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갈나무 숲 19

by 이순직

19


“와! 예쁘다!”


식장 입구에 뒤늦게 들어서자 곳곳에서 소리쳤다. 박수 소리도 들렸다. 식장 입구에 서서 고개를 돌리자 신부가 단상을 향해 첫걸음을 내디뎠다. 예식장 건물로 들어가기 전부터 내리기 시작한 함박눈처럼 새하얀 웨딩드레스는 눈부셨다. 옆에서 같이 걷는 아저씨보다 신부가 껑충하니 키가 컸다.


박수 소리는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신랑이 신부를 마중 나왔다. 아저씨는 연단을 내려가고 신랑신부가 팔짱을 끼고 나란히 걸어 단상 앞에 섰다. 난생처음 보는 풍경이라 낯설고 신기했다. 강을 건넌 뒤로 모두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낯설고 두려웠다. 낮에는 안가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조선족 브로커는 사람들 눈에 띄면 공안이 붙잡아 북송한다고 했다.


혜산역 앞에서 조국을 배신했다며 인민재판을 했다. 보위부에 끌려간 배신자들을 다시 볼 수 없었다. 커튼 친 창문 밖을 몰래 내다보았다. 좁은 골목만 보였다. 이틀 뒤 한밤중에 집을 나와 차를 탔다. 흔들거리는 좁은 차 안에서 반나절 이상 견뎠다. 차는 인적조차 없는 산기슭에서 멈추었다.


“내려요. 어서.”


조선족 브로커는 딱딱하게 말했다. 중국 남자에게 여자를 팔아버리는 악질 브로커가 있다는 말을 들어서 몸을 잔뜩 웅크리고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왜요? 아무것도 없잖아요? 돈도 줬잖아요?”


반항했다. 차에서 내리면 위험할 것이라는 본능적인 판단이었다.


“난 여기까지요. 차를 바꿔 타야 하니까 내려요.”


믿을 수 없었다. 다른 차는 보이지 않았다. 왼편은 산기슭이고 오른편은 황량한 들판이었다. 중국 남자가 기슭 어디쯤 숨어 있다가 차가 떠나면 나타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두려움이 밀려왔고 손이 덜덜 떨렸다. 장마당에서 온갖 궂은일을 하고 배곯아가며 악착같이 모은 돈이라 한 푼도 허술하게 쓸 수 없는데 속았다는 생각에 분했다.


“어서 내려요. 뒤에 차가 왔잖아요.”


브로커의 말에 뒤를 돌아보았다. 차가 점점 다가오더니 바로 뒤에 멈췄다.


“앞으로 서너 번 차를 갈아타야 할 거요. 감시가 심해서 기차나 버스를 탈 수 없어요. 저쪽도 조선족이니까 말은 통할 거요. 어서 내려요. 어물쩍거리다가 지나가는 차들이 수상하게 볼 거요.”


“고마워요. 미안해요.”


차에서 내려 다른 차에 옮겨 탔다. 나보다 서너 살 많은 여자가 안쪽에 앉아 있었다. 옆에 앉아서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탈북자로 위장한 보위부 스파이가 있다는 소문은 혜산 시내에 알음알음 퍼졌다. 사위가 컴컴해진 뒤에야 차가 멈추었다. 불빛이 제법 있는 도시였다. 방에 갇혀 사흘을 보냈다. 그 사이 일행은 열세 명이 되었다. 사람이 많아지자 불안은 더욱 깊어졌다. 몇 마디 인사말은 나누지만 여차하면 도망칠 궁리를 했다. 스파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도망친다고 해도 딱히 갈 곳은 없었다.


“언니, 나 몰라요?”


양 갈래머리를 한 여자였다.


“모르겠는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장마당에서 봤는데 정말 몰라요?”


“몰라.”


수상했다. 누구도 믿을 수 없었다. 양 갈래머리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긴가민가하는 표정을 지었다. 장마당에서 한두 명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어서 얼굴을 모두 기억하지 못했다.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었다. 다시 밤이 왔다.


“이제부터 멀리 갈 겁니다. 앞으로 중국인이 안내할 거니까 눈치껏 따라줘야 합니다.”


브로커는 자신이 맡은 일은 여기까지라고 덧붙였다. 열세 명이 차 두 대에 나누어 탔다. 차는 주유소에 들르는 일을 빼고 이틀 내내 달렸다. 조금씩 바뀌는 차창 밖 풍경에 위로를 받았다. 혜산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었다. 졸다가 자다가 차의 흔들림에 불현듯 깨어 차창 밖을 내다보며 안도했다. 중국인 브로커는 누군가와 전화하다가 양 갈래머리에게 전화기를 넘겨주었다. 잘 가고 있어, 엄마. 분명 엄마라고 했다. 갑자기 양 갈래머리가 믿음직했다. 다른 차에 탔는지 혹은 아예 감쪽같이 사라졌는지 모르지만 보위부 스파이에 대한 경계심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신랑과 신부는 함께 살면서 많은 즐거움과 기쁨을 나누지만 그만큼 슬픔과 고통도 뒤따를 겁니다. 신랑도 신부를 존중하고 가장으로서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고 신부 역시 신랑의 단점을 찾기보다 장점을 생각하며 인내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작은 일은 키우지 말고 그때그때 대화로 풀어야 하며 큰일은 함께 헤쳐 나가야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주례사는 길었다. 하객들은 움츠렸던 허리를 펴며 하품하거나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몇 사람 건너에 서 있는 남자는 잔뜩 화난 표정으로 신랑신부의 뒷모습을 쏘아보고 있었다. 남의 결혼식장에서 화난 얼굴이라니. 뜬금없었다. 수상했다. 화난 표정이 비아냥거리는 얼굴로 바뀌었다.


브로커와 말은 통하지 않아도 눈앞에 버티고 있는 산을 넘어야 한다는 걸 모두 알았다. 밤이 깊어 어둠이 짙어지자 출발했다. 한 줄로 줄지어 산속으로 들어갔다. 몇몇 사람만 작은 손전등으로 발아래를 비추었다. 뒷사람은 앞사람의 등에 손을 얹고 조심조심 발걸음을 떼었다. 가시나무에 살갗이 찢기거나 억센 잎사귀에 얼굴을 긁히기도 했다. 느닷없이 비가 쏟아지고 멈추기를 반복했다. 산길은 질퍽했다. 어둠이 짙어 미끄러운 길에서 넘어지면 걷는 속도는 한층 느려졌다. 밤이어서 소리는 멀리 퍼져나갔다.


“한 번 북송 당했거든요.”


양 갈래머리가 소곤소곤 말했다.


“그때 저 여자를 봤어요.”


양 갈래머리는 유독 말없이 주위 눈치만 살피던 단발머리를 가리켰다.


“내가 아는 체를 해도 한사코 모른다고 그래요. 이상하지 않아요?”


나는 고개를 들어 앞서 걷는 단발머리를 보았다. 단발머리는 두 번째로 합류했다. 안가에서 자다가 깨어나 보면 단발머리는 오도카니 앉아 고민에 빠진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항상 문 앞에서 잤다. 여차하면 도망칠 궁리하던 때라 잠자리 다툼도 했었다. 그때마다 단발머리는 옹고집을 피웠다. 한 번은 화장실 문을 무심코 벌컥 열었는데 황급히 핸드폰을 숨겼다.


“여기까지 오는데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으니까 스파이는 아닌가 봐요.”


양 갈래머리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보위부 사람들도 도망치는 마당에 스파이라고 별다를까. 속으로 짚었다. 산은 넘을수록 험했다. 몇 개를 넘었는지 알 수 없는데 눈앞에 여전히 산이 버티고 있었다.


“자고로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이제 신랑신부가 하나가 되었습니다. 기쁨만 나누는 것이 아닙니다. 슬픔이 오면 또한 나누면서 이겨내야지요. 흰 머리카락이 숭숭 빠져 대머리가 될 때까지 서로를 아껴가며 살아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인연 중에서 부부의 연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 사회의 가장 기본이며 어떤 험난한 역경도 이겨낼 든든한 버팀목입니다.”


비아냥거리던 남자의 얼굴이 조금씩 일그러졌다. 눈살을 찌푸리고 입술을 삐죽거렸다. 경멸의 눈빛으로 신랑신부의 뒷모습을 쏘아보았다. 이상했다. 괴상했다. 남의 예식장에 들어와서 무슨 짓을 하나. 하객들은 지루함에 조금씩 지쳐갔다.


양 갈래머리가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단발머리는 외톨이가 되었다. 아무도 그녀와 얘기하지 않았다. 뒷말이 무성했다. 스파이라면 조선족 브로커가 모를 리 없다는 말과 머리 모양만 바꾸면 알아보기 힘들다는 얘기도 오갔다. 어느 쪽이 맞는지 알 수 없었다. 의기소침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죽은 듯 조용히 있는 단발머리가 측은했다. 보위부가 이곳 산속까지 쫓아올 가능성이 없어서 그런 감정이 들었다.


비가 미친 듯이 쏟아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쳤다. 홀딱 젖은 몸은 걸을 때마다 무거워졌다. 산에서 내려오자 어슴푸레 날이 밝았다. 일행 모두 낙오하거나 다친 사람은 없었다. 온몸이 너덜너덜해져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생김새도 다르고 방바닥도 색다른 방에 모여 긴장과 피로를 덜어냈다. 어디에서도 중국말은 들리지 않았다. 다시 밤이 오고 작은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풍경은 며칠 눈에 익은 중국 거리와 달라 낯설었다. 한참 가다가 차에서 내려 인적 없는 울창한 숲길을 걷다가 다시 도로로 나왔다. 버스에 탔다. 초소가 있다고 했다. 꼬박 하루를 그렇게 보냈다.


“특히 신랑이 잘해야 합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신랑은 신부의 말에 토를 달아 대드는 일은 해서는 안 됩니다. 신랑은 지는 게 이기는 겁니다. 가장이라고 지배하려 든다면 평화는 삽시간에 깨집니다. 작든 크든 모든 일은 항상 대화하면서 해결하길 바랍니다.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니까 신랑은 마음 깊이 담아두어야 합니다. 자나 깨나 아내 조심은 유부남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걸 명심하길 바랍니다.”


하객들 사이에서 소곤소곤 작은 목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주례사가 길다는 불만이었다. 신랑신부의 뒷모습을 향해 이죽거리던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향우회에서 만났던 몇몇 사람이 눈에 띄었다.


“신랑신부를 위해 할 말은 많지만 다음 말로 갈음합니다. 주례사대로 살아지지 않는다!”


하객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졌다.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보았지만 수상한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좋은 일에는 항상 훼방꾼이 파리처럼 꼬였다. 안심할 이유도 없는데 왠지 마음이 놓였다. 그렇다고 결혼식이 내게 좋은 일은 아니었다. 솔직히 오고 싶지 않았다. 향우회에 가면 들리는 말로 충분했다. 이제 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럼에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예식장 교통편은 아들이 인터넷 검색으로 알아냈다.


흐린 불빛에도 출렁거리는 검은 강물이 무서웠다. 메콩강이었다.


“예전엔 악어가 산다고 했지만 헛소립니다. 여러분이 떠나온 땅에 악어가 살아요. 걱정 마시고 편하게 앉아들 계세요. 강 건너에서 만납시다.”


선교사의 말에 작고 길쭉한 배에 일렬로 앉았다. 검은 물이 넘실거렸다. 마지막 길이었다. 강을 건너면 비로소 탈북의 끝이었다. 탈북 여정의 긴장과 검은 물에 지레 겁을 집어먹은 긴장이 뒤섞였다. 두 손에 힘을 주어 배를 꽉 잡았다. 나무배 바닥에 강물이 고여 있었다. 건너편 마을의 불빛을 강기슭에 닿을 때까지 놓치지 않았다. 이윽고 강기슭에 도착하자 다리 힘이 풀려 휘청거렸다. 양 갈래머리도 단발머리도 얼굴 가득 활짝 웃음을 지었다. 아들 손을 꽉 움켜쥐었다.


대륙을 종단하는 어느 곳에서도 아들은 있는 듯 없는 듯 잘 따라주었다. 나는 왜 아부지가 없어? 개마고원 잎갈나무 숲을 이리저리 뛰어 놀다가 집에 돌아오면 투덜거렸다.


방대가 떠나던 날, 어둠을 뚫고 원호와 명규가 집으로 찾아왔다. 이거 방대 배낭이지? 원호가 땅바닥에 툭 내던졌다. 입 벌린 배낭 안에 옷가지와 비닐 뭉치가 있었다. 약초 캐러 가는데 옷이 왜 필요해? 강을 건너려고 했어! 분명히! 넌 알고 있었지? 다혈질 원호는 씩씩거렸다. 내 얼굴에 플래시 불빛을 비추었다. 그걸 어떻게 알아? 모르는 일이야. 나는 딱 잡아뗐다. 조금이라도 꼬투리를 잡으면 무슨 행패를 부릴지 알 수 없었다.


정말이야? 원호는 다시 물었다. 그렇다니까. 아부지가 깰지도 몰라. 어서 가. 나는 영문조차 모른다는 표정으로 도리어 다그쳤다. 방대 집에 가보면 알겠지. 가자, 명규야. 집 앞에서 그들이 들고 있는 플래시 불빛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 있었다. 배낭에서 방대의 옷가지를 집어 들었다. 여전히 남아 있는 방대의 땀 냄새에 눈시울이 금방 뜨거워졌다. 일주일쯤 지난 뒤에 산짐승이 파먹은 시체를 잎갈나무 숲에서 봤다는 소문이 장마당에 퍼졌다. 무서워서 누구도 손대지 않았다고 했다. 보안원도 신경 쓰지 않았다.


앉지도 못하고 누워 시름시름 앓던 할아버지가 방대와 함께 강을 건넜을 리는 없었다. 시체가 방대의 할아버지라는 직감이 들었다. 분명했다. 산짐승이 냄새를 맡아 가만히 뒀을 리 없었다. 개마고원으로 올라갔다. 이곳저곳 찾아다녔다. 잎갈나무 숲은 넓었다. 어느 구석에 누워 있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거의 포기하고 있다가 방대가 생각나면 늘 지나가던 길옆에서 흔적을 찾았다. 방대와 사랑을 나누던 곳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흥건하게 고였을 핏자국만 검게 남았다. 핏자국을 망연히 내려다보다가 작은 뼛조각을 발견했다. 손가락뼈인지 어디 뼈인지 알 수 없었다. 갈고리 모양이었다. 내게 남은 방대의 흔적일까 싶어 주워들었다. 배낭에서 찾은 사진과 옷가지가 전부였다.


방대가 떠난 뒤로 원호는 더욱 치근덕거렸다. 원호는 자기 집처럼 들락거리며 동생을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곤 했다. 여러 번 나를 덮치기도 했는데 간혹 동생이 방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헛수고가 됐다. 동생은 엄청나게 화를 내면서 원호에게 대들었다. 원호를 제압할 수 없었다. 동생은 실컷 두들겨 맞았다.


며칠 뒤 보안원이 빙두를 한다는 소문이 있다며 동생을 보안서로 끌고 갔다. 하루 뒤에는 아버지마저 붙잡아 갔다. 덜컥 겁이 났다. 보안서에 달려가 아버지와 동생의 소식을 알려고 했지만 어떤 말도 듣지 못했다. 계절이 열댓 번이나 바뀔 동안에도 원호는 자기 집처럼 들락거렸다. 매몰차게 대했다. 원호를 달래고 구슬려도 아버지와 동생 소식은 듣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장마당에서 전거리 교화소로 끌려갔다는 소문을 들었다. 아버지와 동생이 탈북을 돕는 현지 브로커라고 자백했다는 것이다. 원호의 농간이었다. 몇 해 지나 원호가 뇌출혈로 죽었다는 소문이 장마당에 퍼졌다.


“마지막으로 신랑신부의 행진이 있겠습니다. 하객 여러분들은 힘찬 박수로 새 출발을 축하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사회자의 목소리에 결혼 행진곡이 식장 가득 울려 퍼졌다. 신랑신부는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한 발씩 연단을 걸었다. 나는 출입구 쪽 연단 끝에 서서 손뼉 치지 않고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 점점 다가오는 신랑의 얼굴이 낯익었다. 아니다. 낯설었다. 생판 처음 보는 남자라고 마음속으로 자꾸 되뇌었다. 신랑신부의 뒷모습을 보며 이죽거리던 수상한 남자가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와 섰다.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신랑신부를 째려보았다. 마냥 행복한 웃음을 얼굴 가득 채운 신랑신부는 세상 부러운 것이 없었다. 신랑신부가 점점 다가왔다. 느닷없이 눈물이 핑그르르 돌았다. 아들 손을 꽉 잡았다.


그 순간 서너 걸음 앞에 멈춰 선 신랑의 눈과 마주쳤다. 옆에 선 이상한 남자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아주 천천히 손뼉을 쳤다. 나와 눈이 마주친 신랑의 표정이 찰나에 얼음보다 차갑고 딱딱하게 굳어졌다. 휘둥그레 커진 눈과 놀라움과 반가움이 뒤섞인 반쯤 벌어진 입술을 보았다. 아들을 바라보는 신랑의 눈이 더욱 휘둥그레졌다. 신랑은 황급히 내 눈길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신랑은 하객들을 향해 어색한 억지웃음을 지었다. 인사하는 허공을 휘젓는 손이 가늘게 떨렸다.


“에이, 동물원에 간다면서 이게 뭐야?”


아들이 투덜거렸다.


“다음에 가자. 꼭 가자.”


아들 손을 힘껏 잡고 사람들 틈으로 조용히 빠져나와 서둘러 예식장 건물을 나왔다. 함박눈이 마구 쏟아졌다.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잡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눈물이 심장에서 출렁거렸다. 함박눈은 마음속에도 내리고 귓가에 결혼 행진곡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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