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저 끝 – 창원기행

by 이순직

지난 일요일. 창원시 반지동 78번지 케이프타운 2층. 희연병원에 다녀왔다.


중환자실 구석에서 오락가락하는 의식으로 뼈만 남은 육체를 침대에 눕힌 막냇삼촌을 보고 왔다. 나보다 불과 십여 년 남짓 앞서 살았을 뿐인데 죽음보다 고요한 중환자실 침묵을 묵묵히 견디고 있었다. 스물 조금 넘는 병상에 삼촌보다 훨씬 연로한 사람들이 저마다 살아온 내력들을 침묵으로 봉인하고 한껏 부려 먹은 육체를 구겨진 일회용 종이컵처럼 아무렇게나 내팽개치고 한 줌씩 두 줌씩 정신 내려놓으며 이승 떠날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삼촌 침대 발치에 망연히 선 채로 누나와 동생과 나는 먹먹한 감정에 휩싸여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저 옛날 임종 앞둔 할아버지와 무척 닮아 있는 얼굴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오래전에 둘째 동생을 먼저 보낸 늙은 아버지만 안절부절못하며 막냇동생 손도 잡았다가 만원을 꺼내 손에 쥐여 주었다가 다리 힘이 풀려 의자에 덥석 앉고 말았다. 우리들 감정과 달리 중환자실이 일터이고 일상인 간호사들과 간병인들의 삶은 평화롭고 권태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 그들에게 죽음은 일상일까.


병원 밖으로 나와 담배를 물었다. 서울에서 마산이 멀기도 하거니와 조카가 삼촌의 생활을 궁금해하면서 앞뒤를 따져가며 참견할 수 없는 노릇이라 알고 있는 것이 없었다. 소문으로 위장한 주장이나 견해들만 무성할 뿐 어느 무엇도 사실이라 할 수 없었다. 실제로 우리들 삶에서 사실이 얼마나 되는가. 설령 사실이라 하더라도 주장이 교묘하게 은폐된 사실이 아닐까. 날마다 만나는 조중동 씨의 신문 기사처럼. 사람살이에서 중요한 것은 진실이 아니던가. 진실이 행동으로 나타날 때 비로소 사실이 아닐까.


다시 중환자실로 들어가자 누나는 삼촌과 필담(筆談)을 하고 있었다. 수첩에 이름 크게 적어 삼촌 눈앞에 내밀어 손시늉까지 했다. 느닷없이 눈앞을 가로막선 수첩 때문인지 누나를 알아보는 것인지 가늠할 수 없지만 표정이 바뀌고 입술에서 말이 채 되지 않은 소리들이 흘러나왔다. 의사소통은 불가능했고 당연히 아버지와 누나는 삼촌에게서 읽고 싶은 것들만 읽어냈다. 누나는 내 이름도 크게 써서 눈앞에 내밀었고 제멋대로 움직여 병상에 묶어놓은 삼촌 손을 나는 잡아주었다. 뼈만 잡혔다. 서글프고 고단한 삶을 산 사람들이 어째서 외롭고 고통스러운 삶의 저 끝을 만나야 하는가. 마음 한쪽이 다시 먹먹해졌다.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 사갑마을에서 태어나 가난 탓에 배우지 못하고 배우지 못해 막일로 하루치씩 목숨을 꾸려갔던, 그리하여 병들고 지친 몸에 떠밀려 정신마저 내려놓은, 평생 대자연의 순리를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을 삼촌 앞에서 나는 또다시 사람은 왜 사는지, 어떻게 해야 사람으로 사는 것인지 더듬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산청에 들러 돼지국밥에 소주 마시면서도 이 땅의 슬픈 역사 기억하는 지리산을 스쳐 지나가면서도 생각은 멈추지 않았다. 차창 밖 대자연은 맑고 높은 가을. 생각 중에도 자꾸만 잠이 쏟아졌다. 생각과 잠이 뒤섞이면서 어느 것이 잠 밖 생각이고 잠 속 기억인지 아리송해졌다.


풍기역에서 내려 가좌를 지나 벌방리 사갑마을까지 버스 끊어진 밤길 함께 걸었던 것은 지금도 기억 또렷한데 마을 초입에 있는 석개포에서 거뭇거뭇한 불알 드러내놓고 멱 감는 건 삼촌인지 아닌지 흐릿하다. 지게 작대기로 나를 흠씬 두들겨 패던 사람이 삼촌이었는지 마을 아재인지 확실치 않고 마을 수호목(守護木) 팽나무 그늘에서 또래들과 뒤섞여 망까기나 자치기할 때 멀찌감치 서서 흐뭇한 얼굴로 바라본 사람이 삼촌이었는지 다른 누구인지 역시 분명하지 않다.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이던 1970년대 초반. 그때의 시간들은 흔적조차 없어 대자연의 순리를 다시금 아프게 되씹어볼 뿐이었다.


어둑어둑해져 가까워지는 서울이 안타까웠다. 누나와 동생과 아버지와 나는 일상으로 돌아가도 오늘을 마음에 담아두겠지만 인정하든 싫든 우리들 모두는 시간에 떠밀리면서 자신을 살아갈 뿐이지 않은가. 안타까움과 안쓰러움과 미안함이 결국 덧없음으로 끝맺음할 수밖에 없다는 걸 저마다 알면서도 짐짓 어설픈 몸짓으로 잠시나마 슬픔에 젖는 일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가 아닐지. 마음이 아파왔다.


동서울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삶의 저 끝을 떠올렸다. 빠른 속도로 옆을 스쳐 달려가는 차들과 저 멀리 하늘 높이 치솟기만 하는 아파트 불빛들 속에서 일요일 밤을 조용히 맞는 사람들은 오늘을 또 어떻게 보냈을까. 저마다 하루치의 고통과 책임감과 눈물과 욕망을 자신들 삶에서 빼고 있을까. 혹은 오늘 하루 그저 행복해했을까. 구리 톨게이트를 지나고 의정부 나들목을 지나 동부간선도로에 들어서자 마음은 다급해졌다. 창동교를 건너면 새벽부터 시작한 쓸쓸한 여행에 마침표를 찍어야 했다.


삶의 저 끝에 서서 나는 아름다울까. 마음에 던진 물음표가 소용돌이치면서 온몸을 휘감았다. 창밖 풍경은 어제와 다름없는데 피할 수 있었던 수많은 실수와 오기로 저지른 잘못들이 발바닥에서 턱까지 차곡차곡 몸 안에 쌓이기 시작했다. 화들짝 놀라 어쩔 줄 몰라 하면서 2009년 10월 25일 일요일 밤 8시 근처를 나는 서성거렸다.




6주 후, 12월 2일. 막냇삼촌은 끝내 세상과 이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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