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시간이 늘어난다. 엿가락처럼.
화들짝 놀라 주위 살펴도 수상한 구석이 없다. 하… 이상하다. 어제 보았던 사람들과 거리가 분명한데 무언가 빠지거나 모자란다. 고개 갸웃거리다 의자에서 일어나 하품하고 기지개도 켜보지만, 무릎까지 차오른 쓸쓸함은 꿈쩍 않는다, 늦은 오후. 쏜살이던 시간은 늘보인양 느릿느릿. 하… 고놈 참. 이상하다. 수상하다.
엊그제 초등학교 뒷산 구릉에 누워 눈물 삼키면서 하늘 올려다보았는데 오늘은 마흔일곱 봄. 생각해보면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듯 시간 씀씀이도 마찬가지. 가령 이렇다. 주머니마다 서로 다른 시간을 넣어두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는 재미. 중학교 동창을 만나면 중학생이 되고 군대 동기를 만나면 파닥파닥 날뛰는 갓 잡아 올린 고등어마냥 이십 대 초반이 되고. 하지만 조심스러워야 한다. 아직 가보지 않은 삶의 저 끝이란 놈이 버티고 있으니.
“긴장하라. 순식간에 늙은이로 숨 쉴지 모른다, 푸른 날들 맹랑하게 모조리 떠나보내고 발등만 응시하는.”
마음 깊이 숨겨둔 시퍼렇게 날선 칼날이 늦은 오후. 한없이 무뎌지는 걸까. 느닷없이. 시간이 늘어난다, 엿가락처럼. 마치 일요일 오후 늘어지게 낮잠 자도 시간은 요지부동. 꿈쩍 않던 느낌처럼.
기억의 우물 저 깊은 곳에서 길어 올리는 날들은 시간 흐름을 가늠할 수 없는 하루들로 가득 차 있다. 여전히 생생한 어느 해 초봄. 갑자기 바뀐 학교와 낯선 얼굴들. 전학할 수밖에 없던 이유야 이사 탓이지만 내성적이라 학교생활은 힘겨웠다. 우울조차 사치인 사막 같던 하루들. 가도 가도 끝나지 않는 하룻길을 걷는다. 여겼을지도.
어쩌면 내 삶은 행복하거나 불행하지도 않은, 고작해야 다른 삶들의 배경이 될 거라는 예감에 짓눌렸는지도. 실제로 학급에서 존재감 없는 그림자이고 수업 시간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길고 지루했다. 어린 시간에 갇혀 남은 삶을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흔들림.
황량한 이미지로 남은 그날들을 기억하는 축사(祝辭)에, 삶이 다하지 않아도 마침표는 남겨둘 수 있지 않을까. 하여 마음 깊은 구석진 곳에 부끄러움으로 감추어두고 지금 이렇게 느린 시간에 초점 맞추자.
그래야 하거나 마땅히 그랬어야 할 일들에 대한 때늦은 자책감이 밀려온다. 만약 만큼이나 자신을 초라하고 비참하게 만드는 놈이 없는데 나는 왜 늘 뒷북칠까. 주판알 튕기듯 삶의 항목들을 정리하다 보면 당신 역시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걸 짐작하면서도 뭔지 모르게 밑지는 게 아닐까. 의구심 드는 것도 수상한 걸까. 아무리 정답 없는 삶이라 해도 시간은 감당할 수 없다. 당신이나 나나 시간에 떠 있는 노 없는 조각배이니. 그러나 자세히 보면 시간을 연대기(年代期)로 오해하는 건 아닐까, 나이에 걸맞은 책임이나 의무에 짓눌려 시간을 잃은 건 아닐까. 그래서 느리게 느린 시간이 지금 나를 지나는 건가. 어쩌면 당신에게도.
켜켜이 마음 안에 쌓이는 시간을 나이로 환산해 저마다 자신을 기만하지 않을까? 사실 연대기만큼 교활하고 험상궂은 놈은 없다. 걸핏하면 삶에게 훈장 받은 듯 나이 거들먹거리며 순서 정하거나 급기야 정의나 도덕까지 결정하는 괴력을 보여주니 깜박 속고 만다. 그런데, 저마다 엇비슷한 총량(總量)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탕진한 시간을 자랑이나 훈장으로 떠벌릴 일이 아니다. 되돌아보고 곱씹어보고 시간 속에 숨어 있다가 혜성처럼 빛나는 순간을 발견하는 일은 그래서,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어느 해, 여름방학 며칠 앞둔 오후, 햇살이 기묘하게 뒤틀리면서 후광(後光)처럼 인수봉에서 빛났던 찰나, 학교 풀밭에 팔베개로 누워 있다가 화들짝 놀라 두 눈 동그랗게 허리 꼿꼿이 하고 서둘러 바라보자, 숨죽인 저녁놀만 마구 피어났다. ― 돌아갈 수 있을까?
그날 이후 서쪽에서 해 뜨는 기묘한 광경은 아직도 기억으로 남아 불현듯 인수봉을 올려다보곤 한다. 아마도 불안정한 소년의 마음이, 미래에 대한 불안과 불편한 생활이나 세상에 대한 무지 따위가 어두운 그림자로 마음 안에 가득 차 있던 무렵이라, 그런 광경을 보았을지도 모를 터. 혹은 예기치 않은 일들이 우리 삶에 느닷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진다는 계시였는지도. 살아보니 실제로 과정이 결과를 설명할 수 없는 경우들이 왕왕 일어나고 결과로 과정을 합리화하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맞닥뜨리기도 한다.
달콤하고 피곤한 휴가를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시간은 제 자리에서 꿈쩍하지 않고 우리를 기다린다. 잠시 떠나있던 해야 할 일들과 변함없는 거리가 철옹성처럼 버티고 서 있어 우리 중 몇은 지레 겁을 집어먹을지도. 까맣게 잊었던 시간이 휴식 중 만났던 몰아닥치는 파도나 위에서 아래로 거침없이 몰려다니는 계곡물처럼 온몸에 엄습하기 때문이다. 화들짝 놀라 어리둥절하다가도 우리 대부분은 코앞만 쏘아보는 일상 속으로 가라앉는다. 아주 잠시 시간의 존재를 느끼며 어쩌면 다음 휴가를 기대하며.
따지고 보면 시간은 늘 새것인데 헌것으로 여겨 어제처럼 써도 된다는 속임수, 알고도 깜박 속고 만다. 휴식과 일상 사이에 놓인 속임수에 누구나 익숙해 있다. 어쩔 수 없다. 나도 당신도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다고? 씨알도 먹히지 않는 체념이야!
버럭 화내며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겠다. 장담해도 정말이지 미안한 얘기지만 어쩔 수 없다. 우리 모두보다 시간이 훨씬 오래전부터 존재했고 훨씬 오래도록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저마다 주머니에 든 시간을 아련함이나 안타까움 급기야 ‘왕년에’나 ‘라테는 말이야’라는 이름을 붙여서 애지중지 아끼지 않던가.
학위과정 입학을 준비하던 일 년 남짓 인천집에서 혼자 지내며 글 쓰곤 했던 기억이 텃밭에서 아직도 푸르게 자란다. 그때 쓴 글들은 흔적조차 없으나 마음 안에서 무성하게 자라 나침반 구실 하지 않을까?
“어떤 성공보다 성공했다는 기억이 더 중요하지요. 그 기억이 또 다른 성공으로 이끄니까요.”
언젠가 수락산 그가 말했을 때 나는 살아온 시간을 통째로 떠올리다가 미처 눈치채지 못한 그래서, 온갖 쓸쓸함이 무성한 마음 텃밭 귀퉁이를 찾아냈다. 시간이 지나간 자리여서 쓸쓸함이 한층 무성한 텃밭이다. 그 텃밭에 퍼질러 앉아 지는 해 야속하다 푸념하지 않고 저 혼자 글 쓰는 밤길 걷다가 막걸리 들이켠들 어떠랴. 이 또한 낭만 아닐까. 초월할 수 없는 시간이니 어쩌면 시간 지나간 자리에 앉아 글밭 가꾸는 일도 아주 헛된 일은 아닐 터.
여전히, 나도 당신도 우리 모두 앞에 시간이 있고 놈은 사정없이 우리를 지나쳐버릴 터이니 언제나 그러했듯이 심호흡 깊게 하고 두 눈 부라리며 자신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내가 나를 놓친 십 년이 이제 와 안타까워 ‘초안산, 십 년’을 반성문으로 읽으니. 자신을 한정 짓고 구획 짓고 선 밖으로 나가기 주저하고 포기한 나를 놓친 십 년이 마음 텃밭에서 무엇으로 자랄지 모르나 돌아오지 않는다. 지나간 시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