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갈나무 숲 2

by 이순직

2


“십여 년 전이야.”


방대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흰소리가 분명했다. 여기저기 얻거나 주워들은 얘기를 짜깁기해서 경험담처럼 실감 나게 늘어놓았다. 틈틈이 말을 멈추고 희라와 내 표정을 곁눈질하는 불안한 눈빛에 더욱 믿음이 가지 않았다. 순간순간 지그시 입술을 깨무는 비장함이 엿보이긴 해도 알고 지내온 시간이 사 년 남짓이었다. 낌새조차 눈치채지 못했으니 녀석의 고백은 완전히 거짓이었다. 허우대가 훤칠하고 낯빛도 허여멀겋고 말에 경상 북부와 강원 남부의 억양이 뒤섞여 있었다. 매포가 고향이라 그러려니 했다. 누가 녀석을 평안 북부 출신이라고 추측할 수 있나.


“수애가 예뻤어? 아직도 놓아주지 않은 것 같은데?”


희라가 심술 섞인 목소리로 퉁명스럽게 물었다. 짐짓 뾰로통한 표정까지 지었다. 장난이었다. 동시에 재빠르게 고개를 돌려서 내게 윙크했다. 머릿속으로 앞뒤를 따지는 짓거리가 부질없다는 의미인지 속아주자는 뜻인지 몰라 살짝 혼란스러웠다. 어떤 상황에서도 희라의 뜻을 따라야 했다. 비위에 거슬리게 굴면 눈 밖에 날 터였다. 그동안 들인 공을 생각하면 그녀의 판단을 무시할 수 없었다.


“날이 갈수록 동그랗고 작은 얼굴이 가슴 속으로 파고들어. 미안하고.”


방대의 아련한 눈빛과 꽉 다문 입술을 유심히 바라보는 희라의 표정이 조금씩 굳어졌다. 방대의 고백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여태껏 알고 지내와 흰소리를 나불거리는 성격이 아니라는 그녀의 판단이었다.


“민수야, 넌 알고 있었지?”


그녀가 섭섭하다는 말투로 다그치며 내게 눈을 흘겼다. 몰랐지만, 몰랐다거나 알았다고 말하기에 애매했다. 가장 은밀하고 깊숙한 마음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엄청난 과거를 눈치채고 입 다물고 있었다고 하면 희라가 의아해하며 됨됨이를 의심할 것이고 몰랐다고 하면 입으로만 친구냐고 타박할 게 뻔했다.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장난이야. 힘 풀어. 얼굴 근육.”


희라는 나를 보며 싱겁게 웃었다. 넘겨짚음이 지나쳤다고 인정한 것이다. 지금까지 어울리면서 방대와 엮이기 싫다는 직감이 의지와 상관없이 불쑥 고개를 들기도 했다. 방대는 말수 적어 심심할 때마다 이런저런 말들을 늘어놓기 안성맞춤이라 내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마음속 경계심에 어리둥절했다. 녀석이 잠재적 경쟁자가 될 거라는 막연한 추측을 했어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녀석은 희라와 좀처럼 대화하지 않았다. 그녀가 무엇을 물어도 짧은 대답만 했다. 그런데 녀석의 느닷없는 고백이 난데없어 황당했다. 게다가 더없이 낯설어 이질감마저 느껴졌다. 넘겨짚는 그녀의 속내 역시 거북했다. 내가 수애일까? 그녀가 장난이라도 엉뚱한 물음표를 던질지도 모른다는 아리송한 짐작에 두 사람을 번갈아 살폈다. 수상했다. 어젯밤 얼굴 없는 사내에게 등 떠밀려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끔찍한 꿈이 예사롭지 않았다.


“지금, 날 놀려먹는 거지?”


방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물었다. 녀석의 입술에 의미를 알 수 없는 엷은 웃음이 아주 짧게 퍼졌다. 무슨 뜻일까. 비웃음일까. 대부분 사람이 살아온 것처럼 녀석도 평범하기 그지없는 평화로운 삶을 살아왔다고 무심코 내린 판단은 실수일까. 그런 의문보다 먼저 녀석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해야 했다. 둘이 작당해서 놀려먹으려는 장난을 쳤다면 깜박 속은 사람만 바보였다.


그렇지 않아도 둘 사이가 심상치 않은 낌새는 이미 눈치챘다. 마지막 공연을 관람해 모임이 늦게 끝나면 집까지 데려다주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뒤늦게 허풍까지 떨며 함께 갔다. 싫은 내색을 하지 않는 그녀는 물론이고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녀석의 태도도 미심쩍었다. 화장실에 간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슬쩍 뒤돌아보면 방대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비록 느낌이긴 하지만.


“어머니가 매포에 계신다며?”


적절한 물음이었다. 그러나 당황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녀석의 표정은 한층 침울해졌다. 능선에서 수애의 집을 핥는 플래시 불빛을 내려다보는 표정이랄까. 곤혹스러움이 주근깨처럼 점점이 박혀 있다.


“재혼했어. 날 데려오려고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돈이 꽤 들어.”


뭐라도 한마디 하면서 녀석과 나의 팽팽한 신경전을 누그러뜨릴 만도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작게 끄덕거렸다. 아무리 양보해도 희라는 녀석이 평안도 놈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않았을까. 분명했다. 방대에게 향하던 배신감이 그녀에게 몰려갔다. 손가락으로 꼽는 가까운 친구인데 엄청난 과거를 숨기고 있는 걸 빤히 알면서 그녀는 내게 귀띔조차 하지 않았다.


“너는 알고 있었지?”


그녀에게 물으면서 말에 날을 세웠다. 나는 삐졌다. 방대가 나타나기 전에 그녀를 알았고 친구와 연인 사이를 줄타기하며 짜릿한 감정을 나누지 않았나. 적극적으로 밀어붙였다면 방대가 나타나기 전에 애인이 되었을 것이다.


“방대가 얘기했잖아? 숨기는 것 없이. 나도 지금 알았어.”


희라의 대꾸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탈북을 학교 담벼락 넘는 경험담쯤으로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듣고 있지 않았나. 그동안 둘이 얼마나 나를 같잖게 여겼을까. 시시덕거리며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할 때마다 맞장구친 것도 녀석의 본심이 아니었다. 물에 빠진 사람을 살려놨더니 탈북자들끼리 똘똘 뭉치는 작태는 참으로 꼴불견이라고 서너 번 투덜거렸다. 현충원에 잠들어 계신 할아버지는 그만두더라도 유복자로 태어나 온갖 고생을 하며 하루하루 버텨온 아버지를 떠올리면 피가 뜨거워졌다. 그런 상처와 아픔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가도 낫지 않았다. 경계심은 더욱 두터워져 적개심으로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녀석을 향한 것인지 녀석의 고향을 향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았다.


“털어놓지 않고 친구로 지낼지 며칠 고민했지만 진짜 친구로 다가서려면 얘기해야 한다고 믿어.”


방대의 변명은 말이 되지 않았다. 차라리 그동안 속이는 짓이 양심에 걸려 어쩔 수 없이 털어놓는다고 해야 솔직했다. 잎갈나무 숲에 매장한 할아버지의 군번이 어쩌고 은근슬쩍 흘려도 결국 말뿐이지 않은가. 주민증을 받으면서 신분 세탁은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왜 끝까지 숨기지 않는지 도무지 속내를 짐작할 수 없었다. 하나에서 열까지 믿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나를 속인 맞장구친 말들이나 고개 끄덕거림이 얼마나 엄청난 위선인지 고스란히 드러났다. 방대는 등 뒤에서 이념으로 중무장하고 앞으로 선량한 서민으로 위장했다. 탈북자가 그랬다.


“일부러 숨긴 건 아니야.”


녀석의 고백이 헛소리라고 하기엔 꺼림칙했다. 둘도 없는 친한 친구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정체성과 관련 깊은 얘기는 누구든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따라서 고백의 이유와 배경에 짐작할 수 없는 모종의 흑심이 있다. 당연하거나 그럴 수 있다며 넘어가는 일들에 비열한 계략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사람을 믿는 것이 위험한 짓이 되어버린 세상에 발가벗는 것이 있을 법한 일인가.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소나기에 온몸이 흠뻑 젖고 난데없이 얻어맞은 뒤통수에 머리가 얼얼했다. 이질감과 배신감이 휩쓸고 간 가슴에 상처만 가득했다. 맞장구만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엉망이 아닐 것이다. 여러 갈래로 바쁘게 흩어지는 생각들을 붙잡을 수 없었다. 마음이 뒤숭숭했다.


“말하지 않았을 뿐인데 결과적으로 속였으니 미안해. 진심이야.”


녀석의 말투에서 미안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느끼고 싶지 않았다.


“혜산 출신이 대단한 잘못도 아닌데 속이느니 어쩌느니 할 게 뭐가 있어? 우린 다 같은 사람이잖아? 그곳에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는 거야. 전쟁은 옛날 일이라고. 지금은 평화롭잖아?”


희라의 말에 실망했다. 고향은 선택할 수 없다. 그러나 숱하게 보았던 산등선이나 늘 다니던 길들이나 골짜기를 타고 내려오는 바람이나 이웃들의 왁자지껄한 목소리들은 기억의 가장 밑바닥에 깔려 있어 삶의 숱한 선택에 줄기차게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수상한 작태를 일삼았다. 역사는 되풀이한다더니 할아버지 때처럼 뒤숭숭한 분위기를 조장하려는 불순한 세력은 지금도 여전히 있다.


“방대는 알 거야. 내가 유복자 아들이란 걸.”


“유복자? 복자? 복자는 너무 촌스럽잖아?”


희라는 가는귀먹은 것처럼 엉뚱한 말을 내뱉었다. 팽팽한 긴장을 풀려는 의도는 빤히 보이지만 그녀의 장난스러운 물음에도 딱딱한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그녀의 농담이 오히려 비아냥거림으로 느껴졌다. 불행한 과거는 잊고 미래의 행복을 위해 손잡자는 헛발질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다.


청산하지 못한 과거는 반드시 되돌아왔다. 어정쩡한 화해로 과거와 손잡는다고 해도 전쟁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할 수 없었다. 백번 양보해서 녀석의 고백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고스란히 믿는다면 피지배층 개인으로서 방대에게 이념이나 체제의 거부감을 덧씌울 필요는 없다. 희라가 방대를 받아들이는 태도처럼. 혜산과 생판 다른 서울에 적응해서 이럭저럭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흐뭇했다. 그러나 그녀에게 조금씩 다가서려는 녀석의 발걸음을 멈춰야 했다. 방대가 그녀를 독차지할 수 있다는 우려가 꿈틀거렸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이북의 사고방식은 여전히 남아 있을 터였다.


“누구나 과거에서 자유롭지 않아. 희라도 알지?”


“무슨 얘길 하고 싶은 거야?”


“어떤 선택이든 책임이 뒤따른다는 거야.”


“그쯤은 말하지 않아도 알아.”


그녀는 냉정하게 말했다. 입술을 꾹 다물고 있는 방대의 흔들리는 표정에서 친구를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간절한 바람을 읽었다. 염두에 두고 싶지 않았다. 둘 사이에 믿음이 쌓여 있었다. 분명했다. 물러설 수 없었다. 더구나 녀석의 출생지를 온전히 개인적인 몫으로 여길 수 없다는 고집이 마음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유복자의 아들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마음 저 아래에 짙게 남아 있는 응어리를 갖고 있었다.


영문도 모른 채 일요일 아침 느닷없이 뒤통수를 두들겨 맞아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세상 앞에서 망연자실했던 때가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았다. 포격에 부서진 건물이며 굉음을 내며 밀고 들어오는 탱크며 골목이나 큰길을 가리지 않고 쏟아져 나와 한강대교를 건너는 수많은 피난민이며 포탄과 총알이 밤낮없이 쏟아지는 고지에서 두려움에 떠는 병사들이 수십 년 지난 우리의 삶과 상관없는 사건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녀에게 에둘러 말하고 싶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녀에게 옛 노래일 수 있다. 그녀의 반대편에 서는 것이 꺼림칙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세상은 희라가 보고 싶은 것만 보여주었다. 착잡했다.


“예상은 했지만 편견을 버릴 수 없어?”


방대는 안쓰럽고 애처롭다는 눈빛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눈빛을 맞받아 되돌려 주었다.


“편견? 혜산이 너에게 고향일지 몰라도 내겐 의미 없어. 오히려 치를 떨어야 할 곳이야.”


서늘함이 담긴 눈빛 화살을 쏘아붙였다. 태어날 곳을 정할 수 없으니 원죄가 없다는 식으로 얼버무리는 변명에 어리숙하게 넘어가지 않았다. 방대는 태어나 자라면서 스펀지처럼 이념과 체제를 고스란히 받아들였을 것이다. 십여 년 전이라 했으니 얼마나 머릿속이 바뀌었을지 몰라도 버릇이나 사고방식이 완전히 탈바꿈했다고 믿을 수 없었다. 혜산은 여전히 녀석의 머릿속에 남아, 생각의 방향을 설정하고 선택할 여러 항목 중에서 하나를 결정하는데 영향을 미칠 터였다. 무엇보다 녀석과의 다툼에서 밀리면 방대에 대한 그녀의 호의를 멈출 수 없었다. 비록 방대가 훤칠하다고 해도 남자가 몸뚱이로 사는 시대는 지났다. 껍데기보다 알맹이가 중요했다.


“나는 단순히 나야. 너와 똑같은 사람이고. 당 간부 집이라면 고백 따위는 하지 않았을 거야.”


“그래? 그 말이 더 무섭네. 필요해서 말했다는 거네.”


“너무하는 거 아니야? 쌓아온 우정 때문이야.”


방대는 단단히 결심하고 있는 그대로 얘기하는 진정성을 내가 헌신짝처럼 내팽개친다는 식으로 몰고 갔다. 그녀 앞에서 우정을 나누며 가졌던 든든한 연대감을 가차 없이 부숴버리려는 파렴치한으로 보이게끔 했다. 괘씸했다. 희라의 마음을 한 줌 더 사려는 못된 짓이다. 그녀 눈에는 확실히 속 좁은 좀팽이로 보일 수 있었다. 물설고 땅 설은 서울에서 남에게 손 벌리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혜산 놈을 칭찬하고 용기를 북돋워도 모자랄 판에, 잊어도 좋을 흘러간 노랫가락에 갇혀 방대를 무시한다고 믿을 터였다.


동숭동에서 얼큰한 취기에 몸을 맡기고서 낡은 것들은 가고 새로운 세상이여 어서 오라, 호기롭게 외쳤던 패기는 언제 쓰레기통에 버렸느냐고 비아냥거릴 판이었다. 그러나 정작 억울한 쪽은 오히려 나였다. 친구를 잃고 여자도 잃는 외통수에 꼼짝없이 갇혀버릴 수 있다. 녀석이 나타나기 전까지 그녀와 캠퍼스 커플로 보일 만큼 단짝이었다. 시험을 앞두고 열람실에서 같이 공부했으며 틈만 나면 카페를 아지트 삼아 자질구레한 일상들을 얘기하는 작은 즐거움도 나누었다. 크고 엄청난 사건보다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작고 사소한 일들이 만들어 놓은 추억의 뿌리는 훨씬 건강하고 따뜻했다. 그런데 방대에게 자꾸 눈길 주는 희라를 그냥 놔두었다간 손발이 잘려 나가는 끔찍한 통증을 느낄 거라는 막연한 예감이 마음 안쪽에서 조급하게 꿈틀거렸다.


“흔들리고 멀어지기도 하지만 친구 사이잖아? 네가 방대라면 우정을 믿고 엄청난 얘기를 할 수 있어?”


“비교하는 거야?”


“말이 그렇다는 거지.”


대놓고 녀석의 편을 드는 희라가 슬그머니 미웠다. 마음이 녀석 쪽으로 기운 것 같지만 나름대로 중재하려는 의도였다고 해도. 그녀의 태도로 보아 나에게 향한 마음의 문은 닫지 않았다. 그런데도 느닷없이 섭섭함이 밀려왔다. 카페 창가에 희라와 둘이 앉아 넉넉한 마음으로 한가롭게 늦봄 햇살을 받으며 건널목을 건너는 사람들을 무심히 바라보던 순간들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느긋함과 잔잔함과 고즈넉함이 오후의 햇살을 받아 조용히 뒤섞이면서 이윽고 한데 뭉쳐져 만들어내는 카페의 한가로움이 새삼 그리웠다.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시간이 영원히 멈춰버렸으면 하는 간절함을 다시 느껴볼 수 있을까. 포기하지 않으면 방대를 떨쳐낼 기회는 반드시 온다는 생각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전투의지가 활활 타올랐다.


“의붓아버지와 짝짜꿍이 맞지 않겠네? 아무래도.”


녀석의 서툰 적응기를 듣기보다 빈틈을 노렸다. 꼬치꼬치 캐묻다 보면 먼지라도 나올 것이다. 먼지가 뭉쳐져 덩어리로 커지고 육중한 바위로 탈바꿈해 꼼짝달싹 못 하는 구석으로 몰아넣을 순간도 어김없이 다가올 터였다.


“아직도 입에 붙지 않아. 목사님이라고 하니까.”


“그건 좀, 그렇다. 엄마가 섭섭하시겠네.”


“어쩔 수 없지. 어렸으면 몰라도 머리통 굵은 다음에 만났으니 쉽지 않아.”


“노력은 해야지. 가족이잖아?”


“동거인도 가족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자소서 쓸 때도 비워뒀어.”


“가족관계증명서에 동거인으로 되어 있어? 새아버지가 너무했다.”


“성을 바꾸고 싶지 않았어. 할아버지는 여전히 가슴 속에 살아 있으니까. 후벼 파낼 수 없어. 때때로 고통스러워도 버릴 수 없어. 운명이라고 생각해.”


“그래도 살아갈 날들이 많은데 동거인이라니. 좀 심했다.”


희라와 방대의 대화를 가만히 들으니 틈이 조금씩 벌어지고 있었다. 그녀의 진심 어린 충고일 수 있지만 작은 틈이라도 벌어지기 시작하면 계곡과 계곡 사이처럼 멀찍이 떨어질 터였다. 급기야 돌이킬 수 없는 관계로 틀어지면 자연스럽게 그녀의 가슴 속에 있는 마음의 땅에 승리의 깃발을 꽂을 수 있을 것이다. 불쏘시개를 몇 개 더 던질 필요가 있다.


“엄마가 지옥에서 건져 올려준 셈인데 효도한다고 생각하고 고집 좀 꺾지?”


“아니.”


녀석의 빠르고 단호한 대답에 그녀가 깜짝 놀라는 표정으로 눈살을 찡그렸다.


“여기 시선으로 보면 지옥이겠지만 저쪽 시선으로 보면 여기도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지옥은 한 군데 붙박여 있는 게 아니야. 장소의 개념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야. 관점이라고.”


“정말 그럴까? 자유가 없잖아?”


그녀는 발끈했다.


“고향 사람들은 하늘 아래 자유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니까, 중요하지 않아.”


방대는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녀석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조선왕조가 비참하게 끝나자 일제 총독부의 혹독한 통치가 이어지고 그 뒤로 살벌한 김 씨 핏줄 아래에서 살고 있으니 당연했다. 자유가 물건처럼 만지고 냄새 맡고 두들겨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밀수조차 할 수 없으니 세상에 있다고 믿을 리 없었다. 차라리 밥짓기를 목소리로 안내하는 전기밥솥을 신봉하는 편이 쉬웠다. 당연히 없다고 여겼던 관념들이 있다고 빡빡 우겨본들 미친놈이라며 손가락질당하고 급기야 목숨까지 내놓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그런 상황에 놓여 있으니 가엽다거나 불쌍하다거나 노예로 살고 있다는 지적질이 자기중심적이고 편향적인 행동이었다. 인권을 중요시하는 태도는 인류사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찰나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건 어디까지나 네 판단이고 자유 없이 사는 사람들이 불쌍하지도 않아?”


희라의 다그침에 방대는 심드렁한 얼굴이었다. 그녀는 녀석의 무덤덤한 반응에 화가 나는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민수가 지옥이라고 하는 거야. 너는 마음껏 자유를 누리면서 한때나마 함께 살았던 사람들을 나 몰라라 하는 짓이 부끄럽지도 않아? 수치스럽지 않으냐고?”


그녀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이거, 재밌게 돌아가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틈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벌어져 주먹이 들어가고도 남았다. 바람이 들어가고 나오고 빗물이 스며들어 불쏘시개를 던지지 않아도 스스로 널찍하게 벌어질 것이다. 아무리 잔잔하고 듣기 좋다고 해도 잔소리는 잔소리였다. 짜증 날 수밖에 없어 어느 한순간 감정이 급격하게 요동쳐 판단을 흐리게 할 터였다. 잘못되고 엉터리여도 누구나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판단을 옹호하고 강화했다. 급기야 자살을 결심할 때도 죽을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한없이 너그럽고 옳다고 믿었다. 소름 끼쳤다. 자신을 죽이는 순간까지도 판단이 형편없었다거나 잘못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다니. 그런 어리석음은 누구에게나 가슴 저 밑바닥에 독사처럼 꽈리를 틀고 있다. 사람은 그런 존재였다.


“저쪽에서 살아봤어? 함부로 말하지 마.”


방대는 입술을 떨었다. 분노보다는 무시였다. 그녀는 갑작스러운 녀석의 말투에 멈칫 놀랐다. 가슴 아픈 일은 항상 한꺼번에 몰아닥친다고 했던가. 그녀는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숨을 짧게 내쉬었다. 나는 입가에 살며시 번지는 웃음을 억지로 짓눌렀다. 멀찌감치 서서 팔짱 끼고 싸움 구경할 때처럼 마음이 편안해졌다. 둘 중 하나는 이 말다툼을 뼈아픈 패배로 받아들여 치욕을 느낄 것이고 그런 격한 감정으로 인한 판단은 행동의 변화를 불러왔다.


“살아봤네 어쩌네 하는 물음도 결국엔 자기 합리화를 위한 변명이야. 우위에 서려는 치사한 협박이야. 경험의 빈곤이 피할 수 없는 단점이라고 확신하는 짓은 나쁜 태도야. 공감치는 언제나 경험치를 뛰어넘어. 무슨 말인지 알아? 공감한다는 것은 간접경험을 한다는 거야.”


역시 순순히 물러설 그녀가 아니었다. 열렬히 손뼉 치면서 응원하고 싶지만 은근슬쩍 걱정이 앞섰다. 싸우다 정 든다고 하는데 이간질하다가 미팅 주선자로 나서는 꼴일 수도 있다는 불길한 예감 때문이었다. 고운 정보다 미운 정을 떼어내기가 더 어려웠다. 녀석을 아집으로 똘똘 뭉친 위선자로 몰아붙일 강력하고 결정적인 불쏘시개가 필요했다. 희라를 두고 방대와 경쟁한다는 의식을 스스로 북돋아야 했다.


“공감? 간접경험? 웃기는 얘기야. 공감도 경험이 바탕이야. 엇비슷한 경험조차 없이 어떻게 공감한다는 거야? 말장난하지 마.”


녀석도 단호했다. 처지를 바꾸면 틀린 주장도 아니었다. 배고픔을 느껴보지 못하고 굶주림을 얘기하는 것은 수박 겉핥기나 자기 우월의 과시였다. 평행선으로 달리는 두 사람을 격렬하게 부딪치게 해서 녀석이 그녀에 대해 혀를 내두르고 손발을 들게 하는 불쏘시개가 필요했다. 이간질은 언제나 달콤했다.


“혜산이든 서울이든 부모 마음은 똑같지 않을까? 비록 동거인이라고 해도 어머니와 사는 사람인데 목사님이라고 하는 건 벽을 치고 있다는 얘기잖아? 강을 건너도록 도와줬다며? 아버지 역할을 해도 목사님일까? 아니면 그 중간 어디쯤? 어쨌거나 불편한 관계를 해소하지 않는다면 적응했다고 할 수 없고.”


어떤 말다툼에서든 가족 사이의 사소한 문제조차 치명적인 약점이다. 녀석은 불쑥 끼어들어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나를 불편한 눈으로 쏘아보았다. 지나치게 앞선 바람일지도 모르겠지만 가족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남자와 사귄다는 것은 확실히 위험하다는 메시지를 그녀가 읽어주길 원했다.


“그건 어디까지나 내 문제야. 할아버지를 잊지 않겠다는 거지. 너희들이 참견할 문제가 아니야. 내 삶을 내가 사는데 이러쿵저러쿵 말할 자격이 없어.”


“친구 사이잖아? 당연히 걱정하고 염려해야지.”


그녀가 대뜸 맞받아쳤다. 생각보다 빠른 그녀의 대꾸에 녀석은 자신의 고백이 객쩍은 짓이었다며 뒤늦게 후회하는 걸까.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난처한 표정으로 고개 돌려 통유리 밖을 내다보았다. 녀석의 시선을 쫓았다. 평소와 다름없이 거리는 시끌벅적 복작거렸다. 버스와 자동차는 쉴 사이 없이 지나다니고 몇몇 사람들은 무리 지어 앉아 관람평이나 일상의 소소한 얘기들을 나누고 버즘나무 아래에서 기타를 치는 사내도 있었다. 조금씩 기울어지는 햇살 사이로 유모차를 끌고 산책하는 여자도 보였다. 천천히 걷는 걸음은 여유로웠다. 비록 순간이지만 산책하는 여자에게서 평온함을 가져와 마음에 담았다. 유모차를 끄는 여자에게서 나른한 평온함을 느낀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사람이 서로 이어져 있다는 걸까. 비록 개인적인 일이라고 하더라도 온전히 개인적인 것들은 없다는 것일까. 의도했든 아니든 만나면 나비의 날갯짓처럼 작더라도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것이 운명조차 바꿔버리는 거대한 태풍으로 커간다는 얘기가 떠올랐다.


찬찬히 돌아보면 방대가 나타나고 나서 희라와 관계가 미지근한 상태로 멈춰버린 것은 사실이었다. 앞으로 나아가지도 않았고 뒤로 물러선 것도 아니었다. 어정쩡하고 때로는 서먹서먹했다. 방대의 느닷없는 고백이 태풍으로 커갈지 어쩔지 모르겠지만 오늘 모임을 집어삼키는 블랙홀이었다. 고백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어두운 관객석에 앉아 숨죽이며 무대를 즐기고 있을 것이다. 해가 뉘엿뉘엿 기울쯤 왁자지껄한 홀에서 맥주를 마시며 잊어도 좋은 푸념을 늘어놓으면서 느리게 지나가는 시간을 답답해할 터였다. 청춘이 뿌리내릴 수 없는 세상을 욕했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갈 때쯤이면 했던 얘기들이 얼마나 실속 없는지 되새김질하며 허탈해할 터였다.


“고맙긴 한데 정도가 심한 것 같아서.”


방대의 말에서 후회하는 느낌을 받았다. 녀석을 살폈다. 고백의 용기는 온데간데없고 주눅 들어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을 수 없는 난처한 속내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러나 충고를 받아들여 고집을 꺾을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희라는 수애와 자신을 비교하는 장난치던 마음 상태가 아니었다. 거리감을 느낄 수 있는 표정과 눈빛으로 녀석을 빤히 쳐다보았다.


불과 한 시간쯤 지났을 뿐인데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친구로서 가지고 있던 상대에 대한 신뢰나 당연한 추측들이 박살 나버려 곤혹스러운 것은 피차 마찬가지였다. 상처뿐인 마음을 움켜쥐고 헤어진다면 찝찝할 뿐만 아니라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가득 안고 각자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는 셈이었다. 모임도 박살 날 수 있었다. 졸업 후 경제적 이익과 관계없는 만남이 정서적으로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되었던가. 셋이 만나다가 둘이 만나면 어딘가 어색하고 중요한 나사가 빠진 듯 허전해 아쉬워할 것이다.


녀석을 그녀로부터 떼어내고 싶으면서도 친구로서 우정은 가지고 가고 싶은 욕구를 정서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함께한 시간과 추억을 애써 버린다고 해도 버려지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서로가 알고 있었다. 탈북자라는 꼬리표를 붙여 결별한다면 살면서 내내 그림자처럼 기억이 따라붙어 사소하지만 씁쓸함을 불러일으킬지도 몰랐다. 혹은 상전벽해란 말처럼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섣불리 관계를 끊는 것은 너무 대책 없는 짓이라는 얍삽한 계산이 깔린 것인지도 몰랐다. 녀석이 아버지와 목사님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우유부단을 나 역시 가지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것부터 하나씩 차근차근 풀어봐. 행복해지자고 사는 거잖아?”


희라는 진이 빠졌는지 듣기 좋게 말했다. 그녀도 그렇지만 나도 방대의 완고한 고집과 솔직한 고백 앞에서 모임을 계속할 수 있을까, 염려했다. 길을 찾을 수 없었다. 함께 몰려다닐 때는 녀석이 없어도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빤하게 짐작할 수 있었지만 상황이 달라져 어떤 일을 계획하고 어떤 일이 불시에 녀석을 집어삼킬지 예상할 수 없었다. 서울은 확실히 혜산보다 복잡하고 불확실성이 높았다. 밤길은 물론이고 으쓱한 곳에서 강간하고 갈취하고 이유도 없이 살인하는 일들이 심심찮게 일어났다. 상상하기 싫지만 녀석 안에 외로운 늑대가 웅크리고 있을지 누가 장담할 수 있나. 그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 잡자 방대에게 살짝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시나리오가 많을수록 길은 찾기 쉬웠다.


“온전히 믿을 수 없더라도 친구로 받아주는 것만 해도 고마워.”


“북에서 태어났다고 원죄를 뒤집어씌우는 분위기가 수상한 거지. 넌 아무 죄도 없어. 더구나 할아버지가 국군포로라며? 보상은커녕 원죄라니! 말도 되지 않아.”


“말하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늘 마음 한쪽이 무거웠거든.”


“지금이라도 말했으니 훌훌 털어.”


그녀의 말을 듣자니 녀석에게 마음의 거리를 멀찌감치 두고 있을 거라는 판단은 틀렸다. 외로운 늑대고 불쏘시개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한 가닥 희망적인 근거는 누구를 막론하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끈질긴 전통이다. 그녀도 예외는 아니다.


“친구라곤 너희뿐이야. 이제 정말 친구인 거야. 마음이 힘들 때마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그렇게 생각해 준다니 나도 기뻐.”


그녀가 웃었다. 이런 분위기에 불쏘시개를 던진다면 외톨이로 찍혀 구박받는 건 당연했다. 직장 동료를 대하듯이 상황에 따라 판단하되 도망칠 구멍은 만들어 놓아야 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강을 건너는 모험은 정말이지 엄청났어. 무사히 기슭에 닿았으니 망정이지 떠내려갔으면 세상에 네가 있는 줄은 몰랐을 거야. 압록강 강물에 이북의 사고방식이 떠내려갔으면 더 좋을 텐데 말이야.”


“민수야! 말끝에서 그렇게 꼭 삐딱선을 타야겠니?”


“그랬으면 좋겠다는 거지.”


그녀에게 맞서봐야 손해였다. 살살 구슬려서 내 쪽으로 더 가까이 다가서게 해야지 스스로 재 뿌릴 필요는 없었다. 멋쩍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녀석이,


“당연하지. 살기 위해서 강을 건넜는데. 걱정하지 마.”


라고 대꾸하며 마음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다는 듯이 밝게 웃었다. 어색하게 반웃음을 지으면서 그녀를 슬쩍 곁눈질했다. 말다툼이 끝났다는 안도감이 보였다. 과연 매듭이 지어졌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공연 시간이 코앞에 다가왔지만 누구도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자고 말하지 않았다. 통유리 밖을 보거나 물끄러미 탁자를 내려다보거나 눈에 익은 실내장식들을 괜스레 휘둘러보았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거대한 바위가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자신의 주변에 강을 건너온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그녀는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걸까. 태어나 자라면서 자아를 갖기 전까지 주위에서 보고 듣는 모든 것이 무의식 속에 깊게 가라앉아 유년의 뼈대가 되는데 마음 밑바닥에 달라붙어 운명을 만드는 원동력인 그것이 강을 건너왔다는 이유만으로 사라질까. 씻어낼 수 있을까. 수없이 물음표가 떠오를수록 의문은 몸집을 부풀렸다. 머릿속은 더욱 엉망진창으로 뒤죽박죽이었다. 분명한 사실은 나는 유복자의 아들이다. 그것은 유년의 뼈다. 나는 충분히 방대를 견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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