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성과 휴머니즘
1950년대의 소설을 중심으로
전후 신세대 작가들은 청년으로서 전쟁을 체험한다.
그들에게 전쟁은 일상적인 삶에 느닷없이 뛰어든 재난이 아니라 삶의 기반을 뿌리째 뒤흔드는 엄청난 정신적 고통과 치유할 수 없는 육체적 전흔을 남긴 거대사건이다. 당연히 문학적 관심은 전쟁체험의 형상화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이는 전쟁의 참상을 증언하고 인간성의 유린을 고발하며 사회악에 저항한다는 휴머니즘의 구호로써 대변된다.①
특히 인간이 가진 동물성의 극대화로써 잔혹성뿐만 아니라 부조리한 상황에서 비롯하는 상황적 잔인성을 형상화하는 작품들은 치열한 전투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전쟁터를 배경으로 하며② 잔혹성에 대항하는 인물을 통하여 휴머니즘의 회복을 촉구하는 패턴을 가지고 있다. 동족상잔이기에 한국전쟁의 잔혹성은 더욱 비극적인 색채를 가지는데 잔혹성과 휴머니즘의 문학적 형상화에 따라 몇 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전쟁터의 잔혹한 행위에 대한 휴머니즘적인 저항이 엿보이는 서기원의 「이 成熟한 밤의 抱擁」과 오상원의 「猶豫」가 있다.
둘째, 아군 사이의 갈등으로 전쟁의 부조리한 상황에서 비롯하는 잔혹성을 보여주는 곽학송의 「獨木橋」가 있다.
셋째, 사건과 인물 사이의 괴리를 통해 전투상황에서 비롯하는 잔혹성을 형상화하는 이호철의 「浮群」을 들 수 있다.
넷째, 잔혹성에 대한 저항으로서 휴머니즘을 제시하는 송병수의 「人間信賴」가 있다.
이외에도 전쟁터에서의 상황과 심리 속에서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일깨우는 휴머니즘의 경향을 담고 있는 박연희의 「무기와 인간」, 선우휘의 「단독강화」, 최일남의 「동행」, 이문희의 「핏빛」, 강용준의 「蜥蜴의 抗告」 등이 있다.
「이 成熟한 밤의 抱擁」에서는 수많은 전투를 치르는 과정에서 생기는 억압형 욕구불만의 두 가지 반응을 김상사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전쟁터의 현실이 맹목적인 자연충동으로써 증오와 적개심이라는 원시적 격렬성을③ 자극하는데 전투를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과정에서 두텁게 쌓인 적대적 감정은 억압형 욕구불만의 형태로 나타난다.
억압형 욕구불만의 반응은 공격성으로 변하여 나타나기도 하지만 체념에 빠져 개인의 지적 생활이 보다 더 원시적이고 보잘 것 없는 양식으로 돌아가는 정신적 퇴행현상으로도 나타난다.④
정신적 역행현상은 폭력행위의 맹목성을 부추겨 잔혹성을 부채질한다. 왜냐하면 평상시와 전혀 다른 차원의 사고틀을 요구하는 전투행위는 인간을 갑자기 전적으로 별개의 심리적 상황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데⑤ 모든 가치를 전복하고 정신을 혼돈의 극으로 몰고 가기 때문이다.
증오와 적개심이 소용돌이치는 원시적 격렬성에서 비롯하는 잔인성과 억압형 욕구불만으로 인한 정신적 역행현상에서 비롯하는 잔혹성 모두 김상사에서 발견할 수 있다.
죽음조차 권태로운 일상이 되어버린 최전방 고지에서 김상사가 주먹밥을 먹다말고 밥풀이 붙은 손으로 포로를 한 방에 쏘아 죽이자 “나”는 “네가 사람이냐” 외치며 달려든다. 어떤 저항력도 상실한 포로를 심심풀이 삼아 쏘아 죽이는 살인기계로 전락한 김상사에게서 억압형 욕구불만이 공격성으로 변하여 나타나는 사례와 지적 능력이 원시적이고 보잘 것 없는 것으로 퇴행하는 정신적 역행현상을 동시에 찾아볼 수 있다. 정신적 퇴행이라는 내면적 변화가 충동적으로 포로를 사살하는 폭력성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나는 사나운 짐승의 울음소리를 지르며 김상사의 턱을 발길로 걷어찼다.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네가 사람이야, 네가 사람이야, 하고 목청을 쥐어짰다.⑥
“나”에게 김상사의 폭력은 인간 이하의 동물성의 행동으로 간주된다. 왜냐하면 전투행위가 끝난 뒤에 포로를 恣意에 따라 사살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전투로 “누구나 다 미쳐버렸을지도 모른다”는 판단 속에는 김상사의 발작적인 동물적 폭력성도 포함된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두 獸性의 광기에 휩쓸려 있다는 진단 역시 억압형 욕구불만에 짓눌려 있다는 의미와 같은 차원이다. 그런데 나는 광기를 보고 있기에 즉 전쟁의 광기에 객관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상명하복의 질서를 파괴하는 행동을 할 수 있다.
이때 그 행동은 김상사에 대한 개인적 항의가 아니라 계속되는 전투행위로 말미암은 수성에 대한 저항으로 읽을 수 있다. 따라서 전쟁에 대한 혐오감 짙은 반전의식으로써 휴머니즘적 행동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나”의 탈영은 표면적으로 상희를 만나기 위해서이지만 내면적 의미는 오직 살기 위해 적을 죽이는 무의미한 죽음의 현장인 전쟁터로부터 탈출하는 행동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선구의 방에서 전투상황을 끊임없이 반추하는데 전사자를 축소해서 상급부대에 보고하는가 하면 전우의 죽음에 “꽃송이라도” 얹어줄 수 없는 獸性의 전쟁터에서 정신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신 역시 전쟁터에서 “짐승의 삶”을 보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희에게 가서 “지난 모든 것을 털어놓겠다”는 것은 전쟁의 잔혹성에 대한 폭로의 성격을 갖는다.
「猶豫」에서도 유사한 경우를 찾을 수 있다. 수색대 소대장은 적진에 너무 깊숙이 들어가 통신이 끊어지고 추위와 허기에 시달리는 한편 잦은 소규모 전투에서 부하들을 모두 잃는다. 그는 선임하사와 유사한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 역사는 “인간이 인간을 학살해온 기록”이며 사람은 “싸우다가 쓰러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믿는 것이다. 그는 혼자 살아남아 산 속을 헤매다가 그러한 소박한 믿음에서 사형 당하는 국군 포로를 구하기 위해 총을 겨룬다.
순간 그는 총을 꽉 움켜쥐었다. 내일을 위해 오늘의 싸움을 피한다는 것은 비겁한 수단이다. 지금 저 눈길을 걸어가고 있는 피해자는 그가 아니라 나 자신이다. 내가 지금 피살당하여 가고 있는 것이다.⑦
십중팔구 자신의 위치만 발각될 뿐 포로를 구할 수 없다는 명백한 사실 앞에서도 소박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휴머니즘적인 행동을 포기하지 않는다. 즉 의지의 표현이다. 또한 총살당하는 포로가 그가 아니라 “나 자신”이라고 천명한다. 포로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전쟁의 도구가 아니라 생명체이며 인간임을 자각하기에 휴머니즘적 행동을 감행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포로를 사살하는 극단적인 전쟁의 잔혹성에 대한 저항으로써 휴머니즘적인 행동을 규정할 수 있다. 따라서 「이 成熟한 밤의 抱擁」과 「猶豫」에서 보이는 휴머니즘적 저항은 기본적으로 동물적 폭력에 대항하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옹호하는 정신을 이해할 수 있다.
「獨木橋」는 전쟁터의 부조리한 상황에서 비롯하는 잔인성을 염두에 둘 수 있다. 가령 패전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명령에 따라 전투를 수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든가 후퇴 도중 부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안락사를 선택하는 등의 부적절한 죽음(inappropriate death)을 가져오는 상황적 잔인성은 전쟁이 갖는 비인간적 성격에서 비롯한다.
즉 인간을 도구화하고 獸性化하는 전쟁의 부조리한 속성에 기인한다. 적대적 감정에서 비롯하는 잔인성뿐만 아니라 전쟁터의 상황에서 비롯하는 잔인성 역시 궁극적으로 반전의식의 고양과 휴머니즘의 회복을 강조하는 주제를 은연중에 가지고 있다. 반전의식은 인간을 세계로부터 영원히 소외시키는 대량살상 행위를 거부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의식으로 볼 수 있는데 휴머니즘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⑧
아군 사이의 갈등은 적과의 교전 중에 맺는 잔혹성보다 더욱 비극적인 상황으로써 전쟁을 인식하도록 한다. 갈등은 소수 병력으로 고지 사수를 고집하는 중대장 이덕호 중위와 탄환도 부족한데다가 부하들의 목숨을 담보로 패전할 수밖에 없는 뻔한 전투를 수행해서는 안 된다는 부관 김영수 소위 사이에서 일어난다.
이중위가 군인의 규율을 지상명령으로 여기는 성격이라면 김소위는 인간적인 성격을 가진 인물이다. 적의 공격이 시작되자 김소위가 염려한 대로 부하들은 모두 전사하고 이중위와 김소위만 고지에서 탈출한다. 부상당한 이중위는 고지 사수 명령은 연대장이 내린 것이라고 털어놓는다. 연대장을 가만 두지 않겠다는 이중위로부터 김소위는 전쟁터에 놓인 군인의 본분과 잔혹할 수밖에 없는 연대장의 입장을 더듬는다.
당장 달려가서 연대장을 죽여 버리겠다는 심정을 이해할 수도 있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덕호 자신의 입장만 고집하는 이기적인 생각에 지나지 않으며, 사십 명의 생명을 죽이고 수백 수천의 생명을 살릴 수 있었다면 연대장으로선 사수 명령을 내리는 것이 타당했다고 그렇게 생각한 영수는 자기가 덕호를 원망한 것처럼 어쩔 수 없이 사수 명령을 내린 연대장을 원망하는 덕호를 차라리 경멸할 수밖에 없었으며 덕호를 미워한 자기의 마음속에 불순한 「티」가 섞여 있었는지도 모르는 것처럼 연대장을 만나기 전엔 죽을 수 없다는 덕호의 마음속에도 생명에 대한 애착이 전혀 없지도 않다면 자기나 덕호의 그러한 관념은 조금도 누구를 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無我無心으로 기계처럼 상관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사병들의 태도가 참다운 군인의 본분이며 어떡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이요, 또한 그러한 태도만이 인간과 인간 사회를 위할 수 있다면 덕호와 자기는 인간을 배반한 범죄자인지도 모른다고 생각되는 것이었다.⑨
인용문은 보다 많은 목숨을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소수의 희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생명이 자신의 의지와 전혀 관계없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전쟁의 잔혹성에 대한 인식과정을 보여준다.
즉 개인의 자유의지가 집단의 이익에 구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서 휴머니즘이 발 디딜 수 없는 전쟁의 부조리한 속성을 보여준다. 급기야 그러한 속성에 대한 절망적 태도로서 자신이 “인간을 배반한 범죄자”라는 체념적 사고를 보여줌으로써 보다 적극적인 반전의식의 고양을 시도한다.
「浮群」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잔혹성은 허구적 상황과 인물의 괴리에서 비롯한다. 이데올로기를 출세의 발판으로 이용하는 강홍석을 제외한 모든 인물들은 전쟁터의 긴박한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다. “어찌어찌 하다보니”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군관이 되어버린 완호, 소년 티를 벗지 못한 열 여섯 살의 인규, 고향 생각에 집착하는 철없는 서른 살의 영변동무뿐만 아니라 군인이라기보다는 민간인에 가까운 신병들은 적대적 감정이 들끓어야만 하는 戰場의 인물은 아니다.
인물 사이의 관계도 상명하복을 철칙으로 하는 군인이라기보다 민간인에 가깝다. 홍석과 완호‧완호와 인규‧인규와 영변동무‧인규와 청진동무 등의 관계가 보이는데 이들 사이의 관계가 계급이나 명령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면모에서 비롯한다. 홍석과 완호는 친구로, 완호와 인규는 애정 어린 보살핌과 친근감으로, 인규와 영변동무는 고향 생각의 말동무로, 인규와 청진동무는 또래의 공감대로 맺어져 있다. 어디에서도 전우애라든가 혹은 전쟁터에서 갖는 적대적 감정을 찾을 수 없다.
먼 남쪽 가도에 늘어 있는 개미떼처럼 엎뎌 있는 숱한 적 군인들과 그 뒤로 저편 구릉에까지 꽉 차 있는 트럭들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들은 말간 햇살 밑에 서서히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인규는 입이 헤벌어지며 다시 그 동무를 돌아다보았다. 그 동무는 히쭉 웃으며,
“굉장하지?”
“……”
인규도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 웃었다. 어처구니 없이도 신이 나는 듯 했으나, 다음 순간 풀이 죽어 버렸다.⑩
다만 “풀이 죽어버릴” 뿐이다. 아무리 열 여섯 살의 소년병이라 해도 전투를 위해 접근하는 적군의 규모가 굉장하다고 감탄할 수 없다. 즉 상황과 인물이 적확하게 맞아떨어지지 않는 괴리가 소설 곳곳에 있다.⑪
홍석과 완호가 사살 당하고 연변동무와 인규 역시 전투기의 기관총에 죽는 결말에서 예의 괴리는 전투상황의 잔혹성에서 비롯하는 비극을 극대화한다. 따라서 적대적 의도는 물론이고 적대적 감정조차 엿보이지 않는 선량한 인물들이 강요된 전투 속에 내던져져 목숨을 잃는 비극의 잔혹한 현장으로서 전쟁터의 한 국면을 제시한다.
「人間信賴」는 평면적 인물인 췌유를 통하여 전쟁터의 잔혹성에 대한 저항으로써 휴머니즘을 제시한다. 이야기는⑫ 처음-중간-끝을 가진 사건의 모방으로 전체적인 흐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췌유는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수많은 전투를 치르다가 급기야 미군의 포로가 된다. 중공군이 포로를 사살하듯이 자신도 당연히 죽을 것으로 예상하나 미군의 후퇴에 동행하게 된다. 소규모 전투에서 털보가 사살 당하자 검둥이로부터 증오의 눈길을 받지만 췌유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긴다.
후퇴 도중 췌유는 미군 비행기의 폭격으로 부상당한 은딱지를 업고 간다. 그러나 은딱지의 심한 부상과 아군의 진지로 무사히 탈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희박해 검둥이는 은딱지를 안락사 시킨다. 포로인 췌유에게 총마저 넘겨준 검둥이는 모든 것을 단념한다. 췌유는 검둥이를 업고 적진까지 데려다주려 한다.
이상과 같은 줄거리를 플롯에 따라 잔혹성과 휴머니즘의 요소를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 고량주를 마시고 적진으로 뛰어들게 함.
㉯ 후퇴하려는 전투원을 뒤에서 감시함.
㉰ 포로를 사살함(췌유의 회상1).
㉱ 허기와 갈증에 시달림.
㉲ 포로를 찔러 죽임(췌유의 회상2).
㉳ 비행기의 폭격.
㉴ 검둥이가 은딱지를 안락사 시킴.
㉵ 췌유는 은딱지와 검둥이를 차례로 업고 감.
㉮와 ㉯는 중공군 군관이 사병에게 가하는 잔혹한 일면이다. 정규군이 아니라 노역 삼아 총알받이로 끌고 나온 췌유類의 병력이기 때문에 강제성을 띤 감시와 규제의 차원이다.
㉰와 ㉲의 회상은 적군에 대한 잔혹한 폭력 행사이며 ㉳와 ㉴는 아군 사이에서 일어나는 무의미한 죽음의 전형으로 저항력을 상실한 포로를 사살하는 폭력보다 한층 잔인하다. 비행기의 폭격은 실수로 빚은 사건임에 반해 은딱지의 안락사는 피할 수 없는 선택으로서 전쟁의 한 국면이 야기하는 잔혹성을 대표한다.
이와 같이 여러 상황에서 발생하는 공통적인 잔혹성은 결말부분인 ㉵에서 검둥이를 업고 적진까지 데려다 주겠다는 췌유의 이타적 휴머니스트의 면모와 대비되어 췌유를 부각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벌써 몇 년 전이던가, 국민당이 쫓겨가고 공산당 천지가 됐을 때 그들이 인민의 적으로 찍어 놓은 주인집 도련님의 도피를 도왔다 해서 췌유는 공산당 자위대에게 잡힌 것이었다. 반동분자, 아무리 따져도 췌유로서는 도시 알쏭한 죄목으로 몇 해 억울한 노역을 치루었다.⑬
췌유는 해설적 방법으로⑭ 형상화된 평면적 인물이다.⑮
췌유는 생경한 이념보다는 사람을 중요시하는 성격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발단에서부터 결말에 이르기까지 일관성을 가지며 노역과 숱한 전투 과정 속에서도 변하지 않아 평면적 인물로 정의할 수 있다. 환경의 변화나 경험의 축적이 성격의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총알받이로 나선 전투를 거치면서 과연 성격이 변하지 않을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은 보편성과 개연성의 측면에서 설득력이 약하지만 인물을 통하여 주제의식을 구체화하는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췌유의 이타적 휴머니즘이 어디에서 비롯하는가 하는 의문은 인물 이해로 초점이 모아진다.
췌유는 봉건적 신분사회에서 하층민에 속하는 私奴이다. 그럼에도 공산당으로부터 반동분자로 낙인찍힌 것은 주인집 도련님의 도피를 도왔기 때문이다. 마을이 공산화되어 도련님이 인민의 적으로 몰려 갖은 고초를 겪자 남몰래 몇 십리 밖에 공산당의 세력이 미치지 못한 곳으로 피신을 돕는다.
“인민 해방”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며 오히려 같이 자란 도련님이 곤란을 겪자 “연민의 정”을 느끼는 인물이다. 이데올로기에 대한 무지라고 볼 수 있지만 생경한 이념보다 인간성을 중요시하는 휴머니즘적 인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러한 휴머니즘적 사고방식은 적대적 감정이 들끓는 전쟁터에서도 고스란히 살아있다.
전장에서도 적에 대한 적개심이 없어 포로가 된 다음에도 “포악하고 흉측하다고만 알아온 적병들이 점점 낯이 익을수록 친해지는 것” 같고 “적병들에게 포로가 된 게 아니라 꼭 어느 낯선 부대에 새로 배속된 기분”을 갖는다. 어딜 가나 췌유에게는 주위의 얼굴들이 낯설기 때문이다. 미군의 짐꾼과 중공군의 짐꾼 노릇을 구별하지 않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췌유의 피동성을 문제 삼아 전쟁기계로 보기도 하나 오히려 전쟁터에 일방적으로 내몰린 피해자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가장 단적인 장면이 미군 비행기의 誤爆이 있은 후 검둥이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이다.
췌유는 저도 모를 소리를 지르며 그들 쪽으로 달려갔다. 그들이 적병이란 건 까맣게 잊고 있었다. 오직 사람의 소리, 사람의 모습만이 그토록 반가왔을 뿐이었다.⑯
오인 폭격이라는 전장의 상황적 잔혹성에 대해 췌유는 피아의 구별에 앞서 사람을 더욱 중요시한다. 뿐만 아니라 부상당한 “은딱지”를 업고 가면서 “반 송장이 된 도련님”을 회상하는 것은 은딱지와 도련님을 동일시하는 심리적 현상이며 자신보다 더 심한 상처를 입은 “검둥이”를 업고 가면서 “도련님을 업어다 주었듯이” 미군부대까지 데려다 주겠다는 췌유의 심성을 통해서 적대적 감정은 물론이고 적개심도 찾을 수 없다.
췌유는 공산당의 국가에 대한 충성심에서 전쟁터에 뛰어든 것이 아니라 반동분자로 온갖 노역에 시달리다 짐꾼과 총알받이로 끌려나온 처지여서 당연하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이념보다 사람을 중요시하는 사고방식에 있다. 따라서 췌유의 이타적 휴머니스트의 면모는 휴머니즘의 기본정신과 맥을 같이 하는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비롯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전쟁터의 잔혹성은 폭력이 원인이 되는 경우와 전쟁의 부조리한 상황에 기인하는 경우로 분류할 수 있다. 전쟁은 적으로 하여금 이쪽의 의지에 굴복하게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폭력행위이다.⑰
폭력행위에는 의도적‧감정적 요소가 매우 깊이 작용하는데 적대적 의도에 종속하는 폭력과 적대적 감정에 종속하는 폭력으로 분류할 수 있다.
전자를 이념의 현실화를 목적으로 하는 이념목적적 폭력이라 한다면 후자는 이념적 폭력의 형태이기는 하나 개인의 적대적 감정의 해소를 목적으로 하는 이념도구적 폭력이라 할 수 있다.
적대적 의도가 있을 때 적대적 감정이 뒤따르지 않아도 싸우게 된다는 사실에서 전쟁의 필요조건으로 적대적 의도를 꼽을 수 있다. 적대적 의도는 이미 시작된 폭력 행사의 구체적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적대적 감정으로 치환된다. 적을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기 때문이다.
이처럼 적대적 의도를 적대적 감정으로 치환시키는 전투과정의 속성에서 전쟁의 잔혹성이 비롯한다. 따라서 국가 차원의 폭력행위에는 적대적 의도가 선행해야 하지만 개인 차원의 폭력행위가 쌍방간에 집단적으로 지속되는 전쟁터의 조건에서는 적대적 감정이 우선한다.
적대적 감정이 선행하는 전장의 비인간적 폭력에 대한 저항으로서 휴머니즘이 제시된다면 전쟁 자체가 가지고 있는 부조리한 상황에서 비롯하는 잔혹성은 반전의식으로 모아진다. 즉 전쟁의 폭력적 잔혹성은 휴머니즘과 관계 맺고 전쟁의 상황적 잔혹성은 반전의식으로 이어진다.
휴머니즘적 행동은 폭력에 대한 단편적 저항의 형태뿐만 아니라 전인적 차원으로까지 고양될 수 있는 이타적 희생에서 비롯하는 경우도 살펴볼 수 있다. 그러나 반전의식의 형상화는 다소 추상적 양상을 보인다. 한국전쟁을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객관적인 시간적 거리를 확보하지 못해 한국전쟁의 정체성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 가장 커다란 이유로 꼽을 수 있다.
따라서 잔혹성과 반전의식의 관계는 전쟁에 대한 보편적 이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처럼 신세대 작가들은 총체적인 인간비극의 현장으로서 전쟁터에 접근하는데 獸性의 잔혹성에 대한 정신적 대응이 휴머니즘이나 반전의식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전쟁터는 인간성을 철저히 유린할 뿐만 아니라 무의미한 죽음(meaningless death)을 초래하는 현장이라는 인식 역시 공통점이다. 따라서 戰場의 잔혹성에 대한 정신적 대응으로서 휴머니즘과 반전의식은 주 플롯에서건 보조 플롯에서건 전쟁현장을 다룬 소설 곳곳에 遍在한다.
① 염무웅, 선우휘론, 창작과 비평, 1967. 겨울호, 646쪽.
② 이부순, 한국전후소설연구, 서강대학교 대학원, 1995, 19쪽.
“<잔혹성>을 체험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세계는 갑작스러운 원시적 공포의 상태로 환원되고 문명화된 것으로 간주되어 왔던 인간의 본질은 사라진다. 특히 <부적절한 죽음>의 만연은 문명화된 삶이 기초하고 있는 전통적인 인간 가치들에 대한 믿음을 동요시킨다. 이와 같은 재난 상황 하의 위기는 그것을 체험하는 사람들에게 전적으로 새로운 <상상적 세계 imaginative cosmos>를 창조하도록 한다. 그러므로 잔혹성의 세계체험과 밀접화된 문학은 모든 문명화된 삶이 기초하고 있는 전통적인 가치들을 손상시키는 위협을 무릅쓰고서라도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세계>의 공포를 환기시키는 문학적 상상력으로 구현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③ 클라우제비츠, 권영길 옮김, 전쟁론, 하서출판사, 1977, 51쪽.
④ 가스톤 부토우르‧시미즈 이쿠타로, 강창구 옮김, 전쟁‧애국심, 병학사, 1983. 96∼97쪽.
⑤ 가스톤 부토우르‧시미즈 이쿠타로, 앞의 책, 101쪽.
⑥ 서기원, 이 성숙한 밤의 포옹, 「사상계」, 1960, 6.
⑦ 오상원, 유예, 「한국일보」, 1955, 1, 1.
⑧ 휴머니즘은 인간성을 존중하면서 모든 속박과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스스로 자유롭게 사고하고 판단하며 행동하는 것을 기본정신과 사상으로 삼는다(김대환, 사회사상사, 법문사, 1987. 367쪽).
휴머니즘에서 가장 중요한 인간성의 개념은 라틴어 humanitas에서 나왔다.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로마에 전파하면서 고귀한 의미에서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humanitas와 일치하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 방법론으로 그리스인들이 갖는 고전적 교양을 간직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르네상스기에 그리스‧로마의 예술과 결부되어 르네상스 휴머니즘으로 불리며 인문주의 및 교양주의와 지적 귀족주의의 색채가 짙다.
이후 18․19세기에 독일에서 발흥한 네오휴머니즘(neo-humanism)은 인간 그대로의 인간‧자연 그대로의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이 용납되고 존중되어야 하며 그러한 삶을 자랑으로 삼는 기본정신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인간의 이성이 창조주인 神에 의해 주어지고 감정이 이성에 규제된다고 하는 그리스도敎의 신학적 인간관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본질이 감정에 있다고 천명한다.
따라서 humanitas가 오늘의 博愛․人道․仁愛를 뜻하게 되고 그것은 다시 인간다움‧인간미‧친절‧친근성으로 구체화된다. 현대의 휴머니즘은 르네상스 휴머니즘이나 독일의 네오휴머니즘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인간의 이성과 능력과 선의에 대한 무조건적인 낙관적 전망은 사라지고 懷疑의 정신과 위기의식이 현대 휴머니즘의 밑바닥에 두텁게 깔려 있다.
Mass(대중)‧Machine(기계)‧Mammon(자본)‧Mars(전쟁)는(안병욱, 휴머니즘의 아포리아, 「사상계」 1967. 3. 24쪽) 현대사회와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어 위기의식은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기계와 자본이 총동원되는 現代戰은 현대사회의 총체적 위기를 불러온다. 따라서 현대의 휴머니즘은 비인간화 현상을 낳는 전쟁을 부단히 경계하면서 인간성의 구현에 초점을 둔다. 휴머니즘의 핵심개념인 인간성은 동물성과 구별된다.
인간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인간 존재의 의의와 목적을 자각하고 의식적으로 인간성을 형성해감을 뜻한다. 그것은 일상생활의 예의범절로부터 전쟁에서의 정의감에 이르기까지 동물적 본능을 문화적 교양으로의 세련을 뜻한다(김대환, 앞의 책, 367∼375쪽).
그러나 전쟁의 구체적인 상황에서 비롯하는 인간성의 상실과 인간성이 동물성으로 타락하는 데에서 비롯하는 휴머니즘의 위기는 현대사회에서 자주 거론되고 있다. 즉 현대사회에서 인간을 위기적 존재로 전락하게 하는 가장 큰 요소로 대량학살을 합법화․정당화하는 전쟁을 꼽을 수 있다. 특히 전쟁터의 적대적 감정에서 비롯하는 잔혹성은 인간성의 반대편에 서 있는 동물성을 자극하고 확대하는 경향을 가진다.
⑨ 곽학송, 독목교, 「문예」, 1953, 12.
⑩ 이호철, 浮群, 「현대문학」, 1957, 1.
⑪ Robie Macauley & George Lanning, 최상규 옮김, 인물구성, 현대소설의 이론, 대방출판사, 1983. 251쪽 참고.
제임스(Henry James)에 따르면 인물과 사건은 매우 밀접해야 한다. 즉 인물의 설명이 곧 사건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인물과 사건의 괴리는 作意에 따른 것으로 보아야 한다.
⑫ 이야기는 일정한 길이의 시간 속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연결되는 일련의 사건들로 정의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이야기는 言述을 통한 사건의 모방이며 처음-중간-끝을 가진 하나의 완결된 행위의 모방이어야 한다.(아리스토텔레스, 천병희 옮김, 시학, 문예출판사, 1993. 127쪽 참고)
그레마스(A. J. Greimas)는 이야기가 매체 또는 기호체계로부터 추상물이어서 한 매체에서 다른 매체로,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그리고 같은 언어 안에서도 다른 형태로 전환될 수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반면에 토도로프(Tzvetan Todorov)는 이야기의 의미란 言表되거나 지각되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言表化가 서로 다른 경로를 밟는다면 동일한 의미를 표현하는 두 개의 發話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즉 토도로프에게 이야기란 고유한 것이며 변형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문학 작품의 경우 번역하면 이야기가 손상될 수 있다고 본다.(한용환, 앞의 책 342∼346쪽 참고)
⑬ 송병수, 인간신뢰, 「사상계」, 1959, 12.
⑭ 박덕은, 한국현대소설의 이론과 적용, 새문사, 1989. 54∼73쪽 참고.
인물구성의 방법은 세 가지이다. 해설적 방법‧극적 방법‧문맥적 방법이다.
해설적 방법은 내포작가나 초점주체가 인물의 성격을 분석‧제시하거나 설명한다. 이는 서술 방법 중에서 말하기(telling)와 밀접하다.
극적 방법은 인물이 말이나 행동으로 자신의 성격을 제시하는 방법이며 보여주기(showing)와 관련이 깊다.
문맥적 방법은 인물을 설명하는 언어적 문맥에 의해 성격이나 이미지를 드러내는 방법이며 독자적으로 쓰이기보다는 해설적 방법이나 극적 방법과 병용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인물구성의 조건은 일관성‧보편성‧개연성 등이 있다. 일관성은 인물의 全面貌가 하나의 성격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조건이다. 변덕스러운 인물이라면 끝까지 변덕스러움을 지녀야 하며 변덕스러움이 없어지면 설득력 있는 서사적 원인을 제시해야 한다.
보편성은 인물의 성격이 상식의 수준에서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다. 허구적 인물이 독특한 상황 속에서의 독특한 개인임은 분명하나 보편적 경험을 지니고 있어야 사실감을 갖는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다.
개연성은 인물이 허구의 소산이긴 하지만 현실보다 더욱 그럴 듯 하도록 실제성(reality)을 부여해야 한다는 조건이다. 즉 환경이나 사건과 인물의 영향관계에서 그럴듯함을 획득해야 한다.
⑮ 인물유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포스터(E. M. Foster)는 평면적 인물(flat character)과 입체적 인물(round character)로 분류하고 뮤어(E. Muir)는 이러한 분류를 정적 인물(static character)과 동적 인물(dynamic character)로 설명한다.
평면적 인물은 환경의 변화나 사건의 체험에 어떤 영향도 받지 않는다. 즉 소설 전편에 걸쳐 성격이 변하지 않는 인물인데 집단이나 계층을 대표하는 전형적 인물(stock character)로 전이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에 입체적 인물은 환경이나 사건과 밀접한 인과관계를 맺는다. 따라서 인생관이나 도덕관을 비롯한 성격의 변화가 나타나며 평면적 인물에 비해 보다 사실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평면적 인물의 소설은 사건과 인물의 等價的 性格에 무게 중심이 놓인다면 입체적 인물의 소설은 사건과 인물의 영향관계를 중요시한다. 즉 입체적 인물은 자연주의 소설에서 전형을 발견할 수 있다.
⑯ 송병수, 인간신뢰, 「사상계」, 1959, 12.
⑰ 김치수, 인간애의 세태소설, 현대한국문학전집14, 신구문화사, 1967. 48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