으면 온 힘을 다해 산책줄을 끈다. 그곳에 냄새를 맡아야 직성이 풀리나 보다. 콩이는 매번 세상을 처음 마주하는 것처럼 꼬리를 흔들고, 총총걸음으로 종종 길을 거닌다.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걸음걸음마다 음을 맞춰 폴짝폴짝 걷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는 묻는다. 뭐가 그리 좋아? 콩이는 대답도 없이 앞을 향해 걷는다. 그리곤 멈춰 선 코를 킁킁댄다.


산책을 나가지 않는 날엔 뽀뽀를 있는 힘껏 하며 애교를 부리기도 한다. 행여나 산책을 가지 않는 날에는 배변 패드가 아닌 어딘가에 용변을 저지른다. 콩이의 영악함에 놀람과 동시에 열이 받는다. 이러니 산책을 안 나갈 수가 없다. 아무리 피곤한 날에도, 하루에 찌든 날에도 콩이는 빛나는 검은 눈동자로 나를 쳐다본다. 꼬리를 헬리콥터처럼 후다닥 흔드는 콩이. 너를 돌보는 건 정말 힘들구나.


그렇게 자주 산책을 다니다 보면 마주하는 이들이 있다. 사람 얼굴은 잘 못 외워도 강아지 얼굴은 금방 외운다. 산삼을 먹여서 자란 산삼이, 입양한 지 얼마 안돼서 300만 원짜리 수술을 한 삼백이 등등. 아이들은 저마다 가장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다. 어떤 아이 들이든 간에 상관없이. 그중에서 기억나는 강아지는 ‘장군이’다. 장군이는 다리 하나가 없다. 어릴 적에 다리에 생긴 종양 때문에 다리 절제술을 받았다고 했다. 이로 인해 파양을 당한 상처가 있는 강아지라고 했다. 하지만 그 어떤 강아지들보다 씩씩하게 걷고, 간식을 주면 해맑게 먹는다. 다른 강아지한테 화를 내거나 짖는 일이 없는 신사 중에 신사기도 하다. 나는 장군이가 점점 좋아졌고, 산책을 나갈 때면 마주치길 바라는 날이 많아졌다. 따뜻한 주인분께 장군이에 대해 들을 때면 마음이 울컥하기도 하고, 장군이가 기특하게 느껴졌다. 장군이는 올해로 17살이다. 강아지 나이론 노령견에 속한다. 10살이 넘어서부터는 잔병치레는 물론이거니와 큰 병도 많이 왔다고 했다. 그래도 굳건히 버티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래서인지 한동안 장군이가 보이지 않으면 덜컥 겁이 났다. 혹시나 어디론가 떠날까 봐. 혹은… 무지개다리를 건넜을까 봐.


장군이를 못 본 지 두 달이 넘었을 무렵이었다. 장군이네 주인분을 만났다. 장군이가 없었다. 장군이가 지난달 세상을 떠났다고 하셨다. 아이의 고통이 심해져서 안락사를 선택했다고 하셨다. 주인분의 말끝에 슬픔이 걸려있었다. 떠나기 전날 장군이가 좋아하는 특식을 줬는데, 장군이가 너무 맛있게 먹어서 더 슬펐다고 했다. 장군이는 정말 많이 버틴 것이라는 의사의 말을 이어갔다. 요즘엔 낮이고 밤이고 우느라 하루가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다고. 그래도 아이가 우리 집에 와서 나쁜 일보다 좋은 일이 많았던 복덩이라고. 주인분은 결국 우셨다.


흔히 반려동물과 함께 살 때면 ‘조건 없는 사랑’이라는 말을 한다. 오로지 책임하나로 아이를 키워야 한다. 좋은 점만 생각하겠지만, 힘든 점이 더 많을 수도 있다. 사랑 없이는 아이를 데리고 갈 수 없다. 아이가 아프거나 나를 지치게 할 때면, 이런 말을 자주 한다. 너 진짜 왜 그래. 왜 그렇게 내 말을 안 듣니. 그렇게 혼을 내고 나면 미안한 마음이 가득하다. 그래도 어느샌가 내 옆에 와서 잠든 아이. 내 입술에 혀를 핥짝거리는 아이. 그러면 아이를 꼭 껴안고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한다.


어느 하루는 콩이가 아파서 반나절 간 입원을 한 날이었다. 고작 반나절인데, 집이 텅 비어버린 듯 허전했다. 분명 사람이 있고, 다른 아이도 있는데 그랬다. 그리고 퇴원 전화가 오자마자 동물병원으로 달려갔다. 이산가족의 상봉처럼 아이를 꼭 껴안았다. 콩이는 꼬리를 무진장 흔들었다. 대나무 헬리콥터 저리 가라다.


이따금 콩이를 보면 일방향적 사랑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왠지 나만 너를 사랑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콩이는 사랑을 받기만 하는 아이 같았다. 가족의 ‘조건 없는 사랑’이 있기에 콩이가 우리 집에 가족으로서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매일 저녁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오는 날이면 100번 모두 반겨주는 너를 볼 때면 내가 큰 착각을 했다는 걸 깨닫는다. 때로는 졸린 눈을 한 채 총총 걸어와 나를 핥아주는 너를 볼 때면 부끄러운 생각을 했다는 걸 알아차린다. 어쩌면 일방향적 사랑은 내가 아니라 콩이가 나를 향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돌보는 마음은 다정하다가도 괴로운 순간으로 변해버린다. 투명한 검은 유리구슬을 담은 너의 눈동자를 바라보면 나는 반짝거린다. 분주한 걸음으로 천을 거니는 네 발바닥을 쳐다볼 때면 나는 두근거린다. 곧잘 내가 집에 들어올 때면 꼬리를 흔든 네 모습을 볼 때면 뭉근하게 미소 짓는다.

그러나 있잖아.

혹시 너와 헤어지는 날에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어찌하면 좋을까?

이런 생각이 들 때면 너를 꼭 껴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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