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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나도록 짙푸른 하늘가에 잎사귀를 떨군 앙상한 나뭇가지가 잔잔하게 흔들리자 가지 끝 홍시가 살랑거렸다. 한껏 부풀어 올라 금방이라도 터질 듯했다. 바람에 몸을 맡긴 채 부끄러움에 살며시 입꼬리를 움찔거렸다.
깊은 바닷빛보다 짙은 푸름이 하늘을 꽉꽉 채우고 있어 더욱 빨갛게 익었다. 붉은 햇살이 구석구석을 핥았다. 흥분이 꽃처럼 숨죽이며 피어올랐다. 보디샴푸 거품들이 물줄기에 씻겨 허리로 허벅지로 종아리로 흘러내렸다. 숨어있던 홍시가 빨갛게 드러났다. 왼손으로 살짝 건드리자 수줍어 움찔거렸다. 짜릿함이 등줄기를 타고 사타구니를 지나 뒤꿈치까지 번졌다. 물방울들이 알알이 익어 바닥으로 떨어졌다. 샤워 꼭지를 잠그고 수건을 집어 들었다.
“오늘 듀얼 데이트는 어땠어?”
소파에 앉아 화장품 파우치를 뒤적거리던 언니가 따분한 표정으로 하품했다. 또 시작이네. 귀찮게 할 때는 얼굴조차 징글징글하니까. 대꾸조차 하기 싫지만 베란다는 물론이고 방까지 쫓아다니면서 대답할 때까지 거추장스럽게 말꼬리를 잡고 늘어질 게 뻔했다. 못 들은 척 무시하면 까맣게 잊어버린 일이나 충분히 용서받았던 일들까지 들춰가며 감 놔라 사과 내놔라, 잔소리를 쏟아놓을 것이다.
“누가 들으면 염치없는 년이라고 하겠네.”
“똑똑하고 현명한 거지. 남자들 시꺼먼 속은 알 수 없잖아. 웨딩드레스는 한 번 입는 게 최고니까 잘 골라.”
“그런 거 아니라니까.”
“여자가 남자를 만나는 이유는 딱 하나야. 짝꿍 찾기야.”
“친구라고 몇 번 말해야 알아들어?”
“친구가 자기가 되고 자기가 여보가 되는 거야. 아니라고 용을 써도 소용없거든. 기집애가 알면서도 모른 척해. 앙큼스럽게.”
언니는 눈을 흘겼다. 아니라고 해봐야 내 입만 아플 뿐이다. 어쩌면 언니 말이 맞을 수도 있었다. 무의식의 깊은 바닥에 엎드리고 있어 위로 떠오르지 않았을 뿐이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려는 속셈은 언니가 보기에 충분히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밖에서 보기에 그렇다는 것이지 내 의지와 상관없다. 살다가 지치고 힘들어 도저히 안 되겠다고 싶으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지만 여전히 나는 혼자가 좋다.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 누구의 며느리로 사는 것은 바싹 마른 장작개비를 잔뜩 짊어지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짓이었다. 언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또 연극 보고 왔냐?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어. 등받이도 없는 딱딱한 판자때기에 웅크리고 앉아 달콤한 키스도 없고 고함만 빽빽 내지르는 연극이 무슨 재미가 있는지 모르겠어. 고문이야. 허리도 아플 테고 앞 사람의 머리 냄새도 맡아야 하고.”
“못 봤어.”
“내 말대로 영화 본 거야? 제목이 뭐야? 재미있었어?”
“카페에만 있다가 왔어.”
“왜?”
언니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세상에 별일이 다 있다는 식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호기심이 폭발한 표정이었다. 얘기해? 하지 말아? 순간 망설였다. 세상이 굴러가는 머리 아픈 얘기는 손톱만큼의 관심조차 없기에 한 귀로 흘려버릴 터였다. 헛수고이고 입만 번거로울 것 같았다. 그러나 말하지 않으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것이다. 엄마아빠에게 늘어놓을 얘깃거리가 필요한 언니였다.
“코스에서 벗어났으니 수상한데? 널 두고 주먹다짐이라도 했어?”
언니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기대하는 호기심 많은 꼬맹이의 표정을 지었다. 적잖은 부담감을 느끼면서도 귀여운 얼굴 앞에서 망설임은 부질없었다. 꼭꼭 숨겨 절대로 말해선 안 되는 은밀한 얘기도 아니고 관심의 높낮이에 따라 가십으로 어물쩍 넘어갈 수도 있었다. 혼자만 알고 속으로 끙끙거릴 바에야 툭툭 털어내 언니의 의견을 듣는 쪽도 나쁘지 않았다.
“방대라는 녀석이 있어.”
“알아. 민수도.”
“북쪽 사람이야.”
언니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입을 반쯤 벌리면서 얼음땡 놀이하듯 순간 멈춤이 되었다. 귀여운 표정은 삽시간에 사라지고 입술을 삐쭉 내밀면서 요리조리 움직였다. 눈빛이 깊어졌다. 골똘해졌다. 하도 떠돌아다녀 너덜너덜해진 소문까지 떠올려 가며 동생의 친구에 관한 판단을 내리려는 언니의 신중한 태도가 뜻밖이었다.
방대를 바라보던 민수의 눈빛에 가득 담긴 낯섦과 불신이 떠올랐다. 고백이 끝나자 민수는 적잖게 당황했고 유복자 어쩌고 하면서 노골적으로 적대적인 태도를 드러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있었던 일들로 지나치게 흥분한다거나 상대를 악마로 몰아붙이는 짓은 바람직하지 않았다. 더구나 친구이지 않은가.
“탈북민이구나. 마음을 훔친 도둑은 아닐 테고.”
“말하기 전까지 몰랐을 정도니까 적응 잘했다는 거지.”
“그런데 문제가 뭔지 알아?”
“아무 문제없어. 고백을 민수와 내가 들어줬으니까.”
“얘는 정신머리가 없네. 다시는 만나지 마. 인생 망치고 싶어?”
언니는 버럭 화를 냈다. 느닷없이 목소리를 높여 깜짝 놀라 당황했다. 민수와 달리 경계심은 보이지 않는데 속내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찝찝함은 숨기지 않았다. 방대가 어떤 정체성을 가졌는지에 대한 우려보다는 가까이 지내다 보면 알게 모르게 받는 자질구레한 영향들이 행동이나 생각을 바뀌게 할 거라는 불안한 추측이었다. 어린애도 아니고 귓바퀴가 얇은 것도 아니니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대꾸해도 어디까지나 네 생각이라고 타박해 씨알도 먹히지 않을 터였다.
친구 사이를 뛰어넘어 더 깊은 관계로 발전할까, 염려하는 의구심도 있었다. 언니로서 당연했다. 눈에 콩깍지가 씌이면 세상의 모든 불가능이 하찮게 보이고 무모한 행동도 거침없어질 거라는 예상은 경험자로서 당연했다. 물불 가리지 않고 밀어붙이던 결혼식 이틀 전에 드러난 유부남이라는 사실 앞에서 언니는 산산이 부서졌다.
끔찍하게 무너진 신혼생활 앞에서 언니는 길을 잃었다. 점차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었다. 길고 끔찍한 침묵이었다. 나는 일상을 되찾기 위한 어둡고 축축한 긴 시간을 눅눅한 좌절의 냄새를 맡으면서 언니와 함께했다. 자매라는 유대감뿐만 아니라 세상은 선과 악으로 양분할 수 없는 모호함으로 가득한 미로여서 어깨 기댈 사람이 필요했다. 선과 악은 복잡한 여러 관계 속에서 선택의 문제에 불과했다. 누구나 자신의 이익 여부에 따라 선악을 결정했다.
“지금까지 잘 지내왔는데 갑자기 인생 망치다니 너무 심한 말이야.”
“물건은 고쳐 써도 사람은 그러지 말라는 말이 왜 있는지 알아? 고쳐도 고쳐지지 않기 때문이야. 역사적으로 증명된 명제이고. 이주민은 원주민이 될 수 없어. 본질적으로. 차이나타운이 왜 있겠어? 원주민이 될 수 없으니 생긴 거야.”
정체성은 바뀌지 않는다는 언니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었다. 다툼을 이어간들 서로 만족하는 접점을 찾기 어려웠다. 원주민이 될 수 없다고 확신하니 원주민으로 살아가는 이주민은 가능하다는 궤변으로 목소리를 높일 필요도 없었다. 내게 중요한 것은 방대와 관계이지 정체성이 아니었다. 헛발질일 수도 있지만.
“민수는 뭐라는데? 말없이 묵묵히 들어줘? 고생했다고 어깨라도 두들겼어?”
“좀 공격적이었어. 평소에도 의견이 다르면 티격태격하니까.”
“민수의 생각을 잘못 읽은 게 아니고?”
“알고 지내온 시간이 있는데 설마?”
“네가 인정하든 안 하든 둘은 경쟁 관계야. 널 두고. 어쩌면 네가 교활해서 나쁜 년이지. 친구를 이간질하고 있잖아? 더 늦기 전에 결정해. 민수로.”
“내가 양손에 떡을 쥐고 있다고? 전혀 아니야.”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 저어도 마음은 개운하지 않았다. 언니의 말처럼 두 남자 사이에서 홍일점 대접을 받는 욕심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양심에 꺼림칙했다. 욕심은 본능에 뿌리박고 있다. 내 마음 나도 모른다며 현상 유지에 집착하더라도 끝은 반드시 온다. 청춘이 언제까지 제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을 터였다.
부부 사이의 콩깍지도 안개처럼 삽시간에 사라져 의리로 버티지 않는가. 흐르는 것들은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었다. 그러나 둘 사이에 서서 직장에선 어림도 없는 대우를 받는데 언니의 충고에 쫓아 포기할 수 없었다. 머리가 동의해도 가슴이 요지부동이었다. 관계는 언제 어떻게 두터워지거나 얇아져서 떨어져 나갈지 짐작할 수 없었다. 방대를 쫓아갈지 민수의 손을 잡을지 나도 모를 일이다.
“귀신을 속여라. 가슴에 손을 얹고 찬찬히 따져봐. 정말 양손에 떡이 아닌지.”
언니는 콧방귀를 뀌었다. 꿈자리 끄트머리에서 아랫도리가 촉촉해진 적이 없다고 말하지 못했다. 둘 중 누구를 떠올렸는지 특정하지도 못했다. 방대인가 싶으면 민수이고 민수인가 싶으면 방대였다.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어나면 흥분이 아랫도리에서 잔물결 치듯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꿈자리가 마음에 닿을까 싶어 서둘러 일어나 창문 열어 바깥 공기를 마셨다. 희뿌옇게 동트는 새벽녘일 때도 있고 어둠에 덮여 놀이터 보안등이 반짝일 때도 있었다. 처음 몇 번은 황당했고 부끄러웠다. 발그레 달아오른 얼굴을 거울로 확인하고서 마른세수를 연거푸 했다.
“너무 앞서 나간 충고야.”
“민수 애간장 태우지 말고 마음 곱게 먹어. 네가 어정쩡할수록 두 남자 사이가 좋아질 날이 없어.”
“그런 느낌이 없진 않아. 걱정되고.”
“그거 봐. 내 말이 맞지? 꿈꾸던 연애가 조각조각 부서져서 마음 아픈 방대는 살살 다독여 주고 친구로 남는 것이 좋아. 탈북자가 잇속 빠른 서울년을 감당할 수 있겠어? 어림없어!”
“민수보다 키 크고 잘 생겼어.”
“방대가? 부질없어. 여자만 얼굴값 하는 줄 알아? 부끄럽지만 경험했잖아.”
“원주민 텃세가 아닐까?”
가족사로 인해 고스란히 드러난 뿌리 깊은 민수의 적대감이 언니에게도 엷으나 있었다. 언니보다 약하더라도 나 역시 의식 못 하는 편견이 있었다. 근현대사를 배우면서 무력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정상이 아니었다. 탈북자와 서울 시민은 물과 기름처럼 섞여 어울릴 수 없었다. 참혹한 전쟁이 낳은 피해의식은 여전히 우리들 가슴 밑바닥에 웅크리고 있었다. 평소였으면 공연장으로 갈 때 두 남자 사이에서 어깨 당당하게 펴고 발걸음도 가벼웠을 것이다.
그러나 공연장은 고사하고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갈 때 뿔뿔이 흩어져 멀찌감치 떨어진 섬들 같았다. 사람들이 물결처럼 우리 사이를 흘러 다녔다. 아무 말도 서로 하지 않았다. 나 역시 입술 굳게 다물었다. 결론 없이 억지로 말다툼을 매듭지었다는 찜찜한 뒤끝이 뒤통수에 매달려 있었다. 안녕. 인사말도 없이 손을 두어 번 가볍게 흔드는 것으로 헤어졌다. 방대와 민수를 보내고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아 거리를 꽉꽉 매운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저마다 필요에 따라 갈 길을 잰걸음으로 서둘러 가지만 제대로 가고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느닷없이 밑도 끝도 없이 머리 위로 미사일과 방사포탄이 떨어질 거라는 불안을 어떤 식으로 감추고 있을까. 한 발짝 앞이 천 길 낭떠러지라는 위험 경고를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무시하면서도 감출 수 없는 긴장감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있을까. 집으로 가는 버스 안은 음침했고 눅눅했으며 끈적끈적했다.
“텃세든 기득권이든 있을 수밖에 없잖아? 안방을 차지하고 있는 마누라에게 아무리 머리 들이밀어도 순순히 물러나겠어?”
언니는 스스럼없이 자신의 실패를 꺼내 들었다. 얼핏 드러낸 언짢은 표정에서 상처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상처가 깊은 만큼 언니는 내게 적극적이었다. 자신처럼 실패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래서 앞서 나가는 느낌이 없잖아 있었다. 친구라는 말을 예비 제부라는 뜻으로 들었다. 자매가 비슷하거나 같은 실패를 맛보는 것만큼 가슴 아픈 일은 없었다. 탈북자와 연애하면서 애정이 쌓여 결혼하면 불협화음이 만만치 않을 거라는 지레짐작은 충분히 가능했다. 살아온 환경이 너무 달라 선택을 앞둔 판단기준이 날카롭게 대립할 터였다. 신혼 때는 문제가 아니지만 서로가 너무 익숙해져서 마음 밑바닥까지 훤히 꿰뚫을 수 있을 때쯤이면 한쪽이 고집을 꺾거나 순순히 따르지 않는 이상 파국을 향해 곤두박질칠 터였다.
언니와 두 살 터울이지만 파혼으로 먹은 나이는 따로 있었다. 좀 더 신중하고 조금 더 깊이 고민해서 감정에 휘둘리는 함정들을 요령껏 피했다. 그러나 살아가는 일이 계획이나 예상대로 흘러가던가. 방대의 느닷없는 고백처럼 암초가 곳곳에 숨어있었다. 언니의 말을 듣다 보니 녀석의 고백은 뒤늦게나마 확실히 충격이었다. 양심을 버리고 감쪽같이 정체성을 숨기고 친구 사이로 지내다니 괘씸했다. 그런 측면에서 민수를 이해했다. 하지만 앉은자리에서 유복자 어쩌고 하면서 노골적으로 경계심과 불쾌감을 드러내는 짓은 경솔했다. 졸업 후 삼 년 넘도록 모임을 함께하며 어깨동무하며 가깝게 지내오지 않았나.
“혹시 싸구려 동정심이 바닥에 깔린 거 아니야? 그렇다면 방대도 널 싫어할 거야.”
“내가?”
“배고프고 헐벗은 곳에서 왔으니 자존감이 낮다고 여기면 실수하는 거야.”
“설마 내가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을까 봐?”
“세계관은 사춘기 무렵에 완성돼. 그 세계관으로 남은 일생을 살아. 끔찍해도 어쩔 수 없어. 너도 마찬가지야. 우린 경제적 궁핍을 느껴본 적이 없잖아? 방대는 지독한 구두쇠일 거야. 자존감은 고집불통으로 가득 차 있을 거고.”
방대가 민수와 티격태격해도 정도는 심하지 않았고 나와 감정적 대립이 없었다. 친구 사이에 그럴 기회도 거의 없었다. 개인적인 사정은 위로와 응원으로 주고받았고 상대의 삶에 끼어들어 참견하는 경우는 더욱 없었다. 헤어지면 각자의 생활 속으로 들어갔다. 민수는 물론이고 나 역시 어떻게 살아왔는지 말하지 않았다. 얘기해 봐야 엇비슷할 거라고 짐작했다. 비슷한 수준의 옷을 입고 똑같은 교과서로 세상을 배웠으며 누구나 누리는 대중교통을 이용했으며 나이에 걸맞은 욕망을 가졌으며 지나고 보면 맹랑한 고민과 걱정을 머리 한쪽에 달고 살았다. 과거는 말하지 않아도 짐작만으로 충분했다. 같은 시대를 살아왔고 살아간다는 동질감을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방대가 덜컥 탈북 사실을 털어놓았다. 우리의 관계가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건이었다. 민수는 이질감을 품었고 나는 언니의 충고를 들었다. 귀를 막고 고집을 앞세워 한사코 결혼을 밀어붙이던 무모한 언니가 아니었다. 언니와 카사노바 개자식이 동남아에 갔을 때 신혼여행과 다름없었을 거라는 짐작은 어렵지 않았다. 언니의 젖가슴을 마음껏 탐닉했을 터였다. 몸뚱이를 서로 탐색한 뒤에 비로소 남녀관계가 시작하는데 남자들은 시작이 아니라 끝이라고 여겼다. 어리석었다. 언니가 꿈꾸던 달콤한 신혼은 신기루였다.
“누구나 자신이 잘못 판단했다고 생각하지 않아. 방대는 이주민일 뿐이야. 지금은 친구이고.”
“내 추측이 틀렸다는 거야? 정체성이 바뀔 것 같아? 어림없어!”
“틀렸다는 게 아니라 언니의 의견이야.”
“아주 중요하지. 무시할 수 없는.”
“아니라곤 말 못 해. 언니니까. 하지만 반드시 따라야 하는 건 아니잖아?”
“나는 네 판단을 받아들였잖아?”
“판단이 아니라 객관적인 사실이었어. 개자식이 유부남이었잖아.”
카사노바 개자식의 정체를 밝혀낸 일은 우연이었다. 우연치곤 천운에 가까웠다. 친한 거래처 직원이 천하에 그런 카사노바가 없다며 미주알고주알 털어대는데 나는 수다 떠는 기분을 즐겼다. 처자식이 있는 줄도 모르고 홀라당 넘어간 여자는 멍청했다. 직원의 험담에 맞장구를 쳐주다가 아무래도 이상하고 뒷골에 서늘한 느낌이 들어 요즘 후리고 있다는 여자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다. 긴가민가하면서도 언니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여자의 나이와 생김새를 물었다. 직원의 말에 따르면 영락없이 언니였다. 직원의 회사가 아니라 거래하는 회사의 실장이어서 한 다리 건너뛴 셈이었다.
직원의 도움을 받아 거래처 회사의 위치를 알아냈다. 미행에 서툴러 거리에서 여러 번 놓치고 회사에서 자가용을 타고 가버리면 속수무책이었다. 몇 번의 실패 끝에 택시를 타고 뒤를 쫓았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집을 알아내고 휴일 오후 골목에서 죽치고 있다가 그놈이 언니 또래의 여자와 여자아이를 데리고 외출하는 것을 보았다. 첫눈에도 틀림없는 가족 외출이었다. 카사노바는 나를 모르지만 나는 개자식의 얼굴을 알았다. 열대 해변에서 쪽빛 바다를 등 뒤에 두고 찍은 언니의 셀카 속에 있는 놈은 바르게 사는 사람을 비아냥거리며 깔보는 비겁함을 숨기고 활짝 웃었다.
“내 경우와 달라. 곰곰이 생각해 봐. 의견이라도 충분히 참작할 수 있잖아? 언니잖아?”
“고려해 볼 수 있지만 만나지 말라는 거야? 정도 들었는데? 매몰차고 야박하게 굴 생각은 없어. 길에서 지나가다 만난 사이도 아니잖아. 민수가 방대를 받아들이고 잘 지낸다면 나 역시.”
“셋이 만나는 판을 깨고 싶지 않다는 거네?”
“직장생활을 견디는 힘이야. 그 재미마저 없으면 세상은 심심한 곳이야. 피곤할 뿐이라고.”
“어련하겠어? 이해할 수 없는 건 하나가 아니고 왜 둘이라는 거야? 모텔도 셋이 가는 거야?”
“언니!”
“취소할게. 가게 된다면 알아둬. 모텔은 둘이 가는 거야.”
“언니, 정말!”
농담인 줄 뻔히 알지만 쏘아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속으로 기분은 좋았다. 언니의 연애는 첫눈에 반한 얼굴에서 시작해 불과 두 달 보름 만에 파혼으로 끝장났다. 언니가 죽이네 살리네 악다구니를 내지르며 파혼을 선언한 뒤 집안 분위기는 살얼음판이었다. 개자식에게 저주와 원망을 퍼부었다. 그러다가 제풀에 지쳐 깊은 침묵으로 들어갔다. 언니는 방으로 들어가서 불도 켜지 않고 어둠 속에 웅크리고 앉아 숨을 죽였다. 세상과 자신을 격리하는 고통스러운 시간은 몇 달 동안 계속됐다. 깊은 우울증에 빠져들었다. 어떤 위로에도 반응이 없었다. 나마저도 방에서 내쫓았다. 생애 처음으로 기만과 배신 앞에 서서 언니는 길을 잃었다.
오랜 믿음이 없는 사랑은 실패할 위험이 컸다. 사랑은 자신의 소중한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행위여서 배신과 기만이 더욱 뼈저렸다. 왜 이렇게 못났을까? 침묵을 깬 언니의 첫 마디였다. 삼 년 사귀었다고 거짓말해서 미안해. 석 달도 되지 않았어. 모텔에 간 것도 일주일쯤 지났을 때야. 벗겨놓으니 볼만했어. 근육 덩어리였어. 단단했어. 하지만 카스텔라처럼 부드러워. 딱딱한 것은 크림치즈처럼 달콤했어. 기술자였어. 언니는 뒷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어설픈 위로보다 토해내는 말들을 조용히 들어주었다. 안으로 삼키는 것보다 밖으로 쏟아낼수록 개자식을 망각 속에 빠뜨릴 수 있었다. 영원히 잊을 순 없지만 우연찮게 떠올려도 희미해져 감정은 덤덤해질 수 있었다.
“어떤 성공이든 실패에 뿌리를 두고 있어. 연애도 마찬가지야. 하물며 내 말도 아니고 네 말이야. 기억해?”
“아니.”
“의견이 아니라 언니의 판단으로 받아들여. 둘 사이에서 어중간하게 어물쩍거리는 짓은 너무 나빠. 정직하지 못하고. 중매는 무덤이고 연애가 행복한 결혼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믿으면 어리석은 거야. 둘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마음은 이해하겠는데 한쪽을 선택해야 해. 이주민은 원주민이 될 수 없어.”
“너무 앞서 나가는 거야.”
“때는 언제나 있지 않아. 놓치면 다시 오지 않아. 결국 엉망이 되겠지. 아끼다가 똥이 된다잖아.”
“언니의 머릿속은 재미있어. 너무 진지해. 한 걸음 더 나가면 코미디야.”
“귓등으로 듣고 있구나. 나도 처음엔 그랬어.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 놀이터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들. 거실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인기척을 무심코 지나쳐 왔지만 너무나 아끼는 것들이었어. 비로소 벽시계의 초침이 쉬지 않고 움직이는 이유를 생각했어.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오는 네 발걸음 소리도 느껴. 햇살들이 나뭇잎에 스며들어 가지를 따라 나무껍질을 타고 내려가 뿌리에 닿는 엄청난 순간들도 떠올릴 수 있어. 햇살이 바람에 흔들려 우왕좌왕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개자식을 미워하고 저주를 퍼붓는 지독한 고통에서 벗어나자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다는 거야.”
“내가 방대를 선택하면 불행해질 거라는 거야?”
“내게 도움을 준 것처럼 나도 너에게 그렇게 할 거야.”
자매 사이라 오지랖이 넓다고 타박할 수 없지만 언니는 확실히 헛다리짚었다. 내게 부채 의식이 있어 과민 반응했다. 파혼 선언 이후 육 개월쯤 지독한 암흑기를 거친 후 언니의 성격은 변했다. 남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도 않았고 외향적으로 바뀌었다. 궁금한 것들은 참고 기다렸던 태도에서 시도 때도 없어 달려들어 반드시 답을 찾아냈다. 내숭 떠는 버릇도 조금씩 씻어냈다.
세 살이나 어리니까 동생으로 대했어. 편하게. 잔심부름도 이것저것 시키고. 군소리 하나 없더라. 남동생이 없으니까 잘 됐다 싶었지. 직급이 낮아 그러는가 했어. 한동안. 그런데 회식 끝나고 헤어져 집으로 가려는데 갑자기 나타나서 길을 막더라. 술 냄새 풀풀 풍기면서 험상궂은 표정으로 오늘이 첫날이에요, 이러는 거야. 날 잡아먹으려는 표정이 어찌나 귀엽던지! 술을 못 마시거든. 얼굴을 시뻘겋게 해서 취한 사람이 막무가내로 화내는 것처럼 우악스럽게 손을 꽉 잡는 거야. 당연히 당황했지. 내일은 둘째 날이에요. 대답도 듣지 않고 말하는 거야. 길거리에서 그래요, 할 수 없잖아. 부끄러운 짓을 하면 얼마나 창피해? 사람들이 힐끗 쳐다보면서 지나쳐도. 전철역 출입구까지 데려다주고 부리나케 도망치는 거야. 냅다 뛰어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 언니의 새살은 그렇게 돋아났지만 직장 후배는 지방으로 발령 나면서 자연스럽게 언니와 멀어졌다.
“피곤해. 그만 자야겠어.”
“꼼꼼하게 생각해. 엄마아빠는 자정 넘어 가게 문 닫고 오실 거니까 내가 기다릴게.”
“고마워.”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방대가 탈북을 털어놓으면서 순간순간 말을 끊고 숨을 깊게 내뱉고 들이마시는 동작과 일그러지는 미간 하며 어디를 보더라도 거짓은 없었다. 압록강을 건너면서 기진맥진해 목숨을 놓칠 수 있는 순간은 평생 잊지 못할 위험한 모험이었다. 목숨 걸고 탈출한 용기는 인정해야 했다.
그러나 민수는 적수를 맞닥뜨린 것처럼 대뜸 날카로운 경계심을 드러냈다. 살아내서 고맙다거나 잘했다거나 하는 응원은 둘째 치고 비난부터 앞세우니 민수는 전쟁의 공포심에 지나치게 매몰되어 있다. 할아버지 세대의 불행은 그것대로 교훈이 있지만 굳이 지나친 피해의식까지 물려받을 유산으로 여긴다면 억지가 아닐까. 피해의식은 상대를 잔인하고 포악하게 다루는 경향이 높았다. 세대가 바뀌고 세상이 변했다. 마음을 과거에 묶어두지 않는 용기가 필요했다. 한편으로 민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녀석이 소심한 편이지만 분단 세력의 편에 서는 것도 자연스러웠다. 잠이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