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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겠지. 하지만 그들이 빨갱이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파랑갱이인지 빨갱이인지 누가 결정하는데?”
“그건 중요하지 않고 간당간당한 평화를 서슴없이 파괴하는 사람들이야. 얼핏 보면 독재자에 대항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긴장감을 높이고 격렬한 대결을 부추기려는 행동이야. 아슬아슬한 균형추를 기울게 하고 판을 뒤엎으려는 짓이야. 인권을 위한 행동이라고 해도 최악의 결과를 불러올 뿐이야.”
방대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찔리는 구석이 있다는 증거였다. 짐작건대 방대 역시 절대 권력자를 응징하고 싶은 강한 분노는 가지고 있을 것이다. 어떻게든 앙갚음하고 싶은 욕구는 본능에 가까웠다. 펄펄 끓는 젊은 시간을 고스란히 나라에 바치는 사촌 동생도 억울해하는데 방대는 오죽하겠나.
“둘이 왜 그래? 치고받고 있잖아? 친구한테 빨갱이라니? 제 정신이야?”
희라가 도끼눈을 뜨고 방대와 나를 번갈아 보며 불편한 기색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그녀는 친구로서 지켜야 할 마지막 선을 넘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대놓고 내색하지 않지만 희라는 방대와 나 사이의 팽팽한 긴장을 편안하게 즐기고 있었다. 연극 보듯이.
“친구라고 항상 가깝지 않아. 멀어질 때도 가까워질 때도 있어. 모든 관계가 그렇잖아?”
“모르는 사람보다 아는 사람한테 뒤통수 맞잖아? 배신당하거나 사기당하거나.”
“아무리 그래도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잖아? 민수가 너무했어. 뜬금없이 파랑갱이 빨갱이 논쟁이라니!”
희라는 단호하게 말했다.
“이념이 들어간 단어는 질색이야. 더구나 친구 사이에서.”
씩씩거리며 덧붙였다. 희라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이념은 갈라치기의 도구다. 그러나 방대와 경쟁하는 나에게 이념은 우열을 구분하는 잣대이고 한번 몸에 젖으면 죽을 때까지 가지고 가는 정신적 육체였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은 비유가 아니라 현실이었다. 방대가 있는 자리에서 슬쩍 꺼내기 좋은 논쟁거리였다.
“탈북자들은 끼리끼리 뭉치고 몰려다니잖아. 레거시 미디어는 물론이고 뉴 미디어를 이용해서 동족임을 강조하지. 언어가 같다고 동족일까? 미국과 영국은? 프랑스와 캐나다 퀘벡은?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시대가 바뀌었어. 민족보다 국가가 먼저야.”
“그런 국가들은 적대적 공생관계가 아니야. 우리와 달라.”
방대는 가까스로 방어했다. 그녀에게 방대가 이질적인 존재라는 사실만 부각해도 이길 수 있었다.
“여자도 그렇지만 남자도 연애할 때 진짜 모습은 보여주지 않아. 결혼 전에 동거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어. 덜컥 결혼했는데 연애할 때 알던 남자가 아닌 경우가 많아. 보수적인 남자라면 무조건 여자가 손해야. 운명을 바꾸는 무시무시한 계약이지. 요즘은 다소 누그러졌지만 이혼녀 딱지는 달갑지 않아.”
“복불복이니까 조심해야 한다는 소리 같은데 누구나 시간이 지나고 환경이 바뀌면서 변해. 상대가 있는 결혼생활에 적응해야지 주장만 내세울 수 없어.”
“오랜 시간 쌓인 습관이나 버릇이라면? 생활총화를 하던 습관이 몸에 남아 있다면? 실제로 보좌관을 모아놓고 생활총화를 한 국회의원도 있어. 뼛속까지 스며든 봉건적이고 가부장적 권위가 유독 심하고.”
“사람에 따라 달라. 모든 탈북자가 똑같다는 주장은 억지야.”
“습관이나 버릇은 고쳐지지 않는다는 뜻이야. 무의식적인 행동이니까.”
말보다 행동이 감동을 주듯이 파랑갱이 빨갱이 논쟁은 쓸모없는 말다툼이었다. 의견 차이를 행동으로 보여줘야 했다. 작고 사소한 배려도 감동을 주었다. 나는 천천히 몸을 앞으로 기울여 손을 뻗었다. 희라의 흐트러진 앞 머리카락을 다듬어 주었다. 그녀는 다가오는 손에 흠칫 놀라더니 이내 빙그레 웃었다. 작은 스킨십이지만 여자 친구에서 애인으로 가는 첫걸음이어서 그녀의 기억에 남을 행동이었다. 방대는 내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녀석과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해 재혼한 어머니를 끌어들이는 것도 괜찮았다. 시어머니가 평범한 삶을 살지 않았다는 사실은 중요한 고려 사항이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
“목사님이라고 했던가? 아버지를. 어머니도 잘 계셔?”
“훌륭한 분이야. 지금은 탈북자를 서울로 데리고 오지 않지만 돌보고 계셔.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 주시니까. 일종의 쉼터야. 어머니는 옆에서 도와주시고. 건강해.”
“이젠 아버지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쉽지 않아. 목사님의 연줄이 있어 내가 강을 건너 무사히 서울에 왔지만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과 고마움은 다른 문제야. 목사님이 굳이 요구하면 어쩔 수 없지만 그렇지도 않고. 내게 아버지는 할아버지뿐이야. 마지막 자존심이기도 하고.”
자신에게 아무 영향도 미치지 않는 남의 불행은 구경거리지만 사소한 영향이라도 받는다면 얘기는 달라졌다. 희라도 그 정도는 충분히 헤아릴 것이다. 그러나 방대는 마음속에서 할아버지를 잃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여겼다.
“아들은 아버지를 닮는다는데 할아버지라니. 뜻밖이야. 모성애는 위대해. 어머니가 아니었으면 우리와 만나기는커녕 죽을 때까지 존재를 모르고 살았을 거야. 그런데 목사님과 어머니가 어떻게 만나셨어?”
방대의 낯빛이 조금씩 어두워지더니 재빠르게 입술을 굳게 닫았다. 곤혹스러운 질문이 분명했다. 파고 들수록 이익이었다. 놓칠 수 없었다. 방대는 고개 숙여 잔을 만지작거리다가 이윽고 결심을 굳혀 편안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중국에 동생이 있어. 어머니는 호구에 올라가지 못했지만 중국인 남편이 있었어.”
“뭐라고?”
희라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상 밖의 성과였으나 희라 앞에서 자신을 완전히 벗어버리겠다는 결기마저 느껴져 소름 돋았다. 그만큼 방대는 절실하게 희라를 원했다.
“전부라고 할 순 없어도 대부분의 여자는 그런 과정을 거쳐. 인신매매 당하는 거지. 강을 건너 브로커를 만나는 순간에 자신이 이미 팔렸다는 사실을 깨달아. 중국은 성비가 엄청나게 불균형하잖아. 만주 지역에 눌러 사는 경우가 많은데 신분이 없으니 불안하지. 서울로 오는데 달러를 두둑이 가지고 가족 단위로 강을 건너지 않으면 중국 아이를 낳는 것도 탈북 과정의 하나로 볼 수 있어.”
“어떡해. 불쌍해서.”
희라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방대의 아픔이 느껴졌다. 내가 잔인하게 구는 게 아닐까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을 수 없었다. 동족으로서가 아니라 아들로서 아픔을 다독여 주고 싶었다. 하지만 빈틈을 내보일 수 없었다. 틈을 보이는 순간 녀석은 집요하게 파고들 게 뻔했다. 자신을 송두리째 발가벗었는데 그쯤은 당연했다. 평범함과 거리가 먼 녀석이 얼마나 엄청난 내공을 가졌는지 추측은 어렵지 않았다.
희라가 내 친구로서 방대를 여기다가 자신의 친구로 받아들여서 모임을 주장한 사실만 되짚어도 충분했다. 방심했다가 희라의 눈 밖으로 내쳐지는 건 순간이었다. 어떻게 방대를 처음 만났는지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같은 학과도 아니어서 수업 일정이 겹쳐 함께할 시간도 없었고 동아리는 애당초 가입하지 않았으니 빼면 남는 건 오가며 얼굴을 익혔다는 얘긴데 이렇다 할 계기가 무엇이었을까.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은 같은 교양과목을 수강하면서 알게 되지 않았을까. 한창 희라와 캠퍼스 여기저기를 싸돌아다닐 때였으니 내게 접근하기 전에 이미 그녀를 보았을 것이다. 만일 방대가 희라를 보고서 내게 접근했다면? 나를 통해 그녀에게 좀 더 가깝게 다가서려는 계획 중의 하나가 고백이 아니었을까?
오늘만 해도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어머니의 행적까지 스스럼없이 말했다. 고백에 이념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 희라를 보면서 계획을 현실화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을 터였다. 당연히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계산에 넣었을 것이다. 빼어난 미모와 늘씬한 몸매를 가지고 있는 그녀여서 충분히 탐낼 수 있었다. 의심은 확신으로 굳어졌다. 무턱대고 방대를 구석으로 몰아붙이는 말들이 희라에게 달갑지 않았을 거라는 판단이 들었다. 이득이라고 여겨도 막심한 손해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복구하지 못할 이미지 손실이 쌓여 그녀의 마음도 얻지 못하고 엉덩이에 뿔 난 송아지가 될 판이었다. 태도를 바꿀 필요가 있었다.
“역사를 보더라도 도움이 안 됐어. 요즘 시대에 인신매매라니! 불지옥에 떨어져도 시원찮을 놈들!”
과격하다 싶을 정도로 심하게 투덜대자 희라는 슬쩍 내 표정을 살폈다. 그녀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살짝 번졌다. 필요할 때 반드시 분노하는 사내라는 걸 보여줘야 했다. 타국민의 인권을 깡그리 무시하는 후안무치가 기막혔다.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어서 말하고 나자 조금 계면쩍은 느낌이 들었다.
“민족보다 국가가 앞서는 요즘 시선이 안타까워. 국가는 바뀌어왔지만 민족은 그렇지 않잖아?”
방대가 빠르게 치고 나왔다. 녀석의 논리를 끊어야 했다. 민족을 앞세운 국가 통일은 신성불가침의 영역 안으로 들어가 버린 지 오래여서 말발이 쉽게 서지 않았다. 초등학교부터 어쩌면 태어나면서 이 땅의 모든 사람은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통일은 신성한 것이고 절대선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감당하려면 엄청난 출혈을 해야 했다. 주머니를 탈탈 터는 통일 세금을 신설한다면 부가가치세를 만들 때보다 더 큰 조세 저항이 있을 터였다.
민족이고 나발이고 당장 나 죽게 생겼는데 무슨 개지랄이냐고 보수 언론에서 떠들어댈 것이다. 수백만 명은 그만두고 당장 수십만 명의 난민이 서울로 밀려오면 생활은 더욱 팍팍해지고 워라밸은 아득히 멀어져 노동법전은 쓰레기통에 처박히고 치안은 불안해진다고 주장할 것이다. 급기야 정부를 믿지 않도록 유도할 터였다. 정치의 불안정성이 폭증하고 너 죽고 나 살겠다는 아수라장이 펼쳐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이상과 현실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눈에 빤히 보이는 그런 현상들을 일일이 나열할 수 없었다.
“국가로 기울어져 가는 흐름은 막을 수 없어.”
“민족을 앞세워야지. 운명으로 여기면서!”
“무책임한 선택이 아닐까? 탈북자들이야 고향에 가고 싶으니까 당연히 운명이라고 여기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자다가 날벼락 맞는 꼴이니까. 탈북자들이 뉴 미디어를 이용해서 끊임없이 떠들어대는 얘기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대단히 극단적인 이기심에 빠졌다는 것을 알 수 있어. 많은 사람이 그들의 서울 생활에 대해 호기심을 갖지만 분탕질을 눈치채지 못해. 국가를 무시하고 민족에 기대는 속셈이 뭐겠어? 그래야만 존재 이유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야. 우리는 같은 민족이다. 언어도 같다. 국가 발전에 손톱만큼 보탬도 하지 않았지만 국적을 획득하는 것은 당연하고 정착금을 받는 것도 임대아파트를 받는 것도 당연하다. 쉴 사이 없이 주장하는 거야. 부끄럽지 않은 걸까? 다행히 요즘 추세는 국가로 기울어져 가지. 북쪽 지역을 불법 점거했다는 것이 아니야. 세계의 모든 국가가 북쪽을 국가로 인정했는데 뒤늦은 감이 있지. 유엔에 각각 대사도 파견하면서 민족을 앞세워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거야. 지독한 아이러니지.”
“한민족의 특수성이라고 할 수 있어. 국가가 현실인 것처럼 민족도 버릴 수 없는 현실이야.”
“무엇을 우선하느냐에 따라 생활이 달라져. 쌀값과 반찬값이 달라진다니까. 뉴 미디어를 동원해 국가에 분탕질해도 이미 기울어져 가는 대세는 막지 못해.”
희라는 엉덩이를 의자 깊숙이 밀어 넣고 팔짱을 끼고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기대하고 의도했던 반응이 아니었다. 현실을 냉정하게 판단하는 사내가 아니라 탁상공론을 일삼는 정치꾼을 째려보는 눈빛이었다. 헛발질한다는 추측에 불안감이 들었다. 허우대와 생김새에서 한 수 접고 경쟁하니 됨됨이에서 앞서야 하는데 여의찮았다. 같은 사회적 환경에서 유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내 희라와 가치관의 충돌은 없지만 안심할 수 없었다. 희라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민족과 국가의 갈림길에서 우왕좌왕했다.
하지만 방대가 어머니 얘기를 꺼냄으로써 대화의 흐름을 쥐고 있다는 짐작에 조바심이 타올랐다. 졸업하기 전까지 희라와 일 년 남짓 친구로 지냈지만 방대가 끼어들기 전으로 시간을 한정하면 겨우 한 학기 반이었다. 희라에게 나는 학과의 여럿 남자 친구들 바깥에 서 있는 한 사람이었다. 방대가 끼어들자 희라 주변의 학과 남자들이 뿔뿔이 흩어졌고 셋이 만나는 횟수가 늘어났다.
“직장에 시달리면 만나기 힘들 거야. 동숭동에서 한 달에 한 번 만나 문화생활을 하면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덜어낼 수 있을 거야. 어때? 내 계획이?”
마지막 겨울방학이 끝나갈 무렵에 희라가 제안했다. 졸업하면 만날 기회가 송두리째 사라져 자연스럽게 헤어질 거라는 불안한 예상에 시달렸다. 섭섭함이 마음에 가득하던 때였다. 방대와 나는 단박에 찬성했다. 동숭동에서 만나던 삼 년 남짓 우리는 학생 때와 다름없이 유쾌한 농담과 상사 흉보기도 하면서 서로의 생일을 기억하며 축하했다. 그러던 와중에 방대가 덜컥 탈북 폭탄을 터뜨렸다.
물론 녀석이 폭탄을 터뜨리기 전에도 사소한 신경전은 있었다. 누가 더 그녀에게 필요한 생일 선물을 준비한다던가 깜짝 파티를 마련한다든가 하는. 처음에는 나의 승리가 당연했다. 방대처럼 과거가 괴물인 남자를 선택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폭탄이 터지자마자 슬슬 딴지를 걸면서 여유로웠다. 하지만 때리면 때릴수록 녀석은 점점 단단해졌다. 희라도 예상만큼 이질감을 느끼거나 거부감을 드러내지 않았다. 비슷한 경제적 능력이라면 키 크고 잘생긴 남자가 미인을 차지할 확률이 높았다.
부정하고 싶지만 현실이었다. 내 바람이지만 최선을 다하면 기적은 일어나지 않을까. 결혼은 개인의 몫이지만 가족의 몫이기도 하다는 사실이 버팀목이었다. 언니의 파혼에 불호령으로 난리 쳤던 아버지를 염두에 두면 희라의 선택이 쉽지 않았다.
“어머님은 요즘 편안하게 지내시는 거지?”
희라가 물었다.
“어머니는 중국에서 있었던 일을 내가 모른다고 알고 계셔. 다행이지. 어머니가 동생 얘기를 하지 않으면 굳이 말할 필요가 없잖아. 돌아가시면 동생한테 임종했다는 소식은 전하겠지만.”
“해야지.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어머닌데.”
“아직 목사님의 연줄이 살아 있으니까 연락처를 알아보려고.”
“어머님도 말은 못 하지만 바라실 거야. 모성애는 국경이 없거든.”
“이해해 줘서 고마워.”
“착한 구석이 많네.”
방대와 희라의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자니 밸이 꼬이고 엄습하는 위기감이 목까지 차올랐다. 내색할 수 없었다. 벌떡 일어나 자리를 박차고 집으로 가버려 둘만 남겨둘 수도 없는 노릇이고 방대의 가족 사랑을 칭찬하고 싶지 않았다. 자식이 부모의 부고를 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데 국경이 있네 없네 하면서 은근히 부추기는 그녀가 얄미웠다. 의붓아버지에 씨 다른 동생까지 있는 복잡하고 눈물 많은 집으로 들어가는 짓은 위험했다.
희라는 어리석지 않았다. 불행이 타인의 것일 때는 구경거리지만 자신의 것일 때는 물불 가리지 않고 헤쳐 나오기 위해 악전고투해야 한다는 것쯤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조급하게 굴지 말고 생각의 폭을 넉넉하게 넓혀 의연하게 대처해야 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언제 시간이 되면 셋이 매포에 놀러 갈까? 구인사 구경하고 도담삼봉이나 보발재 전망대, 충주호에서 크루즈를 타는 것도 재미있어.”
방대가 불쑥 관광 카드를 내밀었다.
“글쎄, 구인사나 충주호는 이미 가봤는데.”
희라는 어정쩡하게 대꾸했다. 관광을 핑계로 가족을 소개하려는 속셈을 꿰뚫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덧보탰다.
“연차 내기가 눈치 보여. 아직 쫄다구잖아.”
방대는 쐐기 박는 내 말에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비록 친구라고 소개해도 인연을 맺는 것이고 어떻게 확장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 말이 씨가 될 수 있으니 확실하게 선을 그어놓아야 했다.
“목사님이 운영하는 탈북자들의 쉼터라고 했는데 몇 명이나 있어?”
“많을 때는 스물 가까이, 적을 때는 한 둘?”
“그렇구나.”
나는 슬쩍 희라의 표정을 훔쳐보았다. 무덤덤한 얼굴과 달리 난처한 눈빛이었다. 사람이 많으면 그만큼 입이 많아 말이 많다는 것이고 말이 많으면 육중한 배도 산으로 갔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그것도 탈북자들이 모여 앉아 자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평가하는 것을 싫어할 것이다. 아직 때도 아닌데 앞에서 대놓고 친구가 아니라 신붓감으로 잘 어울린다는 빈말이라도 나오면 거북할 터였다. 매사에 똑 부러지는 그녀여서 그 정도의 추측은 충분히 할 것이다. 가족 얘기를 듣는 일과 얼굴을 맞대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확실히 섣불렀다.
“내 말은 언제 기회가 있으면.”
방대는 뒤로 한 발 물러섰으나 아쉬움은 표정에 고스란히 남았다. 잘생김으로 그녀를 낚아챌 수 있다고 여긴다면 너무 만만하게 봤다. 시내 중심지에 건물 몇 채 가지고 있는 늙은 아버지의 외아들이라면 어렵지 않겠지만. 그녀가 천박하다는 뜻이 아니라 그 정도의 자격이 있었다. 멋짐과 건물주 외아들을 양손에 들고 다녀도 그녀는 절대 꿀리지 않는 미모와 교양과 인격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방대도 나와 엇비슷하게 생각하기에 그녀에게 죽자사자 매달렸다.
“어떡해, 내년 휴가 계획도 언니와 이미 짜놓았는데.”
희라가 짐짓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지만 초대에 응하지 않겠다는 쐐기를 박았다. 그녀의 판단에 화끈한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아직 계획은 없지만 휴가철이 되면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잖아? 약속할 수 없네.”
나는 당연히 그녀에게 힘을 보태는 쪽으로 정리했다. 그녀가 매포에 가기로 했다면 나 역시 두말없이 따라나섰을 것이다. 관광이 아니라 방대와 그녀가 지금보다 더 가까워지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서 모아둔 연차를 계산하고 앞으로 얼마나 더 휴식 없는 직장생활을 해야 하는지 머리를 굴릴 것이다. 녀석의 홈그라운드여서 쉽지 않을 터이지만 눈에 불을 켜고 둘 사이를 감시하고 훼방 놓으려고 온 신경을 곤두세울 참이었다.
“다음 달엔 연극 말고 등산을 할까?”
방대는 속내가 들통났어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말했다. 카페에서 만나 연극 보고 뒤풀이로 저녁을 먹는 동안 셋은 떨어져 있는 시간이 없었다. 등산은 달랐다. 수시로 움직여 동선이 어떻게 꼬이는지 예상조차 할 수 없고 녀석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희라와 낙오하거나 나를 낙오시킬 수 있었다. 게다가 방대는 개마고원에서 놀던 기초체력과 기억까지 있어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매포행을 거부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등산을 가자고 부추겨 나름 집요했다.
“가까운 북한산이나 수락산에 가면 갑갑한 도시에서 벗어났다는 쾌감을 느낄 수 있을 거야. 콧바람도 쐬고 정상에 올라 가슴 활짝 펴고 소리치는 맛도 있어.”
“언제 등산했는지 기억에도 없어.”
희라의 긍정적인 반응에 방대는 한껏 들떠서,
“좋다니까. 가보자. 민수야 넌?”
라며 벙글벙글 웃었다.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지만 그녀가 간다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빠진다고 하면 방대 좋은 일만 도와주는 꼴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확답이 있기 전에 덥석 미끼를 물었다가 안 간다고 하면 방대는 민수도 가는데 한사코 그녀를 졸라댈 태도였다. 방대의 먹잇감이 되는 건 순식간이라 희라를 빤히 쳐다보았다. 나와 방대가 동시에 쳐다보자 대답을 강요한다는 느낌을 받아 그녀는 멋쩍게 씨익 웃었다.
“가지, 뭐. 하지만 도와줘야 해.”
“남자 둘이 당연히 정상까지 모셔야지.”
방대는 살짝 들떴다. 조금 전 말다툼할 때와 달리 표정부터 확연히 밝았다. 애초부터 장기적인 계획에 따라 그녀에게 접근했다면 등산 중에 무슨 수작을 부릴지 알 수 없었다. 그녀와 떨어지지 않고 붙어 다니며 훼방을 놓아도 등산 중에 어떤 상황이 닥칠지 짐작할 수 없었다.
“희라가 간다면 지구 끝이라도.”
말하면서도 여전히 머릿속은 복잡했다. 희라는 산을 타면서 가장 더딜 텐데 그 뒤를 두 남자가 쫄래쫄래 뒤따라가는 모양새가 눈에 빤히 보였다. 커피 마시고 연극 보고 밥 먹을 때 볼 수 없는 장면들이 쉽게 연출될 거라는 짐작이 들었다. 여왕벌을 에워싸 지키는 호위무사 역할을 하지 않을까. 그래서 등산객들의 우스꽝스러운 구경거리가 될 거라는 확신이었다. 쟤들은 등산하는 거야, 여잘 경호하는 거야? 뒤따라오다가 답답한 걸음걸이에 짜증 나 추월하면서 누구나 내뱉을 핀잔이었다. 방대와 나는 신경조차 쓰지 않을 테지만 정상까지 가는 내내 구박받을 터였다. 갑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