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엉뚱한 구석이 있는 줄 알았지만 뜬금없이 매포에 함께 가자는 제안은 황당했다. 민수가 형제처럼 지내는 사촌 동생 면회를 함께 가자고 했을 때도 부담스러워 거절했는데 그보다 더한 부모님을 만나자고 해서 난감했다. 셋이 가더라도 민수를 곁다리 취급하면서 나를 유심히 볼 게 뻔했다. 애인이라며 엉터리 귀띔이라도 부모에게 넌지시 말하면 곤혹스러운 상황에 빠질 터였다. 언니의 충고가 여전히 마음 한쪽에 자리 잡아 방대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내 마음을 헤아리지 않고 도시의 갑갑함에서 벗어나 콧바람을 쐬자며 등산 가자고 말을 바꾸면서 집요하게 매달렸다.
민수도 마찬가지였다. 지구 끝까지 갈 수 있다는 허풍은 민수의 의연한 태도였다. 방대를 빨갱이로 몰아붙여 거침없이 두들겨 패는 말다툼만 보더라도 지나친 경쟁의식을 느낄 수 있었다. 민수는 방대의 고백 이후 확실히 달라졌다. 친구라기보다 경쟁자로 보는 시각이 뚜렷했다. 두 남자 사이에서 즐기던 홍일점의 여유로움에 조금씩 부담감이 생겼다. 언니의 말처럼 못된 짓을 하고 있지 않나. 방대에 대한 민수의 경계심을 느슨하게 하려면 수애 얘기를 꺼내야 하나.
“수애가 강을 건넜을 가능성은 없을까?”
“국정원에서 전화하는 걸 수애가 바라지 않을 수도 있어.”
“글쎄, 알 수 없지.”
“첫사랑이라 평생 마음속에 있겠네? 남자들은 잊지 못한다며?”
“대체로 그렇지. 방대도 아마?”
방대는 등산 얘기 때와 달리 말없이 어둡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숨겨둔 마음을 꺼내는 일은 누구나 불편하고 고통스러웠다. 어두운 골목에 수애를 두고 온 기억은 아물 수 없는 깊은 상처로 시간이 지날수록 덧났을 것이다. 서울의 물질적 풍요와 자유로움이 개마고원 잎갈나무 아래에서 마주 섰을 때 떨리는 심장과 뜨거운 입맞춤, 손가락에 닿는 속살의 부드러움 따위들을 대신할 수 없을 터였다.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황홀경이 얼마나 깊이 마음 안에 뿌리내리는지 짐작조차 못 했을 것이다. 운명은 발 앞에 놓인 징검다리 돌이 아니라 지나온 디딤돌이어서 항상 뒤돌아봐야 했다. 남자에게 첫사랑의 기억은 삶 전체를 관통하는 거대한 강인데, 불장난으로 여겨 망각의 늪으로 밀어 넣을 수 없는 이유였다.
“서로 연락하잖아? 소문은 없어?”
“떼거리로 몰려다니니 당연히 있겠지.”
“항상 그런 건 아니야. 생각이 다른 사람도 있어. 고향 얘기엔 대부분 동질감을 느끼지만 서울 시민으로 살아. 먹고 사는 어려움은 혜산과 다를 바 없어. 어쩌면 더 치열하고.”
방대의 말에 민수가 가소롭다는 듯이 씨익 비웃었다.
“혜산보다 더 힘들다는 인식은 위험한데? 다시 넘어갈 수도 있다는 말처럼 들려. 뒷집 담벼락도 아니고. 실제로 넘어간 사람도 있지만.”
민수는 말꼬리를 잡고 늘어졌다. 어떻게든 내 앞에서 방대의 흠집을 물고 늘어지겠다는 의도가 좋게 보이지 않았다. 옹졸한 남자로 느껴졌다. 그러나 유복자의 아들이라고 밝혀 방대만큼 서러운 아픔이 있다는 걸 짐작했다. 따지고 보면 열 중 하나는 유복자의 아들이었다. 유복자의 아들이 아니라고 해도 피난길에서 갖은 고생을 하거나 공산 치하에서 두려움에 떨며 생존한 경험이 있어 전쟁의 트라우마를 유전인자처럼 물려받았다. 응징이나 보복 없이 치유할 수 없다고 믿었다. 그런 측면에서 민수가 방대에게 하는 말은 귀에 심하게 거슬리지 않았다.
지금도 술에 취하면 가끔 아들을 앞에 앉혀놓고 꺼이꺼이 울음을 토해낸다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민수의 마음은 독해질 수밖에 없을 터였다. 혜산에서 태어난 게 죄가 아니라고 해도, 지배층이 아니어도 그쪽에 속했던 과거는 변하지 않았다. 그걸 따지는 것이 이제 와 무슨 의미가 있냐는 물음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더구나 민수는 국가에 집착했다. 녀석이 보기에 북한을 빠져나와 남한에 도착하면 자동으로 국적을 받는 것은 영국인이 밀항해서 미국에 도착하는 즉시 시민권을 받는 경우와 같았다. 있을 수 없고 있어도 안 되는 일이라고 믿었다. 껍데기만 같은 민족이지 알맹이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내가 다시 강을 건너갈 거라고 말하는 거야?”
방대는 발끈했다. 구석으로 몰려 방어만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동시에 이등국민 취급받는 탈북자를 대표해서 할 말은 하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세게 부딪치면 친구 관계가 틀어질 수 있는 위험한 순간이었다. 학창 시절을 함께 했지만 겨우 일 년 남짓이라 사소한 속내도 드러낼 불알친구라고 할 수 없었다. 나도 그렇지만 민수나 방대 역시 저마다 목적이 있어 만났다. 둘 중 한 명이 수가 틀어져 참석하지 않으면 나도 굳이 모임을 통해서 얻는 홍일점의 즐거움을 고집할 이유가 없었다.
“살다 보면 무슨 일이 버티고 있을지 모르니 가능성의 영역이라고 해두지.”
“탈북자에 대한 편견과 따돌림과 업신여김을 하루하루 견디면서 살아. 그래서 숨기기도 하지. 강원도 북부 출신이라거나 조선족이라든가. 조선족도 이미지가 나쁜데 탈북자는 더해. 민수가 무시하는 것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어. 혜산에 살아도 편견과 따돌림은 받아. 토대가 나쁘니까. 견디지 못한 탈북자들은 이민을 선택해. 성공한 사람도 있지만 실패한 이들이 더 많아. 나를 무시하는 것은 받아들이지만 탈북자들도 너희와 똑같은 사람이야. 존중까지 바라지도 않아. 차가운 시선만 걷어주면 좋겠어.”
방대는 솔직함을 담은 하소연으로 민수의 도발에 현명하게 대처했다. 자칫 감정적으로 반응했으면 충돌은 불가피했다. 방대는 등산을 가고 싶은 것이고 민수는 방해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을 터였다. 둘 사이의 줄다리기가 재밌었다. 금방이라도 파국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가다 갑자기 멈추어 서버려 스릴마저 느꼈다. 방대가 민수를 처음 만나 탈북자라고 밝혔다면 친구로 발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셋의 관계가 지금까지 이어진 것은 방대가 고향을 밝히지 않아서인데 느닷없이 털어놓은 이유가 궁금했다. 고백해야만 하는 피할 수 없는 사건이 있지도 않았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이어갈 수 있는데 스스로 이질적인 존재라고 폭로한 이유를 아무리 따져 봐도 알 수 없었다. 언니의 충고가 마음 안으로 들어와서 방대의 잘생김은 눈이 즐거운 정도 이상을 뛰어넘지 않았다. 방대의 무뚝뚝함이 남자다움에서 자신감 부족으로 조금씩 바뀌어 보였다.
“차가운 눈빛은 당연한 거 아니야? 제도와 문화가 결별한 지 벌써 팔십 년이야. 곧 있으면 한 세기야. 같은 제도와 문화 속에서 살아도 지역감정이 있는데 하물며 혜산이야. 그리고 온갖 패악질을 일삼았어. 당연히 감수해야 할 차가운 시선이 불편하다고? 탈북자들이 서울의 자유와 민주를 만드는 일에 무슨 도움을 주었다고 그래야 해? 팔십 년 전에 헤어졌다면 형제도 남남이야.”
“우리가 이렇게 만나는 것도 같은 민족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꼽사리 끼면서 눈치는 봐가며 해야지. 풍선 날리면서 훼방하잖아? 어떻게 하면 서울의 자유와 민주를 파괴할까 궁리하잖아?”
민수는 기회가 온 김에 단단히 작정하고 거칠게 몰아붙였다. 방대는 끈기 있게 참을성을 유지했다. 팽팽한 긴장감이 위태로웠다. 둘 중 하나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면 모임은 깨질 수밖에 없었다. 살벌한 분위기를 바꿀 필요가 있었다. 방대가 언제까지 인내심으로 버틸지 짐작할 수 없었다.
“어느 산으로 갈까? 전철로 바로 갈 수 있는 산이면 좋겠는데.”
내 말에 둘 사이의 팽팽한 긴장이 삽시간에 허물어졌다.
“서울에서 전철로 갈 수 없는 산이 어디 있냐?”
“수락산이나 도봉산은 가끔 올라가거든. 답답하고 힘들 때마다 무조건 올라가. 백두산을 올랐던 씁쓸한 기억이 떠올라 기분이 좋지 않을 때도 있지만. 학생 때 백두산 중턱까지 가서 혁명전적지를 둘러보거든.”
“전적지?”
내가 묻자 민수는 이미 알고 있는 듯이 비아냥거림이 섞인 웃음을 방대에게 지었다. 방대는 민수의 웃음을 보자 입술을 씰룩거리며 망설였다. 민수에게 또 무슨 공격을 받아 어떻게 방어할까 궁리했다.
“백두산 밀영이라고 있는데 귀틀집이 있어. 정일이 태어난 집이라고 선전해. 모스크바 레닌박물관에 사람을 보내 생나무를 오래된 것처럼 처리하는 방법을 배워 와서 지었지. 가짜 귀틀집이야. 정일이는 우수리스크에서 태어났어. 집 뒤편 절벽 바위에 정일봉이라고 커다란 글자를 새겨 넣었는데 핵실험으로 글자가 일그러졌다나 어쨌다나. 압록강 강변에 열네 살짜리 김일성 동상도 있어. 일성이가 열네 살에 천리를 걸어 중국에 가서 독립운동 했다는 거야. 구라도 적당히 쳐야지 한심해. 슬픈 일은 지금도 열네 살을 먹으면 천 리 길을 걷게 한다는 거야.”
민수가 설명했다. 의아했다. 싫어하면 관심조차 주지 않아 귀틀집이나 우스리스크는 모르는 것이 정상이라 앞뒤가 맞지 않았다. 거기에 열네 살짜리 동상이라니. 아마도 방대의 고백을 듣고 난 뒤 인터넷 검색을 하지 않았나 싶었다. 방대는 적잖이 놀란 표정이었다.
“맞아. 배낭에 먹거리를 지고 보름 동안 천리를 걷어.”
“방대는 참가하지 못했을 거야. 아무나 못 가. 모범 학생만 뽑아. 출신성분이 나빠서 뽑히지 못했을 거야.”
“그런 것까지 알아?”
방대는 놀라움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당연히 알지.”
둘이 주고받는 분위기가 보기 좋아 보였다. 이럴 때는 죽이 척척 맞는 친구가 분명했다.
“다녀오면 명예고 영광인 것도?”
“당연히. 배낭에 총폭탄 일당백 글자를 써놓아 뒷사람이 따라오면서 계속 보게 해. 그런데도 다녀와서 케이팝이나 드라마에 홀딱 빠지잖아?”
민수는 슬며시 뽐내는 투이고 방대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방대의 고백이 있기 전에 둘은 죽이 맞았다. 민수는 탈북자에 악감정이 없었다. 동해에 방사포탄이나 미사일을 쏘아대는 패악질이 있을 때도 그런가 보다, 하는 식으로 가소롭다는 가벼운 웃음으로 넘어갔고 점심을 무엇으로 때울지 고민했다. 세상 돌아가는 일보다 점심 메뉴를 중요하게 여겼고 학점 관리에 집중했으며 열람실에서 나와 눈 맞추기 위해 책을 보다가도 고개 자주 들어 좀 산만했다.
“기다렸어요. 점심, 같이 먹을래요?”
열람실 밖으로 나오자마자 자판기 근처에서 얼쩡대던 민수가 뛰어왔다. 일주일 내내 내 주위에서 알짱거리던 민수를 일부러 못 본 척 외면했다. 빙판길에서 넘어진 부끄러움도 있었지만 평범한 얼굴이 그다지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시신경을 통해 뇌로 들어오는 강렬한 전기적 신호가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고 손가락이 가늘게 떨리며 얼굴에 살짝 홍조까지 떠오르는, 운명처럼 첫눈에 반하는 순간이 내게도 있을 것이라 믿었다.
“점심이요?”
떨떠름하게 대꾸했다.
“매일 혼자 먹는데 그쪽도 혼자 먹지 않나요?”
겨울방학 중이라 친구들은 저마다 제 일에 매달려서 뿔뿔이 흩어져 혼자 먹었다. 배고픈 시간이 제일 괴로웠다. 식당 식탁에 혼자 앉으면 시선을 둘 데가 마땅찮아 곤혹스러웠다.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짓도 바보 같아서 어색하고 고개 숙여 식판을 내려다보는 것도 죄지은 사람처럼 느껴져 불편했다. 매번 포만감이 올라오기 전에 서둘러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식판 들고 퇴식대까지 혼자 걸어가는 짧은 시간도 한없이 길었다.
“내 앞에서 넘어진 것도 인연인데 점심 정도는 같이 먹을 수 있잖아요?”
생각해 보니 고맙다는 인사치레도 하지 않았다.
“그럴까요?”
나는 얼굴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식당이 있는 학생회관까지 걸어가면서 비로소 통성명하고 취업 준비하는 사실을 나누었다. 운동장에 이불처럼 평평하게 깔린 눈은 쏟아지는 햇살에 더없이 따뜻하게 보였다. 그 뒤로 민수의 열람실 자리는 슬금슬금 가까이 다가오더니 결국 내 옆자리에 앉았다. 내가 먼저 열람실에 도착하면 민수를 위해 자리를 맡아두었다. 민수도 마찬가지였다. 점심도 학생회관 식당이 아니라 교문 밖 식당을 이용했다. 말동무가 있어 기분은 좋았다. 겨울이 지나간 곳곳에 미지근한 바람이 불어오는 봄이 오는가 싶더니 금방 벚꽃이 흩날렸고 민수를 만나는 장소는 여전히 열람실이었다. 첫눈에 심장이 멎는 짜릿한 순간은 없었지만 편했다.
겨울방학이라는 쓸쓸하고 추운 기나긴 터널을 함께 했다는 동지애 비슷한 감정을 가졌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선 서로 얘기하지 않았다. 내가 언니 얘기를 꺼내지 않듯이 민수도 가족 얘기를 하지 않았다. 축제처럼 피어나던 산벚꽃이 보이지 않을 때쯤 민수의 열람실 옆자리에 방대가 앉았다. 어느 순간 민수가 방대와 말을 나누고 화장실을 함께 갔다. 어떤 때는 둘만 열람실을 빠져나가 꽤 오랫동안 자리로 돌아오지 않았다. 얼굴을 익히기도 전에 금방 친해지는 남자들의 세계가 이상하고 신기했다. 자연스럽게 셋이 점심을 먹었으며 취업 정보를 나누었다. 민수가 옆자리에 있어서인지 방대를 보면서 첫눈에 반하는 순간은 없었다. 민수보다 한 뼘 정도 훌쩍 큰 키에 짙은 눈썹과 가지런한 이목구비에서 호감을 느끼는 정도였다. 어깨까지 닿는 텁수룩한 머리카락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기 자리 잡아놨어. 내일은 갈 데가 있어서 못 올 거야.”
방대는 항상 말을 짧게 여러 번 했다. 곱씹어 생각하고 말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좀처럼 눈을 맞추지 않아 낯가림이 많다고 여겼으나 민수와 얘기할 때는 큰 소리로 허풍까지 떨기도 해서 의아했다. 민수가 일이 생겨 집에 먼저 가는 경우가 있는데 내가 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 꼼짝하지 않았다. 도서관에서 나와 교문을 지나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갈 때도 입 다물고 있다가 내가 버스를 타면 그제야 내일 봐, 라며 손을 흔들었다. 민수였으면 수강 신청을 잘못해서 깐깐한 강사를 만났다거나 내가 관심조차 없는 프리미어리그의 축구 얘기를 끈질기게 늘어놓았을 것이다. 귓등으로 흘리면서 고개를 끄덕여주고 눈도 맞추며 껌벅거렸을 터였다. 여름 방학이 끝나갈 즈음에 방대가 열람실에 오지 않으면 왠지 마음이 허전해져 열람실 출입구를 자꾸 힐끗거렸다.
“왜? 방대가 없어서?”
눈치 빠른 민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매일 눈에 보이다가 안 보이니 이상해서.”
방대를 딱히 마음에 두고 있는 것도 아닌데 습관이 되어 궁금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마음 쓰여? 잘 생겨서?”
민수는 따지듯이 물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남자인 내가 봐도 잘 생겼어. 그런데 어딘가 좀 이상해. 자취방에 갔더니 너무 깨끗해서 놀랐다니까. 정리 정돈은 말할 것도 없고 방바닥에 머리카락 한 올 없어. 창문턱에 먼지는 물론이고. 결벽증이 있는 거 같아.”
“흉보는 거야? 당사자도 없는데?”
“사실이 그렇다는 거지.”
“혼자 살수록 청결이 중요해. 뭘 좀 알고서 결벽증이라고 험담하는 거야?”
“얘 봐라, 그 정도면 말도 안 한다. 원룸에 들어가는 순간 소름 돋았다니까. 사람 사는 흔적이 없어. 그 정도라고.”
“흔적이 없다니? 무슨 말이야?”
“침대 이불도 호텔처럼 반듯하게 정리했고 창문 커튼 주름도 각을 잡아 흐트러짐이 없었어. 방구석에 책들이 있는데 크기에 따라 탑 쌓듯이 같은 높이로 맞춰놨어. 개수대에 물기조차 없었다니까. 쓰레기통도 깨끗하더라. 냉장고는 텅텅 비어 새것 같고.”
“혼자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방대 없다고 편을 들어? 잘 생겨서?”
“유별나게 성격이 섬세한 모양이지. 방대가 청결에 유독 신경 쓰는.”
“네 판단까지 간섭할 생각은 없으니까 맘대로 생각해. 암튼 보통 애가 아니야. 유령이 사는 원룸이었어. 다신 가고 싶지 않아.”
민수는 혀를 내둘렀다. 살다 보면 별의별 사람을 다 만나기 마련이라 그럴 수도 있다는 식으로 말했지만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다. 몸뚱이도 남에게 보여줄 구석과 보여주어선 곤란한 구석이 있었다. 보지 않아도 어떻게 생겼는지 대충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꼭꼭 숨겨두어서 드러나지 않으면 살 섞고 사는 부부 사이라도 눈치조차 챌 수 없었다. 비밀이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살 섞고 산다면 끔찍했다. 남편이 죽은 다음에 혼외자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날 때 아내는 엄청난 배신감이 슬픔을 짓누르는 기괴한 감정에 휘말려 살아온 세월이 허공중에 먼지처럼 흩어지는 현실을 맞닥뜨려야 한다. 그 참담함과 비참함은 죽음보다 두렵고 용암보다 뜨거울 터였다.
“민수가 원룸에 갔었다며?”
뒷산 매미가 줄기차게 울어대고 민수가 열람실에 오지 않은 한낮이었다. 방대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민수 말로 깨끗하게 해놓고 산다며?”
“응.”
“방의 상태를 보면서 방주인의 성격을 얼추 파악하는데 완벽주의자야?”
“내가? 깨끗한 편이지만 완벽주의자는 아니야. 습관이야.”
“지나치면 누구라도 옆에 가까이 다가서지 않을 거야.”
“왜?”
방대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눈동자로 물었다.
“청결에 과도하게 집중하는 사람은 상대에게 똑같이 강요하거든. 숨 막혀서 견딜 여자가 없을 거야.”
“그렇구나.”
방대는 머리를 주억거리며 반짝이는 눈빛으로 나를 건너다보았다. 본능적으로 눈빛이 담고 있는 뜻을 알아차렸다. 나를 여자로 보는구나. 기분이 묘했다. 방대의 잘생김에 익숙해져서 심장이 꿍꽝거리거나 찌릿찌릿한 전기적 신호는 없었다. 관계를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었다.
“친구로서 충고하는 거야. 오해하지 마.”
“알았어.”
방대의 목소리는 뜻밖에도 가볍고 활기찼다. 그 뒤로 원룸의 상태를 전해 듣지 못했다. 한 가지 분명하게 바뀐 것은 방대의 말이 조금씩 길어졌고 나와 민수가 암묵적으로 정한 대화 주제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개인적인 사정이나 가족 얘기, 학과 친구들에 관한 대화도 하지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런 것들보다 열람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뒷산의 멋들어진 소나무나 한바탕 요란하게 쏟아지는 소나기, 정문 밖 음식점들에 대한 호불호 따위들은 두서없이 떠들어댔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소극장에 가는 사실을 당연히 말하지 않았다. 산산이 부서진 연애의 흔적 밟기라고 생각해 처음에는 스스로 애처로워 우울했다.
하지만 횟수를 더하자 우울보다는 실연의 상처가 치유되는 느낌이 강했다. 팸플릿을 보며 배우들의 경력을 훑어보거나 스태프들의 무대 뒷이야기를 흥미롭게 읽었다. 무대 위에서 풀어놓는 서사도 놓치지 않지만 그보다 배우들의 발걸음 소리, 숨소리, 손동작이나 시시각각 변하는 표정들에 더욱 집중했다. 남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재현하는 배우들의 열정이 과거를 눈앞에 펼쳐놓고 관객들에게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우스꽝스러워서 웃어넘기는 내용들도 있지만 피하지 않고 정면에서 질문을 던지는 장면도 있었다. 대화하면서 생각을 나누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 연극을 혼자 보며 전전긍긍했다. 내 판단이나 생각이 반드시 옳지 않기에 누군가의 의견도 들어야 하는데 아쉬웠다. 대신 집으로 돌아가서 내용에 대한 평가라든가, 배우들의 연기력에 대한 서툰 낙서는 빠뜨리지 않았다. 홀로 연극 보기는 엄청난 모험이었다.
“장마당 세대의 특징이야. 자신을 위해 사는 경향이 강한데 문제는 서울에 와서도 마찬가지야. 공동체에 대한 헌신이 없어. 자유와 민주에 꼽사리 끼면서 당연한 줄 알아.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지 짐작조차 하지 않아. 오로지 북에 대한 적개심을 불태우면서 똘똘 뭉치지. 맹목적이고 엉뚱한 단결이 자유와 민주를 얼마나 파괴하는지도 모르고서.”
민수의 말에 방대는 슬그머니 창밖으로 눈길을 돌렸다. 조금 전 죽이 맞는 분위기는 삽시간에 부서지고 긴장감이 돌았다. 탈북자들을 뭉뚱그려서 방대를 대표로 내세워 몰아세우는 짓이 잘하는 행동이라고 볼 수 없지만 녀석은 확실히 쩔쩔매고 있었다. 민수가 아는 것이 없다면 무슨 생뚱맞은 말이라도 하면서 반박했을 터이지만 방대는 입술을 닫고 있었다. 표정은 민수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모든 탈북자가 그렇다고 확정적으로 말하는 건 문제가 있어. 진짜 조용히 살고 있는 이들도 많아.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고마워하면서 살아.”
“내가 말하는 것은 문화야. 문화는 팔다리와 머리에 거머리처럼 찰싹 달라붙은 습관이라서 개인적인 차이는 있을지라도 씻거나 벗겨내지 못한다는 사실이야. 서울에서 생활총화를 한다고? 말이 되는 일이야? 단순하게 한 사람의 유별난 습관이라며 무시할 수 있을까? 모종의 변화를 도모하려는 작은 시도가 아닐까?”
“변화는 무슨! 너무 앞서 나간다.”
나는 서둘러 민수의 뜀박질을 막아 세웠다. 방대가 딱해서라기보다 누구든 극단적으로 말을 하다 보면 의도와 다른 쪽으로 흘러갔다. 그러다가 상황이 점점 이상한 구석으로 치닫고 나중에는 수습조차 불가능해졌다. 제 말에 제 발이 꼬여 꼼짝달싹하지 못하는 상황에 맞닥뜨리면 민수가 위태로워질 수 있었다. 아직은 양손의 떡 중에서 하나도 내려놓고 싶지 않았다.
“지독하게 나쁜 편견이야. 편견에 들어맞는 탈북자가 있다고 해도 문제는 편견 자체가 편견을 가진 사람을 파괴한다는 거야. 정작 괴롭힘을 당해야 하는 사람은 멀쩡한데 편견이 사람을 망가뜨려. 남을 미워하는 마음이 자신을 너무나도 초라하고 허접스럽게 만드는지 몰라? 얼마나 고통스러운 생각 덩어리인지 알 거 아니야?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으니까.”
“방대 말이 맞아. 민수는 자해하고 있어.”
“희라야. 너까지 왜 그래? 사람들이 그런 눈으로 본다고. 내가 유별난 게 아니야. 너도 편견이 없다고 하면 위선이야.”
“있어. 하지만 지도부를 향한 편견이지 개인에 관한 판단은 아니야.”
“집단은 개인들의 집합이야. 싫든 좋든 집단의 문화는 개인에게서 비롯해.”
민수와 말다툼하고 싶지 않았다. 어떤 종류의 말다툼이든 자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상대를 파악하는 재료에 지나지 않았다. 행동으로 사람을 파악해야 하는데 번지수 잘못 찾아 생뚱맞은 판단에 빠질 수 있었다. 입으로 공격하고 방어하면서 등산을 함께 가는 행동은 말의 의지가 말뜻에 있는 게 아니라, 말 바깥에 있다는 의미였다. 민수는 애인으로서 방대가 어울리지 않는 이유를 나열하고 강하게 주장하고 싶겠지만 내 선택에 고려 사항은 아니었다. 인간적인 친밀도는 민수가 훨씬 높지만 잘생김에서 뒤떨어졌다. 방대와 만나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친밀도는 자연스럽게 높아질 것이다. 땅거미가 창문에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땅거미 너머에서 자동차 불빛과 거리의 간판 불빛들이 유리창을 뚫고 쏟아졌다. 자리에서 일어나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내가 가장 먼저 버스에 올라탔다. 타면서 차창 밖으로 서둘러 손을 흔드는 민수와 방대를 보았다. 내가 없어 말다툼은 하지 않을 것이고 어느 직장이나 반드시 있는 막무가내 꼰대를 안주 삼아 신나게 달릴지도 몰랐다.
아쉬운 점은 관극평을 충분히 나누지 않아 순이가 마지막으로 헤어질 때 정말 철이의 죽음을 예상하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대본에서 행간을 읽지 못하는 배우의 어설픈 해석이 관객들에게 죽음을 예상하지 못한 상황으로 비쳤지만 실은 알고 있음에도 농성장으로 보낼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현실을 연기로 드러내야 하는데 아쉬웠다. 다시 만날 것을 굳게 믿는 표정은 양가적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데 안타까웠다.
폭력이 난무하는 농성장인 줄 빤히 알면서도 철이의 분신자살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 실패한 파업과 죽은 철이. 분노한 순이의 외마디에서 소름 돋는 절망을 느꼈지만 바로 그 절망에서 희망은 피어나는 것은 아닐까. 연극은 그것을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어깨를 짓누르는 고통 속에 두 손 놓고 아무 저항도 하지 않으면 굳이 내일을 꿈꿀 필요가 있을까. 진짜 지옥은 오늘과 똑같은 내일이 아닐까. 물음표를 수없이 만들면서 집에 도착했다. 언니는 거실 소파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몸이 두 개였으면 좋겠지?”
언니는 대뜸 가볍게 비아냥거렸다. 눈을 휘둥그레 뜨고 바라보았다.
“이 기집애야. 헷갈리게 하면 천벌 받아. 둘 다 놓칠 수 있어.”
“엄마처럼 말하네?”
“언제는 그러지 않았냐? 둘 중 하나를 정해서 이삼 년 사귀어도 판단이 설지 어쩔지 모르는데 셋이 만나? 벌써 삼 년짼데도 말짱 도루묵이잖아?”
“놀 만큼 놀 거야. 결혼하면 꼼짝달싹 못 하잖아?”
“숨겨놓은 마당쇠라도 있어?”
언니는 호기심 돋은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회사하고 모임 말고 다니는 데가 어디 있어? 없지? 숨겨놓은 놈이라고?”
“혹시나 해서 말한 거지. 아니면 말고. 나처럼 낼 모래가 서른일 때를 기다리는 건 아니지?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시간은 바람보다 빠르니까.”
“염려 붙들어 매셔. 어련히 알아서 할까.”
말은 그렇게 해도 방으로 들어와 언니의 걱정을 머릿속에 담아두었다. 하루의 피곤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른손을 번쩍 들지 왼손을 선택할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머릿속은 온통 짙은 안개뿐이었다. 화장실에서 잠잘 준비를 하면서도 침대에 누워도 마찬가지였다. 목표를 향해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사는 일은 혼자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선택의 순간은 언제나 익숙하지 않았고 제일 나은 선택일지라도 후회는 의식의 외진 구석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옆으로 돌아누웠다. 젖가슴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 물컹 출렁거렸다. 선택은 몸이 하는 걸까. 오른손으로 왼쪽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몸뚱이가 이끄는 데로 살다가 정신이 망가지면 어떠하나. 철이의 분신자살은 지금을 사는 우리를 위한 행동이었을까? 순이가 죽은 철이 앞에서 소리 없이 통곡하듯이 수애는 떠나는 방대의 뒷모습을 보며 가슴 찢어지는 울음을 씹어 삼켰을까? 민수와 방대는 피 터지게 싸우더니 지금쯤 잠 들었을까? 방대의 동생은 중국인일까? 한국인일까? 물음표를 수없이 만들면서 눈을 감았다. 잠이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