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락산 부부

by 이순직

외사촌 결혼식이 있어 고향 다녀와 맞은 월요일 아침. 비가 내린다. 빗소리에 마음 차분하게 가라앉고 눈길은 창밖 거리에 묶어놓는다.


결혼식은 언제나 어디서나 똑같다. 젊은 남자와 여자가 주인공이고 늙거나 늙어가는 사람들이 구경꾼이다. 식은 참을 수 없이 지루하다. 구경꾼을 한껏 괴롭히고서 시작하는 남자와 여자가 사는 모양은 앞서 젊은 날들을 산, 늙거나 늙어가는 사람들의 삶살이와 다르지 않다. 한 이불 속에서 알콩달콩하거나 한 지붕 아래에서 쿵꽝쿵꽝 하거나 대자연의 순리에 따라 새끼 낳고 자신의 삶은 끝장났다며 희망 삼아 바라보는 새끼가 짝을 맞이할 때까지 하루하루 버텨내야 한다. 나도 그렇고 수락산 부부도 예외일 수 없다.


수락산 부부는 나보다 십여 년 앞서 시작한 결혼생활 선배다. 살림살이가 십여 년 앞선 세월만큼 쌓여 있고 그 시간만큼 새끼들도 자라 희망이 부쩍 커진 셈이다.


수락산 그녀는 싹싹하고 상냥해 천생 여자지만 그림자 노동과 사회생활에도 일요일 등산을 마다하지 않는 강자(强者)다. 추적추적 비 내리는 날이면 영락없이,


“막걸리에 파전 어때요?”


전화한다. 다음날 일정이 꽉 차 있어도 앞뒤 분간 못 하는 나는, 얼씨구나 좋다며 수락산 자락으로 달음박질한다. 아파트 초인종을 누르고 뚱이란 놈이 꼬리를 흔들며 먼저 반기고 수락산 그가 문을 열고. 수락산 그는 강자와 사는 남자답게 표정과 몸짓에서 여유가 묻어난다. 십 년 가까이 만났지만, 도무지 당황하는 걸 보지 못했다. 수락산 그녀 친정아버지 칠순 잔치 때 많은 사람이 보는데도 무대에서 서슴없이 춤도 추었다. 그 점잖은 사람이!


“형님은 겨울이 어디에서 온다고 생각하세요?”


‘겨울 이야기’를 쓸 무렵 내가 물었다. 엉뚱한 물음이라 고개를 갸우뚱하거나 이런 미친놈이 있나, 하는 눈빛을 지을 법도 하지만 곧바로 말했다.


“추위와 겨울은 엄연히 다르고. 왜냐면 추위는 상대적인 개념이고 한여름 계곡 깊은 곳에서 추위를 만나기도 하니까. 겨울은 마음속에서 오기도 하고 대자연의 자궁에서 오기도 하고. 그러니까 가을의 자궁에서 오기도 하고. 사람마다 다르지 않을까?”


공릉동 곱창집을 알게 된 것도 수락산 부부 덕분이다. 신혼 때, 지금은 없어진 번동 진주집에 아내와 자주 갔던 터라 곱창은 추억이 숨어있는 음식이었다. 얼마 전 공릉동 곱창집에서 만나 질펀한 생일잔치를 했다. 수락산 부부와 단양 부부와 우장산 부부와.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살아내는 하루하루가 새끼를 위한 응원임을 알고 있었다.


“이 서방은 모두 기억하는데 내 함 들어간 날은 왜 모르지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 오는 날 우산 없는 사람들은 안다. 온몸이 비에 녹아내려 금방이라도 하수구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묘한 기분을. 그래서 저마다 당황해하며 이리저리 마구 뜀박질한다. 하면 할수록 몸을 훑은 빗방울들이 우리 자신도 미처 알지 못하던 자신을 데리고 하수구 속으로 사라진다. 땅속에 묻히지 않아도 우리 자취는 조금씩 자연의 일부가 된다. 그 빗소리를 들으며 우장산 부부와 수락산 부부는 함 들어온 날을 떠올리려 애쓰지만 단양 형님의 하소연과 달리 기억에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단양 형님이 이어서,


“거참, 모를 일이네. 강 여사에게 관심이 없는 건가요, 저한테 관심 없었던 건가요?”


지금까지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았지만, 익살 섞인 하소연은 모두에게 유쾌한 웃음을 준다. 다들 반환점을 돌아온 나이라 삶이 얼마나 치사하고 옹졸한지 알고 있어 일상의 쉼표를 스스로 찍어야 했다.


“형님 부부 얘기를 쓸까 하는데 괜찮을까요?”


자리가 끝나 우장산 부부를 보내고 노래방으로 가던 중이었다. 비는 그쳤다.


“쓸 얘기나 있나. 우리 모두 비슷한 모양으로 사는데.”


수락산 그는 빙그레 웃었다. 나는 일 년에 한 번 갈까 말까 한 노래방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오늘은 매운탕을 먹을 예정이다. 우장산 형님과 단양 형님이 서해에서 잡아 온 우럭이다. 멀어서 우장산 부부는 참석하기 어렵지만 정오가 훌쩍 지난 지금 아내는 우럭 손질을 하고 있을 것이다. 다들 치사한 삶에게 받은 상처를, 자주 만나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위안 얻고 힘을 얻고 사랑 얻는 거라고, 아내는 짐작하고 있을 거다. 나 역시 집으로 가는 시간이 목마르게 기다려지는 이유가 거기에 있지 않을까?


엊그제 결혼한 외사촌도 비슷한 모양으로 살아갈 것이고 비는 또 내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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