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방법 및 범위

1950년대의 소설을 중심으로

by 이순직

1950년대 소설연구는 궁극적으로 한국전쟁과 전후사회의 문학적‧정신적 대응이나 수용양상에 관한 고찰의 범주 안에 들어간다. 한국전쟁을 실존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하거나 심층심리학적 관점에서 바라보거나 하는 방법론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연구자는 문학적 상상력의 기본적인 토대가 사회문화적 현실이라는 점에서 또한 문학적 생산물이 개인의 소유물이라기보다 사회적 공유물이라는 관점에서① 사회문화적 시각에서 개별작품을 해석하고자 한다.②

그러나 작품의 창작 동기와 성격에 따라 저마다 다른 접근 방법론을 요구하기도 하는데 필요에 따라 실존주의적 접근과 심리학적 접근을 병행하고자 한다.


사회문화적 방법론은 작품과 현실의 상호관계를 밝히는 작업을 주된 관심사로 두는데 비코(Vico)는 예술과 관습은 그것을 만들어 내는 인간들이 살고 있는 지리적‧풍토적 환경의 산물인 동시에 그 시대의 사회적 발전 단계의 산물로 해석한다.③


테느(Hippolyte Taine)는 문학작품은 서로 침투하는 인종‧환경‧시대의 결과적 산물로 보아야 한다는 선언을 하고 마르크스(Karl H. Marx)와 엥겔스(Feiedrich Engels)는 테느의 3대 요소에 경제적 요소를 추가한다. 즉 문학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서 문학을 문화의 다른 부분과 마찬가지로 생산의 여러 관계 위에 세워진 사회의식의 상부구조로 보았다.


가령 소설의 형식과,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과 재물과의 관계 사이에는 엄밀한 상동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인간과 재물은 사용가치에 의해 규제되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용가치는 교환가치에 의해서 내재적인 것으로 치환된다.


경제 생활에서 물건의 질적인 면과 인간과의 진정한 관계는 소멸되고 인간과 사물과의 관계는 물론이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까지도 간접화되고 타락한 관계로 즉 교환가치의 관계로 바뀌어 가고 있다.


따라서 소설의 주인공이 추구하는 진정한 가치가 내재적인 것은 현대 경제생활의 사용가치가 내재적인 것과 대응한다는 것이다. 테느와 마르크스의 문학사회학은 문학작품의 내용과 사회집단의 의식의 내용 사이에 관계를 수립하려는 내용사회학이라면 골드만(Lucian Goldmann)과 루카치(Georg Lukács)의 문학사회학은 작품세계의 구조와 집단의식의 구조 사이에 상동관계 혹은 영향관계를 밝히려는 구조사회학이다.


'소설은 타락한 사회에서 타락한 양식으로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는 이야기'라는 정의가 구조사회학을 대표하는 명제이다. 따라서 문학을 바라보는 사회문화적 관점은 개별 작품이 출산된 시대의 사회적‧문화적 제반 양상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전제를 통해 문학과 현실의 상동관계를 증명하고자 한다.


실존주의적 접근은 실존철학의 관점을 가리킨다. 1차 세계대전 이후 1920년부터 1930년까지 널리 논의되었던 실존철학은 2차 세계대전을 겪은 유럽에서 실존주의로 유행하였다.④


실존주의 문학이 처음 소개된 것은 「신천지(1948.10)」이다.⑤


그러나 문학의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한 때는 한국전쟁 이후인데 인간은 강요된 죽음의 한계상황 앞에서 존재이유를 성찰하고 실존조명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쟁과 실존주의는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실존조명의 계기가 되는 한계상황이 전쟁의 구체적인 상황 속에 빈번하게 놓이기 때문이다.


실존철학이 잉태할 수밖에 없는 시대적 배경은 자연과학의 눈부신 발전에 있다. 자연과학의 발전에 따른 인간생활의 편리와 절대빈곤으로부터의 해방은 자연과학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를 갖도록 하였다.


즉 성공적인 자연과학적 방법론을 모델로 하는 실증주의의 주창은 학계 내에서 뿐만이 아니라 일반사람들의 공감을 얻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자연과학이 가져온 기술혁명은 전쟁을 통해 엄청난 파괴와 대량학살, 기성사회의 체제와 질서 및 윤리를 삽시간에 무너뜨리는 비극적인 양상으로도 나타났다.


전쟁체험은 인간이 죽음 앞에 선 단독자일 뿐이라는 자각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인간이 공유하는 보편적 합리성에 근거해 자연과 세계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동반자로서의 인간상이 헛된 희망에 불과하다는 의식을 가져오게 한다.


인간의 합리적 노력만으로 세계 자체가 합리화되지 않는다는 자각, 인간의 모든 합리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근본 질서는 불변한다는 자각, 條理나 合理에 대한 열망이 물거품으로 끝나버리는 세계의 부조리성, 그리고 그 앞에서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죽음과 함께 無로 끝나버리는 개체들. 이런 의식들이 바로 20세기 전쟁이 20세기 인간에게 깨우쳐준 근본적 실존의식이다.⑥


심리학적 접근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와 관련된 논의이다.


아버지 콤플렉스(father-complex)는 프로이트에 의해 명명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불린다. 프로이트는 모든 신경증의 밑바닥에 해소되지 않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있다고 가정한다.


4세 내지 5세의 사내아이는 성적 지향에 눈을 뜨기 때문에 어머니에 대한 성적 고착이 일어나며 마침내 아버지에 대해 적개심을 품고 아버지를 대신하고 싶어 아버지를 죽이려 하는 殺父의 무의식을 갖는다.


아버지를 적으로 간주하기에 사내아이는 아버지에게서 거세 콤플렉스(castration complex)를 느낀다. 그러나 부성결핍 콤플렉스(fatherless-complex)는 적으로 간주할 아버지가 애당초 없기 때문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가질 수 없다.


대신 모성에 고착하여 어머니처럼 생각하고 어머니처럼 행동하며 모성에 대한 양가성을 갖는다. 아버지를 통한 사회화 과정을⑦ 거칠 수 없어 이성적 사고보다는 감정적 사고에 지배받으며 무질서하고 극단적이며 비논리적인 성격형성을 밟는다.


융은 인간의 생애에서 인식변화가 일어나는 대전환기를 네 단계로 잡는다. 5세 전후의 유아기‧사춘기를 전후한 청소년기‧장년기‧노년기로 나눈다. 유아기는 감성적 본능을 경험하는 시기라면 청소년기는 자아와 타자를 구분하고 사회적 가치와 질서를 중요시하는 즉 감성보다 이성적 가치와 판단을 앞세우는 세계인식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체험하는 시기이다. 따라서 모성의 자장으로부터 부성의 자장으로 옮겨가는 대전환기로 볼 수 있다.⑧


유아기에서 청소년기로의 이행은 아버지를 통한 사회화를⑨ 말하며 프롬(E. Fromm)의 용어를 빌면 개체화(individuation)이다. 아버지의 결핍으로 사회화 과정을 거치지 못할 경우 모성고착에 사로잡히며 모성의 양가성(ambivalenz)을 갖는다.


모성고착은 사회현상학으로 볼 때 귀속에의 욕구로⑩ 나타나며 모성의 양가성은 이율배반적인 행동으로 나타난다. 좋으면서도 싫고 무서우면서도 우러러보게 된다.


유아기에서 청소년기로의 사회화 또는 개체화는 페르조나(persona)와도 밀접하다. 왜냐하면 페르조나는 자아로 하여금 外界와 관계를 맺게 해주는 기능을 가졌기 때문이다.⑪ 부성적 페르조나를 경험하지 못하면 부성적 외계와 관계상실의 상태에 빠지며 무의식적인 여러 충동에 사로잡혀 타인과 사회에 대하여 아무런 고려도 하지 않고 자기의 기분에 의해서 행동하는 완고한 인격을 나타낸다.⑫


사생아‧고아‧편모슬하의 인물들도 궁극적으로 부성결핍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어 모성고착과 모성의 양가성을 가진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보다 극단적인 감정적 사고에 지배받는 것도 모성고착의 한 양상으로 볼 수 있다.


즉 부성이 로고스(logos)의 영역이라면 모성은 파토스(pathos)의 영역이기 때문이다.⑬ 긍정적인 파토스의 원리는 받아들이는 것․키우는 것․가꾸는 것이지만 부정적인 원리는 비논리성‧극단적 감정‧혼돈 등이다.


연구범위는 신세대로 지목되는 작가들의 단편소설로 국한하며 전후의식과 한국전쟁에 관한 문학적 관심이 1960년대까지 이어진다는 점에서 1960년대에 발표된 1950년대 성격의 소설을 포괄하고자 한다.




문학작품이 정신적 측면에서 사회적 공유물이라는 관점은 문학이 다른 인접 분야의 정신활동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삶과 밀접하다는 인식이다.

즉 A. C. Bradley가 “poetry for poetry's sake”(René Wellek & Austin Warren, Theory of Literature, Peregrine Books, Reprinted 1966. 37쪽)라고 정의한 개념의 반대편에 연구자는 서 있다. 모든 정신활동의 생산물은 생산물 그 자체를 위해 존재한다는 논리는 궤변이며 어떤 식으로든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고자 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러시아 형식주의자인 Victor Shklovsky가 “예술은 존재하여 사람들이 생의 감각을 되찾을 수 있게 한다. 또 예술의 존재는 사람들이 사물을 느낄 수 있게 하며 돌을 돌답게 만들어 준다.”(Victor Shklovsky, Art as technique), 「러시아 형식주의 문학이론」, 한기찬 옮김, 월인재. 1980. 34쪽)고 천명한 것도 이러한 차원에서이다.


허창운, 문학적 의사소통과 문예학의 과제, 「수용미학」, 고려원, 1992. 49쪽.


우리가 문학작품이라고 부르는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실체는 텍스트 안에서만 顯顯되는 것은 아니다. 텍스트는 단지 관련 요소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문학작품의 현실적 실체는 (텍스트 내적 관계 체계로 형성된) 텍스트가 텍스트 외적 실재‧현실‧문학적 규범‧전통 및 관념들과 맺는 관계로 구성되어 있다. 텍스트를 인지하는 일은 그것의 텍스트 외적 배경과 분리해서는 불가능하다.


이선영‧권영민, 문학비평론, 한국방송통신대학, 1991. 45쪽.


조가경, 실존철학, 박영사, 1993. 18∼24쪽.


우한용, 한국현대소설구조연구, 삼지원, 1990, 439쪽.

그 내용은 “실존주의비판-사르트르를 중심으로(김동석)‧사르트르의 사상과 그의 작품(양병식)‧사르트르의 실존주의(박인환)” 등이며 “사르트르의 문학의 시대성”이란 평론과 소설 「벽」(전창식 역)이 실려있다.


김양호, 전후실존주의소설연구, 단국대학교 대학원, 1992. 19쪽.


이부영, 분석심리학, 일조각, 1998. 86∼87쪽.


대체로 남성은 바깥 세상에 관심이 많아 사회적 지위, 권위와 법, 명예를 존중하고 정치, 기업, 국가 또는 학문과 관계를 맺고자 한다. 다시 말해서 사고와 판단, 이념이라든가 사상이나 철학 같은 추상적인 것을 추구하기를 좋아한다. 남성적인 것의 模像인 원형으로서의 아버지는 마치 바람처럼 세계를 움직이는 것.

창조적 기풍‧입김‧氣(pneuma)‧아트만(atman)‧혼(geist) 등을 상징한다.


인간과 법‧국가‧이성과 정신에 대한 관계를 결정하는 존재이며 자연의 動的인 힘, 바람과 폭풍과 뇌성과 번개같은 것이다. 반면에 여성은 수용적이며 분석하고 판단하기보다는 느낌으로써 세계를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사회와 국가보다는 가정이, 추상적인 이념이나 학설, 보편적인 진리보다는 구체적인 개인의 감정을 중요시한다. 여성의 의식은 극도로 개인적이다. 여성적인 것의 모상, 원형으로서 어머니는 산출력 있는 大地와 같은 것이다. 그것은 생명을 잉태하고 기르기도 하지만 죽음을 포용하기도 한다. 그만큼 무의식적인 것과 비합리적이며 영원한 것에 연계되어 있다.


주종연, 한독민담비교연구, 집문당, 1999. 188쪽.


이부영, 앞의 책, 92쪽 참고.


社會化는 원시사회의 入社式과 비교할 수 있다.

융은 入社式의 가장 큰 목적은 모성으로부터 독립하여 종족‧사회‧국가와의 새로운 형태의 일체감을 지향하는 것이라고 한다.


신경득, 한국전후소설연구, 1983. 일지사, 36쪽.


이부영, 앞의 책, 59쪽.

페르조나는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용어이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적응태도 및 행동양식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한다.


“나는 外界와 관계를 맺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나의 마음, 內界와 관계를 갖도록 되어 있다. 우리가 사회라든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과 관계를 갖고 거기에 적응해 가는 가운데 인간에게는 각종 對社會的 적응태도라든가 역할이 주어진다. 이러한 적응수단은 대부분 어느 집단이 공유하는 수단이며 그 개인에 특유한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이 집단이 개인에게 준 역할‧의무‧ 약속 그 밖의 여러 행동양식을 융은 페르조나(Persona)라 불었다.”


이부영, 앞의 책, 84∼87쪽 참고.


⑬ 이부영, 앞의 책, 360쪽.

부성적인 정신상을 로고스적인 것으로, 모성적인 정신성을 파토스적인 것으로 분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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