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아내가

by 이순직

“자기야, 앞이 안 보여.”


강의 마치고 학위과정 밟는 후배와 가볍게 술자리하고 집으로 돌아온 저녁. 327동 705호에 살 때다. 둘째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던 무렵. 아내는 출산휴가 중이었다.


“며칠 전부터 조금씩 흐릿하더니 지금은 아예 안 보여.”


아내는 멀쩡하게 두 눈 뜨고 있지만 손 서툴게 이리저리 휘저으며 눈앞을 분간하고 있었다. 30대 초반. 필요할 때마다 안경 쓰곤 했으나 날벼락처럼 예고 없이 실명하리라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동네 병원에 갔다. 처방전 받고 며칠이 지났어도 차도가 없었다. 침대에서 일어나는 순간부터 아내는 손을 내젓기 바빴다. 집안 구조는 두 눈 보이던 때 이미 익혔으므로 그다지 불편하지 않지만, 집 밖은 위험했다. 다시 동네 병원에 갔다.


“대학병원에 가보시지요.”


의사는 말을 아꼈다. 곤혹스러운 표정조차 내보이지 않았다.


소문은 순식간에 의정부 가능동으로 번졌다. 몇 해 전 와이프 반품받을 수 없느냐는 단양 형님의 애교 섞인 협박 때문은 아니지만 장모는 부리나케 창동으로 건너왔다. 상계 백벽원에 입원했다. 한 달이 지나도 차도가 없었고 주치의는 좀처럼 만날 수 없었다. 5층 옥상 쉼터 의자에 쭈그리고 앉아 연신 담배만 피워댔다. 5층 아래 인도를 걷는 사람들. 어디론가 서둘러 달려가는 차들 속에 사람들 두 눈은 멀쩡했다. 출산 후유증 목록 중에서 실명은 없었다. 아내는 두 눈 뜨고서도 앞이 완벽하게 보이지 않았다. 머리카락보다 수백 배 가느다란 빛조차 들어갈 구멍마저 닫혔다.


김대중‧김정일의 정상회담은 이미 관심 밖이었다. 머릿속은 온통 대학로 술집들만 들어차기 시작했다. 그러나 끝내 어느 후미진 으슥한 골목에서 첫 키스를 했는지 떠올리지 못했다. 신창동 대신연립에서 건너온 어머니가 첫째와 둘째를 봐주고 있지만 생활은 엉망진창이 되어버렸고 눈으로 볼 수 없는 아내와 살아갈 날들이 철벽처럼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강남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갔다.


“원인을 알 수 없네요. 검사를 더 해봐야겠지만 뇌 쪽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어요. 두피를 벗겨내고 전두골을 절단해서 치료할 수도 있어요. 먼저 원인을 파악해야 하지만.”


의사는 들으나 마나 한 얘기를 거의 협박조로 말했고 장모는 펄쩍 뛰었다. 머리통을 자르다니! 만에 하나 뇌를 잘못 건드리면 후폭풍은 감당할 수준을 뛰어넘어 재앙이라는 예상은 누구나 할 수 있었다.


“안압이 높아서 실명이 된 것 같은데 원인을 아직 찾지 못해서, 자연치유도 종종 있으니까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아내는 327동 705호로 돌아왔다. 여전히 손은 눈을 대신했고 말수는 부쩍 줄어들었으며 습관적으로 자주 귀를 쫑긋 세웠다. 나는 학기 채우기 위해 학교에 나가 강의했으며 수필 과목 과제로 받은 수강생들의 수필을 읽으며 길라잡이가 될 만한 문장들을 달아주었다. ‘지성과 글’ 과목도 마찬가지였다. 고통이었다. 읽어야 할 수백 편의 글들이 숨통을 조여왔다. 갓난아기 둘째와 두 살 먹은 첫째와 앞이 보이지 않는 아내와 시간강사. 세상은 몇 달 전과 다름없었고 오히려 더 빨리 움직이고 있었다. 견디면서 적응하는 시간들이 무심하게 우리를 지나갔다.


통일은 도둑처럼 올 것이라는 말들이 떠돌았다. 체제 경쟁은 이미 끝났고 군비 경쟁도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마사오의 후예들은 핵무기 문제를 들고나와 분단 상황을 계속 끌고 가는 것이 권력과 경제적 부를 유지할 수 있다는 믿음을 숨긴 채 핵무기를 만들어야 한다며 목소리 높였다. 아내는 정말 눈뜬장님이고 엉터리 눈뜬장님들은 마사오의 후예에 열광했다.


계절이 지나가고 아내는 익숙하게 쌀을 씻어 전기밥솥에서 밥을 해냈으며 청소기로 세탁기로 집안일을 하며 가구나 벽 모서리에 부딪치지 않는 자신만의 동선을 만들어갔다. 고춧가루통과 소금통도 가뿐히 구별했으며 냉장고 정리도 말끔했다. 정말이지 견디는 자에게 적응은 빠르게 다가왔고 짧은 순간 가벼운 여유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자기야, 앞이 조금 보여.”


아내는 눈꺼풀 껌벅거리며 신기한 표정으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시야는 조금씩 넓어졌고 지나간 계절을 추억할 즈음에는 예전의 시력을 되찾았다. 한바탕 홍역을 치른 것일까. 지금 더듬어봐도 아내의 시력 회복은 미스터리다. 우리 삶에 얼마나 많은 미스터리가 숨어 있는가.


20여 년이 지난 지금 아내는 멀쩡한 두 눈 뜨고 세탁기 돌리고 모닝커피 소파에 앉아 마시며 ‘에브리타운’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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