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끝나간다. 오래된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 한 토막.
남녀공학이라 강의실은 곧잘 달뜬 분위기를 연출했다. 특히 강의 시작 전이 그렇다. 여학우들은 대부분 복도 쪽으로 앉고 남학우들은 창문 쪽으로 앉고는 했는데 선착순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불문율은 오랫동안 지켜졌다. 그러니 중간 지대는 늘 애매했다. 비무장지대처럼 대부분 휑하니 비어 있기도 했다. 특히 수강 신청하고 몇 주 강의 들을 동안 내내. 그러나 지금 되돌아보면 그 몇 주가 서로에 대한 치열한 탐색전이었다는 사실이다.
“교양필수는 말 그대로 필수니까 무조건 수강 신청해야 하고 선택은 각자 알아서 듣고 싶은 과목을 신청하면 됩니다. 또 궁금한 점?”
조교가 수강 신청을 도왔다. 신입생들에게 조교는 늙고 고리타분하고 감히 넘볼 수 없는 경계선 저 너머의 남자였다. 지금이야 인터넷으로 수강 신청이 가능하지만 82년에는 모두 수기(手記)였다. 남학우들은 누가 얼굴 더 이쁜가 곁눈질했고 여학우들은 누가 키가 더 크고 이목구비 또렷한가, 병아리 감별사처럼 날카롭게 살폈다. 그런 탐색전은 강의실 밖에서도 여전했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여학우들 내부에서 남학우들 내부에서 품평회가 곧잘 열리기도 했다.
“내가 찍었으니까 건드리지 마라!”
몇몇 성질 급한 남학우는 선전포고하듯 동료 남학우들에게 고지하곤 했다. 몇 주가 지나자 남학우들은 ‘돌격 앞으로’를 외쳤고 여학우들은 엉뚱한 돌격자를 막아낼 튼튼한 심리적 방어벽을 쌓기 시작했다. 우당탕탕 왁자지껄 야단법석. 중간고사를 치를 즈음 공개적으로 강의실 비무장지대에 짝으로 앉는 남녀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물론 비무장지대에 얼씬도 하지 않은, 졸업할 때까지 철저하게 숨긴 비밀연애도 있었다.
장욱진은 비무장지대의 단골손님이었다. 급기야 비무장지대를 넘어 여학우들의 점령지에도 얼굴 철판 깔고 그녀 옆에 앉았다. 어쩌다 야외 수업할 때도 예외 없이 그녀 옆에 앉았으며 그녀만큼 이쁜 여자는 없다며 공공연하게 떠들어댔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녀가 얼마나 깊고 두껍고 튼튼한 심리적 방어벽을 쌓고 있었는지 우리 모두 몰랐다.
한 학기 끝나고 여름방학 시작되면서 풋내 풀풀 내뿜던 남녀상열지사는 시들해졌고 남학우나 여학우 모두 패잔병들처럼 집으로 숨어들었다. 길고 긴 휴지기(休止期). 정전(停戰)이었다. 실패한 돌격자들은 장비를 수리하고 심호흡하며 기어코 넘어가야 할 여학우들의 심리적 방어벽에 대한 자료 수집에 열중했고 성공한 돌격자들은 나름대로 희희낙락했다.
가을 학기가 시작되면서 약간의 변화가 일어났다. 어찌 된 셈인지 강의실 비무장지대가 완벽하게 복원된 것이다. 봄학기 달뜬 분위기도 보이지 않았다. 남학우 한두 명이 보이지 않았다. 남학우들의 앞뒤 가리지 않던 뜨거운 전의(戰意)는 서리 맞은 나뭇잎처럼 시들했고 여학우들의 심리적 방어벽은 더욱 튼튼해졌다.
간혹 운우지정(雲雨之情) 얘기들이 우리 머리 위로 떠돌아다녔지만, 누구도 믿지 않았다. 수업 진도보다 빠르게 속절없이 시간은 지나갔고 계절이 한 바퀴 돌아 다시 가을 학기가 시작되었다. 물론 남학우들은 선배의 성공적인 남녀상열지사의 모델을 가지고 있었지만 모두 성공할 수 없었다. 누구에게나 이 무렵 운명의 때가 찾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다시 봄학기가 시작되자 썰물처럼 남학우들이 빠져나간 강의실에 복학생이 밀려왔다. 여학우들은 비로소 예행연습(豫行演習)의 효과를 보기 시작했고 복학생들은 절치부심(切齒腐心)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시간을 보낸 터라 여학우들의 호응을 받기에 충분했다. 남학우들은 복학생이 되기 위해 불침번 서고 사격 훈련하고 화생방 훈련에 유격훈련도 열심히 견뎌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법. 드디어 남학우들은 복학생으로 강의실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신입생 무렵의 달뜬 분위기는 없었다. 오히려 깊은 침묵과 여학우들은 결코 눈치채지 못하는 굳은 결의(決意)들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 장욱진의 그녀는 졸업한 뒤여서 행방조차 수소문할 수 없었다. 그는 새로운 심리적 방어벽을 찾아냈고 열심히 돌격했다. 반면에 김용덕은 돌격자에서 졸지에 방어자로 처지가 뒤바뀌었다. 삐삐의 등장이었다.
삐삐는 강의실 불문율 따위는 마땅히 철폐해야 한다고 믿는 듯 종횡무진 김용덕 옆자리를 독점했다. 나는 이 흥미로운 구경거리에 눈길 보내기도 하다가 강의 끝나면 부리나케 학생회관 맨 위층 문창반으로 올라가 창문 밖으로 종이비행기를 날렸다. 종이비행기는 뒤포까지 날아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체육관 지붕에 불시착하곤 했다.
남도(南道)를 휘돌아보는 졸업여행이 남녀 공방전의 절정이었다. 그러나 결코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졸업여행 전용 버스에 오르면 강의실처럼 여학우와 남학우의 자리는 모세의 홍해처럼 양쪽으로 완벽하게 갈라져 도저히 낌새조차 눈치챌 수 없었다. 그리고 남원이나 여수나 태종대에서 버스 내리면 방목하는 제주도 말처럼 제멋대로 싸돌아 돌아다니니 눈여겨볼 수조차 없었다. 졸업여행 후 간혹 소문이 떠돌긴 했지만 실패한 돌격자나 실패로 위장한 성공한 돌격자 모두 소문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졸업 후 입학이라 여전히 학교에 남아 있어 나는 뜻밖의 소문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졸업과 동시에 결혼했다더라, 경쟁자들 눈 밖에서 비로소 마음껏 연애하더라,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에 대해 예행연습이라 위안하더라 등등. 박사과정 입학 준비를 하던 어진내 시절 조금씩 결혼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실패로 위장한 성공한 돌격자들도 상당수. 성공으로 위장한 실패한 돌격자 장욱진은 석사 무렵 나의 첫 미팅 상대였던 그녀와 결혼했으며 김용덕 역시 지쳐가는 회사 생활에 결혼을 늦출 수 없었다.
돈암동 깊은 밤 속, 흔들리는 소주잔 속에서 젊은 날 남녀상열지사를 얘기하다가 성공으로 위장한 실패한 돌격자 장욱진을 놀려먹으려고 하면,
“넌 우리보다 어린 여자랑 살잖아!”
대뜸 짜증부터 내뿜고 김용덕은 고개까지 격렬하게 끄덕인다. 쩝,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우리 기억 속에 여전히 찬란하게 빛나는 어설픈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