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느닷없이 희라에게 말머리를 돌리는 지아가 의심스러웠다. 말다툼하면서도 힐끗힐끗 희라를 바라보는 표정은 부드럽지만 눈빛은 날카로웠다. 꿍꿍이를 가득 담고 있었다. 매포로 달려가 어머니에게 그녀의 존재를 알리고 이런저런 트집을 잡아 헐뜯다가 퇴짜 놓으라고 부추길 수 있었다. 지아를 아끼는 어머니는 홀라당 넘어가 만나기도 전에 그녀를 탐탁잖아할 것이다. 어머니는 탈북 경험을 공유하는 지아의 말을 무조건 믿었다. 상처 있는 사람은 상처 있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이상한 주장을 곧잘 해왔다. 끼리끼리 만나야 잘 산다는 것인데 엄밀하게 따지면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안전하게 사는 것이었다. 말하지 못하는 거친 아픔이 서로에게 있으니 문제 삼을 일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설렘이나 떨림도 없는 사람과 사는 것은 지옥이었다.
“저녁 먹고 갈래?”
희라가 불편해하는 것 같아 지아를 어서 보낼 속셈으로 말했다.
“지금 가도 도착하면 깜깜해. 언니, 만나서 반가웠어요.”
지아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희라에게 고개를 까닥하며 인사까지 했다. 나에게 희라와 헤어지라고 닦달해 봤자 소용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행동이지만 어머니를 달달 볶아 희라를 떼어놓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랬다간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작정이었다. 피붙이 여동생과 다를 바 없다 해도.
“당돌한 구석이 있어. 깜짝 놀랐어. 고집도 있고.”
지아를 보내고 나서 희라는 한결 편안한 표정이었다. 지아를 만나지 못한 몇 개월 사이에 무슨 변화가 있었는지 알 수 없으나 내 앞에서 향우회를 두둔한 짓은 확실히 뜻밖이었다. 내 성향을 빤히 알고도 기죽지 않고 또박또박 대꾸하는 모습이 낯설었다. 희라가 있어서일까. 끼리끼리 모이면 알게 모르게 물들어 탈북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을 무시하는 예도 없잖아 있었다.
고향을 지키는 많은 사람들이 핍박받고 형편없이 쪼들리며 사는지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들을 향한 분노였다. 민수의 말에 따르면 간섭해선 안 되는 이웃 나라에 불과한데 탈북자들은 같은 민족이니 당연히 도와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렇다면 조선족은? 중앙아시아에 뿔뿔이 흩어져 사는 고려인은? 그들의 논리라면 조선족에게도 고려인에게도 달러와 쌀을 보내야 했다.
“바빠서 모임에 나가지 못할 거야.”
“청첩장은 줄 거지?”
“요즘은 메시지로 보내잖아. 업체에서 만들면 보낼 거야. 민수한테도.”
“알았어. 어서 들어가.”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희라를 들여보냈다. 한 달 남짓 남은 언니의 결혼식 때문에 희라는 바쁘기고 무척 들떴다. 예행연습이라며 힘들게 구한 언니의 신혼집을 예쁘게 꾸밀 요량으로 이곳저곳 발품을 팔았다. 엔틱가구며 전자제품이며 하다못해 조명 가게도 목록에 있었다. 자기가 결혼할 때 언니가 도와주기로 했다며 품앗이라고 했다. 매달 둘째 주 토요일에 하는 모임인데 언니의 결혼식이 셋째 주 주말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예전처럼 쓸쓸하지 않았다.
언니의 결혼식장에서 아버지와 어머니, 친인척들에게 인사하기로 희라와 계획했다. 민수가 결혼식장에 온다면 실감 나는 현실로 받아들일 것이고 친구로 남을 것인지 패배자로 남을지 결정해야 했다. 녀석은 닭 쫓다가 지붕 쳐다보는 꼴이었다. 너무 느슨하게 그녀에게 접근했다고 자책하거나 일찌감치 침대 위로 자빠뜨리지 못한 전략 실수를 뼈아프게 여길 터였다. 어찌 되었든 냉정한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 처지라 후회막급이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신사협정을 지킬지 두고 봐야 했다. 민수가 어느 쪽을 선택하도록 관여할 수 없지만 친구를 잃고 싶지 않았다. 주말에 매포에 내려가 결혼할 여자가 있다고 어머니에게 알려야 했다.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었다. 보타산이 보이면 비로소 고향에 돌아온 것처럼 마음이 포근해지고 안정감을 느꼈다. 개마고원에 가면 이런 느낌이라는 막연한 추측을 했다.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땅. 불현듯 서글픔이 몰려왔다. 하지만 나를 뛰어넘어 외할아버지의 땅이기도 한 보타산의 자락에서 위로와 위안을 받았다. 어머니는 고추밭에 있었다.
“피곤할 텐데 왜 내려왔니?”
“목사님은요?”
“왕웨이 문제로 서울 갔다. 자주 가는데 널 찾지 않나 보구나.”
“언제 들어오나요?”
“이런저런 문제가 많아 관광비자를 받기로 했단다.”
“고추가 잘됐네요. 허리도 아프실 텐데 쉬엄쉬엄하세요.”
“그럴까? 좀 쉬자.”
어머니는 밭두렁에 앉아 줄곧 왕웨이 얘기를 이어갔다. 친자확인 소송을 거쳐 국적을 받을 수 있다는 둥 어린 것이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공사판을 쫓아다니며 고생한다는 둥 혜산에 들어갔다가 쫓겨났다는 둥 어머니는 미리 마음 단단히 먹으라는 뜻으로 얘기를 반복했다. 햇살이 따가웠다. 빨갛게 익은 고추는 조용히 흐르는 바람에도 흔들렸다.
“사귀는 사람이 있어요.”
“왕웨이도 여자가 있다더구나. 아이도 있는데 이런저런 문제 때문에 복잡해.”
뜻밖이었다. 도시를 떠돌아다니면서 마음 붙일 곳을 찾는 건 자연스럽지만 벌써 아이가 있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길에서 사귄 여자라 헤어지고 만나고 하다가, 돈 냄새를 맡았는지 퍼질러 앉았데.”
“같이 살지 않았다고요?”
“그런 모양이야. 어느 날 아이를 데리고 나타났다는구나.”
어머니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왕웨이를 데리고 오는데 여러 문제가 있다고 짐작했다. 왕웨이는 어찌어찌 감당할 수 있다고 여겼는데 아이와 여자까지 있다면 차원이 다른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지아가 다녀갔을까 싶어 걱정했는데 더 큰 곤란에 빠졌다. 어머니도 그녀가 무슨 말을 하든 귀에 들려오지 않았을 것이다. 희라 얘기를 꺼내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너한텐 피해가 없도록 할 테니 그렇게 알아라.”
“동생 일인데 걱정하지 않을 수 있나요?”
“여자가 있다고? 지아가 와서 몇 마디 했지만 섭섭해서 하는 말이라고 봐. 네가 좋다는데 내가 뭐라고 하겠니? 한 번은 만나야 하니 데리고 와라.”
어머니는 밭두렁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털고 고추밭으로 들어갔다. 손은 연신 고추를 따지만 마음은 왕웨이에게 가 있었다. 내게 말도 꺼내지 못하고 끙끙 앓았던 시간은 충분히 보상받아야 했다. 어머니의 도움으로 혜산을 빠져나온 것처럼 왕웨이도 중국에서 데리고 와 곁에 두고 싶은 간절함을 이해했다. 당신의 뱃속에서 잉태한 생명을 옆에 두고 보지 못하는 헛헛함이 얼마나 독한지 추측으로나마 짐작했다. 왕웨이가 버림받았다고 여겨 모진 마음을 품고 있다고 해도 어머니의 공허감보다 고통스러울까.
어머니는 고추밭에서 허리 펴고 나를 바라보았다. 하나원을 나와 여명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집 밖으로 나서면 모든 것이 신기했다. 차가 많은 것이 이상했고 높은 건물이 빽빽하게 늘어선 거리도 수상했으며 넘쳐나는 먹거리들이 곳곳에 널려 있는 것도 믿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사람들이었다. 한 번도 만나지 않았는데도 성난 얼굴을 숨기지 않았다. 동네에 이미 소문이 퍼진 뒤였다. 개새끼! 빨갱이 놈! 낯선 사람들이 손가락질과 욕설을 퍼부었다.
조국을 배신하고 오니 좋냐? 네 엄마도 빨갱이지? 콩 심은 데 콩 난다고 했어. 동네에서 껄렁껄렁 돌아다니던 또래 몇몇은 아예 대놓고 주먹질했다. 빨갱이 거지야! 남의 집에 와서 주인 노릇을 하려고 해? 고개 숙이고 없는 듯 있는 것도 거슬리는데 똑바로 바라봐? 미친 거 아니야! 빨갱이는 몽둥이가 약이야! 흠씬 두들겨 맞으면서, 왜 맞는지도 모르면서 수애를 떠올렸다. 미치도록 수애가 보고 싶었다. 돌아가고 싶었다.
앞으로 절대 눈에 띄지 마라. 보이는 날마다 먼지 나도록 맞을 줄 알아! 빨갱이 새끼야! 또래들은 항상 서너 명씩 몰려다녔다. 후미진 골목 구석에서 옹기종기 머리 맞대고 담배를 피우거나 어두운 공터에서 쉽게 취해 있었다. 어머니는 눈치채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 역시 동네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있었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두들겨 맞고 집에 들어온 날은 하소연했다. 제정신으로 생지옥에 가겠다는 거니? 사랑하는 사람이 있단 말이에요. 나 때문에 보안원이 끌고 갔을 거예요.
모멸감을 느껴도 참아야 해. 이겨내야 여기서 살 수 있어. 어머니는 나를 다독였다. 밤마다 수애를 만나는 꿈을 꾸었다. 개마고원 잎갈나무 아래에 있으면 수애가 다가와 눈물을 닦아주었다. 방황하며 두 계절을 보냈고 목사님은 어머니의 간청을 받아들여 매포로 내려가기로 했다. 나는 밭두렁에서 일어나 고추밭으로 내려섰다. 서너 이랑 더 고추를 따야 했다. 해가 조금씩 기울어질 무렵이 되어서야 고추밭에서 나왔다. 마당 가득 붉은 고추를 널어놓고 어머니는 저녁 준비를 했다. 목사님이 돌아왔다.
“또 왔어?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잖아? 피곤할 텐데.”
목사님과 마당 평상에서 뉘엿뉘엿 기우는 해를 등지고 앉았다. 매포 읍내 가득 노을이 내려앉고 바람은 선선했다.
“바쁘다고 들었어요.”
“혈연관계가 입증되지 않아서 초청비자는 힘들고 관광비자를 받으려고 하지. 곧 될 거야.”
“여자와 아이가 있다면서요?”
“나도 깜짝 놀랐다니까. 같이 오기 힘들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차차 생각해 봐야지. 그건 그렇고, 엊그제 지아가 내려와서 사귀는 여자가 있다고 하던데? 네가 상처받을까 싶어 걱정이 많더라.”
“헐뜯지 않던가요?”
“나야 네 엄마와 사는 건 문제없잖아? 속속들이 알고 이해하니까. 여긴 시골이라 불한당이나 괴짜들은 없어. 사람들이 순진하기도 하고. 도시는 아니야. 조금이라도 이익이다 싶으면 물고 뜯는 곳이야. 네가 지금까지 버틴 것도 친구에게 탈북 사실을 말하지 않아서 어울렸던 거잖아. 기억나? 예전에 몹쓸 놈들한테 두들겨 맞았던 거? 그런데 아내 될 사람이 탈북 사실을 알면 어떻게 되겠어?”
목사님은 사뭇 걱정스럽다는 투로 말했다.
“털어놓았어요. 혜산 출신이라고.”
“그래도 좋다고 하든?”
“신경 쓰지 않아요. 열린 사람이니까요.”
“다행이구나. 그러나 살다 보면 부딪치는 문제가 한둘이 아닐 거야. 결혼생활은 사랑만으로 꾸려지지 않아. 이해와 배려가 필요한데 어떨지 모르겠구나. 지아의 말처럼 걱정스럽고. 게다가 어머니가 재혼한 데다가 왕웨이도 있잖아.”
목사님은 순탄치 않을 미래를 내다보며 걱정했다. 실제로 쉼터를 찾는 탈북자 중에 이혼한 이들은 대부분 남쪽 여자와 결혼했다. 빠르면 일 년도 채 되지 않아서 도장을 찍거나 길어도 삼사 년이었다. 몸에 배어있는 습관을 뜯어고치는 일은 불가능했다. 거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향수병에 깊게 시달렸다. 죽을 때까지 사회에 적응하기를 멈추지 않아야 하는데 한순간에 손을 놓아버려 지독한 외로움에 갇혔다.
급기야 우울증까지 겪었다. 가족과 친인척들을 배신하고 홀로 떨어져 나왔다는 생각은 의외로 집요했고 무거운 마음의 짐이었다. 웃고 있어도 웃는 게 아니었다.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아 어떤 일을 하더라도 멈칫거렸다. 고향을 잃은 상실감과 배신했다는 죄책감에 자연스럽게 향우회로 발길을 돌리고 우스꽝스러운 구호와 하잘것없는 풍선 날리기에 열광했다. 그러다가 조금도 변하지 않는 현실 앞에서 좌절하고 실망감에 빠져 쉼터를 찾았다. 불편한 진실들을 신에게 떠넘기고 자연 속에서 노동하며 사람 본래의 모습을 찾으려 했다. 향우회 총무도 이곳에 왔다면 죽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인 동생이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어요. 오는지 모르지만요.”
“그것까지 알아? 그래도?”
“아직까지는요. 왕웨이가 오면 어떻게 달라질지 알 수 없지만요.”
“두고 봐야 한다는 거네. 어머니는 애당초 널 만나지 않게 하려고 할 거다. 원망은 혼자 다 받겠다고 하니 자리를 피하는 쪽이 좋아. 우리말도 못 하니 만난들 대화가 안 돼. 어머니가 서울로 가는 편이 좋지, 네가 매포로 내려오는 건 막을 거다. 언제까지 숨길 수 없으나 최대한 오래 네 여자의 눈에 띄지 않도록 특별히 신경 써야 할 것 같구나.”
노을이 짙어지고 몇몇 농가 지붕의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천천히 피어올랐다. 개마고원에서 내려다본 혜산의 지붕 낮은 땅집에서도 저녁이면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났다. 그 연기를 보며 굶주린 배를 움켜쥐었던 기억은 생생했다. 흐려질 때도 되었지만 수애의 얼굴은 갈수록 또렷해졌다. 희라를 생각하면 미안한 일이지만 첫사랑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거라는 불길한 짐작이 들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희라의 메시지를 받았다. 언니의 모바일 청첩장이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언니는 밝게 웃으며 남자 어깨에 머리를 살짝 기대고 있었다. 정장 입은 남자 역시 언니의 허리를 한 손으로 감싸며 환하게 웃었다. 스튜디오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넘기자 바닷가에서 찍은 사진이 나타났다. 평상복 차림인데 여행을 떠난 두 사람이 즐거움에 활짝 웃는 모습이었다. 나도 희라와 함께 이들처럼 함박웃음을 웃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설령 웃더라도 마음 안쪽 깊숙한 곳에 웅크리고 있는 수애와 왕웨이와 혜산이 발목을 잡아 마음은 시커멓게 타들어 갈 터였다. 그럼에도 삶은 이어가야 하는 것. 혼잣말하며 어두워지는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처음 뵀겠습니다. 방대라고 합니다.”
밤새 잠자리에서 뒤척거려 깊은 잠을 자지 못했다. 머릿속이 흐리멍덩하지만 최대한 밝게 웃으면서 허리를 깊이 숙였다. 희라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식장 입구에 서서 손님을 맞이했다. 생각보다 로비는 북적거렸다. 아버지는 손을 내밀었고 어머니는 위아래로 나를 훑어보았다.
“자네가 방대구먼. 얘기 많이 들었어. 고생하네.”
“잘 생겼네요.”
“감사합니다.”
“희라는 신부대기실에 있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다시 고개를 푹 숙이고 아버지와 어머니 앞에서 물러났다. 부모님은 연이어 도착하는 친인척과 지인들의 인사를 받기에 바빴다. 식장 입구에서 안을 쓰윽 살펴보았다. 자리에 앉아 식을 기다리는 사람보다 오랜만에 만나 로비에서 서로의 근황을 살펴보는 이들이 더 많았다. 결혼식보다 정작 서로의 안부가 더 중요해 보였다. 신부대기실이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없었다. 로비 구석에 서서 복작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민수를 찾았다.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가는 중이야. 예비 장인어른과 장모님께 정식으로 인사할 기회잖아. 기회도 자연스럽고. 핸드폰에서 들려오는 민수의 목소리는 씩씩했다. 허풍인지 넉살인지 자신감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식장 입구는 세 개인데 세 팀이 결혼식을 하는 모양이었다. 로비에 있는 사람들은 뒤섞여 희라네 하객들을 구분할 수 없었다. 집이 아닌 장소에서 결혼한다는 것을 진즉에 들어 알고 있지만 여전히 낯설었다. 가족이나 가까운 친인척뿐만 아니라 지인들까지 몰려드는 풍경도 신기했다. 뺨이 따가운 느낌에 고개를 돌렸다. 나를 바라보는 여자들과 눈이 마주쳤다. 언니의 결혼식이라 신경 썼다. 이발도 하고 하나뿐인 정장을 세탁소에 맡겨 하룻밤 사이에 후다닥 깨끗하게 만들어 입고 왔다. 어색하게 여자들에게 눈인사했다.
“여기 와서도 끼 부리냐?”
민수였다. 내 어깨를 툭 친 녀석도 옷차림과 머리에 무척 신경 쓴 티가 났다. 평소 모습과 확연히 달랐다. 허풍이 자신감으로 느껴졌다.
“희라가 신부대기실에 있다고 하데. 가보자.”
민수가 앞장섰다. 아까는 어디 있는지조차 찾을 수 없었던 신부대기실은 식장 입구와 멀지 않았다. 안으로 들어가자 언니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긴 소파에 앉아 포즈를 잡고 있었다. 촬영기사는 바빴다.
“축하합니다.”
“행복하세요.”
“와줘서 고마워요.”
친구들에 둘러싸인 언니는 피곤을 꾹꾹 눌러 가라앉히면서 밝게 말했다. 신부 화장을 한 탓에 예뻤다. 희라는 보이지 않았다. 주인 없는 집에 들어와 주인 행세하는 어색하고 서먹한 느낌이 들었다. 민수는 언니 옆에서 듣기 좋은 말을 늘어놓았고 나는 신부대기실 밖을 살폈다. 희라는 보이지 않았다. 어깨너머로 봤던 고향의 결혼 풍경과 너무 달랐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해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혜산에선 신랑이 신붓집에 가서 푸짐하게 차린 밥상을 받은 뒤 다시 집으로 돌아와 신부에게 밥상을 내줬다. 그리고 같은 상에 앉아 등 뒤로 여러 살림살이를 쌓아두고 사진 찍는 것으로 끝이었다. 여자는 빠짐없이 화려한 한복이고 남자는 군복차림이었다. 잘 사는 축에 속해야 양복을 입었다. 빠질 수 없는 중요한 행사가 있었다.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동상 광장에서 마주친 신혼부부는 마냥 행복한 웃음을 지었지만 돌이켜 보면 그 웃음 뒤에 숨은 것은 미래 없는 현실을 어찌할 수 없다는 지독한 절망이었다.
“여기 있었네. 들어가 앉아.”
신부대기실에서 나와 식장 입구에 가자 희라가 있었다. 민수와 함께 식장 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두런두런 이런저런 얘기가 주위에서 들려왔다. 희라는 자리를 옮겨가며 친인척들에게 인사하기에 바빴다. 로비에서 눈길이 마주쳤던 여자들 앞에서 한참 수다를 떨었다. 식은 금방 시작했고 나는 예행연습 삼아 분위기를 익히려 바쁘게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신랑 아버지가 주례사하는 것도 신기했고 축가를 부를 것도 이상했다.
“주례는 괜찮은 직업을 가진 사람이 하거든. 요즘 추세는 주례가 없기도 해.”
민수는 장면이 바뀔 때마다 주저리주저리 떠들었다. 너는 모를 거다. 혜산 빨갱이 놈이라. 그런 인식이 깔려 있었다. 나는 한 귀로 흘리며 입 닫고 있었다. 고개만 끄덕였다. 괜히 민수의 심기를 건드렸다가 구석까지 내몰렸다고 판단해서 내가 탈북자라고 아무나 붙들고 떠벌릴 것 같았다. 낯선 사람들에게 모멸감을 받는 것은 참더라도 희라와 부모님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은 눈앞에선 이러쿵저러쿵 말은 하지 않겠지만 뒤돌아서면 편견이 차고 넘치는 서늘한 말들을 할 터였다.
가벼운 실수도 너그럽게 봐주지 않고 탈북자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직장을 옮겨 작은 종합병원의 재무회계 부서에 입사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직장 동료는 물론이고 주위 사람 모두 나를 매포 촌놈으로 알고 있었다. 민수와 희라를 빼고. 민수가 속사정을 알고 있으니 소중한 친구였다. 결혼식은 막바지를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행진곡이 들려왔고 박수 소리와 함께 신랑과 신부는 행진을 시작했다. 행진이 끝나자 민수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희라는 친구들과 함께 있었다.
“식당으로 가자. 사진을 찍기엔 어정쩡하잖아?”
사람들이 우르르 식장을 빠져나갔다. 친인척들은 신랑신부를 가운데 두고 사진을 찍었다. 신부대기실에서 봤던 촬영기사는 아까와 다른 커다란 사진기를 만지작거렸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 뷔페식당으로 갔다.
“의외로 싱겁네.”
“폐백 절차가 남았어.”
“그게 뭐야?”
“옛날식으로 결혼식을 또 하는 거지. 간단하게. 시아버지와 시어머니 앞에서.”
“똑같네. 두 번 하는 것과 신랑 집에 가서 또 하는 거.”
“의외인데? 하긴 풍습이 쉽게 바뀌지는 않지.”
식당은 복잡했다. 저마다 음식을 접시에 담아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식사했다. 가족이나 아는 사람끼리 자리에 앉아 있어 민수와 식탁 하나를 독차지했다.
“동숭동에 갔더니 안 왔데?”
“매포에 갔었어. 이번 주에 만나기로 했잖아?”
“희라한테 전화했다가 볼멘소리만 들었다.”
“언니 결혼식이 코앞이라 한창 바쁠 텐데 전화하니까.”
민수가 어지간히 애간장 타는 모양이었다. 배탈을 핑계로 함께 연극 보기를 포기한 이후로 식장에 나타나지 않을 거라 짐작했는데 왔으니 고마울 뿐이었다. 신사협정에 따라 친구로 남는다는 뜻이었다. 비로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진짜 친구를 사귀는 셈이었다.
“잠깐 일어나. 민수는 식사 계속하고.”
희라가 다가와 어깨를 툭 쳤다. 젓가락을 내려놓고 그녀를 따라나섰다.
“왜?”
어리둥절했다. 희라는 내 손을 잡고 가족이 분명한 식탁 앞에 섰다.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을 가진 중년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큰아빠, 애인이에요.”
나는 냉큼 허리를 굽혀 넙죽 인사를 했다. 계획에 있었지만 까맣게 잊고 있다가 막상 닥치니 얼떨떨했다. 식탁마다 옮겨가며 인사했다. 민수의 불만 가득하고 마땅찮다는 눈길이 느껴졌다. 배탈은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마지막 상황까지 맞닥뜨렸다고 느꼈다면 민수의 다음 수는 무엇일까? 사라지지 않으면 친구로 남는 것뿐이었다. 승자로서 쾌감보다 민수의 착잡한 마음을 헤아렸다. 녀석이 원한다면 신혼여행도 함께 갈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