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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순직 Sep 08. 2023

엄마의 시간은 어디로 갔을까?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청소기를 돌리고 물걸레질했다. 몇 달 전부터 하던 일이었다. 엄마는 소파에 앉아 나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백로 전이라, 불타던 여름이 아직 남아 있는 가을 햇살은 발코니 통유리를 뚫고 거침없이 거실로 쏟아졌다. 계절은 항상 몸보다 앞서 달렸다.


“파스를 한 봉지 주더라.”


“누가요?”


의아했다.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는 동대표나, 교회에 나오라며 초인종을 누르는 사람들이 파스를 가지고 다닐 이유가 없었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 여기에 파스도 붙여줬어.”


엄마는 윗옷을 걷어 옆구리를 보여주었다. 하얀 파스가 붙어 있었다. 거실까지 들어왔다는 거네? 의아했다.


“옆집 사람이 아니고요?”


“처음 보는 여자라니까.”


엄마는 단호했다. 생판 모르는 여자가 집에 찾아와서 파스를 주는 것도 모자라, 몸에 붙여준다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불길한 예감이 솟구쳤다. 각자도생의 시기를 살고 있다는 느낌은 신문이나 방송에서 들려오는 흉흉한 소식들 때문에 확신으로 굳어졌다. 정체가 미심쩍었다. 누군가 노부부가 사는 집을 염탐하며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추측은 당연했다.


더구나 아버지는 벌방 사갑리에 내려가 있었다. 유산으로 받은 산기슭 자투리땅에 자두며 매실, 감나무와 작은 텃밭을 가꾸는 탓에 심심찮게 내려갔다. 소일거리라고 할지라도 여든을 훌쩍 넘긴 아버지에게 농사일은 힘에 부칠 터인데도 ‘올해까지만’이라며 시간을 늘려갔다. 내가 위층에 살고 있지만 홀로 하루들을 지내야 하는 엄마가 당연히 걱정스러웠다. 이십여 년, 양 무릎에 수술한 인공관절이 조금씩 삐그덕거리니, 짧은 외출마저 언제나 고통스러운 걷기로 바뀌었다.


아파트 단지 밖으로 나가는 일은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거실에서 저 혼자 지껄이는 TV로 지루한 시간을 보내다가 지치면 놀이터에 나갔다. 코앞에 있는 놀이터에 가는 것도 양손으로 지팡이 하나씩을 짚어야 했다. 놀이터 의자에 앉아 아이들이 그네며 미끄럼틀에서 왁자지껄 떠들며 노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할까? 외할아버지가 신혼 때 함흥역에서 근무했다는 것을 기억할까? 질척거리는 골목 끝에서 풋풋한 십 대 후반의 외할머니가 수줍은 얼굴로 치맛자락 한쪽을 움켜쥐며 마중 나오곤 했다는 얘기를 떠올릴까?


“누가 파스를 줬다네.”


위층으로 올라와 아내에게 말했다.


“누가?”


아내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세상 참 별일이다, 싶은 표정을 지었다. 아내의 의구심은 곧장 경계심으로 바뀌었고, 여자만이 느끼는 낯선 사람으로부터의 위험을 표정으로 드러냈다.


“옆집 사람도 아니라던데, 누가 파스를 가지고 다니겠어?”


“수상하네. 약 챙기러 가서 물어봐야겠어.”


아내는 발코니에 쭈그리고 앉아 청소기 먼지 통을 비우면서 여전히 의구심을 떨치지 못했다. 병원에 가는 일은 아내가 전담했기에 날마다 약을 챙기는 수고로움도 도맡았다. 고혈압을 비롯한 숱한 병명을 달고 다니는 탓에 아침저녁으로 먹는 약만 해도 한 움큼이었다.


“어제는 누구냐고 묻더라. 나한테.”


나는 아내의 걱정스러운 투덜거림을 귓등으로 흘렸다.


다음날 변함없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청소기를 돌리고 물걸레질했다. 엄마는 소파에 앉아 나를 유심히 보았다. 가을 햇볕은 여전히 따가웠고, 흰 구름 몇 개가 풍선처럼 떠 있는 푸른 하늘은 조금씩 높아졌다.


“아버진 언제 올라와요?”


“저녁때 들어오겠지. 서예실에 갔는데.”


“시골에 갔잖아요? 벌방에.”


“집에 갔다고? 나도 가야 하는데.”


“여기가 집이에요.”


엄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판 낯선 곳에 있다는 눈빛으로 거실을 둘러보았다. 뽀글이 파마를 한 엄마의 머리카락 사이로 두피가 드문드문 보였다.


아버지는 산기슭 자투리땅에 컨테이너를 농막으로 놓고, 숙식을 해결했다. ‘서울농장’이라는 이름도 붙였다. 작년까지만 해도 엄마는 농막에서 며칠씩 지내며 도시의 번거로움을 덜어내기도 했다. 나 역시 까마득한 유년 시절을 사갑리에서 보낸 터라 흐린 기억이 많은 동네였다. 당연히 매실이며 감 따위를 수확 때가 되면 며칠씩 아버지를 돕기도 했다.


“맞다. 여기가 집이지.”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교리에 살 때, 외할아버지가 이발소 차리라고 돈 대준 거, 기억나요?”


“아버지가?”


“장녀가 가난하면 안 된다면서 자주 오셨다면서요?”


“몰라.”


엄마는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하월곡동 산동네에서 셋방 살 때는요?”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 엄마의 표정은 왜 기억해야 하느냐는 의아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무렵을 기억하지 못하니 당연히 31번지 무허가집에서 살 때도, 월계동 천변 판잣집도 말끔하게 사라졌을 터였다. 기억이 사라진 자리에 추억은 당연히 없었다. 어쩌면 씁쓸함마저도 없는 텅 빔만이 있지 않을까.


“몰라.”


“어제 왔던 사람이 온다면서요?”


아내한테서 들은 말이 떠올라 물었다.


“어제 누가 왔는데?”


“파스 준 사람이요.”


엄마는 그제야 옆구리 웃옷을 걷어 올려 파스를 내려다보았다.


“온다고 했으니 오겠지.”


엄마는 남의 일처럼 말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방문객을 엄마 곁에 내내 있으면서 누구인지 확인하라고 아내가 당부했다. 노부부에게 위험이 되는지, 확인해야 했다. 그렇지 않아도 마음은 꺼림칙했다. 아점을 먹기 위해 위층으로 올라갔다.


아침을 먹지 않는 습관은 유구했다. 늦잠이 더 달콤했다.


“왔어? 그 사람?”


아내는 대뜸 물었다. 나는 속이 뜨끔했다. 아내의 말을 거역하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얼른 먹고 내려가 봐야지.”


허겁지겁 허기를 채우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거실로 들어서자 소파에 낯선 사람이 엄마와 함께 앉아 있었다. 설문조사를 한 모양이었다.


“안녕하세요?”


나는 적의를 드러낼 생각은 없었다. 정체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덮어놓고 몰아붙일 수 없었다. 노모 혼자 있는 집에 찾아와 이것저것 수상한 짓을 하지 않았냐고 따지는 짓은 너무 앞서 나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누구세요?”


나는 거실 바닥에 앉으면서 최대한 상냥하게 물었다.


“간호사예요. 동사무소에 파견 나온.”


오십 줄의 여자는 설문지를 가방에 넣으면서 살짝 웃었다. 아버지도 없는 집에 불쑥 나타난 사람이 간호사라니! 그동안의 의구심이 삽시간에 사라졌다.


“설문지는 구청 치매센터로 보낼 거고요. 아버님은 노인정에서 몇 번 봤는데, 안 계시나 봐요?”


“시골에 가셨습니다. 그리고 병원에서 치매 진단을 받았어요.”


“그래요? 그래도 설문지는 치매센터로 보내야 해요.”


여자는 가방 안을 주섬주섬 살피더니 마스크 두 장을 꺼냈다.


“오늘은 드릴 게 이것밖에 없네요.”


엄마에게 내밀었다.


“어제는 파스를 주더니, 오늘도 또 주네. 주려면 동네 사람들 다 줘야지, 왜 나만 줘?”


엄마의 생각이 짧게 흔들렸다. 파스도 모두에게 줘야 한다는 말을 이었다. 여자는 대답 없이 빙그레 웃었다.


비록 하루지만, 정체를 확인할 수 없어 온갖 불길한 추측에 골몰했던 자신이 조금 부끄러웠다. 각자도생의 시기를 살아야 한다는 부담은 여전하지만. 여자는 아파트 노인정에 주기적으로 들러 어르신들의 건강을 살핀다고 내게 말했다. 아버지를 몇 번 만났다는 얘기도 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엄마도 여자가 처음은 아닐 터였다.

여자가 소파에서 일어났다.


“가시려고요?”


“또 다른 집에 가봐야죠.”


“안녕히 가십시오.”


현관까지 배웅했다. 거실로 돌아와 소파에 앉았다. 엄마는 마스크 두 장을 흔들며 내게 물었다.


“이거 네가 나한테 준 거야?”


그 사이 엄마의 시간은 순간순간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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