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갈나무 숲 18

by 이순직

18


“긴장하지 마.”


방대는 버스에서 내리자 대뜸 말했다. 어머니의 고단한 삶을 알고 있어 어젯밤은 한숨도 자지 못했다. 친구로 왔었다면 긴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읍내를 벗어나자 배추밭과 무밭이 펼쳐져 있었다. 햇살은 따가웠다.


“와서 인사해야지. 예의인데.”


“그러니까 얼굴 풀어. 잡아먹지 않아.”


“너라면 긴장하지 않아? 아까부터 무식하게 탈북자 소굴이라고 말했잖아?”


“민수는 그런 말을 하고도 남아.”


한참을 걷다 보니 산기슭에 자리 잡은 집이 나타났다.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탈북자들의 쉼터라더니 규모는 크지 않았다. 멀리서 봐도 창고로 쓰는 건물과 숙소로 쓰는 두 채였다. 집 뒤편의 너른 고추밭에서 두 사람이 허리를 굽혔다 폈다 하면서 고춧대를 뽑아냈다. 어차피 한 번은 와야 하니까. 속으로 단단히 마음을 다잡았다. 마당으로 들어서자 기다림에 지친 표정으로 어머니가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처음 뵀습니다.”


“오느라 고생 많았어요. 반가워요.”

어머니는 내 손을 꼭 잡고 활짝 웃었다. 비로소 긴장이 한 꺼풀 풀렸다.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겨 막연히 상상했던 강인하거나 날카로운 인상은 아니었다. 농사일을 손에서 놓지 않아 피부가 검고 주름살이 자글자글해 읍내에서 흔하게 보던 시골 할머니와 다를 바 없었다. 친근함이 느껴졌다.


“가을볕은 여자한테 안 좋아요. 들어가요.”


어머니는 내 손을 잡아당겼다. 거실은 넓었다. 소파에 앉자 마당이 훤히 보였다. 부모님은 살아 계시냐 무슨 일을 하시냐 형제는 어떻게 되느냐, 묻지 않고 어머니는 빤히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닮은 구석이 없진 않네. 반할 만도 하지.”


“네?”


“이젠 잊을 만한데.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어머니는 손사래까지 치면서 애써 함박웃음을 지었다.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지만 누구와 닮았냐고 물어볼 수 없었다. 처음 만나면서 다짜고짜 따져 물어볼 질문도 아니었다. 어머니가 아는 어떤 여자와 비슷하게 생긴 모양이라고 짐작했다.


“왔네요.”


지아가 현관문을 열고 거실로 들어왔다. 깜짝 놀랐다. 춘천에 있어야 할 그녀가 왜 여기에? 지난번 만남에서 확실하게 해두었다고 여겼는데 미련이 남았나. 의구심이 들었다. 마당에 있던 방대가 들어왔다.


“목사님이셔.”


방대의 말에 벌떡 일어나 인사했다. 목사님은 그냥 앉아 있으라는 손짓을 했다.


“이렇게 사네. 좀 누추하지?”


“아니에요. 좋은데요.”


선선한 바람이 마당에서 거실로 들어왔다. 어느 사이 지아는 마당에서 탈북자로 보이는 남자와 얘기하고 있었다. 중국말이었다. 지아가 중국말을 할 수 있는지 몰랐다. 중국에서 숨어 살다가 넘어온 탈북자가 꽤 있다고 들었다. 불법체류자로 사는 것은 만만치 않을 터였다. 나와 눈이 마주친 남자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딱히 꼬집을 수 없지만 이목구비가 어디인지 모르게 어머니와 닮은 것도 같았다. 싸한 느낌이 들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낯선 얼굴을 처음 보면 다들 엇비슷하게 보였다.


어머니는 아침 일찍 오느라 잠도 설쳤을 거라며 내 손등을 다독였다. 목사님은 생각보다 말하지 않았다. 생부가 아니어서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이 내키지 않을 수 있었다. 어머니와 목사님이 얘기할 때 존대해서 상대를 배려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확실히 어색했다. 오랜 세월 동안 살 섞으면서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방대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막상 맞닥뜨리니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불편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색함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어깨를 짓누르는 압박감 따위들이 만들어내는 침묵에 적응할 수 없었다. 당혹스러웠다. 말하려고 해도 목사님이라고 호칭을 붙어야 하나 아버님이라고 해야 하나 헷갈렸다. 어머니는 살갑게 몇 마디씩 하지만 가까이 다가서기 힘들 거라는 짐작이었다. 아무리 버리려 해도 편견은 말끔하게 가시지 않아 도저히 어쩔 수 없었다. 겉보기에 혜산에서 이주했다고 믿어지지 않지만 속내를 짚어보는 일은 애당초 불가능했다. 공감대를 만들 수 있는 경험조차 없어 첫술에 배부르랴 싶었다. 앞으로 얼굴도 익히고 이런저런 살아가는 얘기를 나누다 보면 좋아질 수도 있으나 장담할 수 없었다. 방대는 탈북을 밝히기 전에 이미 익숙해진 터였다.


“점심 먹고 올라가려고요. 결혼 준비할 것도 많아서요.”


방대가 내 눈치를 보더니 말했다. 불편해하는 나를 재빨리 파악한 모양이었다. 원래는 하룻밤 자려고 했다.


“음식 준비하는 동안 한 바퀴 둘러봐요. 볼 것도 없지만요.”


어머니는 일어나서 거실 창가로 다가가 마당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조금 전까지 있었던 지아와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마당으로 나와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자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불편했지?”


“첫 만남이라 아무래도.”


“차차 좋아지겠지. 너무 마음 쓰지 마.”


결혼해도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내려올 거라는 방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고 내가 기름처럼 둥둥 떠 있다는 강한 느낌을 쉽게 떨쳐버릴 수 없었다. 낯선 장소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서인지 모르겠지만 편견은 단단했다. 나도 미처 몰랐다. 머리와 마음이 따로 놀았다. 고추밭 두렁을 걷다가 고춧대를 한 손으로 뽑는 중국인과 눈이 마주쳤다. 그때 불현듯 떠올랐다. 그가 방대의 동생이라는 짐작이. 중국에 있어야 할 동생을 눈앞에서 보다니 황당하고 당황했다. 무엇보다 빤히 알고 있을 방대가 귀띔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여기에 있는 것과 중국에 있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신경이 쓰였다. 당연히 내가 받을 영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생이지?”


“나도 몰랐어. 여기에 있는 줄.”


방대는 매주 매포에 내려오면서도 모른다며 발뺌했다. 모를 수 없었다. 지난주도 신혼집을 계약하고 매포에 내려왔다. 심한 배신감이 들었다.


“말하면 화낼까 싶어서 입 닫고 있었던 거야?”


“정말 몰랐어. 믿어줘.”


“몰랐어도 알았으니 말해줘야 하는 거잖아? 내가 눈치채지 못하면 그냥 지나치려고 했어?”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된 거야.”


방대는 쩔쩔맸다. 의붓시아버지는 방대와 사귀면서 들었으니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중국인 시동생이 매포에 있다는 사실과 그걸 숨긴 채 대충 넘어가려는 못된 짓에 화났다. 뒤통수를 호되게 얻어맞은 꼴이었다. 이러니까 어머니가 유독 살갑게 말했던 거구나.


“실망했어. 정말.”


“지금이라도 인사해. 헤이! 왕웨이!”


방대는 동생을 향해 소리치며 오라고 손짓했다. 방대는 몸짓으로 동생에게 인사하라는 시늉을 했다. 동생은 실실 웃으면서 고개를 까닥 숙였다. 내가 인사하자 중국말로 뭐라 뭐라 내뱉었다. 말도 통하지 않고 태도 역시 뻣뻣했다. 인사하며 웃었지만 속은 뒤집어졌다. 눈앞에 나타난 중국인 시동생이라니! 막연히 알고 있던 사실이 현실로 다가오니 기가 막혔다.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어차피 나중에 알게 될 테니 미리 말할게.”


“또 있어?”


“왕웨이한테 아내와 아들이 있어. 중국에.”


“뭐라고? 벌써?”


“농민공으로 도시를 떠돌다가 만났나 봐. 지금은 혼자 왔지만 데리고 올 것 같아. 어머니가 원하니까.”


머리가 지끈거렸다. 중국인 동서라니! 화나고 어처구니없는 내 표정을 힐끔 쳐다보던 동생이 고추밭으로 돌아갔다. 자신이 환영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지금은 내 앞에서 약자처럼 굴지만 나중에는 무슨 똥고집을 부릴 줄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방대의 가족에 자연스럽게 섞일 수 없을 거라는 불안한 예감이 밀려왔다.


“나와 결혼하는 거야. 나랑 사는 거라고. 여긴 일 년에 한두 번, 아니 한 번만 오면 돼.”


나는 방대를 빤히 쏘아보았다. 동생이 매포에 있다는 것보다 말하지 않은 짓에 화낸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 함께 살 것도 아니니 무시하라는 뜻이었다. 이미 알아버린 사실을 모른 척 외면한다고 해서 잊히지 않았다. 늘 의식의 언저리에서 맴돌아 일상을 파괴하는 불안감을 키울 터였다. 설령 내가 일 년에 한 번 매포에 내려온다고 해도 녀석은 뻔질나게 들락거릴 거라는 추측은 어렵지 않았다. 완벽하게 물 위에 뜬 기름 꼴이었다. 시댁 식구들과 섞이지 못하고 외따로 서 있으면 방대와 관계도 원만치 않을 터였다. 보이지 않는 불길한 예상을 근거로 파혼을 선언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언니의 파혼 선언이 엄마와 아빠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 생생하게 기억하는데 집안을 발칵 뒤집어놓을 순 없었다. 사람들이 꺼리는 탈북자인들 어떠랴 싶었다. 사랑이 우선이라 믿었다. 민수가 떠올랐다. 발 빼기엔 너무 늦었다. 방대를 온전히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절반은 어머니에게 떼어줘야 하나. 오랜 시간을 두고 얼마나 되찾아올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동생 문제는 차차 생각하기로 하고 들어가자. 점심은 먹고 간다고 했으니.”


“목구멍으로 넘어갈 것 같아?”


“처음 왔는데 그냥 가려고? 목사님이나 어머니 입장도 생각해야지.”


“어머니도 그래. 곤란한 처지야 이해해. 그렇다고 왜 말을 하지 않았어?”


“미안해서 그렇지.”


“지아가 여기 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아. 다 알고 있을 테니까. 어떻게 반응하나 구경하고 싶은 거겠지. 꼴좋다고 비웃으려고.”


“삐딱하게 생각하지 마. 잘 될 거야. 점심 먹고 올라가자.”


방대는 심통을 부리는 것쯤으로 여겨 나를 살살 달랬다. 녀석의 태도에 울화통이 터졌지만 할 수 있는 행동은 없었다. 결혼을 깽판 놓을 수 없고 혼자 서울로 가는 것도 마땅찮았다. 외통수에 몰린 셈이었다. 뒤돌아 집으로 가는 고추밭 두렁에서 마당에 서 있는 어머니를 보았다. 어머니는 내 손을 덥석 잡고 집으로 들어갔다. 방대와 둘이 식탁에 앉았다. 마음은 더없이 거북했다.


“올라간다니 먼저 들어요.”


어머니는 식탁 옆에 서 있다가 불편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소파로 가서 앉았다. 맛있게 먹겠다는 인사도 없이 숟가락을 들었다. 망가진 기분 때문에 음식은 입에 맞지 않았다. 무거운 침묵이 거실 가득 넘쳐흘렀다. 어머니가 마당에 있었으니 동생이 나에게 인사하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지금보다 훨씬 뒤에 알았으면 했거나 애당초 숨기려 하지 않았을까. 아까와 다른 어머니의 무뚝뚝한 태도가 눈에 들어왔다. 식탁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마당을 내다보고 있었다.


배 아파 낳은 자식을 며느리 될 사람과 바꾸지 않을 것이다. 나라도 그럴 수밖에 없어 이해하지만 섭섭함은 어쩔 수 없었다. 어머니와 관계가 쉽게 좋아지지 않을 거라는 판단에 입맛이 뚝 떨어졌다. 몇 숟가락 더 뜨다가 내려놓았다. 방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천연덕스럽게 먹는 녀석이 얄미웠다. 녀석은 어머니의 성의 때문인지 밥그릇을 싹싹 비웠다. 식탁에서 일어서자 목사님과 동생과 지아가 거실로 들어왔다. 방대는 굳어진 내 얼굴을 살폈다.


“차 시간 때문에 이만 올라갑니다.‘


“끼니 거르지 말고.”


“잘 가요. 와서 고마웠어요.”


“안녕히 계세요.”


“나중에 서울서 봐요, 언니.”


마당을 빠져나와 도로에 들어서서 뒤돌아보았다. 아까는 보지 못한 서너 사람들이 산에서 내려와 마당으로 들어섰다. 쉼터라더니 탈북자들인 모양이었다. 사람은 결국 끼리끼리 모이고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을 다시금 확인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어머니에게 나는 며느리로 받아들이기엔 지아보다 확실히 이질적인 존재였다. 자식 고집을 꺾지 못해 어쩔 수 없다는 무뚝뚝한 태도가 뒤늦게 떠올랐다. 집 주변을 둘러보라는 말도 어디에 와 있는지 확인하라는 뜻이었을까.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면서 내내 고민했다. 방대의 복잡한 집안 사정을 아빠와 엄마에게 털어놓을 수 없었다. 어쩌면 언니가 귀띔했을지도 몰랐다. 방대의 탈북을 모르고 사귄 것도 아니어서 파혼 선언은 너무 앞서가는 행동이었다. 혜산이란 딱지가 결혼의 걸림돌이 될 거라고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머리에 뿔 달린 것도 아니어서 똑같은 사람이 아닌가.


“지금은 힘들어도 점차 좋아질 거야. 나와 사는 거잖아.”


방대가 어깨를 다독거렸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늘 최고의 선택을 한 것은 아니지만 최악도 없었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결혼을 최악으로 선택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동시에, 도전해서 이겨내야 한다는 생각도 했다. 힘들고 어렵지만 마음을 더 활짝 열고 관성적으로 생각했던 문제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봐야 했다. 넓고 깊은 포용력이 필요했다. 누구나 살면서 저마다 크고 작은 장애물을 맞닥뜨리는데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물과 기름이 아니라 물과 물 사이에 있는 엷은 기름층이 있었다. 그것은 적대적 공생에 기생하는 논리와 세력이었다. 민수가 가장 잘 보여주었다. 고속버스는 서울을 향해 빠르게 달렸다.


“그렇게 좋아?”


“말해서 뭐 하니?”


언니의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졌다. 넉 달째로 접어드는 신혼이라 세상을 다 가져 걱정 하나 없는 해맑고 밝은 어린아이 얼굴이었다. 여러 결심으로 꾹꾹 눌러두었으나 결혼식을 보름 앞둬 막연한 불안이 또다시 꿈틀거렸다. 매포에 다녀온 뒤로 언니에게 말하지 않았다. 매포에서 중국인 동생을 만났다는 사실은 존재를 알고 있는 것과 다른 차원이었다. 탈북한 시어머니와 의붓시아버지, 중국인 시동생으로 이루어진 기괴한 가족관계가 결혼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추측조차 어려웠다. 게다가 시동생은 아내와 아들까지 있다고 했다. 언니에게 말하지 않아도 언젠가 알게 될 것이다.


“사실은.”


말을 끊고 언니를 바라보았다.


“뭐가 더 필요해? 이 정도면 대충 준비는 다 했어.”


“그게 아니고.”


“살림살이가 어설퍼도 신혼이라 문제없어. 필요한 물건은 살면서 마련해.”


“걱정이 있어. 이 결혼해야 할까?”


“얘 봐라. 결혼식이 코앞인데 뜬금없이 무슨 소리니? 불안해? 더 이상 미스가 아니라서? 누구나 숙녀에서 아줌마가 되는 거야. 어쩔 수 없어. 나도 좋으면서도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했어. 지나고 보니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볕이 잘 들어와서 집을 정말 잘 구했어.”


언니는 작은 거실을 가로질러 통유리 밖을 내다보았다. 비탈진 곳에 지은 빌라였다. 남향이고 통유리 밖으로 고만고만한 단독주택들의 지붕이 빼곡하게 줄이어 늘어서 있고 그 너머로 빌딩들이 솟아나 있었다. 발품을 많이 팔았다.


“그런 게 아니야. 매포에 다녀왔잖아?”


“지난번에 인사하러 간다고 했지.”


“왕웨이가 있더라고.”


“왕웨이? 그게 뭐야?”


“씨 다른 동생.”


“중국에 있다고 했잖아? 들어온 거야?”


“느낌이 안 좋아.”


“얘는 결혼이 무슨 애들 소꿉놀이니? 솔직하게 지금 네 눈에 보이는 사람은 방대뿐이잖니? 시어머니와 시동생이 보이는 것은 정상이 아니야. 설령 보여도 이런 사람이 있구나, 하는 정도지. 살다 보면 중요하지 않아. 시어머니가 북에서 왔든 북극에서 왔든 중요한 사람은 남편이야. 옛날처럼 시집살이하는 것도 아닌데 둘이 꼭 붙어서 잘 살면 돼.”


언니는 시원스레 말했다. 있을 수도 없을지도 모르는 일들을 미리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것은 행복에 겨워 투정하는 짓이라고 덧붙였다. 언니의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결혼을 앞두고 지금껏 없었던 가족이 생긴다는 두려움은 피할 수 없었다. 낯설고 어색하고 불편할 수밖에 없으나 누구나 적응하고 원만하게 지내지 않는가. 다만 내 경우는 남들보다 조금 더 다를 뿐이었다. 언니의 말처럼 남편과 사는 것이지 가족과 사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티격태격하겠지만 어쩌겠니? 혜산은 네가 선택한 것이니까 감수해야지. 솔직히 방대가 미남이잖아? 열심히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하지만 내 눈엔 적응하려면 아직 멀었어. 네가 많이 도와줘. 방대도 바랄 거고.”


“그런가?”


“아님, 뭐겠니? 선택했으니 책임 있는 거지. 알면서 물어? 아니, 확인하고 싶어서 나한테 말했구나?”


“그렇기도 하고.”


“잘 될 거야. 아빠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잖아? 속마음은 모르겠지만 딸내미가 데리고 온 남자를 믿어보는 거지. 요즘 세상에 출신 지역을 따져 사위 삼니? 됨됨이를 보지. 아빠도 이만하면 됐다 싶어서 허락했잖아? 그런데 당사자가 자꾸 걱정하면 이상하잖아? 티켓은 끊었어? 사이판에 간다며?”


“예약했어. 호텔도.”


“다시 가고 싶다. 신혼여행. 사이판 바다는 정말 예뻐.”


언니는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여 사이판 여행의 여운을 느꼈다. 행복한 사람에겐 행복한 것들만 보였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세상을 보면 멀쩡한 가로수도 위태롭고 자동차도 위험했다.


아파트 근처에서 걸음이 쭈뼛쭈뼛 느려졌던 방대의 마음도 불안했다. 왜? 떨려? 방대의 표정이 혼쭐나는 어린애 같았다. 떨리지 않으면 이상하잖아? 그러니까 다분히 정상이야. 방대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 헛기침을 두어 번 했다. 매포에서 이렇게 긴장했어? 당연하지. 강심장이구나. 거기에 왕웨이까지 나타났는데도 잘 견뎠네. 대단해. 그런데 내 얘긴 했지? 혜산 출신으로 알아. 물어보지 않을 거야. 네가 곤란해질까 봐.


현관 앞에 도착하자 방대는 크게 심호흡했다. 초인종이 울리고 현관문이 열리고 엄마가 반갑게 방대를 맞이했다. 아빠는 방대에게 잘 왔다며 악수했다. 일요일 오후의 게으른 햇살이 거실 가득 들어왔다. 아빠는 혜산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사회생활은 삼사 년 빡빡하게 적응해야 한다는 말을 연거푸 했다. 이익 관계로 맺어진 직장 동료와 가까이 지낼 필요가 없다는 충고와 남자는 자고로 아내를 행복하게 할 노력을 밤낮으로 끊임없이 해야 한다며 방대를 압박했다. 옆에서 엄마가 아빠의 옆구리를 찔렀다. 언니의 눈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주의를 받지 않은 형부는 방대에게 술을 권하며 잘 내려왔다고 서너 번 말했다.


<잘 내려왔다>에 방대가 잠시 움찔했지만 언니가 빠르게 끼어들어 산수를 잘해서 회계 쪽에 있느냐고 말머리를 돌렸다. 산수보단 정직과 충성심입니다. 방대가 대답하자 얘기가 충성심으로 흘러갔고 아빠는 필요에 따른 충성심이니까 몸까지 상해가며 충성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충성은 아내에게 해야 한다고 다그치듯 말하자 방대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정신교육 하는 것 같았다. 딸내미를 내보내는 아빠의 마음이었다. 상견례는 형식적으로 하니까 결혼 이틀 전으로 결정했다.


“가까이 살면 더 좋을 텐데 좀 아쉽다.”


“지하철 다섯 정거장이면 가까운 거지.”


“한 동네라야 걸어 다니지. 급하면 내가 많이 도와 줄 텐데. 네 형부도 아쉬워하더라. 퇴근하고 시간을 같이 보내고 싶어서.”


“여긴 병원과 가까워서.”


“그래, 어쩌겠니? 이제 와서.”


언니는 아쉬운 표정으로 통유리 밖을 내다보았다. 멀리 병원이 보였다. 뒷산은 오 분쯤 걸어 올라가면 있었다. 비탈길이어서 겨울에 눈이 오면 불편했다. 미끄러지면 엉덩방아는 당연했다. 학교 진입로에서 미끄러져 민수를 만나고 녀석을 통해 방대를 만났으니 비탈길도 인연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했다. 민수에 대한 미안함은 친구로 지내면서 두고두고 갚을 작정이었다. 어쨌든 중매쟁이 노릇을 했으니까.


“쌀이나 냉동식품은 사둬야 해. 냉장고가 비었잖아. 냉장식품도 있어야 해. 장 보러 가자.”


언니가 앞장서서 시장으로 갔다. 가을도 끝자락이었다. 비탈길을 천천히 걸어가다 보니 햇살도 한층 느슨해졌다. 결혼하는 날 첫눈이 와도 좋았다. 즐거움과 기쁨은 언제나 불안이나 슬픔과 함께 걸어간다고 여기니 마음이 편해졌다. 중요한 것은 살아내는 것이었다. 박 서방은 요즘 들어 소홀하지 않나? 아빠의 말에 형부는 화들짝 놀랐다. 농담 삼아 하는 말인 줄 뻔히 알면서도 형부는 호들갑을 떨었다.


장인어른. 그럴 리가 있나요? 칼퇴근에 집으로 직행입니다. 그러면 뭐 하나? 소식이 없잖아? 그보다 확실한 증거가 어디 있나? 형부는 아빠 말에 의아해했다. 네? 무슨?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말뜻을 눈치챈 언니가 입을 손으로 가리며 수줍어했다. 아빠도 참, 얼마나 됐다고. 방대도 아빠 말뜻을 골똘히 추측하는 얼굴이었다. 내 친구들은 벌써 손자와 손녀가 주렁주렁 사과처럼 달렸어. 고놈들 참 이쁘더라. 아빠는 입맛을 쩝쩝 다셨다.


당신은 손자 얘기하면서 왜 입을 쩝쩝거려요? 이상한 버릇이 생겼네. 엄마가 아빠에게 눈을 흘겼다. 우리야 침대에서 백날 뒹굴어봐야 말짱 헛것이지만 박 서방은 그렇지 않잖아? 내가 쓸데없는 말을 했어? 아빠는 투덜거렸다. 장인어른. 몸이 부서지도록 충성하겠습니다. 걱정 붙들어 매십시오. 형부가 씩씩하게 말했다. 그렇다고 애를 너무 혹사시키진 말고. 아빠는 형부의 손등을 툭툭 다독였다. 아이고 장인어른.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혹사는 제가 당하고 있습니다. 형부는 엄살을 떨었다. 괜찮아. 그게 남자의 일생이야. 발버둥도 소용없어. 아빠는 푸하하 웃었다.


이른 아침에 일어났다. 거실로 나가서 어스름한 하늘을 살폈다. 예보처럼 하늘은 끄물끄물했다. 첫눈이 내린다고 했는데 눈발은 보이지 않았다. 눈이 오면 하객들의 교통도 불편하고 예식장 주변도 번잡스러울 터였다. 도어락 단추를 누르는 소리가 들리고 언니가 거실로 들어왔다.


“벌써 와?”


“늦었어. 내가 할 땐 여름이라 밝았지만. 세수부터 꼼꼼하게 해라. 화장 잘 먹게.”


언니는 화장실로 나를 밀어 넣었다. 며칠 전부터 피부 관리를 받았지만 거울을 보니 얼굴이 푸석푸석했다. 자다 깨다 하면서 제대로 잠자지 못했다. 온갖 일들이 머릿속을 헤엄쳐 다녔다. 어릴 적 골목길을 걸으면서도 언니를 놓칠까 무서워 손을 꼭 잡았던 기억. 길고 지루했던 중고등학교 시절. 이제는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형태의 어설픈 포옹과 첫 입맞춤. 친구들과 학교 앞 분식집에서 수다를 떨던 기억. 민수를 처음 만난 학교 진입로의 빙판길. 열람실의 고요. 소극장 연극들의 아우성. 모텔 화장실에서 씻고 나오는 방대의 튼튼한 몸뚱이. 매포의 고추밭에서 멈춘 회상이 잠자리를 괴롭혔다.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생각을 고쳐 썼다. 행복은 걱정을 앞세우면 오지 않는다고 중얼거렸다. 선잠에 들었다가 깨고 다시 잠들었다. 화장실 밖으로 나오자 엄마는 서둘러 아침상을 내놓았다.


“드레스 때문에 많이 먹진 못해도 속을 비우면 못써.”


“엄마 말이 맞아. 결혼식 하다가 쓰러져. 굶어 죽는 거야.”


“얘. 넌 동생한테 죽는단 말을 하니? 칠칠하지 못하게.”


“그 정도라는 거지. 비유에요. 비유.”


“박 서방은?”


“주차장에 있어요. 신부부터 모셔가야죠. 시동 끄면 추울 것 같아서 대기 중이에요. 엄마는 머리를 어디서 할 거예요?”


“신경 쓰지 마라. 동네 미용실에 예약해 놨다.”


아침을 대충 먹고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예식장에서 알선한 미용실부터 시작해서 하루가 바쁘고 빠르게 흘러갈 것 같았다. 차창 밖을 내다보니 완연히 밝았다. 하늘은 여전히 꾸물꾸물했다. 휴일 오전이라 차들은 많지 않았다. 미용실에 도착해 머리를 하고 예식장으로 갔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이미 와 있었다. 거울에서 조금씩 바뀌는 얼굴을 보니 신기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아티스트가 살짝 웃었다.


“웨딩드레스 때문이죠? 다들 그래요. 폐백 하기 전에 뭐라도 조금 드세요.”


“고마워요.”


“말하지 마세요. 집중해야 하니까요.”


신부 화장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웨딩드레스를 입고 신부대기실로 가자 예식장 여직원이 들어와 식이 진행되는 순서와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설명을 했다. 자기들이 알아서 할 테니 인형처럼 있으면 된다고 했다. 동작도 크게 하지 말고 필요한 말만 하라고 했다. 주인공은 난데 인형 노릇을 하라니 좀 억울했다. 신부대기실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언니가 옆에서 도와주었다. 친구들이 대기실로 들어왔다. 다들 한껏 멋을 냈다.


누구는 산후조리원에 들어갔다는 둥 누구는 오는 중이라는 둥 수다를 떨었다. 크게 웃지 말라는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말이 떠올라 살짝살짝 웃었다. 대기실 밖 로비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는 뒤엉켜 무슨 말인지 짐작하지 못했다. 방대는 어제저녁 전화해서 나를 안심시켰다. 실제로 상견례 때 왕웨이는 참석하지 않았다. 결혼식 후엔 이전과 완전히 다르게 복잡하고 번거롭게 살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지만 닥치면 해낼 수 있다고 다짐했다. 식이 시작되었다고 여직원이 알려주었다. 직원 두 명이 내 옆에 붙었다.


“신랑 입장이 곧 있을 거든요. 가야 해요.”


나는 웨딩드레스가 흐트러질까 싶어 조심조심 일어섰다. 식장 입구는 가까웠다. 입구에 들어서면서 주위를 둘러보며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아빠가 옆에서 헛기침했다. 나는 아빠와 팔짱을 끼고 식장 출입구 앞에 섰다. 사회자가 신부 입장이라고 소리쳤다. 하객들의 눈빛이 일제히 내게로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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