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갈나무 숲 7

by 이순직

7


목사님은 브로커였다.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중국 입국이 불가능했다. 아직도 아버지보다 목사님이 입에 익숙했다. 보타산 자락에 작은 공동체를 만들었는데 하나원을 나온 뒤 사회 적응에 실패한 사람들의 쉼터였다.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핀잔과 구박과 멸시를 받아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거나 사기당하거나 깊은 향수병을 앓는 사람들이 찾아왔다. 이민에 실패한 이들도 있었다. 지아도 취직하기 전에 도우미로 한동안 머물렀다.


“직장도 잘 다니니 장가 들어야지?”


“겨우 서른 문턱인데요?”


“고향에선 일찍 하잖니? 손주 안고 싶다.”


“집도 장만하지 못했는데 누가 시집와요? 또 내려올게요.”


목사님과 어머니에게 넙죽 인사하고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가 산모퉁이를 돌아갈 때까지 어머니는 손을 흔들었다. 터미널에 도착해 고속버스에 올라타면서 희라를 떠올렸다. 어머니가 장가 가라고 얘기하자 그녀가 떠올랐다. 어제저녁에 도착하면서부터 그녀가 쉼터를 어떻게 여길까 걱정했다. 탈북한 사람들이 떼거리로 모여 음흉한 꿍꿍이를 속닥거리는 곳으로 보지 않을까 걱정이었다. 실제로 그런 곳은 향우회였다. 청년단을 만들겠다는 책임비서의 말이 아직도 섬뜩했다. 무엇보다 사회 적응에 실패하거나 자괴감에 빠진 이들이 적극적으로 뛰어들까 염려스러웠다.


명규는 그러고도 남았다. 명규의 이런저런 사정은 알 수 없으나 곳곳에서 따돌림을 당하거나 빨갱이 소리를 들으면 반감과 앙심을 품을 성격이었다. 명규의 바람대로 옆에서 하나씩 사회 적응을 도와줄 수도 있지만 이미 악연이었다. 내 코가 석 자였다. 희라에게 혜산을 털어놓았으니 이제 시작인데 앞으로 어떻게 더 가깝게 다가갈지 도통 방법을 알 수 없었다. 동숭동에서 민수 빼고 둘이 만나면 좋은데 거기까지 진도가 나가지 못했다. 혜산에서 하듯이 손목 잡아 끌어당기면서 다짜고짜 입술부터 들이미는 마초 짓도 방법이 아니었다. 그랬다간 뺨따귀에 불이 나고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게 뻔했다.


차창 밖으로 먼 능선을 바라보자 마음이 서늘해지면서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쭉쭉 뻗어져 흘러 내려온 개마고원의 잎갈나무 숲과 인신매매 당했다는 수애가 떠올랐다. 그녀의 집 앞에서 앞뒤 사정을 따지거나 살피지 않고 무턱대고 손목을 움켜쥐고 산으로 냅다 도망갔다면 어땠을까. 왜 용기 내지 못해 시도조차 하지 않았는지 뼈에 사무치는 후회가 밀려왔다.


원호의 노리개로 취급당하다가 되놈에게 팔려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자신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었다. 원호 놈이 얼마나 못살게 했으면 노리개로 전락했을까. 눈물이 몸 안에 고여 버스가 흔들릴 때마다 출렁거렸다. 팔려가기 전에 목사님이 알고 있는 조선족 브로커를 통해 연락할 수 있었는데 때를 놓친 후회도 마음에 사무쳤다. 동북 3성 어느 깡촌에서 부스스한 머리카락과 핼쑥한 얼굴로 낮에는 농사일에 치이고 밤에는 말도 통하지 않는 남편에게 짐승 짓을 당하며 살아가고 있을 추측에 안타까움이 쌓였다.


차창 밖으로 능선만큼 치솟은 아파트들이 나타나고 버스 속도는 조금씩 줄어들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가장 잘한 선택이 강을 건너는 행동이었고 잘못한 결정이 수애를 두고 온 것이었다. 교훈을 얻어야 했다. 희라를 선택하고 선택받아야 했다. 동시에 민수와의 우정도 흠집 나거나 부서져선 곤란했다. 당장 희라가 싫어할 터였다. 그녀는 나보다 민수를 먼저 만나기 시작했으니 당연했다. 애당초 출발선부터 민수와 달랐다. 혜산 출신이라는 불리한 조건도 있다. 수애를 두고 온 것처럼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약속 장소에 늦지 않게 도착했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자 명규가 손을 들고 흔들었다.


“만나줘서 고마워. 진심이야.”


명규는 향우회 만남 이후 안부를 묻는 거라며 드문드문 전화하더니 매포에 있던 어젯밤부터 줄기차게 졸라댔다. 전화로 할 얘기는 아니라면서 꼭 만나자며 매달렸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만날 일이 없어 뜨뜻미지근하게 반응하자 소원이라는 말까지 꺼냈다. 동상 청소를 할 때마다 원호와 어울려 나를 비아냥거리고 비웃던 얄미운 행동을 떠올리면 주먹이 날아가도 분이 풀리지 않지만 까마득히 지난 일이고 지금은 처지가 바뀐 터라 옹졸하게 굴 필요도 없었다. 하나원을 나온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은 명규는 여전히 어리바리했다. 서울은 혜산과 완전히 다른 세상이라 당연했다. 누구든 눈앞의 세상에 대해 알고 있는 것들이 없으면 비굴하게 착한 척 약한 척을 했다.


“지아 근처도 얼씬거리지 않지?”


“절대로! 맹세할 수 있어.”


“무슨 얘길 하자는 거야?”


“네 할아버지 있잖아?”


“돌아가셨어.”


“얘길 해야 하나 고민 많이 했어. 하는 게 덜 미안할 것 같아서.”


명규는 슬쩍 내 눈치를 봤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얘기라 덤덤했다. 애증은 할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 가졌던 감정이지 돌아가시자 고통스러운 인생을 사셨다는 측은함이 앞섰다. 전쟁이 터지자 입대해 첫 전투에서 포로가 되었고 인민군으로 이리저리 끌려 다니면서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 휴전하자 국군포로라며 온갖 차별과 손가락질을 받았다.


“원호가 무덤을 찾아냈어. 보안원이 파내서 산짐승 먹이로 주었고.”


할아버지가 먹이로 내던져졌다니.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사실이야?”


“눈으로 봤다니까. 조국을 배반한 족속들은 영원히 저주받아야 한다며.”


너럭바위 옆에 묻어둔 배낭을 찾아낸 것도 원호였고 수애의 집을 향해 걸어가던 플래시 불빛도 원호 무리였다면 명규도 함께였다. 탁자 밑에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힘이 너무 들어가 벌벌 떨렸다. 이놈을 쳐? 말아? 얼굴을 짓뭉개버리고 싶은 충동이 치솟았다. 잔뜩 분노한 내 표정을 명규가 슬쩍 곁눈으로 살폈다. 만난 김에 버릇을 단단히 고쳐주고 싶었다. 앙갚음도 있지만 두 번 다시 내 앞에 얼쩡거리지 못하게 해야 했다.


“나는 따라다녔을 뿐이야. 원호가 보안서에 끌려가 맞아 죽을 줄 몰랐어. 보안원이 뒤를 봐주는 줄 알았거든. 원호도 그렇게 믿어서 수애를 팔아버렸고. 보위부까지 소문이 퍼져 보안원이 자기 살자고 원호 뒤통수친 거야.”


“지난 일이라 용서해 달라?”


“아니야. 하지만 생각해 봐. 혜산에선 흔한 일이잖아? 누구나 그렇게 살잖아? 똑똑해도 토대가 나쁘면 꼼짝없이 당해. 너도 알잖아?”


“여긴 서울이야.”


“그래서 말인데 나도 용서할 수 없어. 보안원도 원호도. 혜산 것들 모두.”


명규는 기다렸다는 듯이 얼굴을 붉으락푸르락 뒤바꾸면서 이를 악다물었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더니 그 꼴이었다. 나를 괴롭히려고 한 짓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보안원이나 원호를 용서하지 못하겠다고?


“마음 같아선 돌아가서 보안서고 뭐고 모조리 폭파해 버리고 싶어. 너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잖아?”


“불가능해.”


“그러니까 가능한 일들을 찾아보는 게 의무이자 책임이 아닐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회장님 말이 맞았어. 뭉쳐야 하고 저항해야 해. 서울에 있더라도. 할아버지를 산짐승 먹이로 내던지는 놈들이야. 그래서 자유 청년단이 있어야 하는 거야.”


명규의 입에서 향우회 회장 얘기가 나오는 게 이상하지 않았다. 혜산에 있을 때부터 선전과 선동에 능수능란하던 책임비서였다. 사람 홀리는 짓도 타고나는 모양이었다. 명규는 서울 물을 덜 먹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감조차 잡을 수 없는 상태인데 분노하거나 저주할 대상을 설정하면 생활은 빠르게 단순해졌다. 욕지거리라도 퍼부으면 가슴 뿌듯한 성취감마저 느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감정이라면 짐승만도 못한 짓을 일삼는 놈들을 응징하고 싶었다. 그러나 청년단은 내가 바라는 방식이 아니었다. 손가락질 받는 탈북자들이 자유를 앞세워 빨갱이를 처단한다? 소가 웃을 일이다.


“회장님이 네가 청년단 단장을 맡아줬으면 좋겠다고 전해 달래. 연천에도 같이 가고.”


“나를? 책임비서가 내 성향을 모르지 않는데 왜?”


“나야 모르지.”


명규는 시치미를 뗐다. 향우회 지도부가 머리 맞대고 꼼수를 궁리할 때 명수도 있었을 터였다. 지난 향우회 때 밑밥을 깔아놨으니 덥석 받을 거라 판단했을 것이다. 탈북자는 손바닥 손금 보듯이 서로를 환히 꿰뚫고 있었다. 얼굴조차 몰라도 한두 사람만 건너면 파악했다. 더구나 책임비서는 나를 만나 격려한 적도 있었다.


여명학교에 다닐 때였다. 교장실에 불려갔는데 책임비서가 있었다. 청년단장으로 나를 지목한 것은 5과 간부가 하듯이 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틈틈이 눈여겨보았다는 뜻이었다. 비교적 온건한 성향의 나를 단장으로 내세워 청년단을 위장하려는 속셈을 단박에 눈치챘다. 수애가 원호의 성 노리개 노릇을 했다던가 되놈에게 팔려버렸다는 얘기와 할아버지가 산짐승의 먹이가 되었다는 얘기를 일부러 흘려 내가 보안원에 대한 복수심에 가득 차서 이념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개의치 않고 달려들 거라고 판단했을까. 씨알도 먹히지 않는 개수작이다.


“연천엔 왜 가는데?”


“삐라를 보내러.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심리전이지. 전쟁 중이잖아?”


이럭저럭 서울의 일상에 적응해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대신 눈에 띄게 나대는 쪽들이 책임비서를 비롯해 예전부터 당에 충성했던 자들이었다. 시뻘건 속내를 의심했다. 사회가 돌아가는 적대적 공생 상황을 영악하게 파악하고 재빨리 명분을 세운 다음 행동으로 옮기면서 이익을 얻는 게 아닌가. 풍선 날리기는 한 마디로 남는 장사였다. 명규 역시 약삭빠르게 기회를 포착하고 원호에게 그랬던 것처럼 회장에게 붙은 것이리라.


추측을 거기까지 밀어 올리자 명규가 굳이 만나자고 애걸한 의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자리가 불편했다. 최대한 세력을 규합하려는 회장의 시뻘건 머릿속도 역겹고 행동 대장처럼 내 앞에 나타나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명규도 마땅찮았다. 무엇보다 이제 막 희라에게 다가서려는 참인데 향우회와 엮이면 책잡힐 꼬투리가 생겼다. 숨긴다고 해서 숨길 수 없었다. 희라와 민수를 비롯한 서울 사람들이 보면 물에 빠진 놈을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협박하는 셈이었다. 대결을 부추기고 긴장감을 높여 남북으로 나누어진 상황을 더욱 고착하는 위험한 행동을 한다면 그들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닐 터였다. 친구로서 심한 배신감을 느껴도 할 말이 없었다.


“말리진 않겠는데 잘 다녀오라는 말도 하기 싫다. 더 할 말 없지?”


“어? 뭐? 청년단장 자리는?”


자리에서 일어나자 명규는 예상대로 일이 돌아가지 않는지 당황했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녀석이 어버버거리는 사이 카페를 나왔다. 혜산이나 서울에서나 앞을 가로막는 놈이었다. 모르고 살았으면 좋았을 할아버지의 부관참시는 어머니에게 말할 수 없으니 내 안에 묻어둬야 했다. 아버지가 행방불명되자 몇 달 뒤 집을 나갔던 어머니는 나뿐만 아니라 할아버지에게도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았다.


고향을 떠나기 전에 할아버지를 잎갈나무 숲에 묻었다고 하나원에서 나와 말했을 때도 꺼이꺼이 울음을 토해냈다. 지나치도록 심하게 괴로워했다. 살아온 과정 곳곳에 숨어있는 슬픔이나 괴로움, 안타까움과 쓸쓸함이 서로 뒤엉켜 마구 울음으로 쏟아져 나왔다. 어머니 앞에 앉아서 생각보다 가벼운 할아버지를 둘러업고 잎갈나무 숲을 걷던 먹먹함을 되살렸다. 나는 울음을 목구멍 안으로 꾸역꾸역 삼켰다. 할아버지가 남쪽으로 가라고 했단다. 자리 잡으면 너를 데리고 가라고 했어. 그러니 너는 꼭 잘 살아야 한다. 보란 듯이 잘 살아야 한다. 할아버지의 억울한 삶을 내가 보상받아야 한다고 어머니는 울음을 모조리 토해내고 나서 말했다. 수애가 버팀목으로 있는 땅을 떠나와도 나는 잘 살아야 했다. 명규가 허겁지겁 뒤쫓아 왔다. 나는 기다려주지 않고 출발하려는 버스에 서둘러 올라탔다.


한 주 만에 매포로 내려온 저녁에 수애가 팔려갔다는 얘기를 하자 어머니는 어린것이 불쌍하다며 눈물을 앞세웠다. 어머니에게 혜산은 눈물의 땅이었다. 아버지 때문이었다. 마당 평상에 앉아 매포 읍내의 불빛을 바라보았다. 마치 혜산 시내를 바라보는 지붕 낮은 땅집 마당에 앉아 있는 듯했다. 얼기설기 엮어 엉성한 판자 담벼락 사이로 시내의 몇몇 불빛을 보았다. 콧물 흘리던 어렸을 때라 저녁이면 어머니가 무엇 때문에 시내를 망연히 바라보는지 알 수 없었다.


“네 아버지는 여자들한테 인기가 엄청났어. 키도 크고 미남이었지. 토대가 나빠서 당원이 되는 건 꿈도 꾸지 못하고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없었어. 농장원이었지. 어찌어찌 몇 사람 건너서 강 건너 대방을 소개받아 밀수도 했지. 손에 어느 정도 돈을 쥐자 여자들이 가만히 두지 않았어. 여기저기 씨 뿌리며 다니다가 새벽에 동상 광장에서 몰매 맞아 죽었어. 남편들이 가만히 두지 않았던 거야.”


어머니는 여자가 갖는 슬픔과 아픔마저 말끔히 씻긴 자리에 공허만 남은 텅 빈 얼굴이었다. 밤마다 아버지를 걱정하며 홀로 애탔을 젊은 어머니를 떠올렸다. 사춘기가 오기 훨씬 전이라 기억하지 못하는 그 시절의 흔적을 열심히 뒤적거렸다.


저물녘이면 시내로 뻗은 흙길을 망연히 바라보는 어머니의 쓸쓸하고 어두운 표정이 유년을 빈틈없이 채웠다. 말수가 적었으며 언제나 의기소침했다. 아버지에게 잔소리조차 못 하고 어머니가 매질까지 당하던 장면을 자주 보았다. 할아버지는 못 본 척 눈을 감았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원호와 명규에게 업신여김을 당하며 청소하던 동상 광장에서 아버지가 맞아 죽었다는 사실이 묘한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원호는 내가 수애를 빼앗았다고 믿었다. 앙갚음하기 위해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았다. 항상 명규와 붙어 다니면서 시도 때도 없이 걸핏하면 나에게 주먹질했다. 수애의 할아버지는 째포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협동농장 작업반장으로 승진하기 위해 오로지 당에 충성했다. 나는 째포 집안의 수애보다 훨씬 못한 괘씸하고 위험한 놈이었다. 매포 읍내의 불빛이 점점 많아졌다. 다음 날 오후, 목사님과 고추밭으로 갔다.


“거민신분증이 없어 늘 불안에 떨며 살아야 했어. 짝퉁을 만드는 사람도 있지만 큰돈이 들어.”


목사님은 허리를 펴면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텃밭은 넓었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해도 되나 싶은데.”


목사님은 흔들리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머닌데 당연히 알아야죠.”


“나쁜 일도 기억해 둘 필요가 있지. 아들이 또 있어. 그놈을 떼어놓고 떠나자니 마음이 천근만근 무거웠을 거야. 그 깡촌에도 소문이 퍼져 언제 공안이 들이닥쳐 끌려갈지 모르는 불안에 떨어야 했을 거고. 다행히 남편이 순순히 놓아주었다고 하더군. 아들을 낳아주었으니까.”


깜짝 놀랐다. 어머니의 중국 생활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사흘 걸쳐 종단한 땅에 동생이 있을 거라곤 상상조차 못 했다. 어머니의 아픈 손가락은 내가 아니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녀석이 신경 쓰였다. 소나기처럼 맹렬하게 내리꽂히는 햇살이 어깨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졌다. 보타산 깊은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뜨거웠다. 겨드랑이는 축축하게 젖었다.


“고맙습니다. 얘기해 주셔서.”


“어머니한텐 모르는 척하게.”


당연했다. 어머니가 동생 얘기를 꺼내기 전까지 바위보다 무겁게 입 닫고 있을 작정이었다. 나를 볼 때마다 환하게 웃는 웃음 안쪽에 동생에 대한 자책감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 감정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으니 입 밖으로 함부로 꺼낼 수 없었다. 게다가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장마당을 기웃거리는 헐벗고 비참한 생활을 하거나 목숨을 내놓고 일하는 밀수꾼이었을 것이다.


수애가 비록 째포 집안이지만 나이 들면서 내가 얼마나 끔찍한 토대를 가졌는지 정확하게 인식할 터였다. 원호의 아버지는 협동농장위원회 간부였다. 첫사랑보다 헐벗고 굶주린 현실을 이겨나갈 쪽으로 선택할 터였다. 살아야 하니까. 그런데 노리개로 전락하다가 팔려갔다. 생각이 거기에 닿자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어머닐 생각하면 울컥할 만도 하네. 깡촌에 팔려간 여자는 얼추 수천 명은 될 거야. 차이리보다 싸게 먹히니까 사내놈은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지.”


목사님은 밀짚모자를 벗어 이마 땀을 손으로 훔쳐냈다. 마지막 고랑의 잡초만 남았다.


“차이리가 뭔가요?”


“신붓값이지. 중국에선 신부를 돈 주고 사는 문화가 있어. 게다가 남자가 너무 많아 엄청나게 치열하지.”


“인신매매라고 해도 되겠네요?”


“문화라고 둘러대지만 여자를 돈 주고 사는 꼴이지. 수천만 원에서 억대까지 줘야 하니까. 인신매매는 기껏해야 이삼백이면 충분해.”


목사님은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강을 힘겹게 건너고 난 뒤 능선에서 내려다보았던 젊은 여자가 떠올랐다. 골짜기 사이로 뻗은 널찍한 흙길을 중년의 손에 이끌려 힘없이 걸어가던 뒷모습을 잊을 수 없었다. 어머니도 걸었을 그 길을 여전히 많은 여자가 걸어가고 있구나. 심장이 아려왔다. 호불호를 떠나 선택할 기회조차 없이 강요당하는 결혼생활에 순종하는 여자들이 한없이 안타깝고 마음 쓰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독재자를 향한 분노가 불타올랐다. 서울로 올라오는 내내 괴로웠다. 어머니는 낯선 깡촌에서 얼마나 많이 가슴앓이하면서 긴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을지 헤아려보니 명치가 아려왔다. 동생을 낳고서 기구한 팔자를 얼마나 한숨으로 내쉬었을까.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침울한 얼굴로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전철을 탔다. 내가 행복한 일상을 사는 줄 모르는 서울 사람들과 함께 전철 칸에 서 있는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지하철 출구를 빠져나와 거리를 걸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할아버지의 몫까지 잘 살아야 한다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랬다. 수애 없는 서울에서 나는 잘 살아야 했다. 독재자에게 저항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었다. 책임비서에 휘둘려서 자유 청년단에 합류하는 설레발은 최악이었다. 개인적인 분노와 앙갚음을 숨기고 짐짓 인권이 소중하다거나 인류애를 실천한다며 풍선을 날리고 각종 강연회에서 목소리를 높일 일이 아니었다. 그 전에 한 사람이 행복한 일상을 꾸려나가는 체제를 증명하는 길이 중요했다. 큰길에서 골목으로 들어가자 땅거미를 뒤집어쓴 빗방울이 떨어졌다. 혜산에도 비는 내리고 땅거미는 짙어질 것이다. 나는 천천히 걸어 오피스텔로 들어갔다.


“연기력이 전반적으로 부족했어. 스토리도 장면 구성과 맞물리지 않아서 산만했고.”


“나도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 배우가 감정을 제대로 뽑아내지 못했어.”


“화내는 연기도 어색해서 웃음이 나왔다니까.”


“나도 그랬다니까.”


희라와 민수가 공감대를 만들어 가는 동안에도 나는 예전처럼 맞장구치거나 반대 의견을 말하지 못하고 묵묵히 들었다. 나를 따돌린다고 딱히 꼬집을 구석은 없지만 예전과 다른 거리감이 느껴져 서먹서먹했다. 지나칠 정도로 희라와 민수의 눈치를 살핀다거나 나 혼자 스스로 의기소침해져서 거리를 두었다. 탈북을 얘기한 상태에서 지나칠 정도로 몸 사릴 필요가 있을까. 희라는 몰라도 민수는 확실히 나를 조금씩 밀어내는 느낌이 들었다.


아버지가 유복자라는 녀석의 말에 날카로움이 숨겨져 있었다. 녀석의 할아버지가 현충원에 누워 있는 것이 내 탓은 아니라는 것쯤은 민수도 알고 있으니 감정 처리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할아버지가 녀석의 할아버지와 같은 고지에서 전우로 싸웠거나 인민군으로 서로 총부리를 겨누었을 수도 있었다.


군번 없이 이름으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동명이인이 많아서요. 혹시 모르니 디엔에이 검사에 동의하시면 유족과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유족이 있다면요. 국정원 관계자는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기대도 하지 않았기에 실망도 하지 않았다. 국정원 생활이 끝날 때까지 남쪽에 친인척이 있다는 소식은 없었다. 휴전 협상이 끝난 뒤에 국군 포로를 왜 송환받지 않았느냐고 따지는 짓도 의미 없었다. 오래전 일이고 관계자가 대답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다. 손자로서 특별한 대우를 바라지도 않았다. 할아버지의 명예가 서울에서 회복되기를 간절히 원했다. 산짐승과 날짐승의 먹이로 개마고원 잎갈나무 숲에서 파헤쳐졌다는 명규의 말이 나를 비참하게 했다.


“파업이 실패한다는 결말도 마음에 들지 않아.”


“파업 주동자가 스파이니까 당연한 결과겠지.”


“현실이 비극일지라도 희망을 보여줘야 하지 않나?”


“권선징악? 그거 엄청난 사기야.”


“그럴지도 몰라. 언니를 괴롭혔던 개자식 있잖아? 소문엔 여전히 카사노바 짓을 하며 돌아다닌대. 기가 막혀서. 마누라 옆에 끼고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어.”


없는 사람 취급을 하는 것도 아닌데 대화에 끼어들어 뭐라고 한마디 하기가 망설여지고 찜찜했다. 스스로 주눅 들어 의기소침해진 탓도 있지만 여전히 파업은 낯선 풍경이었다. 사람들이 모여서 한목소리로 외치는 것도 신기했다. 그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내는데 손톱만큼도 도움 주지 못한 부끄러움도 있었다. 사람이 밥으로만 살 수 없다는 아우성에 감격하기도 했다.


“왜 아무 말도 없어?”


희라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까지 갸우뚱거리며 내게 툭 던졌다.


“재미있었어.”


“뭐가?”


“사랑 얘기가 있잖아? 청순하고 풋풋했어.”


“연기가 좀 밋밋했지만 순이가 농성장으로 가는 철이를 배웅하는 장면은 괜찮았어. 철이를 마지막으로 만나는 것도 모르고 해맑게 웃잖아?”


“그때 마음이 찡하더라고.”


희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몇 마디 하자 괜히 의기소침해 있었다는 판단이 들었다. 독재자에게 발목 잡힌 과거는 어쩔 수 없더라도 열심히 살면서 얼마든지 상처를 극복하고 잘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수애와 헤어지던 때가 생각났겠네?”


민수가 훅 들어왔다. 희라에게 내가 혜산 출신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려는 의도로 에둘러 견제구를 날렸다. 내 입으로 털어놓은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실제로 배웅 장면에서 수애를 떠올렸고 철이에게 쏟아지는 구사대의 무지막지한 폭력에 분노를 느꼈다. 분노는 적개심으로 커졌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눈빛이 날카로워졌으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원호에게 폭행당하던 경험에서 나오는 감정이었다. 외면할 수 없었다. 하마터면 벌떡 일어나 소리칠 뻔했다. 다행히 순이가 등장해서 쓰러진 철이를 끌어안고 오열하는 장면으로 이어졌다. 나를 떠나보내고 슬픔에 잠겼을 수애가 떠올랐다.


“넌 눈치도 없이 막 말한다?”


“당연히 연상되는 거 아니었나? 아니라면 미안하고.”


희라의 볼멘소리에 민수는 재빨리 말을 바꾸었다. 지난번과 달리 희라를 대하는 태도가 유독 부드러웠다. 행동에서 속셈을 짐작할 수 있다. 민수는 수애를 살짝 질투하는 말이나 나를 두둔하려는 희라의 말들도 귀에 거슬렸을 것이다. 그럼에도 일부러 신경 쓰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내가 나타나기 전까지 티격태격하면서도 알콩달콩 만나왔는데 위기의식을 갖고 있었다. 스스로 나를 발가벗긴 고백이 결정타였다. 내가 희라에게 숨기는 것이 없다는 신호를 확실히 포착했다. 친구이면서 동시에 경쟁자로 나를 규정하고 기회를 만들거나 있으면 얼마든지 흠집 낼 자신감마저 내보였다.


“전단지 풍선을 날리니까 연락망이 있지 않아? 혹시 수애가 서울에 왔을 가능성도 있잖아? 알아봤어? 첫사랑이라며?”


민수는 내가 수애를 다시 만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는 표정이었다. 나를 수애에 묶어두면 생각보다 간단하게 희라의 관심을 멈출 수 있다는 계산이 빤히 보였으나 마땅히 대꾸할 말이 없었다. 수애의 뒷얘기를 들려주고 싶지 않았다. 민수가 눈치채지 못하는, 수애를 데리고 나오지 못했다는 자괴감을 굳이 드러낼 필요가 없었다. 혜산의 결혼 적령기는 서울과 달라 지금쯤 아이까지 낳았을 거라는 거짓말도 늘어놓고 싶지 않았다. 수애가 민수나 희라를 알지 못하니 되놈에게 팔려 가서 형편없이 망가진 일상을 가까스로 버티고 있을 거라 얘기할 필요는 더더욱 없었다. 수애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고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들어와서 나를 찾았으면 국정원에서 전화가 와. 받지 못했어.”


“국정원?”


“국정원에서 삼 개월 조사 받아. 누구나. 그리고 하나원에서도 사회적응 교육을 삼 개월 받고.”


“그런 것도 있어?”


“정착금 받고 임대아파트도 받아.”


“의외로 혜택이 많네.”


희라는 놀랍다는 표정이지만 민수는 얼굴이 차갑게 굳어지며,


“그게 다 세금으로 주는 거잖아?”


라며 비아냥거렸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맞는 말이어서 뭐라고 반박할 수 없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아니라는 사회 분위기로 점점 바뀌어 가는데 특혜는 과분했다. 핀잔과 타박은 민수와의 경쟁이 끝날 때까지가 아니라 평생을 오롯이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혜산에서 태어난 게 죄냐는 식으로 어설프게 이리저리 둘러대다 보면 뜻하지 않게 무임승차로 내몰릴 수 있었다. 누구라도 부정할 수 없었다. 따가운 눈총을 피해 이민 가는 탈북자도 있었다.


서울에서 왔다는 이유로 난민으로 인정되지 않아서 영주권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은 서울에 잠시 머물렀다는 이유로 북에 남아 있는 친인척들에게 연좌제로 인한 피해를 주고 영국이나 캐나다에 정착하지도 못했다. 불법체류자로 떠도는 이들이 수백 명은 될 거라는 자조 섞인 푸념이 여전히 귓가에 맴돌았다.


“받을 거 다 받고 꼭 말썽을 일으켜서 골치 아프게 하지. 범죄를 저지르고 월북하거나 전단지를 날린다거나. 암튼 탈북자가 사회불안의 요소라니까.”


민수는 단단히 작정했다. 내가 고백하기 전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혜산이었다. 당연히 그 도시의 사람들이 어떤 하루를 사는지 작은 관심조차 없었다. 그저 뭉뚱그려 헐벗으면서도 독재자에게 열광하는 괴상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고 막연히 여길 뿐이었다. 그중 몇몇이 이런저런 이유로 강을 건넌다고 짐작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사 년 넘도록 친구인 척하다가 갑자기 눈앞에서 정체를 밝히니 황당하고 자신들의 일상에 끼어들었으니 생각을 정리하기도 어설펐을 것이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희라는 관망하는 눈치지만 민수는 적극적으로 흠집을 찾아내 콕콕 손가락으로 찔러대며 험담을 늘어놓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탈북자와 경쟁에서 패배하면 자존심에 견딜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고 믿을 터였다. 연애가 무르익어 결혼까지 간다면 개인의 문제가 아닌 가족의 문제로 확장하는데 쉽게 받아들일 사람들이 없다는 현실이 든든한 뒷심이 될 거라는 추측도 했을 것이다.


내가 불리했다. 그러나 아무리 가족의 문제라고 해도 극복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사랑은 둘 사이의 신뢰에서 시작하기 때문이었다. 첫사랑의 경우 믿음을 주고받는 나이가 어려서 확신을 세우기 쉽지 않았다. 수애도 마찬가지였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신해 아버지와 동생을 돌봐야 한다는 의무감이 첫사랑에 대한 확신을 여지없이 짓뭉갰다. 나는 민수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이대로 일방적으로 당할 순 없었다. 희라 앞에서 탈북자도 이 땅에서 태어나 자란 이들과 똑같은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했다.


“눈에 띄는 이도 있지만 조용히 제 몫 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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