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갈나무 숲 5

by 이순직

5


버스터미널에서 벗어났다. 민간인보다 군인이 쉽게 눈에 띄었다. 부식차가 꽁무니에 먼지를 뿌옇게 매달고 꾸불꾸불 산길을 힘겹게 기어오르던 풍경이 떠올랐다. 황금마차를 손꼽아 기다리던 간절함도 뒤따랐다. 철책선 초소에서 망원경으로 전방을 살펴보면 북한군 초소가 보였다. 웃통 벗은 북한군 몇 명이 초소 옆 공터에서 헐떡거리며 얼차려 받는 모습을 걸핏하면 볼 수 있었다. 유복자의 아들이라는 자의식에 경계심이 있으나 인민군도 고통스럽고 치욕스러운 군 생활을 한다고 여겼다. 무슨 잘못했는지 알 수 없으나 땡볕을 고스란히 맞으면서 맨손체조 같은 동작을 몇 시간째 계속했다. 심하게 두들겨 맞는 장면도 숱하게 보았다.


전역 후로 날이 갈수록 군복무의 기억은 조금씩 흐려져도 몇몇 장면은 화상자국처럼 마음에 남았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고 포장하지만 철책선을 기준으로 이쪽이나 저쪽 모두의 현실은 강제노역이었다. 누구의 인생에서든 군복무는 건너뛰거나 버려지는 시간이었다. 돈 있고 빽 있는 집은 이런저런 이유를 들이대며 군복무를 피하거나 막다른 골목에 몰려 갈 수밖에 없으면 꿀 보직으로 발령받는 은밀한 전통이 있었다. 방대가 탈북자라고 고백하기 훨씬 전에도 철책선 너머는 위험한 세계였다. 증거는 고작해야 얼차려 받거나 폭행당하는 북한군을 확인하는 정도지만 전쟁의 기억은 내게도 있었다.


“형님 덕분에 외박받았습니다.”


듣기 어색했다. 사촌 동생은 군대 말투였다. 혈색 좋던 얼굴은 구릿빛이고 걷는 동작도 맺고 끊음이 딱딱했다. 피 끓는 청춘이 울타리 안에 갇혀 날마다 똑같은 시간표와 규칙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억압을 견디는 것만으로도 대견했다.


“요즘 곰신은 없다더라. 다들 거꾸로 신지.”


“싫어서 떠났으면 괜찮은데 기다릴 수 없어 떠난다니 억울합니다.”


“어쩌겠어? 어디 너뿐이겠냐?”


“그래도 억울합니다.”


“개병제를 바꿀 수 없는 현실이잖아?”


사촌 동생의 감정을 들쑤시는 말은 불행의 씨앗으로 싹틀 수 있어 조심스러웠다. 혹시나 총기 사고를 내거나 탈영이라도 한다면 걷잡을 수 없이 일은 커져 삶의 한 뭉텅이를 통째로 잘라내야 했다. 총기 사고와 탈영은 언론으로 알려지지 않지만 실제로 매년 일어났다. 내가 군복무 하던 무렵도 마찬가지였다. 행동이 굼뜨다는 이유로 관심사병으로 만들고 괴롭힘의 대상으로 콕 찍었다. 동네북으로 전락한 병사는 간부에게 관리받기는커녕 조롱의 대상이었다. 같은 조로 묶여 초병 근무에 투입되는 걸 모두 꺼렸다. 철책 근무여서 실탄을 받았다. 염려하던 일이 결국 터졌다.


새벽녘 총소리에 부대는 비상이 걸렸다. 동료 초병이 후방 경계를 하는 찰나에 관심사병은 옆 초소를 향해 연사로 소총을 발사했다. 다행히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병사는 영창으로 끌려갈 예정이었다. 후방부대로 전출하기 몇 시간 전에 불쑥 내게 말했다. 이 상병님, 마음먹었으면 맞춰서 골로 보냈을 겁니다. 중대장은 총기 점검 중에 일어난 오발 사고로 축소 보고를 했으나 한 달 후 전출명령서를 받았다.


“엿 같은 시대를 살아야 하니 짜증 납니다. 십자군도 모병제였잖습니까?”


“그랬나? 네가 그렇게까지 생각할 줄은 몰랐네.”


“군인으로 살겠다고 선택했다면 불만이 없는데 끌려왔잖습니까?”


“선택하지 않은 삶이라. 어렵네.”


“한시적이지만 피 끓는 청춘을 고스란히 꼬라박잖습니까?”


“그러네.”


녀석이 억울한 감정을 추스를 수 있다면 속에 쌓인 울분을 내뱉도록 들어줘야 했다. 답답한 마음에 갇혀 있는 말들을 모조리 끄집어내 뱉어버리면 얼마간 진정할 수 있지 않을까. 휴가 나올 때까지 견뎌낼 수 있지 않을까. 신성한 의무라고 윽박지른다면 역효과가 날 터였다. 피할 수 없는 인내의 시간이라고 맞장구쳐 주는 쪽이 현명했다. 욕하면서 속이 후련해진다면 대상이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인연을 만들고 사랑을 싹틔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떠나보내야 하고 때에 따라 치열한 경쟁에 기꺼이 뛰어들어야 했다. 내가 그랬다. 방대의 고백은 선전포고와 다를 바 없었다.


“숱하게 전쟁하는 나라도 모병제인데 이게 무슨 짓거립니까? 나라가 이토록 심하게 개인의 삶에 끼어들어 젊은 날을 뭉텅 잘라내는 건 잔인합니다. 아무리 분단이라지만.”


“맞는 말이야.”


“군대만큼 계층적이고 억압적인 조직이 없잖습니까? 사회생활 하기 전 일찌감치 억압에 익숙해지도록 국민을 길들여서 일부 세력만 혜택을 누리지 않습니까? 다수가 소수를 위해 살아라. 그 수작이 먹히도록 세뇌하고 있잖습니까? 생각할수록 울화통이 터집니다. 나라가 위험할 땐 국민이 나서고 권력은 일부 세력이 대대손손 움켜쥐고.”


“여자 때문에 아나키스트가 된 거야?”


동생의 눈이 갑자기 벌겋게 충혈하더니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아차, 싶었다. 건들지 말아야 할 것을 후벼 파낸 셈이었다. 세상의 반은 여자라고 해도 정신 승리라고 놀림받을 터였다. 남녀는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내밀한 마음 나눔을 주고받는 관계여서 입조심해야 했다. 사랑처럼 위대하면서도 동시에 위험한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 앞에서 누구나 골머리를 앓는다.


동생이 인제에서 군복무 하는데 면회 같이 갈까? 희라에게 전화했다. 전방 지역에 와보면 숱한 젊음이 얼마나 엄청난 희생을 하는지 피부에 생생하게 와닿을 것이고 지역 주민들의 불편한 일상도 눈여겨 살필 수 있었다. 방대를 호감으로 대할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방대의 얍삽한 선전포고를 단번에 무너뜨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눈으로 확인하면 녀석이 위험한 땅에서 건너온 위험한 놈이라 믿을 터였다.


기대감이 잔뜩 부풀어 올랐다. 그러나 희라는 동행을 거절했다. 두어 번 졸랐지만 희라는 완강했다. 섭섭해도 대놓고 삐지거나 툴툴거릴 수 없었다. 그랬다간 밉보일 뿐이었다. 아쉽지만 다음에 기회를 엿보기로 했다. 사촌 동생의 전역은 넉넉하게 남았다. 희라와 조금 더 친밀해지면 동행은 낯설지 않을 터였다. 바쁘다니 어쩔 수 없지. 나중에 같이 가자. 콧바람 쐬는 것도 좋은데. 여전히 미련 남은 말투로 말했다. 시간을 뺄 수 없어. 다녀와서 전화 줘. 희라는 미안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전화 끊고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아나키스트가 될 만큼 사랑했다는 거네.”


뒤늦게 희라의 거절이 고마웠다. 그녀가 있었다면 뼈아픈 속내를 털어놓을 분위기가 아니었다. 면회까지 함께 올 정도라면 애인이 분명하다고 여길 것이다. 오장육부가 뒤집혀 떠나간 여자에게 원망과 저주를 퍼붓다가 온 정신이 복수심에 불타서 무모한 행동을 충동적으로 할 가능성도 있었다. 관심사병으로 전락해 괴로운 군복무를 할지도 몰랐다. 살아온 날들을 되짚어볼 시간은 늙어서도 많다는 사실을 알아채기엔 너무 젊었다.


동생은 울음을 목구멍 안으로 억지로 삼켰다. 그럴 때마다 굵은 눈물이 탁자 위로 뚝뚝 떨어졌다. 머리 숙여 떨어진 눈물들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런 녀석을 바라보는 나는 마음이 짠해져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군인이 아니라 군복이 눈에 들어왔다. 민간인이 죄수복 보듯 멸시하는 군복 안에는 차돌도 씹어 먹는 청춘이 있었다. 동생도 있었다. 나도 눈가가 촉촉해졌다. 방대는 수많은 청춘이 군복에 갇혀 있는 잔인한 현실을 짐작이라도 할까?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끔찍한 현실이 무엇 때문에 지금 여기에 있는지 추측이라도 할까?


“그 애는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것처럼 아무것도 모릅니다. 눈앞에 있는 것들에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수준입니다. 지켜줄 수 없어 마음이 아픕니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뜬금없이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정신이 얼얼했다. 버려졌으니 지켜줄 수 없다는 자존심 앞세운 해괴한 논리에 자책까지? 남자의 뜨거운 눈물이 버림당함에 있는지 지켜줄 수 없음에 있는지 헷갈렸다.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컸으면 냉정하게 앞뒤를 구분하지 못하고 제멋대로 판단하는지 착잡하고 안쓰러웠다. 그러나 어쨌든 다행이었다. 이별을 받아들이고 있어 사고를 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삐뚤어진 놈을 만났다면 몸과 마음을 고스란히 갖다 바쳐서 금방 거덜 날 겁니다. 만신창이가 될 겁니다. 그게 안타깝고 슬픕니다.”


스스로 위로하는 중인지 악담을 퍼붓는 것인지 아리송했다. 어느 쪽이든 참으로 맹랑했다. 그녀가 엄청난 내숭으로 동생을 일방적으로 가지고 놀지 않았나 싶었다. 녀석은 사물이나 상황을 단순하게 바라보는 경향이 강했다. 행동 속에 숨겨진 의도를 파악하는 데에 손톱만큼의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보이는 대로 판단하고 생각했다. 누구나 자신을 중심에 놓고 주위를 판단하고 평가하지만 녀석은 정도가 유독 심했다. 이별의 씨앗이 개병제도에 있다는 식의 푸념도 섬세하고 치밀한 사고력이 없다는 자기 폭로였다. 빤히 눈에 보이지만 타박해서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동생의 판단에 맞장구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잘해줬나 보구나.”


“입대하기 일주일 전부터 만나기만 하면 질질 짰습니다. 나 없이 어떻게 사냐며 바지춤을 붙잡고 난리를 쳤습니다. 내가 여자로 만들어줬습니다. 나도 남자가 됐습니다. 첫사랑이라 더 애틋하다고 여자애가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겨우 육 개월 만에 고무신을 거꾸로 싣고 냅다 가버렸습니다. 너무 치사하고 잔망스럽지 않습니까?”


“그러네.”


“인성의 밑바닥이 훤히 보이지 않습니까?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 여자라는 걸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입니다. 차라리 잘된 일입니다.”


동생의 눈은 내뱉는 말과 달리 여전히 축축하게 젖었다. 군에 묶여 있는 처지가 아니라면 당장이라도 달려가 소맷자락 붙잡아서 와락 끌어안고 싶은 간절함을 눈물에서 읽었다. 여자는 손바닥 뒤집듯이 남자를 갈아탈 수 있지만 남자는 마음속으로 들어온 여자를 떠나보내기 쉽지 않았다. 희라를 붙잡으려는 노력을 떠올려보니 동생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았다. 용기 있는 남자가 미인을 차지한다는 식의 막연한 충고보다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인내하는 남자가 미인을 얻는다는 추임새가 필요했다.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이 더욱 많아 지나간 버스에 집착하지 말고 다가올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말해야 했다.


“잘 생각했어. 그래야 남은 군 생활을 무사히 끝낼 수 있으니.”


감정과 말이 엇나가는 동생을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북돋기 위해 주먹까지 불끈 쥐어 보이며 눈썹을 치 떠서 추임새를 넣었다. 청춘이면 관계를 정리하는데 서툴러서 운명이라고 착각해 집착으로 흐르거나 실패가 낯설어 이별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마음 떠난 상대에게 집착하는 서글픈 행동이 오히려 자신을 더욱 처량하게 만든다는 사실도 깨닫기 어려웠다. 피 끓는 젊음이니 세상이 자기 뜻대로 움직일 거라는 엉뚱한 예측을 하지만 현실에서 하나둘 부서지는 경험을 겪으며 청춘은 더욱 단단해진다는 진실에 닿기도 어려웠다. 차돌도 씹어 먹는 피 끓는 젊음은 실패의 다른 이름이며 시행착오의 다른 얼굴이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얼굴의 윤곽조차 떠오르지 않는 나를 지나간 여자들이 있었다. 책임질 수 없는 나쁜 짓도 했다. 까닥하다가 코가 꿰어 영영 빠져나오지 못할 뻔도 했다. 이십 대의 천방지축이 얼마나 많은 서글픔과 씁쓸함을 남기는지 뒤돌아보니 참으로 위태로웠다. 녀석 역시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위험한 선택을 피해 가면서 무사히 이십 대를 건넜으면 했다.


“맞습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나입니다. 내가 세상을 살아갑니다. 순간적이지만 탈영까지 생각했던 게 부끄럽습니다.”


“네가 없으면 세상도 없고 네가 슬프면 세상도 슬프게 보여.”


“알겠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군 생활을 끝내겠습니다.”


“얼굴 펴. 이제 고주망태로 달려볼까?”


“마음까지 깨끗하게 소독하겠습니다.”


동생은 씩씩한 목소리였다. 자리를 옮기기 위해 카페에서 나왔다. 고민과 걱정을 말로 털어내는 것만으로도 발걸음은 가벼웠다. 내 마음도 홀가분했다. 녀석은 아까와 사뭇 다르게 걸음이 부드러웠다. 모텔을 잡고 근처 술집들을 기웃거리다가 갈빗집으로 들어갔다. 겪어봐서 알고 있는 유격 훈련과 완전군장 행군과 사격 훈련 및 오 분 대기조 따위들을 안주 삼아 주고받으면서 취해갔다. 어느 소대에나 있는 고문관과 사사건건 잔소리를 늘어놓는 인사계 주임상사와 한 명쯤 꼭 있어 부하를 괴롭히는 악랄한 선임병도 빠질 수 없었다. 질펀하게 취해 잠에 곯아떨어졌고 늦은 아침에 일어나 숙취로 해롱거리면서 해장국을 먹었다. 반주로 소주 한 병을 혼자 마셨다.


“고맙습니다. 형님.”


“또 전화해라. 바쁜 일 없으면 또 오지.”


편의점에서 소대 부대원들에게 나눠줄 과자와 라면을 잔뜩 사서 위병소 안으로 들여보냈다. 나올 때와 달리 들어가는 발걸음은 부드럽고 가벼웠다.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비로소 한시름 놓았다. 동생은 외동이어서 어릴 때부터 층만 다른 아파트 동에서 살아서 늘 붙어 다녔다. 마음이 쓰일 수밖에 없는 더 중요한 이유는 엄마와 이모가 쌍둥이였다.


민수야, 아무래도 네가 가서 잘 다독여 주는 게 좋을 것 같아. 내 말보다 네 말을 어릴 때부터 잘 따랐잖아? 걔는 형님 말이라면 껌벅 죽는시늉까지 한다니까. 이모의 부탁이 아니어도 당연히 할 일이었다.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잘 다녀왔다고 이모에게 전화하고 나서 잠시 망설였다. 배가 출출해지는 초저녁이었다. 희라에게 전화했다. 면회를 같이 가지 않아 미안한지 약속 장소를 잡자 대뜸 나오겠다고 했다.


“형제와 다름없다고 했잖아? 충분히 오해할 상황을 만드는 건 아니다 싶었어.”


“콧바람이나 쐬자고 생각했지. 거기까지 내다본 거야?”


“이래서 남자들은 단순하다는 거야.”


“마음에 없다는 말은 아니네. 시댁 식구가 될지도 모른다는 거잖아?”


“될지도 모른다는 거지, 된다는 건 아니야.”


“도시를 벗어나서 콧바람 쐰다고 생각하면 될 것을 뭘 그렇게 복잡하게 이리저리 재고

그러냐? 골치 아파서 살맛 나겠어?”


“살맛 기준은 사람마다 달라.”


“한 마디도 지지 않는구나.”


“내가 왜?”


빙그레 웃는 그녀가 귀여웠다. 보조개가 살짝 보였다. 한편으로 불안했다. 그녀가 방대를 얼마나 마음에 두고 있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녀석이 고백할 때 대수롭지 않은 일인 것처럼 반응했지만 속으로 적잖이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집안 형편으로 경제적인 차이는 있어도 같은 사회적 환경 아래에서 태어나 자라 사고방식은 엇비슷할 거라는 가정이 산산이 부서졌으니 당연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냥저냥 넘어갔던 녀석의 사소한 행동도 유심히 살피고 이해하기보다 거부감이 들었다. 방대의 탈북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었다. 부분적으로 듣기 좋게 바꿨을 가능성도 있었다. 할아버지가 국군이면서 인민군이었다고 하는데 증거는 녀석의 말뿐이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군복 입은 사진을 숨겨두었다는 건데 가능한 일인지 의심스러웠다. 집단적 지역감정을 아득히 뛰어넘는, 대단히 복잡하면서도 미묘한 적대적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이런저런 서울의 경험으로 세뇌에 따른 이념적 물이 빠진다고 해도 밑바닥에 남아 있는 습관은 자신도 어쩌지 못할 터였다. 북쪽에 남아 있는 친인척이나 이웃에 대한 그리움도 있을 것이다. 유년의 기억을 내팽개치고 온 고향에 대한 향수는 잊으려고 해서 없어지는 것들이 아니었다. 뼛속까지 스며든 버릇이나 입맛도 마찬가지였다. 탈북자들이 명절이면 떼거리로 임진각에 몰려가는 이유가 있었다. 태를 묻은 땅은 죽어서도 반드시 돌아가야 할 곳이었다.


“언니가 뭐라고 해?”


“뭘?”


“미주알고주알 모두 얘기한다며? 방대에 대해서?”


“놀랍고 신기하데. 매스컴에서나 보던 사람이 내 친구라며. 싫은 티를 내는데 오버하는 거야. 쓸데없는 과장이지.”


“과장이라고 믿고 싶은 거겠지. 솔직한 거잖아?”


“친구가 아니니까 오버한 거야.”


“서북청년단이 있었어. 북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만든 단체인데 전국에서 온갖 테러와 깽판을 도맡아서 저질렀지. 극우 성향으로 악독했어. 그들 때문에 조용한 날이 없었지. 그런데 지금은 없을까?”


“방대는 이념적인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데?”


“사람은 기본적으로 이념적이야. 정치적 동물이라고 하잖아?”


“디테일로 들어가면 맞는 말이라고 할 순 없어. 대체로 그렇다는 거지.”


“탈북자들이 여러 문제를 일으키고 있어. 풍선으로 자극적인 전단지를 날린다거나 곳곳에서 편파적인 강연을 한다거나 유튜브나 방송에서 목소리를 높여. 그런 일들의 최종 목표가 뭐겠어? 불행하게도 우리들 사이의 갈등이야. 사회적 불안과 혼란을 불러일으키려고 하지.”


“방대와 연결하는 건 너무 앞서 나가는 거야.”


“과연 그럴까? 녀석도 유년의 기억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고향에 갈 수 없는 현실을 알고 있어. 울화통이 터지겠지. 고향에 갈 수 없는 현실을 돌파하고 싶지 않겠어? 답은 뭐야?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려 무력 대결을 일으키려는 거지.”


“시나리오 쓰지 마.”


희라는 냉정한 말투로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방대가 그녀의 마음속으로 얼마나 들어갔을까. 불안했다. 사촌 동생의 군복이 눈에 남아 억지에 가까운 말들을 쏟아냈다는 뒤늦은 판단도 들었으나 번지수를 잘못짚은 실수는 아니었다. 방대를 만난 시간은 졸업하기 전 일 년과 사회생활을 시작한 삼 년이었다. 그동안 친밀감을 쌓고 신뢰를 주고받으면서 알아 왔던 녀석이 과연 진짜 방대일까.


의구심이 솟았다. 친구 사이여도 작정하고 사기 치면 꼼짝없이 당하고 마는 요즘인데 겨우 사 년 남짓이다. 더구나 사회문화적 환경도 딴판인 탈북자라 추리하고 유추할 수 있는 한계가 명확했다. 희라도 빤히 내다볼 수 있었다. 그녀를 녀석에게 빼앗기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희라는 방대를 바라보는 내 시선에 냉정함과 불쾌감까지 내비쳤다. 불안했다. 그녀가 내게 익숙해져서 무의식적으로 드러내는 태도였다. 자의적인 짐작이지만.


“동생은 잘 지내고 있어?”


“누구나 가는 군대인데 잘 견디고 있지.”


희라는 말머리를 돌리려는 의도를 굳이 숨기지 않은 채 불쑥 물었다. 나와 얼굴을 맞대고 앉아 방대를 평가하는 짓거리가 불편하다는 뜻이었다. 줄기차게 가스라이팅을 하더라도 자신의 판단에 내 영향을 받지 않겠다는 의지는 분명했다.


“가만 보면 불쌍하기도 해. 하루가 일 년 같은 젊은 애들을 가둬놓고 이래라저래라 온갖 간섭을 하니까. 자연스럽지 않은 일들이 오랫동안 당연하다고 받아들여졌어. 어떻게 생각해?”


“외국 여행을 다니더니 그런 생각까지 했어?”


“어디를 가도 젊은 애들이 젊음을 즐기더라고. 연구실에서 도서관에서 클럽에서. 우리와 다른 활기를 느꼈어. 여유도 있어 보이고.”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니까.”


시큰둥하게 말했다. 무엇보다 동생의 이별을 말하고 싶지 않았다. 희라가 거기까지 궁금해하지 않을 터이고 서로 얼굴조차 몰랐다. 녀석의 사생활을 지켜주고 싶었다. 그녀와 잘 되어서 나중에 만나 탈영까지 염두에 두었던 과거를 얘기한다면 동생은 철없는 천방지축이 부끄러워 수치심을 느낄지도 몰랐다. 당연히 입 가볍다며 나를 핀잔할 것이고 희라 역시 힘을 보탤 것이다. 곤혹스러워지는 쪽은 나였다.


“하지만 부조리한 현실을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과연 최선일까? 고민할 필요가 있어. 족쇄는 거추장스럽잖아? 젊음을 가둬놓고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건 국가 폭력이야. 왜 모병제를 하지 않느냐고 투덜대더라고.”


“여자도 군대에 가야 한다고 주장하겠네.”


“안될 것도 없지.”


“말도 되지 않아. 간다고 해도 멀었어. 사회에서도 불평등을 해소하지 못했는데 군대는 오죽하겠어?”


“침략했던 적이 있잖아. 북쪽에. 그들을 믿을 수 있어? 적 앞에서 남녀가 어디 있어?”

“방대를 비롯해 많은 탈북자를 적대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속 좁은 옹졸한 짓이야. 좀 더 멀리 내다보는 시선이 필요해. 방대를 관대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저마다 존재 이유가 있거든.”


그녀의 말은 원론이었다. 디테일로 들어가면 맞거나 틀리고 설득력이 있거나 없고 둘 중 하나였다. 군대는 남녀의 문제가 아니다. 적을 눈앞에 둔 생존의 문제였다. 그러나 남녀평등이 사회에서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군대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반박할 수 없었다. 방대를 조심해야 한다고 말하고자 했는데 희라는 말머리를 비틀었다. 내가 옳다고 고집 피우면 역효과만 날 것이다. 모임에서 속 좁은 찌질이로 보여 설 자리를 잃어버릴지도 몰랐다. 지금까지 쌓아둔 친밀함이 통째로 사라져 서먹서먹한 관계로 추락할 것이다. 사소한 갈등에도 밀고 당기는 기술이 필요했다. 뒤로 물러서야 했다. 방대를 두둔하는 짓이 불쾌하지만 어쩔 방법이 없었다. 희라를 차지하기 위해 시원시원한 상남자를 보여줘야 했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야. 너무 짧게 생각했던 것 같아.”


“가뜩이나 좁은 땅에 모여 사니까 서로 양보해야지.”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며 동의했다. 희라는 먹혀들었다는 만족감에 빙그레 웃어 보조개를 만들었다. 그녀의 웃음을 위해서라면 피에로 분장으로 지하철을 타거나 거리를 활보할 수 있다. 더한 것들도 마다하지 않을 작정이다. 희라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면 이만저만 쪽팔림이 아니다. 방대와 달리 태어나면서부터 온갖 혜택을 누려왔다. 자존심 싸움이면서 누가 더 월등한 남성으로 성장했는지 다투는 대결이었다.


“언니는 요즘 상태가 어때?”


“상태라니?”


“작년 이맘때인가? 결혼이 깨졌다고 했잖아? 속상해하면서.”


“기억해? 아직도?”


“당연하지. 우리가 만난 지 백일에 무슨 커피를 마셨는지도 기억하는걸. 넌 카푸치노 난 아아였지. 윗입술에 우유 거품이 초승달 같았어.”


“남자들은 생일도 기억하지 못하던데 무슨 일이래?”


희라는 놀랍다는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떠서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입가에 만족스러운 엷은 미소가 살며시 피어올랐다. 기대했던 반응이었다. 사촌 동생을 만나고 와서 돋은 군복무의 트라우마에 시달려 와닿지 않는 화두로 대화를 시작한 실수를 만회해야 했다. 확실히 소소한 추억이 귀에 착착 붙었다.


“지나가는 말로 얼핏 얘기한 것 같은데.”


“얼굴값 하는 남자들은 적당히 데리고 놀다가 버리는 게 상책이라고 했잖아? 몸 주고 마음 주면 상처받는다고.”


“그런 말까지 했어?”


“내가 기억하니까 말했겠지. 듣지도 못한 말을 어떻게 기억해?”


“그날 기분이 엉망이었나 보네.”


“요즘 잘 지내셔?”


“충격에서 벗어났어. 연애할 정도는 아니지만.”


“사람한테서 받은 상처는 어떻게 고칠 수 있다고?”


“사람이지. 그런데 말처럼 쉽지 않아.”


“잘생긴 남자는 위험해.”


언니의 경험에 빗대어 방대를 조심해야 한다고 에둘러 충고하는데 알아들었을까? 방대를 처음 보았을 때 귀밑까지 내려오는 장발이어서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카락마저도 희라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얼굴은 물론이고 몸 전체에서 멋짐과 낭만이 흘러내렸다. 녀석의 얼굴에 그녀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힐끗힐끗 훔쳐보는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위기감을 느껴 녀석을 데리고 가지 않으면 그녀는 몹시 실망했다. 방대는 어디 있어? 대놓고 녀석을 찾기도 했다. 한두 번 세 명이 모이기 시작하면서 어느새 반드시 셋이 만났다.


동숭동에서 한 달마다 만나는 모임이 당연하게 되어버린 것도 희라의 고집 때문이었다. 학교를 벗어나면 만날 기회가 사라져 아쉬웠다. 셋 모두 학과가 달라 캠퍼스를 벗어나면 뿔뿔이 흩어질 터였다. 방대가 자리를 잠시 비울 때마다 얼굴값 하는 남자는 적당히 데리고 놀다가 버리는 거라고 그녀에게 수시로 말했다. 연애할 때 잘생긴 남자를 끼고 있으면 어깨가 으쓱하지만 남편감으론 빵점이라고 슬쩍슬쩍 밑밥을 깔았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는 속성을 누구나 가지고 있어, 남자는 얼굴보다 뜨거운 심장이라고 말했다. 머리보다 가슴이 먼저 움직이기에 선입견을 심어둘 필요가 있었다. 선입견이 맹목적인 믿음으로 굳어지리라 믿었다.


“비혼주의자야?”


“언니가? 절대 아니야. 좋은 남자를 만나지 못하면 혼자 살 수도 있겠지만. 다들 그렇잖아? 짝을 못 만나니까 비혼주의다 페미다 떠드는 거지. 말장난이야. 치솟는 집값이나 오르기만 하는 물가 따위가 어쩐다 하면서 아기 낳기 겁나는 환경이라며 난리 피우는 짓도 우스워. 전쟁 중에서도 아기는 태어나.”


“의지의 문제다?”


“자신과 맞는 남자를 만나기 어렵다는 거야. 콩깍지가 아무한테나 씌워지지 않지. 살면서 어떻게 호감을 주고받지 않아? 맘이 맞는 짝꿍이 있다면 온갖 시련을 맞닥뜨려도 기꺼이 뚫고 갈 수 있다는 거지. 사는 게 그렇잖아?”


“너도?”


“나라고 별다르겠어?”


“할머니처럼 말하네.”


“살아보지 않아도 알잖아. 누구나. 얼마나 기억하려고 애쓰느냐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겠지. 그게 어려워.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노래를 불러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엄마처럼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잖아?”


“맞아. 기막히게 딱 떨어지는 얘기야.”


희라를 띄워줄수록 점수를 얻을 가능성이 높았다. 상대의 의견을 무시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넉넉한 남자라는 인식을 갖게 해서 그녀의 마음속으로 한 걸음 더 깊숙이 들어갈 수 있으리라. 그녀의 말 중에서 거슬리는 부분이 있어도 한 귀로 흘려보내고 고개를 끄덕거리는 행동이 필요했다. 점수를 따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고 불쑥불쑥 떠오르는 생각을 거침없이 말로 토해내는 가벼움은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주워 담을 수 없는 실수를 할 수 있다.


누구나 대화 중에 내내 자제하고 신중할 수 없었다. 무의식 중에 불쑥 튀어나오기도 하고 이성보다 감정이나 분위기에 휩쓸려 쓸데없는 말들이 툭툭 나오기도 한다. 잘 보이려는 의지가 지나쳐 눈에 띄도록 긴장하면서 힘주어 말하면 눈치채기 쉬웠다. 실수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 필요했다. 조심해야 했다. 통유리 밖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거리의 간판들이 하나둘 반짝이고 도로를 달리는 차들도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하루를 되돌아보니 평소와 다른 이동 거리가 끔찍했지만 다행히 희라를 만나 나름대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어 뿌듯했다. 그녀는 수다 떠는 재미에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좋은 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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