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쯤이면 겨울을 가로질러 봄에 성큼 다가간다고 믿고 있었다. 분명 서슴지 않고 성큼성큼 앞질러 가고 있다고. 다른 길 따위는 돌아볼 여유라고는 한 줄 없이 걷는 중이라고. 곳곳에 불어오는 칼바람은 눈시울을 베어냈고 눈망울에 고드름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종종 얼어붙은 길가엔 눈사람이 세워져 있었다. 아직 겨울이라는 당신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밤이 되면 쉽게 눈이 부풀어 올랐다. 너무 추워서 전기장판을 틀어놓고 무사히 하루가 지나가길 빌었다. 손발이 시린 것보다 방안이 차가운 것보다 앞날이 시커먼 게 싫었다. 자연스레 주름진 계절을 바라보며 다림질이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다. 그러나 게으른 나는 누운 채 하루를 보내고 말았다.
봄이 되면 알레르기가 일어날 테지. 재채기를 달고 살겠지. 약을 먹지 않으면 훌쩍거리는 일상을 보낼 테지. 앞날을 바라보는 자세는 삐딱한 사춘기 중학생처럼 삐뚤어졌다.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다 노래를 찾아들었다. 늘 듣던 맛으로 퍼담았다. 가사가 리듬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비트는 뒤에서 백댄서 노릇을 잘하고 있었다. 오늘만큼은 누워서 시간을 죽여야겠다. 침대엔 강력한 접착제가 발라져 있는지 나는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나의 마음은 방구석에 갇혀 나올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오후 3시가 지났을 무렵 나는 여전히 공복이었다.
20대 시절을 보내는 동안 나는 당신의 마음을 이해하려 애썼다. 얼굴보다 등을 많이 보인 당신을, 나와 축구하는 시간보다 술잔을 스스로 기울인 시간이 많던 당신을 말이다. 우리가 어떤 대화를 나눴더라. 어떤 시절을 나눠 가졌을까. 퍼즐을 맞추듯이 골똘히 조각난 추억을 하나씩 바라본다. 이따금 꿈에 당신이 나타나면 그날 하루를 망치는 경향이 있다. 오래된 당신의 잔소리를 고아서 본질에 다가가려 하니까. 머리가 지끈거리고 타이레놀 2알을 몸속으로 졸이고 마니까. 당신을 넘어서는 멋진 남자가 되고 싶었다. 당신을 우상화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쓰는 일도 지겹고 읽는 일은 꾸준히 할 자신이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당신을 소처럼 되새김질했다. 아직도 나의 하루에 균열을 일으키는 이유를 찾고 싶었다. 상담을 받을 때도 당신이 내게 영향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했다. 이제는 틈 사이로 당신을 찾아 헤엄칠 것이다. 단단한 뿌리보다 말랑한 머리를 사랑하는 내가. 우리를 떠난 지 10년이 된 올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